소설리스트

대정그룹-140화 (140/322)

<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나는 회의가 끝나도 학교에 갈 수가 없었다. 오늘 파벨 씨가 입국한다는 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이 넘도록 소식이 없던 그가 어제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오늘 오전 10시에 입국한다고 해서 나는 부랴부랴, 그가 살집과 연구실을 꾸미도록 했다. 연구실이라야 기존 여유가 많은 연구실에 칸막이만 설치하고 집기나 좀 들여놓으면 되는 일이나 살집이 문제였다. 그래서 어제 오후 내내 아니 밤중까지 쏘다녔으나,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미처 분양이 다 안 된, 이웃의 현대건설 아파트 32평형을 하나 분양받았다. 오늘은 서 이사 혼자 마중을 나갔다. 지난번 내가 겪어보니, 파벨 씨가 영어를 곧 잘 했으므로 이 미연 양의 통역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서 이사가 마중을 나가고 내가 새롭게 각 지역 지사장으로 발령 난 사람들과 별도의 회의를 열고 있는데, 어느덧 시간이 되었는지, 서 이사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왔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부인 외에도 다섯 명의 못 보던 남자들과 함께 왔

더군요. 제가 물어보니 세계적인 발명가들이라는데 그야 알 수 없는 일이죠."

"알았습니다. 내 곧 마치고 나갈 테니, 잠시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고 하세요."

"네, 사장님!"

나는 곧 하던 말의 마무리를 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 부장을 포함한 간부들의 곧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나 또한 먼저 일어나 파벨 씨를 맞으러 나갔다.

"아, 오셨습니까?"

내가 과장된 몸짓으로 양팔을 벌리고 포옹을 하려하자, 그 또한 양팔을 벌려 나를 맞았는데, 나는 안는 것이 아니라 그의 등치에 폭 파묻힌 꼴이 되었다. 곧 밝은 아니 자랑스러운 미소를 지은 파벨 씨가 포옹을 풀고 일행을 내게 소개했다.

"나의 허니 모니카 벨루치 입니다."

그런데 부인이 아주 미인이었다. 영화배우 뺨칠 정도로. 40대 중반이었지만 그 미태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내가 스위스에서 철학을 배울 때 영국에 자주 놀러갔어요. 그 때 사귄 친구들로 하운스 필드 경, 그리고 이쪽은 리처드 브랜슨, 이쪽은 ........"

등 등 내게 파벨 씨가 다섯 사람을 소개 했는데, 나는 대충대충 건성으로 악수를 하고, 파벨 씨 부인의 미모를 살피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 일로 훗날 아주 뼈아픈 대가를 치렀다. 나는 파벨 씨가 소개한 사람들이 이미 세계적인 거물이고, 장차 될 사람임을 모르고 딴전을 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지만, 아무튼 이것은 훗날의 일이었다.

"왜 내 부인에게 관심이 있소?"

파벨 씨의 직설적인 물음에 나는 당황하여 나답지 않게, 서 이사에게 이들을 접대하라 하고는,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휴우.........!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갔던 것 아니야. 진짜 부인이 미인은 미인이다!"

혼자 중얼거리며 나는 곧 내 승용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10월 16일 오늘은 토요일로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그러나 나는 월요일부터 중간고사 시험이 있어, 이에 대비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오늘이 음력이 구월 초닷새로 명희의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업은 없어 다행이었지만 나는 마음 한편으로는 꺼림칙한 기분으로 새벽녘에 청주로 출발을 했다. 내가 청주 사무실에 도착하니 6시 50분으로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다.

단지 2명의 경비아저씨가 나를 반갑게 맞았고, 주인인지도 모르는 경비견만이 나를 향해 컹컹 짖었을 뿐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곧 2층으로 올라갔다. 내 양 손에는 각각 꽃다발과 검은 봉지 하나가 들려있었다.

양손에 물건을 들었으므로 나는 현관 밖에서 소리를 질렀다.

"명희야!"

"명희야!"

몇 번을 불러서야 문을 따는 명희였다. 그런데 명희의 얼굴에 눈물자국이 있었다. 깜짝 놀란 내가 물었다.

"너, 왜 그래?"

"그냥요. 오빠가 와주었으니, 이제 다 됐어요."

"무슨 일인데 그래?"

"사실은 요.........."

다시 무슨 설움이 북받치는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는 명희였다. 나는 얼른 두 개의 물건을 바닥에 내려놓고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으며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왜 그래? 이유를 말해야 이 오빠가 알지?"

나의 부드러운 말에 한동안 더 어깨를 들썩이던 명희가 내 팔을 풀고 생끗 웃으며 말했다.

"사실 오늘 제 생일이잖아요. 그런데 오빠한테도 어제부터 전화 한 통화 없지. 평소 내 생일은 꼭 기억하시던 엄마마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순희 저 멍청이는 말 할 것도 없고요."

"그래도 내 생일이라고 미역국이라도 손수 끓여 먹을 작정으로, 미역국을 앉히는데 왜 이렇게 서러운 생각이 드는지, 그냥 다 팽개치고 한바탕 울고 있는데, 오빠가 오신 거예요."

"그래서 인마, 내가 서울에서 허위허위 달려왔잖아. 그러고 이것 받아라."

그렇게 말한 나는 다시 되돌아가 바닥에 내려놓았던 봉지와 꽃다발을 주워들었다.

"어머! 꽃다발이네!"

꽃다발을 받아든 명희가 아주 좋아라 하며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런데 오빠! 이 흰 국화는 이해가 가지만, 붉은 국화는 구하기도 어려울 텐데........"

"음, 어제 그것 구하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굳이 꼭 붉은 국화일 필요가 있어요? 흔한 황국이면 어때서."

"다 이놈아. 의미가 있는 거야. 그냥 황국이나 몇 송이 사다줄 걸 그랬잖아?"

"그거면 됐지. 굳이........."

"황국은 말이야, 꽃말이 '실망' '짝사랑'인데 받으면 좋겠어?"

"나는 좋아요."

"뭐?"

"오빠가 날 짝사랑하는 걸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이런 자식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오빠가 내가 실망스럽다고 전한 것이면 어쩌려고."

"헤헤헤.........! 그렇게 되나? 그런데, 이 붉은색 국화와 흰색 국화는 그럼, 무슨 의미래요?"

"적국(赤菊)은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아이고 좋아라!"

"백국(白菊)은 성실과 진실 그리고 감사! 됐어?"

"네! 그러고 보니 적국이 10송이 백국이 9송이로 내 나이를 딱 맞춰 사오셨네요."

"그래, 그래."

"그런데 이 까만 봉지는?"

"언니가 어제 네 생각해서 끓여 보낸 쇠고기 미역국이다."

"그래요?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다시 또 눈이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하는 명희였다.

"이 울보를 어떻게 할까?"

나는 명희를 가볍게 끌어안고 그녀의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형부!"

"아이고, 깜짝이야!"

"처제는 언제 거기 서 있었어?"

명희가 깜짝 놀라 뒤돌아서고, 나도 순간적으로 약간 놀랐으나 내색을 않고 물었다.

"흥! 두 사람이 사랑 놀음에 빠졌으니, 제가 보이나요?"

"저놈의 가시나.........."

명희가 달려가려는 것을 내가 제지하며 말했다.

"오늘이 언니 생일이다. 알고나 있었어?"

"전혀요."

거리낌 없이 고개를 살래살래 젓는 순희였다.

"그러지 말고, 이 봉지에 담긴 것이 미역국인데 어서 네 손으로 데워 같이 아침밥 먹자."

"알았어요. 형부!"

그래도 미안했던지 봉지를 받아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순희였다. 잠시 후. 하얀 쌀밥에 미역국과 함께 몇 가지 반찬이 차려진 가운데 밥을 먹는 자리였다.

"오빠!"

"왜?"

"오늘은 오빠랑 단둘이 어디 멀리 놀러 가고 싶다."

"잘한다. 잘해! 오늘도 학원수업 있잖아?"

"이 놈의 계집애가 언니한테 무슨 말 버릇이 그래! 오늘 오전 수업 밖에 없으니 한 번 빼먹어도 되잖아."

명희의 말에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거절하면 삐칠 것인데, 그러면 후환이 두려웠던 것이다.

'아이고, 야! 이번 시험은 어떻게 과락이나 면하면 다행이겠다.'

나는 내심 생각하며 결국 승낙하는 말을 하고 말았다.

"어디로 갈까?"

"오빠 좋은 대로."

"알았다. 일단 밥이나 먹고 보자."

"아이고, 좋아라!"

"쳇, 나도 얼른 남자친구 하나 구해야지."

심통이 났는지 순희가 그 상태로 숟가락을 놓고 일어섰다.

"너, 밥 안 먹어?"

"언니나 많이 먹어."

"저 놈의 계집애가 오늘........."

"메롱~!"

언니를 약 올리더니 제 방으로 얼른 사라지는 순희였다.

"저게 커서 뭐가 되려고.........?"

"얼른 밥이나 먹고 일어나자."

"네, 오빠!"

우리는 바로 준비를 했다. 명희가 아무래도 여자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설거지는 내가 했다. 그랬더니 무척 좋아하는 명희였다.

그래도 아직 준비가 끝나지 않아 나는 잠시 사무실에 내려가, 마 부장으로부터 이것저것 사업 전개내용을 물어보고 다시 올라왔다. 그제야 준비가 끝나 우리는 곧 승용차를 타고 사무실을 떠났다.

내가 향한 곳은 증평과 도안의 확포장공사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어디 놀러 가더라도 그 방향을 택해 현장이라도 한 번 들러보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진 내 생활의 일부였다. 아직도 측량이 다 안 끝나 주임 두 명이 측량을 하고, 일부는 도로 폭을 넓히는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었다.

나는 이들을 만나 일일이 격려를 하고 차를 그대로 괴산 방면으로 내쏘았다. 사리를 지날 때에는 부모님 생각이 났지만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통과를 했다. 그리고 괴산을 거쳐 내가 향한 곳은 수안보 온천이었다.

"오빠, 어디로 가는데?"

"수안보 온천."

"어머, 거기는.........?"

이상한 생각이 드는지 말을 하다말고 얼굴이 빨개지는 명희였다.

"한 번이라도 온천 가봤어?"

"아니요."

"이번 기회에 온천 한 번 가보자고."

"네, 그런데 장난 같은 것 치기는 없기 예요?"

"내가 애들이냐, 장난치게?"

"쳇, 아무래도 불안한데.........."

'흐흐흐........! 그래. 이놈아! 아마도 네 불안이 맞을 것이다.'

나는 내심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비포장 1차선 도로를 조금 더 신경 써서 운전했다. 그러고 채 삼십 분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수안보에 도착했다.

수안보에 도착하니 우리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주위에 먹거리 파는 곳이나 좀 있을까, 겨울 온천욕 시즌도 아니라서 거리마저도 한산했다. 나는 차로 몇 바퀴 둘러보다가 그냥 제법 큰 여관으로 들어갔다.

여관에 곧 온천물이 나오는 것이므로 별도로 온천욕 할 곳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여관 앞에 차를 대자 명희가 붉어진 얼굴로 물었다.

"오빠! 벌써 들어가게?"

"둘러보니 뭐 특별히 할 것도 없잖아?"

"하긴 그러네요. 나는 수안보, 수안보 하길래 뭔가 특별한 줄 알았더니, 실망이네요."

"관광지가 다 그렇지 뭐. 소문만 요란하고, 막상 가보면 별 볼일 없고."

"그래요."

"들어가자."

붉어진 얼굴로 대답이 없는 명희를 재촉해 나는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곧 방 키를 받아 여관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부끄러워 망설이는 명희를 데리고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비누칠을 해서 명희를 씻기는 등, 반은 명희를 빈사지경으로 빠트려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고 우리는 곧 침대에 올라 누구라 할 것도 없어 서로 뒤엉켰다. 이제 아무도 주위에 신경 쓸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명희의 반응이 놀라웠다.

평소와 다르게 엄청 적극적이었다. 내가 명희에게는 오늘 처음으로 펠라치오를 가르쳤는데, 이 또한 열심히 지극 정성으로 했다. 그러다보니 나만 기분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도 무척 흥분이 되는지, 나중에 밑을 만져보니 애무가 필요 없을 정도로 밑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애무도 생략한 채 곧 삽입을 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몇 번은 실신시켜야겠다는 각오로 임했으나, 웬걸. 그녀의 적극 공세에 나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더 오래 버티지를 못했다. 그래도 한 번의 행위가 끝나자 나른한 웃음으로 나를 꼭 끌어안고 만족한 표정을 짓는 명희였다. 나는 그런 명희가 사랑스러워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그런데 이것이 화근이었다.

명희가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나를 애무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기교는 능하지 못해 나를 충분히 달아오르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 정성만은 과히 높이 살만했다.

이윽고 어느 시점이 되자 내 것이 다시 치솟았다. 이번에는 명의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길게 갔다. 이것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나와 같이 전생의 경험이 있질 않고, 초보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첫 관계를 가질 때는, 가급적 한 번 미리 사정을 해두는 것도 최악의 경우를 피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아무튼 나는 모처럼만에 명희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충족시켜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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