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나는 곧장 차를 몰아 사무실로 돌아왔다.
"김 부장은 요?"
경리 고 양이 대답했다.
"서 이사님의 방에 있습니다."
"손님과 함께 있나요?"
"네!"
서 이사가 없으니 그 방을 이용하는 모양이었다. 김 부장은 따로 방이 없었다. 나는 곧 서 이사의 방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례합니다."
손님이 함께 있었으므로 나는 문을 닫자마자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김 부장의 옆 소파에 가서 앉았다. 김 부장이 눈치 있게 내 소개를 했다.
"저희 회사 사장님 되십니다."
"상당히 젊으시네요."
오십대 후반의 인물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사업이 잘 안되어서인지 얼굴은 먹빛이었고, 무척 수척해보였다. 첫눈에 나는 이 사람의 간 상태가 의심스러웠다.
"강 대정입니다."
"신 낙균이라 합니다."
서로 자신을 소개하고 다시 제 자리에 앉았다.
"협상은 어떻게?"
내 물음에 김 부장이 대답했다.
"다 되어 갑니다. 최종 800만 원에 파시기로 하셨습니다."
김 부장의 대답을 들은 내가 신 사장을 보고 물었다.
"혹시 쓰시던 장비는 없습니까?"
"물론 있지요. 고물이 다 되긴 했지만."
"이왕 인심 쓰시는 것, 그것도 그냥 넘겨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글쎄요. 고물로 팔아도 다 돈인데........"
망설이는 신 사장을 향해 나는 엉뚱한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혹시 청주에서 사업은 오래 하셨습니까?"
"태어나서 쭉 청주에서만 살았습니다. 사업도 거의 청주에서만 했고요."
"저도 청주에 아직도 사업체가 있고요. 고등학교도 그곳에서 마쳤습니다."
거의 2/3는 진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거리낌이 없었다.
"아! 한 고향 사람이네요. 반갑습니다. 이거!"
새삼 손을 내미는 신 사장이었다. 나 또한 가볍게 맞잡으며 물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하실 계획이십니까?"
"글쎄요. 막연하네요. 빚은 없어 걱정은 없습니다만, 앞으로 먹고 살 일이 걱정이네요. 그렇다고 붙들고 있자니, 그나마 몇 푼 있는 재산 다 까먹겠고. 게다가 건강도 별로 안 좋아요. 술을 많이 먹어서 그런 모양 이예요."
"혹시 영업을 해보실 생각은 없습니까? 아니면 조그만 곳의 현장 감독이라든지."
"영업은 싫습니다. 제가 영업을 잘 하면 이렇게 되었겠습니까? 현장 감독이라면 몰라도."
"이 업에 얼마나 종사를 하셨습니까?"
"젊어서부터죠. 그때는 내 사업은 아니었지만 계속 노가다 계통을 굴러다녔죠."
"좋습니다. 우리 건설 현장에서 감독을 한 번 해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큰 공사 현장은 아니고 조그만 곳을 맡아 처리해주시면 고맙겠는 데요."
"하하하........! 제 장비가 필요해서 그러십니까?"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하지만 저는 사장님의 경륜이 필요합니다. 죄송한 말씀이나 오래된 생각이 맵다고, 연세 드신 분들의 경륜을 무시할 수 없거든요."
"고맙습니다. 사장님이 허락만 하신다면 꼭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다. 이제 다 시집 장가보내고 우리 두 늙은이 먹고살기만 하면 되니, 큰돈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소일거리로 작은 현장에서 보람을 찾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나가실 때 이력서 제출해주시고요. 일단 근무는 청주에서 하시는 것으로 하세요.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전국 어디는 다 가실 준비는 하셔야 됩니다."
"노가다라는 직업이 다 그렇지요, 뭐. 이해합니다. 그런데 이력서에 사진은 필요 없습니까? 미처 사진이 준비가 안 되어서."
"제가 이미 본 모습을 봤는데요, 뭐. 굳이 필요 없고요. 주민등록등본 한 통은 필히 떼어다 주셔야 합니다."
"이를 말입니까? 참, 이렇게 된 것. 장비도 그냥 넘겨드리겠습니다."
"그냥 주시면 서운할 테니, 최저로 받으실 금액을 부르세요. 그러면 제가 어차피 필요한 것이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쓰세요. 그리고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 중장비를 운전하던 기사들이나 이곳에서 그대로 채용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사장님 사업이나 크게 번창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큰 결격사유가 없는 한 그대로 채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고맙습니다. 고맙게 쓰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깍듯이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너무 서운하실 테니, 차비를 보태드리는 뜻으로 십만 원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김 부장님이 가실 때 챙겨드리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럼, 저는 바빠서 이만. 두 분 계속 말씀 나누시죠."
"네, 사장님!"
벌써부터 꾸벅 절을 하는 신낙균 사장이었다. 아니 신 감독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서 이사의 방을 나오자마자 바로 차를 몰아 다시 시청으로 향했다. 생가해보니 아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빠진 것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시청에 도착하자마자 토지이용계획 확인원 1부를 신청했다.30분 만에 이를 받아들고 확인해보니, 옛날 같았으면 준 농림지역 이었을 역삼동 전체가 주거지역으로 용도가 변경되어 있었다. 바로 이웃 동인 도곡동이 아파트지구로 변경 고시되는 바람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내심 잘 됐다고 생각한 나는 흐뭇한 웃음을 머금고 그곳을 벗어났다. 다시 사무실에 돌아오니 신 사장은 갔고, 대신 채 과장이 돌아와 있었다. 물론 김 부장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김 부장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그대로 계약이 체결되었습니까?"
"네, 사장님! 사장님 말씀대로 십만 원도 쥐어 드렸고요."
"얼마나 고물이길래 그냥 주었을 까?"
"글쎄요.........!"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답을 못하는 김 부장이었다.
"수리하느라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것 아니야?"
나는 중얼거리며 두 사람을 다시 내 방으로 불렀다.
나는 두 사람이 자리를 잡자마자 채 과장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격은 평당 천 원 그 이하는 못 깎아드린 답니다. 거래를 안 하면 안했지. 그 대신 가등기는 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흐흠........! 내 예상대로군. 그렇다면 내일부터 채 과장님은 그곳에 공장을 설립한다고 허가를 받아오세요. 그렇게 되자면 자연히 지목은 임야에서 대지로 바뀌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되면 공장을 세울 곳만 대지로 변경해 줄 텐데......... 그것은 곤란한 문제군요. 무슨 좋은 수가 없을 까요?"
"산 높이가 얼마 안 되니, 산 전체를 다 들어내고, 차제에 평지로 만들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전체를 대지로 전환한 후에, 공장설립허가를 내면 쉽게 해결되지 않겠습니까?"
채 과장의 말에 내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과연 멋진 안입니다. 그런데 흙의 처리가 문제군요. 아! 좋은 수가 있다. 잠실주공 아파트단지를 아직 메우고 있으니, 그 곳에 팔아먹던지 아니면 둔촌동에도 주공아파트 단지를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곳도 아마 흙이 굉장히 많이 필요할 거야."
"옆에서 들으니 뭐가 척척 아귀가 맞아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하하하........!"
김 부장의 말에 나도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이래서 여럿이 머리를 맞대면 낫다니까요."
말을 하던 나의 웃음이 점차 잦아들었다. 그렇게 되면 한 가지 계획에 어긋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이 가등기한 토지를 어떻게 하든 대지로 탈바꿈시켜 거액을 대출 받으려던 계획이 지연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곧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조금 늦어질 뿐이야. 괜찮아! 최소 가등기만이라도 10억은 뺄 수 있을 테니까. 아니 일단 필요한 5억만 빼고 나중에 대지로 전환된 뒤에 왕창 빼지 뭐.'
나는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생각을 접고 말했다.
"일단 그렇게 처리하는 것으로 오늘은 이만 마칩시다."
"네, 사장님! 그럼........."
두 사람 모두 공손히 인사를 건네고 내 방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나자 나는 앞으로 점점 커지는 사업을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으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러던 어는 순간 내 머리를 섬광처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곧 김 부장과 채 과장을 불러들여 내 안을 놓고 토의를 벌이도록 했다. 모두 내 안에 찬성했다. 그리고 조금 더 멋지게 다듬어주기도 했다. 나는 이들마저 내 의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나서자, 나는 곧바로 김 부장에게 하나를 준비하도록 했다. 내일 아침에 쓸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가는 채 과장에게 시켜 청주의 마 부장도 내일 아침 서울 조회에 필히 참석하라고 지시 하며, 미리 전화를 넣도록 했다. 그 이튿날.7시 30분이 되자 나는 전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부회의를 주재했다. 물론 마 부장도 어제 저녁에 올라와 이곳 기숙사에서 자고 이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모인 면면을 천천히 둘러본 내가 입을 열었다.
"어제부로 우리가 종합건설면허를 획득했습니다. 주택건설업까지 할 수 있는 면허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에 때를 맞추어 앞으로 전 부서를 '사업단위제'로 바꾸려합니다. 즉 창호는 창호, 철물은 철물, 방화문 파트도 철물과 분리를 하겠습니다. 여기에 유리, 하이새시, 스텐 및 철판 류 판매는 판매부서로 하나로 묶어 한 사업단위체로 묶겠습니다."
잠시 말을 쉬고 장내에 모인 면면들을 둘러보니, 내 발언에 잔뜩 긴장한 표정들이었다. 잠시 반응을 살피던 나의 말이 이어졌다.
"내말인즉슨 단위 사업체 당, 매 해 평가를 하여, 성과급에 차등을 두는 것은 물론 적자가 나는 사업부서는 과감하게 퇴출을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사업을 하는 것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이윤이 발생하지 않는 사업단위는 더 이상 지속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나의 폭탄 발언에 한동안 장내가 술렁거렸다. 나는 잠시 그들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가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갔다.
"그 대신 어느 정도의 자율권을 보장하도록 하겠습니다. 자체적으로 두 명이내의 영업사원을 둘 수도 있고, 또 정 말을 안 듣는 사람에 대한 징계권, 더 나아가서는 회사에 필요 없다고 인정되는 사람에 한해서는 퇴출권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상부의 결재는 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네! 사장님!"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몰라도 일단 대답은 씩씩하게 해서 좋았다.
나는 곧 단위 사업장과 그 부분의 소 사장이라 할 수 있는 책임자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불려 진 곳은 청주사업장 마이새 부장이었다.
"청주 사업장은 특별해서 전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그 책임자에 마이새 부장! 앞으로 나오세요!"
"네, 사장님!"
내가 눈짓을 하자 김 경제 부장이 임명장을 내게 전달했다. 내가 이를 받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 임 명 장 책임자: 마이새 부장상기 사람을 청주 사업장의 소 사장격인 관리책임자로 임명합니다. 회사 내규에 의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며, 그 책임 또한 막중하여 사업의 성패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진다. 모년 모월 모일 사장 강 대정]
"박수!"
내가 마 부장에게 임명장을 건네자 채 과장이 바람을 잡아, 장내에 한동안 우렁찬 박수소리가 진동을 했다. 이어 나는 서울의 각 부분 사업체 책임자들을 임명해나갔다. 그 사업체와 부서장을 열거하면 아래와 같았다. 청주 사업부: 마 이새새시사업부: 과장 주 성재철물사업부: 차장 최 재의철구조물 사업부: 차장 손 영태방화문 사업부: 차장 김 용환하이새시 사업부: 과장 김 영욱유리 사업부: 과장 신 종수판매 사업부: 과장 하 진상 이상 총 8개 부서에 8명의 부서장이 임명되었다. 내가 이들에게 좀 더 많은 자율권을 주고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이제 내가 좀 더 큰물에서 놀기 위함이었다. 전물건설업이 아닌 이제 좀 더 큰 공사를 수주하는데 전력투구하겠다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어서 내가 모든 것을 다 챙길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내가 이쪽의 영업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중을 낮출 계획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미리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로써 이들이 좀 더 분발하여 함께 커나가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