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36화 (136/322)

<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다음 날 아침.

나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빈 방에 들어가 오늘 일을 계획하는데, 무언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임야를 부셔 공장 터로 조성하는 현장의 일이었다. 내가 애초에 판단하기로는 임야의 토사물량이 5톤 덤프트럭으로 1만 대분을 계산했다. 그렇게 되면 하루에 덤프트럭 100대가 10회 왕복을 한다고 보면 10일이면 끝나는 물량이었다.

그런데 보름에 끝난다는 것은 뭔가 이치에 맞지 않았다. 물론 내가 처음부터 물량을 잘못 산출할 수도 있다. 이는 전적으로 내가 계산을 해 본 것이 아니라,전생의 오랜 경험에 의한 직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틀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리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또 하나의 요인으로 전에는 중장비를 덜 투입한 것도 한 요인이었겠지만, 단순 계산을 해도 100대가 10회 왕복을 하면 어떻게 되었든 열흘이면 끝날 물량 아닌가.

내 생각에 덤프트럭 한 대가 하루에 10회 왕복한다는 것은 결코 무리가 있는 계산이 아니었다. 아침 6시부터 해떨어질 때까지만 해도, 거리상으로나 뭐로 보나 충분한 계산이었다. 공기가 늦어지는 이유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드디어 가장 큰 원인을 발견해 낼 수 있었다.

요는 차량이 들고 나는 진입로가 일차선이기 때문에 거기서 체증이 벌어져, 도로피난처에서 서로 피해있고 하는 데서 엄청난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상황을 최계용 과장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도로문제만은 우리가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다고 판단했으리라는 것까지 유추할 수가 있었다. 나는 이것의 해결이야 말로 하루라도 빨리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이의 해결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그 생각을 하자 나는 가장 윗대가리부터 조지기로 했다. 그 소관을 생각하니 내무부 장관이었다. 지금의 행정자치부와 국토부의 기능을 행사하는 곳이 곧 당시의 내무부였다. 지금의 내무부 장관이 누구인가 생각하니 김 치열(金 致烈) 장관이라는 생각까지도 떠올랐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이는 서울시의 문제로 내무부장관까지 만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서울시장이 누구인가 생각했다. 구 자춘(具 滋春) 씨였다.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침 조회가 파하자마자 나는 준비를 좀 해가지고, 바로 서울 시청으로 쳐들어간 것이다. 나는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나서야 구 시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시장님 만나기가 대통령 만나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미안합니다. 일일이 다 만나주다 보면 제 업무를 볼 수 없어요."

"이해는 합니다만 국민의 알 권리는 충족시켜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제가 좀 바쁘니 할 이야기만 하시죠."

대대장으로 혁명 세력에 참가해 한 자리 한 사람이라 역시 녹록치가 않았다.

"좋습니다."

나는 주머니에서 흰 봉투 하나를 꺼내어 그의 집무책상위에 탁 소리가 나도록 놓았다.

"이게 뭡니까?"

"1천만 원입니다. 시 발전을 위해 써주십시오."

"네?"

영문을 몰라 눈이 커지는 구 시장이었다.

"저 사실은 역삼동의 전자공장 하나 짓는 곳을 가봤는데, 도로가 1차선 도로라 많은 민원이 발생하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 19세기도 아니고, 1차선 도로가 웬 말입니까? 해서 정 곤란하다면 시의 땅 매입 자금에 보태 쓰라고 내놓는 돈입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그거야 조사해서 타당하다면 도시계획 안을 바꿔야죠."

"제가 볼 때는 도시계획 안이 너무 전 근대적 이예요. 앞으로 강북보다도 강남개발에 정부도 더 역점을 두고 있는 걸로 알아요. 그런데 주변이 온통 1차선 아니면 2차선 도로예요. 해서 시에서 이를 시정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조사해보고 타당하다면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도시개발 국장 불러 당장 물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저도 민원인에게 답변할 근거라도 갖고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그것이........"

망설이는 그에게 내가 더욱 열변을 토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그 전자 공장에서 세계 최초의 제품이 생산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그 공장이 커져 수천, 수만을 고용할 수도 있는 것인데, 이는 정부의 고용정책에도 찬물을 끼얹는 행위 아닙니까? 선처 좀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당장 알아보도록 하죠. 혹시 그곳 번지수 아십니까?"

내 땅인데 번지수 모를까 보냐. 나는 얼른 구술을 해주었다.

"역삼동 000-00번지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잠시 집무실을 벗어나 밖에 있는 직원에게 몇 마디하고 돌아왔다. 곧 차가 들어와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오십대 초반의 시원하게 머리가 벗어진 양반 한 명이 헐레벌떡 달려 들어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안 봐도 머리털이 휘날리도록(?) 뛰어왔음에 틀림없었다.

"오 국장, 그 번지수에 해당되는 도시 계획안 가져 왔어요?"

"네, 시장님!"

"어디 좀 봅시다."

색색의 줄이 쳐져있는 제법 큰 지도를 들어 구 시장의 책상 위에 올려놓는 오 국장이라는 사람이었다. 잠시 지도를 들여다보던 구 시장이 침음하며 말했다.

"흐흠.........! 강 기자님의 말씀이 맞군요. 그런데 오 국장!"

"네, 시장님!"

"너무 도로가 좁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정부에서도 강남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이쪽은 전혀 도시개발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이래서야 되겠어요? 먼저 도로부터 뚫려야 모든 개발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그 보다 먼저 계획안이 서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할수록 열이 받치는지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목에 핏대가 서는 구 시장이었다.

"보세요!"

"네, 시장님!"

구 시장의 지시에 지도 가까이 얼굴을 들이미는 오 국장이었다. 나 또한 궁금해서 한 자리 끼었다.

"이곳은 8차선, 이곳은 6차선, 이곳은 4차선으로 계획해 크게 뚫어놓으세요. 당장 도로를 개설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계획안이라도 그렇게 수정해 놓으란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시장님!"

나는 구 시장의 손끝을 쫓아가다가 내심 쾌재를 불렀다. 우리 공장 주변의 2차선 도로는 8차선으로, 현 1차선 도로는 4차선으로 계획하라고 호통 치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도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죠?"

"진즉에 서둘러야 했을 일을, 우선 급한 아파트지구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항상 도시 계획은 최소 몇 십 년 앞은 내다보고 해야 돼요. 우선 당장 돈이 든다고 작게 계획했다가는 얼마 못 가 욕먹기 십상 이예요."

"당장 가서 시정하도록 하세요."

"네, 네!"

"됐습니까?"

"고맙습니다. 시장님!"

"뭘요. 진즉 서둘러 했을 일을 담당 공무원들이 게으름을 피는 바람에 민원이 발생했군요. 오히려 우리가 미안합니다. 그리고 이 돈은 가져가도록 하세요."

"토지 수용하는데 보태 쓰심이........."

"아닙니다. 그 문제는 시에서 알아서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곳의 도로 개설은 언제쯤 되겠습니까?"

"우선 계획안이 서고, 도로 건설 계획이 잡혀야겠죠. 이어 토지를 보상해주고, 정 안 되면 정부에서 수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늦어도 5년 안에는 개설이 안 되겠습니까?"

"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곳이 강남인데 늦어도 너무 늦는 것이 아닙니까?"

"어쩔 수 없습니다. 시의 예산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으니........."

"그럼, 2단계로 나누어 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2차선, 4차선 그런 식으로."

"문제는 예산이죠."

"채권이라도 발생하세요."

"그렇게 하기 전에는 정말 현 시정 상태로는 해결이 안 될 것 같습니다. 한 번 채권을 발행하는 방향으로 적극 검토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우선 500m 진입도로만이라도 어떻게 2차선으로 당장 개설 좀 해주세요. 무슨 우마차 도로도 아니고, 5톤 트럭 백여 대가 하루에도 수십 번 왕복을 하는데, 긴급 피난처를 만들어 비켜서서 공사를 해서야 되겠습니까?"

집요한 나의 공세에 안 되겠는지 구 시장이 자리에서 벌떡 얼어나더니 말했다.

"어느 현장인데 그러세요. 당장 한 번 가봅시다."

"모시겠습니다. 시장님!"

내가 등을 돌리자 구 시장이 말했다.

"이것은 가져가세요. 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

"이것, 하마터면 ......... 시장님을 욕보인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슬그머니 1천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이 든 봉투를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1시간 후.

사기(社旗)를 펄럭이며 달려온 포니 승용차 한 대와 관용 지프차 한 대가, 대정전자 건설 현장에 와 멎었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구 시장도 차에서 내렸다. 뒤따라 오 국장도 차에서 내렸다.

정말 내가 보거나 구 시장이 보아도 형편없었다. 빈 차량 5대 정도가 도로에서 벗어난 임시로 조성된 공터에 피신해 있었고, 도로에는 덤프트럭이 꼬리를 물고 내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더욱 가관인 것은 비포장이라 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있었다.

"어떻습니까? 시장님이 보시기에도 가관이죠?"

"허허........! 그것 참, 너무 했군요."

"저 진입로만이라도 어떻게 좀 보상을 해주시고, 이차 선으로 뚫어주시죠?"

"오 국장 저 정도면 얼마나 예산이 들까요?"

"제가 보기에는 크게 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주변에 집은 몇 채 없고, 전부 논밭뿐이니........ 내년 예산이 책정될 때까지 개설이 되려면 늦겠고, 예비비에서 지출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하고 구 시장의 눈치를 보는 오 국장이었다.

"예비비가 얼마 남았나, 한 번 알아보고. 남았다면 이 민원부터 해결해주도록 하세요. 정부에서 제일 강조하는 수출할 전자제품을 만든다고 하니......... 욕먹을 일은 없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시장님!"

"고맙습니다. 시장님. 그리고 국장님!"

"강 기자에게 인사 받을 일은 아니고, 현장에 와서 보니 시에서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이곳의 도로 개설을 앞당겨야겠어요. 민원제기를 잘 해주신 것 같아,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

나는 시침 뚝 떼고 구 시장의 가벼운 인사를 받았다.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9월초였다.2학기 개학을 한 후 첫 번째 맞는 토요일이었다. 2학기 때는 토요일에 수업이 하나도 없어서 나는 아침부터 대정전자 건설현장에 와 있었다. 대정전자의 500m 진입로 개설공사 현장에는 내게 익숙한 청주의 신낙균 씨가 보였다. 그가 이 현장을 지휘해 진입로를 건설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서울시에서 예비비로 이 도로부터 개설해주기로 결론이 났다. 이를 구 시장이 나에게 통보를 해주었다. 나는 그를 만난 자리에서 사실 이야기를 하고, 수의 계약으로 2차선 포장도로 건설 계약을 우리 회사에 주면 어떻게 느냐고 물었다.

어이가 없는 지 껄껄 웃던 그가 금액이 얼마 안 되니

'그러마!'

하고 승낙을 했다. 금액이 많은 공사를 수의계약으로 체결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작은 공사이니 얼마든지 수의계약이 가능했으므로, 나는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도안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는 신 낙균 씨를 끌어올려, 이 공사부터 시행하도록 했던 것이다. 나는 도로건설 현장을 잠시 지켜보다가 공장 내부로 들어갔다. 이제 말끔히 정리된 100만 평이 약간 넘는 부지가 내 눈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다. 뿌듯한 가슴으로 바라보는 내 눈에는 분명 그렇게 보였다. 그 중 남쪽에서 제일 가까운 우측에 대정전자 공장이 조성되고 있었다. 이제 터파기가 막바지 단계에 들어와 있었다. 한 쪽에서는 여주 공장을 마무리 지은 철 구조물 팀이 한창 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한참동안 이를 흐뭇한 눈으로 지켜보다가 곧 현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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