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39화 (139/322)

<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이후 파벨 씨와 나와는 한동안 설전을 벌여야 했다. 나는 당신이 그렇게 자신하니, 바로 귀국해서 연구 성과물과 가족을 다 데리고 와라.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거주할 집과 승용차를 완비해 놓겠다. 그렇지만 검증이 될 때까지는 특허료고 뭐고 한 푼도 줄 수 없다는 이야기 전개였고. 그는 특허료만이라도 달라고 칭얼거렸다(?). 결국 나의 끝까지 완강한 태도에 굴복한 그가 일단은 빈손으로 출국했다. 아니 입국 할 때 들고 들어온 서류가방 하나는 들고 나갔다. 나는 그와의 문제가 정리가 되자, 곧 채용광고를 한국일보에 실었다. 이번에는 무역과 전자 두 파트로 나누어 경력과 신입 사원을 뽑았다. 전자 파트에서는 관리직과 생산직을 동시에 채용공고를 내었다. 특이한 것은 선생님들도 모신다는 광고였다. 물론 전 분야에 걸쳐 한국 최고대우라는 문구도 잊지 않고 게재했다. 나는 이들을 월급뿐만 아니라 작업환경에서도 한국 최고를 구현하기 위해, 철 구조물 팀에게 지시해 이들의 기숙사

는 물론 학교도 짓도록 했다. 정부에서는 올해부터 야간 학교를 개설해도 좋다는 법령을 반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조경에도 신경을 써서 산을 허무는 과정에서 미리 채집해 놓은 멋진 소나무라든가, 진달래 등의 조경수도 적극 활용할 예정이었다. 나는 또 생산라인에 들어갈 컨베이어 벨트라든가, 생산에 필요한 모든 공구와 지그들을 뽑아 주문하도록 했다. 이는 금성사의 허웅 부장과 삼성전자의 엄달생 부장을 중간 중간에 불러들여 닦달한 결과였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10월 중순이 되었다. 정확히는 10월 15일 금요일 이었다. 중간고사가 코앞이었지만 기숙사를 짓느라고 조금은 늦어진, 공장 가동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어 생산을 시작했다. 폭50m 길이 100m인 공장 내부에는, 세 개의 라인이 길게 늘어져 돌아가고 있었다.

즉 워크맨을 만드는 라인 두 개와 무선 커피포트를 만드는 라인 한 개였다. 그래도 아직은 공장 내부는 여유가 있어, 2개 라인 정도는 더 설치해도 되었다. 아무튼 라인을 중심으로 1m 간격으로 양옆으로 늘어선 여공들의 손이 바삐 움직이는 가운데, 라인 끝에서는 검수를 끝낸 물건들이 차곡차곡 100개 들이 포장박스에 담겨지고 있었다. 나는 이 현장을 서 이사 이하 관리부서 부서는 물론 생산 파트의 두 부장 즉 허웅과 엄달생 부장 이하 간부들을 거느리고 세심히 둘러보고 있는 중이었다. 둘러보다보니 납땜하는 공정이 있었는데, 납땜 연기가 무방비 상태로 사방으로 퍼지고 있었다. 나는 이것을 보고 이마를 찌푸리며 말했다.

"저 납 연기는 인체에 아주 유해한 물질입니다. 곧 닥트를 설치해서 별도로 배출하도록 하세요. 알겠습니까?"

"네! 사장님!"

누구랄 것도 없는 지시에 전 간부들이 허리 굽혀 내 명을 받았다. 그리고 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이 있으니, 모두 의자가 있어 거기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내가 말했다.

"나는 이들에게 최고의 작업환경과 월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성이 떨어지는 것은 결코 두고 볼 수 없어요. 앉아서 하는 것이 이들에게는 편하겠지만 서서하는 만큼 능률이 오르지 않아요. 내가 그만큼 투자하는 만큼, 생산성은 올려줘야 되지 않겠어요. 당장 점심시간이라도 의자들을 다 치우도록 하세요."

"네, 사장님!"

"그렇다고 일방적인 조치를 취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누리는 혜택이 이 정도다. 그러니 보다 많은 물량을 생산해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냐. 그러니까 조금은 더 힘들더라도 감내해 달라, 뭐 이런 식으로 설득을 하라는 말입니다. 아시겠지요?"

"네, 사장님!"

나는 조립라인을 돌아보고 곧 공장 내부에 꾸며진 사무실 중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헤드테이블에 자리를 잡자마자 관리와 생산 양쪽으로 나누어 간부들이 줄줄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관리 부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생산만 한다고 저절로 물건이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늦은 감이 있지만 오늘이라도 라디오 방송이라도 광고를 내보내세요. 그러고 팔리는 추이를 보아가면서 TV광고라든가 다른 것은 논해봅시다. 그리고 이를 수출할 대책도 세우도록 하세요."

"네, 사장님!"

"전부 에스 맨만 모였나, 전부 네네 소리만 하니, 이거야 원........."

"타당한 지시만 하시니까, 그렇지요."

서 이사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나 또한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가격은 결정되었나요?"

"네, 1만 원입니다."

"1만 원이라........?'허웅 부장의 대답에 나는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내가 불쑥 물었다.

"라디오 가격은 얼마입니까?"

"12,000원입니다."

"TV는 요?"

"120,000원입니다."

역시 거침없이 대답하는 허웅 부장이었다.

"라디오와는 2,000원 차이고, 텔레비전과는 비교할 가치도 없고........?"

중얼거리듯 말한 내가 또 한 번 불쑥 질문을 던졌다.

"생산원가는 얼마입니까?"

"4,850원입니다."

역시 막힘없는 허웅 부장의 대답이었다.

"흐흠.........!"

나는 고민에 빠졌다. 내가 생각하기에 카세트테이프 하나에 1만 원선이면 적정한 가격이었다. 원가 대비 마진율을 생각해도 그렇고. 그러나 79년도에나 세계 최초로 출시될 당시 일본의 카세트테이프 가격을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소니의 창립33주년을 기념하여 33,000엔으로 책정이 되어 내가 쉽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는 이것을 현 엔화와 비교해 가격 산정을 하면 오늘 시세로 100엔 당 167.79엔이라는데 문제가 있었다. 국내 판매가가 대략 20,000원 선은 되어야, 일본의 33,000엔과 거의 동일 가격이었다. 국내를 조금 낮춘다 해도 18,000원은 받아야 된다는 소리인데, 이 가격에 과연 우리 제품을 살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라디오 한 대에 12,000원 하는데, 근 2만원 씩 주고 우리 제품을 살까 생각하니, 아니다 라는 부정적인 답이 나왔다. 그렇다고 허 부장이 책정한대로 우리가 국내에 1만원에 출시한다면 이것도 문제였다. 일본의 오퍼상들이 우리의 수출가로 미쳤다고 구매를 하겠는가, 소매상에서 떼어가도 우리의 수출가보다는 몇 배의 차익을 남길 텐데.

어차피 국내는 버린 시장이라고 생각해야 했다. 아직 국민경제의 수준이 일본과는 격차가 현저해서, 카세트테이프 구매자들이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는 판단 하에, 나는 내심 결정을 하고 말했다.

"국내 시판용 가격을 2만 원으로 올리세요!"

"네?"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나는 간부들의 반대는 못 들은 척 내말만 했다.

"일본의 수출가는 33,600엔!"

"미국이나 유럽은 이를 달러로 역산해 동일가격으로 책정하세요. 세계 최초의 제품이라는 프리미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들 집행하세요."

모두 팔릴까 하는 걱정으로 이맛살이 찌푸려졌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지시를 내렸다.

"생산 부서에서는 특히 불량품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히 테스트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이쯤 합시다. 하고 조경도 제대로 되고 학교가 완공되고 나서, 개업식은 하기로 하고."

"네, 사장님!"

나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압구정동 사무실로 향했다. 9시에 무역 파트의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회의실에 들어서니 무역 파트 인원 총 22명이 모두 집합해 있었다. 조 부장과 최 부장 포함하여 22명으로 이번에 20명을 순수하게 채용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경력자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특기할만한 것은 무역파트의 특성상 최소 영어 회화정도 이상의 능력자를 뽑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넓은 사장실을 일부 개조하여 만든 회의실에 착석하자, 서 이사를 비롯해 김 경제 부장 그리고 채 선장 과장이 뒤에 배석했다. 내가 거두절미하고 말했다.

"오늘 인사 안을 발표하겠습니다. 김 부장님 발표해주시죠."

"네, 사장님!"

나의 지시에 의해 김 경제 부장이 미리 준비된 명단을 가지고 발표를 시작했다.

"먼저 최우선 부장님은 사우디 주재 중동 지사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사장님!"

김 부장의 발표에 최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칠게 항의했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그 점은 내 미안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현재 우리 회사로서는 가장 비중이 높은 곳 아닙니까? 최 부장 같은 인재가 아니면 감당하기 힘들어, 내 그렇게 발령 냈으니 양해하세요."

나의 추어주는 말에 최 부장이 자리에 앉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건 아닌데........."

"다음은 미주지사장으로 오영석 차장, 다음은 일본 지사장으로 홍영기 차장, 다음으로 런던 주재 유럽 지사장으로 김판술 차장, 그 외에 조동호 부장, 민병주 차장은 국내 담당으로, 해외는 각각 3명의 팀원이 배당 될 것이고, 국내는 각각 4명의 팀원이 배당 될 것입니다. 각 팀원들은 나중에 공고를 보시면 자신이 어디에 배치되어 있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이상!"

발표가 끝나자 잠시의 웅성거림이 있었다, 나는 잠시 이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려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우리 회사가 뽑은 무역 파트의 최초의 인재들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할 것으로 기대를 하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세계최초로 워크맨이라는 카세트테이프를 출시하는 것을 기점으로 무선 커피포트 또한 출시되었고, 이어 영상반주기, 실리콘 등 다양한 후속제품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에 기대하거니와 이 제품의 수출에 주력하는 것은 물론, 현지에서 잘 팔릴만한 우리의 수출품 개발에도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주시기 바랍니다. 채 과장님!"

"네?"

나는 말을 하던 도중 뒤를 돌아보며 채 선장 과장을 불렀다. 영문을 몰라 이마에 의문부호를 그리며 대답하는 채 부장이었다.

"어떻게 자리에 음료수 하나 없습니까? 하다못해 물이라도 한 잔 회의를 한다면 준비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사장님! 곧 조처하겠습니다."

채 과장이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튀어나갔다. 나는 오늘의 이 일로 인해 내심 앙심(?)을 품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뒤끝이 굉장한 사람이라서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을 한굉장한 사람이라서 한 번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보복(?)을 한다. 그러니 오늘의 일로 관리과 전체가 한 번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할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으로 잠시 인상을 쓰고 있다가, 금방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회복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수출만큼 수입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무역을 업으로 삼는 입장에서는 수출을 해서 많이 남으나, 수입을 해서 많이 남으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수입을 해서 번 돈은 어디 더럽다고 쓰여 있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나의 비유에 미소를 띠고 경청하는 대정실업 사원들이었다.

"그러니까, 수입품 개발에도 국내는 물론 해외지사 모두 신경을 쓰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노파심에서 말씀드리자면 삼각무역도 적극 활용하도록 하세요. 제가 그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때 사이다와 콜라 물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경리와 채 과장이 들고 들어온 것이다. 나는 경리 고 경희가 따라주는 물을 마시다가 넌지시 물었다.

"전문건설업 경리 조 민희 양은 무얼 합니까? 오늘 같은 날은 좀 도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못마땅하게 생각하니 정말 못마땅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청주 체제와 마찬가지로 전문건설업 경리로 뽑은 조 민희 양은 거의 존재하는 지도 모를 정도로 출근을 하면 그곳에 틀어박혀 꼼짝을 안 했다. 그것을 오늘 내가 지적정도로 출근을 하면 그곳에 틀어박혀 꼼짝을 안 했다. 그것을 오늘 내가 지적한 것이다. 애초에 내가 경리 및 영업사원으로 베란다 새시 영업사원 아가씨들 까지 네 명을 뽑아 배치한 여사원 중 하나였다. 이에 나는 김 부장을 돌아보며 지시를 내렸다.

"앞으로 전문건설 사무실은 폐쇄하고, 부장님이 계신 사무실로 통합하도록 하세요. 업무 분장도 다시 하고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화제가 빗나갔습니다만,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처음에 쿠웨이트에 시멘트를 수출하는데, 우리나라는 시멘트가 금수 품목으로 묶여 수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멘트를 수출하는 스페인과 대만의 업체를 알아보다가, 대만 업체가 가장 저렴한 견적을 제시하는 바람에, 이들 물량을 수출한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어떻게 하든 오더를 따면 다른 나라를 통해서라도 구해주는 것이 상사원의 할 일이라 나는 생각합니다. 제 말이 길어졌습니다만, 나는 여러분들이 애사심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으로 믿고 있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상."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새롭게 우리 식구가 된 사원들 하나하나에게 눈을 맞추며 손을 맞잡아 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