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곧장 사무실로 돌아온 나는 김 부장을 찾았다.
"서류는 준비되었습니까?"
"네, 사장님!"
"갑시다."
"네!"
나는 김 경제 기획부장을 태워 제일은행으로 향했다. 나는 다짜고짜 행장을 찾았다. 그리고 막무가내로 행장실로 밀고 들어갔다. 어느 직원 하나가 나를 가로막고 나서서 말했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나 강 대정입니다. 모르십니까?"
"아, 네, 네.........!"
말 하는 폼을 보아하나 나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다행히도 이때 저 쪽 창구에 있던 대출부장이 나를 알아보고 쫓아왔다.
"강 기자님, 어쩐 일이십니까?"
"오늘은 기자가 아니라, 사장으로 온 것이오."
"아, 네. 그런데 얼마 전에 행장님이 바뀌셨습니다. 제가 우선 들어가 여쭙고 오겠습니다."
"그러시죠."
"자네는 이 일에 상관 말고 가서 일봐."
"네, 부장님!"
내 앞을 가로 막았던 대리 계급의 직원까지 친절하게(?) 정리하고 행장실 문을 노크하는 대출 부장이었다. 잠시 후, 대출 부장이 행장실에서 나와 나에게 말했다.
"들어가시죠. 강 사장님!"
"그러십시다. 부장님도 함께 들어가십시다. 대출 건 때문에 왔거든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앞장을 서고, 김 부장 뒤로, 대출 부장이 따라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행장님! 이거, 행장님이 바뀌신 지도 모르고, 인사가 늦었습니다."
"아! 네, 네!"
내가 좀 거만하다 싶은 태도와 말투로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수동적으로 엉겁결에 악수에 응하는 행장이었다.
"강 대정이라 합니다."
"네, 김 만득입니다."
이름이 하도 촌스러워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번한 것을 꾹 참고 내가 말했다.
"전의 행장님과는 좀 친분이 있었는데........"
"누구든 태어나면서부터 친한 사람 있습니까? 사귀다 보면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죠."
이런 스스럼없는 사교성이 이 사람이 이 자리에까지 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내가 김 부장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으로 김 부장님이 이 은행에 자주 드나들어야 할 테니, 인사드리시죠."
"아, 네. 김 경제입니다."
그의 인사에 내가 자랑스럽게 덧붙였다.
"하버드 대학 박사 출신입니다. 하고 청와대 경제 특보로 채용이 되었지만 거절하신 분이십니다."
"아, 네! 그럼, 이 분이 그 유명한 김 박사? 병약하셔서.........."
"많이 좋아지셨습니다."
당사자인 김 부장은 겸연쩍은 미소만 짓고 있는 것을, 내가 나서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했다.
"우리 김 부장과 대출 부장님은 전에 한 번 뵌 적이 있을 걸요."
"네, 그렇습니다."
내 말에 대출 부장이 얼른 나서서 아는 척을 했다. 지난번 가등기로 5억을 빌릴 때 두 사람이 만나 이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자, 자리에 앉으시죠."
"그럽시다."
나는 행장이 권하는 소파에 김 부장과 나란히 앉았다. 행장이 맞은편에 앉고 대출 부장이 행장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렸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오늘 칮아뵈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대출 건 때문에 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대출 부장님도 함께 하지고 모셨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김 부장도 어려워 말고 내 옆자리에 앉으세요."
"네, 네. 행장님!"
"김 부장님. 일단 서류를 한 번 보여주도록 하세요. 제가 이번에 인수한 땅이 지목이 임야에서 대지로 변경되었을 뿐만 아니라, 2차선 도로는 8차선으로, 1차선은 4차선으로 도시계획 안도 변경되었어요. 벌써 진입도로인 1차선은 2차선으로 포장 중에 있고요."
"이 땅을 제가 지난번 가등기 상태에서 5억 원을 빌린 일이 있지만, 금번에 제가 전자공장을 차리다보니 여러모로 자금이 더 많이 필요해서요. 그런데 이거 돈 빌리러 왔다고 차 한 준도 안 주는 겁니까? 이러면 이거 섭한데."
"아, 죄송합니다. 김 부장. 얼른 나가서 차 좀 한 잔 부탁하고 와요."
"네, 은행장님!"
대출 부장이 차를 시키러 나간 사이에도 나의 말은 이어졌다.
"땅 금이 최소한 두 배는 뛰어올랐으니, 최소 30억은 대출이 가능하겠지만, 그 많은 돈은 필요가 없고요. 10억만 더 빼줬으면 합니다."
"어디 서류나 좀 봅시다."
말을 하며 행장이 급히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돋보기를 가지러 갔다.
잠시 서류를 읽어 본 행장이 말했다.
"이 정도면 뭐 그 금액 정도야 충분하겠습니다. 그래도 죄송하지만 현장 실사는 한 번 해야 됩니다. 서류만 가지고 검토하다보면 하도 엉뚱한 일이 많아서........."
"그것은 알아서 하세요. 바로 되는 것이죠?"
"김 장관님과도 친분이 있다는 강 가자님이라니, 괜히 질질 끌어 제 목을 위태롭게 할 필요는 없겠지요. 하하하.........!"
그의 웃음에 나도 따라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는 내 대신 여기 김 박사가 자주 은행을 드나들 텐데. 잘 좀 대해주세요."
"여부가 있습니까? 아니래도 잘 모셔야죠. 엄연히 우리의 일등고객인데."
이때 아예 대출 부장이 차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인삼차 네 잔이었다. 단숨에 마신 내가 말했다.
"바로 되는 것이죠?"
"김 부장 이 서류 가지고 가서 검토해보고, 별 이상 없으면 바로 돈 내드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행장님!"
"차도 잘 마셨고, 바쁜 분 제가 오래 잡고 있을 수 없으니, 저는 그럼......."
"아, 네, 네!"
갑작스러운 나의 작별 인사에 얼른 나의 내민 손을 맞잡는 김 행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대출을 마무리 지은 나는 곧 김 부장과 함께 사무실로 돌아왔다. 물론 10억이 예치되어 있는 통장을 들고서. 그 통장에는 전의 돈까지 꼭 11억이 예치되어 있었다. 빌린 돈이지만 11억이 통장에 있으니 마음이 한결 든든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날 오후였다. 오후 2시 프랑스 국적기로 이탈리아 발명가 안드레아스 파벨(Andreas Pavel) 씨가 입국하기로 되어 있었으므로, 미리 사무실에 나와 있던 이 미연 양과 서 인석 이사를 공항으로 출영 내보냈다. 서 이사는 그간 면허를 땄는데, 초보라 겁을 내기에 나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몇 번 나야 제대로 된 운전이 된다고 하면서, 막무가내로 등 떠밀어 내보냈다. 내가 이렇게 한 이유는 1시 30분이면 쿠웨이트로 수출을 하러 갔던 최우선 부장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 외에도 또 한 일정이 잡혀 있었으니, 오늘 1시에 금성사와 삼성사의 워크맨 제품을 누가 생산할 것인가, 최종 결판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무선 커피포토의 업체 개발도 끝나, 이 역시 결정을 해주어야 했다.
여기에 영상반주기도 이제는 소프트웨어 부분만 조금 더 보강하면 되므로, 기계 부분 또한 얼른 발주를 해야 했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해서 나는 서 이사의 운전을 강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잠시 쉬자 금방 1시가 되었다. 정확히 1시가 되자 각각 두 명씩 네 명이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금성사 팀과 삼성전자 팀이었다. 그들의 인사를 받은 나는 곧 그들에게 서류를 제출하도록 했다.
그래서 읽어 보니, 워크맨 부분에서는 최종 단가에서 금성사 팀이 10% 정도 쌌다. 그런데 무선 커피 포토는 의의로 삼성전자 팀이 15%가 쌌다. 그 원인을 내가 알 수는 없었으므로, 깊게 침음한 내가 말했다.
"으흠.........! 뭣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 모르지만, 워크맨은 금성사의 단가가 싸고, 무선 포토는 삼성전자 팀이 싸군요. 나온 결과 그대로입니다. 똑 같이 초도물량으로 5만 대를 생산할 것이니, 그렇게 발주를 해주세요. 하고 이번에는 개발이 끝난 영상반주기를 전번과 똑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 주세요. 샘플은 내 사무실에 갖다 놓으라 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사무실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나는 말이 끝나자마자 내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상대가 제시한 단가 서류를 각각 보여주었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두 팀이었다. 나는 이를 보고 현재의 상황을 전했다.
"지금 부품을 조립할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한 달 안이면 완성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곧 현장에 근무할 직원채용 광고도 낼 것이고요. 그러니까 그 안에 최소한 3만대 분량은 부품이 만들어져 있어야 합니다. 아시겠죠?"
"네, 사장님!"
"그러고 한 달 후 본격적으로 공장이 가동되면 여러분들은 이제 본 대정전자에서 근무해야합니다. 그러니까 그 안에 영상반주기의 개발도 끝내, 발주가 나갈 수 있도록 각 부품 업체를 독려 좀 해주세요. 아시겠습니까?"
"네, 사장님!"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하실 말씀이 계시면 하세요."
아무도 말이 없었으므로 나는 두 팀에게 각각 영상반주기 샘플을 들려 보내주었다. 이때 엄삼탁 정보 제1팀장이 노크를 하고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나는 이 정보 팀을 각각 팀장 포함 8명씩으로 나누어, 2개 팀 체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네, 사장님! 한국유리에서 회사 기밀을 훔쳐 달아났던 과장의 신변을 파악했기에, 보고 드리러 왔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 사람들의 위치를 한국유리에 넘겨주시고, 우리는 손 뗍시다. 대신 지금 나간 금성사와 삼성전자 두 팀이 있어요. 이 사람의 신상은 관리과에 있으니, 넘겨받아서 이들에 대한 은밀한 내사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좀 못된 방법으로 포섭을 했더니, 중간에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 더 한 약점을 잡기 위한 목적입니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인사를 꾸벅하고 나가는 엄 팀장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더 듬직해 보였다. 이때 밖이 떠들썩하더니 조 부장이 최우선 부장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 부장을 맞으러 나가며 말했다.
"그렇게 반가워요?"
"그럼요. 벌써 몇 개월을 못 본 거에요?"
"하하하.........! 수고하셨습니다. 못 본 사이 얼굴이 새까맣게 탓군요."
"지독한 날씨였습니다. 다행히 이번에도 오더를 많이 수주해와, 보람이 있는 출장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는 최 부장의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해서 물었다.
"전번 오더 규모는 되는 겁니까?"
"그것보다 갑절이 많습니다. 이번 기회에 신뢰를 많이 얻었습니다. 우리가 그래도 타 업체보다는 사장님 덕분에 빠르게 하역했고, 단가도 싸게 수출한 것이 그들에게 먹힌 것 같습니다."
"다행입니다. 그 공로로 내 최 부장님에게는 특별히 승용차 한 대를 사드리죠."
"저는 요?"
옆에 있던 조 부장이 억울하다는 얼굴로 항변을 했다.
"조부장님이 한 게 뭐 있습니까?"
"저도 국내에서 열심히 뛰느라고 뛰었습니다."
"나도 잘 알지요. 내 어찌 조부장님만 서운하게 대우하겠어요. 내 더 열심히 뛰라고 조 부장님 것도 주문하라고 할게요. 그 안에 면허들 따세요. 언제까지나 시내버스 타고 털털거리며 영업할 수는 없잖아요?"
"역시 우리 사장님이 최고십니다."
조 부장의 엄지손가락을 살짝 비틀어준 내가 말했다.
"앞으로는 우리 회사에서도 워크맨이다. 무선 커피포트다, 또 실리콘, 여타 영상반주기 등 다양한 제품이 쏟아질 거예요. 해서 차제에 무역 파트도 대폭 보강할 계획이니 더 열심히 뛰어주세요. 우리의 1차 목표는 종합상사로 지정을 받는 것입니다. 아직은 한국에 단 세 개 밖에 없는 이 대열에, 우리도 합류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주시기 바랍니다."
"뭔가 확실한 목표와 비전이 생기니 더 의욕이 솟구치네요. 그런데 우리도 수출이나 수입 마진을 제 경비 제외하고 3%만 보면 안 됩니까? 통상 어느 업체나 5%를 보지만 당해 연도로 한국 수출 랭킹 2위에 마크될 것으로 확실시 되는 대우 같은 곳에서도, 3% 마진만 보고 대행을 해주니, 솔직히 우리 회사 주겠다는 업체가 없어서 말이죠."
"흐흠,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도 3%로 수수료율을 인하하는 것으로 하죠. 뭐 특별히 내세울 것도 없는 우리로서는, 그렇게 해서라도 경쟁이 되어야 하니까."
"고맙습니다. 사장님!"
"내게 고마울 게 뭐 있나요. 나는 하려고 하는 여러분의 의지가 더 고맙습니다. 아무튼 수고하셨고요. 오늘은 두 분이 모처럼 만났으니, 일찍 퇴근하도록 하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여기서 시간 지체할 것 없이 얼른 나가 보세요."
"네, 사장님!"
다시 한 번 내게 인사를 꾸벅한 두 사람이 어깨동무를 하고는 나란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