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33화 (133/322)

<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다음 날 아침.

나는 추 부장으로부터 그가 쓴 리포트를 제출받고 다음에 시간을 내어 보겠다고 하고, 어제 정 회장이 준 건설 물량을 보기 위해 우리가 함께 출발하려 할 때였다. 고 양이 전화가 왔다고 해서 전화를 받으니 설계사무소의 김 소장이었다. 건물주가 허락했다고, 시트 판으로 외장 할 건물의 견적을 내보라는 말이었다. 나는 그 사람의 전화번호를 받아 적고, 추 부장과 함께 정 회장이 말한 현장이 있는 곳을 찾아갔다. 현장은 충무로에 있었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해서 살펴보니 한창 터파기를 진행하다가 멈춘 상태였다. 정 회장의 지시가 떨어져서인 모양이었다. 자그맣게 지어놓은 현장사무실에는 단 한 사람, 이곳의 현장 소장이었던 부장 하나만이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아니더라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벌써 철수를 했군요."

"시간 낭비할 필요가 없질 않습니까? 어차피 남에게 넘긴 공사인데요."

"하긴 그렇습니다."

"여기 도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필요 없으니 가지고 가서 견적내시죠."

"알겠습니다."

"더 하실 이야기 있습니까? 내 다른 현장을 또 하나 맡았거든요."

"잠시 전화 좀 한 통화 쓰겠습니다."

"그러시죠."

나는 현장의 임시 전화를 빌어, 사무실을 출발할 때 받아 적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주인이 받았다. 찾아뵙겠다고 위치를 물으니, 마침 이 부근이었다. 나는 전화 잘 썼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도면을 받아 다시 차에 올랐다. 내가 차에 오르며 도면을 추 부장에게 던져주며 말했다.

"한 번 살펴보세요. 얼마만한 건물인지."

"알겠습니다."

내가 운전을 하는 동안 살펴본 추 부장이 말했다.

"제법 크네요. 15층 상가입니다."

"확실히 정 회장이 배포가 크긴 커!"

"정 회장이라니요?"

"현대의 정 회장이 내가 건설회가 하나 차렸다니까 잘 하라는 격려의 선물로 준 겁니다."

"그렇군요. 이것 제가 견적내야 됩니까?"

"한 번 내 보시죠."

"알겠습니다. 대충 도면을 보니 외장도 그렇고 평당 30만 원 조금 웃돌겠는데요."

"벌써 감이 옵니까?"

"척하면 삼척이라고, 척 보면 척이죠, 뭐."

"하하하........! 쿵 하면 울 너머 호박 떨어지는 소리고요."

"네!"

우리가 몇 마디 나누지 않아서 금방 건물주가 말한 빌딩이 보였다. 아담한 5층 건물이었다. 나는 주인이 말한 대로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을 걸어서 5층까지 올라갔다. 아마 이것도 주인의 건물인 모양이었다. 왜냐하면 5층은 걸어 다니기 힘드니까, 대개 세가 잘 안 나간다. 그러니까 대개 주인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등록일 : 14.01.19 00:11진짜 볼품없는 시꺼먼 방화문을 두드리니 곧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50대 초반의 한 인물이 돋보기를 쓰고, 도면을 뒤적이고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안녕하세요? 김수근 설계사무소의 소개를 받고 왔습니다."

"아, 그러세요? 이리 와 앉으세요."

우리는 그가 권하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시트 판 공사기법을 소개한 분이라고?"

"네, 회장님!"

'회장님'이라고 부르니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지는 주인이었다.

"좋습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견적 한 번 내보세요. 내 노파심에서 일러두지만, 견적 받는 곳이 여러 군데니, 알아서 잘 내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음.........! 그러면 이런 공사는 많이 해봤겠네요."

"웬걸요. 일본의 사례를 보고 연구를 많이 했고, 이 분이 일본 건설회사 소장 출신입니다. 그래서 저도 이분한테 배웠고요. 서울대 상대 출신인데 어떻게 하다 보니........"

영문을 몰라 나와 주인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는 추 부장을 나는 싹 무시했다. 그러나 건물주의 반응은 의외로 열광적이었다.

"와.........! 대단한 분이시고만. 그래도 견적이 싸야 줄 수 있는 것이니, 잘 내시구랴. 하지만 같은 값이라면 기왕이면 댁에게 주고 싶소. 그러고 보니 내게 명함 한 장 안 줬잖아?"

"이런 실례가.........!"

나는 얼른 패스보드에서 명함을 꺼내 주인에게 드렸다. 그런데 아직 명함을 새기지 못해, 옛날 전문건설 회사의 명함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문건설 회사야?"

"그렇게 전문건설 회사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이번에 종합건설 회사도 하나 차렸습니다. 요 앞의 현대건설에서 짓던 15층 건물도 저희들이 지을 것이고요."

"현대건설 사장하고 잘 아는 사이인가?"

"정주영 회장님 하고 조금 안면이 있습니다."

"그래? 대단한 젊은이 이군. 그런데 더 젊은 친구가 사장이고.........."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친을 잘 만났거든요."

"그것도 복은 복이지."

"그런데, 회장님! 제가 또 하나의 건물 지을 곳을 보러 가야돼서요."

"젊은 친구가 대단하군. 차린 지 얼마 안 됐다 면서도 일이 많은 모양이야."

"좀 그렀습니다."

나는 겸손한 척 겸양까지 했다. 그러고 그간 돈은 많아도 집에서는 찬밥신세를 받았는지, 외로움 끝의 대화성 공세를 피해, 나는 핑계를 대고 바로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이 견적마저 추 부장에게 내보라고 미뤘다. 상대의 실력을 아직 모르니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흘렸다.

나는 그동안 몇 가지 일을 처리했다. 우선 나는 정 주영 회장이 준 것 포함하여 네 건의 공사를 수주했다. 하나는 김 소장이 소개한 커튼월 공사건이고, 하나는 정 회장이 준 것의 견적이 통과된 것이고. 또 하나는 외장이 시트 판 건물로 10층짜리였다. 또 하나는 의외로 옛 대청건설 사장이었던 신 낙균 씨가 관공서의 일을 수주한 것이었다.

증평에서 충주까지의 4차선 도로 확장공사로 1차 년도는 증평에서 도안 하작 즉 괴산과의 분기점까지의 확포장 도로공사였다. IBRD 즉 세계은행 차관에 의한 공사로 당해 연도에는 거기까지만 예산이 편성되어 있어서였다. 나는 또 광고를 내었던 건설 회사 경력사원도 뽑았다. 과장 2명에 대리가 3명, 주임이 6명이었다. 과장급인 2명은 각각 오현창 이라고, 한양대 토목학과 출신으로 대림산업 퇴직자였고, 또 한 사람은 최계용이라고 고려대 상학과 출신으로, 회계학 석사 학위를 받은 국동건설 재직 중 이탈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나는 포니승용차 4대와 1톤 트럭 1대도 주문해 벌써 공장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직원에 나누어 주기 위해서였다. 포상용과 격려용이었다. 포상용으로는 각각 서 이사가 특허출원을 모두 마치고 나면 수고했다고 줄 참이고, 또 한 사람은 김 경제 부장으로 회사의 미래비전을 설계한 공과, 건설업 면허를 싸게 잘 구입한 공에 대한 포상이었다. 이것은 솔직히 포장용이고 내 내면은 이런 인재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작용한 선물이었다.

또 한 사람은 관리과장 채 선장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임야를 싸게 잘 구입한 데다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어 회사에 엄청난 이익을 발생케 했으므로, 진심에서 우러나서 포상하는 선물이었던 것이다.

또 한 사람은 청주의 마이새 부장으로 창업 동지라 할 수 있는 그 사람을 예우하는 차원도 있고, 큰 청주사업장을 단독으로 꾸려간다는 것은 많은 고통이 뒤따르는 일로, 격려차원이기도 했다.

나머지 남은 1톤 트럭은 이번에 새로 입사한 건설의 추호석 부장 것으로 현장을 타고 다니라고 선물 한 것이다. 현장을 다니다보면 공구며 싣고 갈 자재들이 하나 둘이 아닌데, 벌써부터 겉멋만 들어 승용차나 타고 다니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학벌로 보면 우리나라 누구나 알아주는 인재지만, 건설이라는 노가다 판은 때로 주먹질도 하는 살벌한 곳이다. 그런데 온실 속의 화초처럼 승용차나 선호한다면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무리 그가 학벌이 좋더라도 건설 쪽으로 보면, 나는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니 선물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쓸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기 위한, 선관의 잣대이기도 한 것이 1톤 트럭이었다. 어찌 됐건 추 부장은 내 의도를 무색하게 흔쾌히 받고 감사하다고 잘 만 타고 다녔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들은 당분간은 다 빛 좋은 개살구였다. 운전면허가 없었던 것이다. 전혀 운전할 줄도 모르고. 누구는 뱃속에서부터 운전 배워가지고 나오나. 다 배우고 몇 번 접촉사고도 내면서 능숙해지는 것이지.

아무튼 우리는 곳곳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추 부장은 현대가 넘겨준 15층짜리 공사를 담당해 대리 하나와 주임 둘을 데리고, 이 공사를 책임 맡았다. 또 한양대 토목과 출신 오현창 과장은 시트 판 외장 건물로 10층짜리 공사를 책임 맡았다. 이곳에도 대리 하나와 주임 하나가 배치되었다.

또 서울대 상과 출신에다 석사학위소지자며 국동건설에서 한동안 재직했던 최계용 과장은, 우리의 전자공장 지을 터를 만들기 위해 임야를 평지로 만드는 공사를 맡았다. 이곳에는 주임 두 명이 배당되었다. 나머지 대리 한명과 주임 하나가 청주의 신낙균 씨가 주재하는 증평과 도안의 확포장공사를 맡았다. 그가 쓰던 중기가 수리가 되어 이 현장에 투입되었고, 우리 현장과 다른 현장의 중기는 임대를 하여 작업을 하고 있었다. 모든 공사가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여주 공사도 현대와 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여, 우리의 공사 실적에 잡히게 되었다. 내가 이 현장 저 현장을 쫓아다니며 분주한 일상을 보내는데, 하루는 집에 들어가니, 가정부 아주머니와 미정이가 다투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표현을 하면 미정이가 가정부아주머니에게 일방적으로 싫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얘 좀 잘 보지. 이게 뭐 예요. 코가 다 깨지게."

현관을 막 들어선 내가 이 모양을 보고 물었다.

"왜 그래?"

"글쎄, 다정이 좀 봐요. 이게 뭐 예요. 코가 다 깨졌잖아요."

"어디 좀 보자."

나는 다정이를 안아들어 보니 정말 코끝에 상처가 나 있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고 넘어져서 코방아를 찧었는지, 아프긴 아팠겠다.

"다정아, 아파!"

"아니, 이제 괜찮아. 아빠!"

이제 제법 말도 잘하는 딸이었다.

"다정이도 안 아프다니 괜찮아, 당신 혹시 모르니 학원을 늦게 가더라도 내일은 병원에 한 번 데리고 가봐. 오늘은 일단 다정이 안고 방으로 들어가. 오늘만은 당신이 안고 자고. 낮에 놀랐을지도 모르니."

"네, 여보!"

미정이 다정이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가자 내가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아주머니는 내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시종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얘는 잘 봐야 본전이라잖아요. 얘를 보다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을 수 있지요.

애 엄마 잔소리한 것에 대해서는 너무 노여워하지 마시고, 모두 잊어버리세요."

"제가 그만두어야 할까 봐요. 사장님!"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좀 전에도 제가 말했잖아요. 얘를 보다보면 별 일이 다 생기는데, 또 부모가 이것을 보면 속상한 것은 사실이죠. 그러니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시고, 아무런 말씀 마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눈물이 글썽글썽해서 감사를 표시하는 아주머니를 보니 내 마음도 짠했다. 얘는 정말 잘 봐야 본전이었다. 못 보면 이렇게 금방 표시가 나고, 잘 본 날은 아무런 공이 없는 것이다. 무런 공이 없는 것이다. 잘 본 날은 아무런 말이 없다가도 어쩌다가 작은 상처라도 나면, 온통 난리를 죽이면 얼마나 서운한가. 내가 그 마음을 헤아려 잘 달래는 바람에 아무런 일이 없었던 듯 잘 넘어갔다.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 당시에는 굉장한 사건도 지나고 나면 다 별 것 아니듯이, 우리네 인생도 헛되고, 헌 된 것인지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