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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그룹-131화 (131/322)

<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이어 나는 전체 조회를 통해 전 사원들에게 단위 사업부제의 취지를 설명하고, 위기의식과 함께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청주로 전화를 걸어 전 대청건설 사장 신낙균 씨를 바꾸어 달라고 했다.

약속대로 그는 청주사무실에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제는 잘 내려가셨고요?"

"네, 사장님 덕분 예요."

신 사장의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나는 본격적인 업무 이야기로 들어갔다.

"어제 말씀하신 장비 말입니다."

"네, 사장님!"

"그 장비의 현황이 어떻게 됩니까?"

"굴삭기 1대, 페이도다 1대, 불도저 1대, 5톤 덤프트럭이 3대 있습니다."

"예상보다 많군요."

"숫자만 많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은 덤프트럭 밖에 없습니다."

"전부 수리를 해야 쓸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혹시 수리 내역을 뽑아 본 적은 있습니까?"

"정비업체의 말로는 줄잡아 천만 원 돈을 예상하더군요."

"네?"

"하하하.........! 내 사장님이 놀라실 줄 알았습니다. 그렇잖으면 제가 공짜로 드렸겠습니까?"

"하긴 그렀네요. 그럼, 일단 전부 수리를 의뢰하세요. 어차피 장비는 있어야 되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충북에서 발주하는 공사 건 좀 알아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일이 처리되는 대로 본사로 전화주시고요."

"네, 네!"

나는 바로 전화를 끊고, 김 부장을 내 방으로 불러들였다.

"김 부장님이 제일은행에 좀 관리과장하고 함께 다녀오세요."

"대출 건 때문에 그러십니까?"

"그렇습니다. 차제에 주인도 모시고 가, 가등기 설정하고 5억을 한꺼번에 줘버리세요. 그냥은 가등기 설정을 못하게 할 테니까요. 그리고 행장에게 대출 5억만 해달라고 하세요. 그 정도는 무난하게 해줄 겁니다. 시가가 10억인데 그 절반 밖에 대출을 안 하는 것이니까요. 최악의 경우 경매에 넘어가도 6억은 저희들이 건질 테니, 무난히 해주지 않겠어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즉시 일 처리 하세요."

"네, 사장님!"

그가 나가자 나는 바로 주택공사 송 진명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혹시 흙 필요치 않습니까?"

"어디 나올 흙이 있소?"

"강남 역삼동에 임야를 하나 샀는데, 그곳을 좀 정리하다보면 흙이 좀 나올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흙이 좀 부족하기는 하오. 지금 잠실 아파트단지 막바지 기반조성에 흙이 좀 부족해 애를 먹고 있소. 둔촌 주공은 터무니없이 많이 필요하고."

"통상 차 당 얼마를 주십니까?"

"자체적으로 다해서 싣고 오면 4,500원을 주고 있소."

"운반거리가 좀 머니까 5,000원 정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허허, 이것 참! 강 사장이 하는 일이니 나 몰라라 할 수도 없고. 분명 역삼동이라고 했소?"

"네, 본부장님!"

"일단 그렇게 하기로 하고, 자세한 사항은 흙이 정식으로 나오기 시작할 때, 의논하여 계약하는 것으로 합시다."

"고맙습니다. 본부장님! 언제든 날 잡아 전화 한 번 주세요. 요즘 소원했는데 대포 한 잔 해야죠."

"그럽시다. 그럼, 들어가시오."

나는 전화를 끊고 가만히 계산을 해보았다. 내가 볼 때 어림잡아 5톤 트럭으로 1만대 분량의 흙은 나올 것 같았다. 대 당 5천 원을 잡으면 5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들어섰다. 크게 남을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손해 보는 일은 아니었다. 그냥 처치 곤란한 흙 치우고, 임야를 대지로 전환하는데 의의를 둬야할 것 같았다. 문제는 장비의 수급 문제였다. 청주의 중장비를 수리해 쓴다고 해도 특히 덤프트럭이 부족할 것 같았다. 굴삭기도 그렇고.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각을 해보았다.

우선은 확실한 일거리가 없으니, 현대 정주영 회장에게 부탁해 일단은 임차해 쓰는 방향으로 결정을 지었다. 또 정 회장을 생각하다 보니, 여주 공장 짓는 문제도 이제 '대정종합건설(大正綜合建設)'로 상호가 바뀔, 건설사 앞으로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건설업체는 전년도 총 공사 금액의 누계로 1위서부터 순위를 메기는 도급순위라는 것이 있어서, 이 순위가 높을수록 타인이 볼 때 신뢰를 하고, 일의 수주에도 유리하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일을 많이 해 도급순위가 높은 쪽을 선호할 것은 기정사실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건물주라도 일한 실적이 거의 없어, 경험도 없는 낮은 도급순위 업체에 일을 맡기려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무조건 공사실적은 많고 봐야했다. 그런 차원에서 대정건설과 정식으로 공사 계약을 체결해 공사 실적을 높일 필요성이 있었다. 아무튼 이래저래 한 번은 정 회장을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일자 나는 곧 정 회장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하필 사우디 출장 중이라는 답변을 듣고 나는, 오시는 대로 전화 부탁드린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다음 일정을 생각하고 서류가방을 챙겨 막 사무실을 벗어나려는데 고 양이 전화가 왔다고 나를 바꾸어주었다.

"잘 지내셨소. 나 김수근이오."

"네, 소장님!"

"커튼월 공사건이 있는데, 견적 좀 내주셔야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소장님 제가 그쪽 방향으로 가는 길이니 바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럽시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광화문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대우의 홍 이사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는데, 바로 설계사무소도 이웃해 있어, 일을 처리하기가 수월할 것 같았다. 아무튼 내가 설계 사무소에 들어서니 김 소장이 나를 반갑게 맞았다.

"어서 오시오. 이제 밥값 좀 할 것 같소이다."

"의뢰를 많이 받으신 모양이죠?"

"내가 그런 성미가 아닌데, 서울에 기반 좀 잡으려니 그동안 생판 모르는 놈들과도 술잔 좀 기울였소이다."

"잘 하셨습니다. 모나면 살기 힘든 세상 아닙니까?"

"내 성미가 괴팍해서인지 일거리 달라고 구질구질하게 쫓아다니고 싶지는 않았으나, 강 사장의 면을 생각하면 이거, 나 혼자만 생각할 일이 아니더이다. 해서 면 따라 이쪽저쪽 쫓아다니기도 하고, 고등학교 동문회까지 기웃거린 것 아니오?"

"하하하........! 이제야 뭐가 좀 사업가가 되신 것 같으신데?"

"일 없 수다. 몇 건 이미 설계해서 나간 놈도 있고, 이제 일거리도 제법 들어오고 하니, 다시는 내 그런 짓 안할 참이오."

"그러시면 되나요?"

"됐고. 아무튼 이 도면 가지고 견적이나 내주시오. 앞으로는 일이 제법 쏠쏠 할 것이오. 아직은 경쟁업체가 없으니 당연히 일은 다 그곳으로 갈 테지. 내가 추천을 안 해도 찾아가게 되어 있질 않겠소?"

"그래도 추천해주시는 게 낫지요."

"알았소. 당분간만. 거기도 입소문이 나야 되니까. 그러나저러나 골치 아프네."

"왜요?"

"칠 층 건물로 건물은 높지 않은데, 외장을 특별하게 처리해 달라니.........."

"커튼월로 처리하시면 되잖아요."

"그걸 내 안 권해봤겠소? 그것도 싫다니 문제지. 그러면 그냥 타일마감을 하던지........ 아니면 대리석으로........."

중얼거리고 있는 김 소장에게 내가 말을 걸었다. 순간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였다.

"다른 처리방법도 있긴 있습니다만........"

"뭔데?"

아주 반색을 하고 달려드는 김 소장이었다. 내가 조근조근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알루미늄 시트 판이라고........ 2t 정도 두께의 알루미늄 원판을 절곡해서 이어붙이는 것입니다. 물론 외부에는 원하는 색상으로 도장을 할 수도 있고요. 또 프레임으로는 스텐각재와 철 각재가 있는데, 아무래도 녹을 방지하려면 스텐 각재를 써야겠지요. 당연히 견적 가는 더 올라가지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시공하는 건데?"

"방법은 별로 어려울 게 없습니다. 벽채에 프레임을 걸고, 그 프레임 위에 다시 알루미늄 시트 판을 이어붙이는 것이죠. 요는 시공해 놓으면 크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수수하다할까, 고아하다할까, 하여튼 그런 멋은 있습니다."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김 소장이 말했다.

"내가 설계를 할 수 있도록 좀 더 구체적으로 시공 방법이나 재료의 특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그 모양도 대충 스케치 정도는 해봐 주시게."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나는 이어 김 소장에게 아주 세밀히 그에 대한 설명을 하고, 각개의 전개도 및 완성 됐을 때의 건물 모양까지 일일이 스케치 해주었다.

"고맙네. 일단 주인에게 한 번 권해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도면이나 주세요."

"그래, 그래. 그러다보니 우린 일에 미쳐서 차도 한 잔 안했네."

"차야 어디 가나 마시는 것이니, 다음에 한 잔 하도록 하죠, 뭐."

"그래도 모처럼 강남 촌사람이 강북까지 나들이 나왔는데, 한 잔 하고 가야지."

"하하하.........! 그럼, 그러죠, 뭐."

이렇게 해서 나는 김 소장과 차 한 잔을 마시고, 바로 차를 몰고 이웃한 대우빌딩 현장으로 찾아들었다.

그럭저럭 어느덧 점심시간이 되었는지 현장이 한가했다. 나는 곧 함바를 찾아가 식기와 수저를 챙겨들고 배식대 앞에 줄을 섰다. 점점 줄이 줄어들더니 이윽고 내 차례가 되었다.

"처음 보시는 분이네요. 식권은 구매하셨습니까?"

"아니오?"

"그럼, 어느 현장으로 달아놓을 까요?"

"홍 성부 이사 앞으로 달아놓으세요."

"네?"

"왜 그렇게 놀래요? 홍 이사 앞으로 달아놓으라는데."

"실례지만 어디........."

"밥 줄 거요. 말 거요?"

찔끔한 아주머니가 얼른 밥을 한 주걱 퍼서 내 식기에 얹었다. 나는 차례로 이동을 하며 국과 반찬을 받아, 사방을 둘러보니 빈자리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붐볐다.

아무리 둘러봐도 홍 이사는 보이지 않고 그렇다고 단독으로 난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할 수 없이 5인이 마주보고 앉아 식사하는 곳 즉, 하나 남은 빈자리에 끼어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사람 처음 보나, 왜 이렇게 힐끔거리기는 하는지. 아니면 먹었으면 얼른 사라지던지. 다 처먹고 다섯 명이 쓸데없이 노닥거리고 있었다. 식사를 끝낸 나는 식기와 수저를 식당 안으로 들이밀고 빠른 걸음으로 이사 실을 향해 걸었다. 내가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홍 이사는 도면을 들여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십니까?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그랬나? 거기 앉지."

"식사는 요?"

"아직 전이네."

"왜요?"

"요새 통 밥맛이 없어. 더위 먹었는지......."

"그러시면 안 되는데....... 보약이라도 한 재 드시던지 해야지......"

"됐고. 용건은?"

"저 이번에 건설회사 하나 인수했습니다."

"그래? 축하하네!"

새삼 손을 내미는 홍 이사의 손을 잡고 나는 한동안 흔들어야 했다. 나는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말했다.

"모시러 왔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이! 어디 우물에 가서 숭늉 찾을 사람일세."

웃음이 점점 잦아든 홍 이사가 덧붙여 말했다.

"일단 김 회장께 말씀드려 보겠네만, 너무 기대는 하지 말게. 아무래도 안 놔줄 것 같아."

"김우중 씨가 회장으로 취임했습니까?"

"그렇게 됐네. 하고 일전에 내 한 번 넌지시 사의를 표명한 일이 있는데, 완전히 펄쩍뛰시더구만."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합니까? 홍 이사님만 철썩 같이 믿고 있는데."

"그것 참.........!"

입맛을 쩍쩍 다신 홍 이사가 말했다.

"내 일단은 다시 한 번 말씀드려보고, 정 뭣하면 내가 아끼는 놈 하나 빼주겠네."

"누굽니까?"

"추호석 소장이라고 있어. 일전에 자네와도 한 번 인사 나눈 걸로 아는데."

"압니다. 일을 잘 합니까?"

"이 사람이 이젠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소리로 들리는데?"

"하하하.........! 그럴 리가요."

"내 시원찮을 것 같으면 아예 소개도 안 해. 한마디로 똑 소리나. 내 미안해서 빼주려 하는 것이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야."

"알겠습니다. 저는 두 분을 다 모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단 한 번 얘기는 해보고."

그러나 홍 이사의 표정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홍 이사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그 자리를 물러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오늘도 여전히 뜨거웠다. 성하(盛夏)의 날씨가 어디 가겠는가. 이 날씨가 인간에게는 더울지 몰라도 논에서는 벼를 무럭무럭 자라게 하고, 벼이삭을 패게 한다고 생각하니, 새삼 생명에 대한 경이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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