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네 번째 계단-- >
다음 날 아침 나는 산뜻한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월요일이라 월요병 환자들은 괴로울 테지만 나는 즐거웠다. 내 사업이니 태만히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가만히 있어도 지금까지 벌여놓은 사업에서 저절로 돈이 굴러들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6시 반에 출근하여 김 경제 박사가 제시한 우리의 나아갈 바라할 수 있는, 우리 기업의 미래 비전이 담긴 보고서를 펼쳐놓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 같이 시간 있을 때 읽어보자는 생각이었다. 첫째로 건설 부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펼쳐놓고 읽어보았다. 죽 읽어보니 대체로 이런 내용이었다. 이제는 전문건설업에서 탈피하여 종합건설업을 지향해야 한다. 종합건설 회사도 국내 면허가 있고, 해외 면허가 있어서, 해외공사까지 수행하려면 해외건설면허도 취득해야 한다. 또 국내 부분에서는 아파트 공사 등을 수행하려면 주택건설업면허를 취득해야 된다. 결과적으로 건설부분에서는 이 모든 자격을 취득해야 된다고 적시되
어 있었다. 그래서 결국 좁은 국내시장보다는 드넓은 해외시장을 지양해야 된다고 최종 목표를 제시해 놓았다. 옳은 소리만 적어놓았으므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무역 편을 읽어보았다. 그것의 첫째 지향점은 종합상사가 되어야 한다고 적시해 놓았다. 그러고 작년부터 시행된 우리나라의 종합상사가 되기 위한 조건을 나열해 놓았다.
* 전년기준 실적 5천만 달러 이상.
* 자본금 10억 원 이상.
* 수출품목 수 7개 이상.
* 100만 달러 이상의 수출국가 수 10개 이상.
* 해외지사 수 10개 이상 등이었다. 하나 같이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이중에서 가장 달성하기 쉬운 것이라면 수출품목 수 7개 이상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며 내심 실소를 짓고 있는데, 갑자기 커피가 먹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관리부 사무실로 갔다. 그곳에 가스레인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출근을 하지 않았으니, 천상 내가 타먹어야 되는 데, 왔다 갔다 하며 가스 불에 주전자를 올리고 하는 일이 매우 귀찮게 느껴졌다. 이럴 때 커피포트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거의 대부분을 남의 손에 의해 커피를 마시다가, 내가 직접 타먹으려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커피포트를 생각하던 내 발걸음이 갑자기 우뚝 멎었다.
커피를 생각하자니 미래에나 출시되는 소위 '무선 커피포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실물을 보면 별 것도 아니지만, 막상 이것이 출현하니 기존 제품이 거의 전멸을 하다시피 한 사실이 내 머리를 지배했다.
"바로 이거다!"
손가락을 부딪쳐 딱 소리가 나도록 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또 한 품목 발견!"
나는 나도 모르게 기성을 지르고, 룰루랄라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커피를 타먹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나는 그 다음을 읽어보았다. 위의 조건을 충족시켜 작년도 종합상사로 지정을 받은 곳은 단 세 곳뿐이라는 것도 명기가 되어있었다. 삼성, 대우, 쌍룡이 그들이었다.
'아직은 갈 길이 멀 구나!'
나는 이들 업체들을 보면서 내심 그런 한탄이 흘러나왔다.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다음을 읽어나갔다. 이제 무역 파트의 최종 지향점이 명기되어 있었다. 종합상사를 통한 수출입은 물론, 종합상사를 통한 대규모 자원개발, 또한 대규모 금융 업무를 수행하며,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지역 경제의 풍부한 자료도 확보해야 된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요는 정보를 취득해 이를 적극 활용해야 된다는 이야기였다.
다음으로 전자부분에 대해서 언급해 놓았는데, 어려운 일이지만 최우선으로 최고의 제품을 시장에 내놓아 기업의 이미지를 재고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직은 우리의 기술이 미천하니 OEM방식이라도 수주를 많이 맡아, 취급 품목을 다변화해야 된다고 적어놓았다. 그래야만이 한 두 품목이 막히더라도 살아남을 수가 있다고도 했다. 그리고 최종 지향점으로 가전제품을 거쳐, 반도체 시장과 통신시장을 장악해야 된다고 적어놓았다. 미래의 전자시장은 그곳에서 승부가 난다고 적시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이제 목표가 뚜렷해져 좋았으나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현재로서는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곧 마음을 다잡았다. 가슴에 먼 미래에 대한 큰 포부는 품되 우선은 한 치 앞, 내 발만 내려다보고 뛰기로 한 것이다. 마치 군대에서 구보를 하는 원리와 같았다. 멀리 보면 저기까지 언제 뛰나 하는 생각에 자꾸 마음부터 지친다. 더 더군다나 언덕이라도 만나면 그 마음이 더하다. 그래서 구보를 할 때는 가급적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의 발치만 내려다보고 뛰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하면서도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답은 곧 나왔다. 곧 워크맨이 제품화 될 것이니, 이를 양산할 공장 터를 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 다음으로 여기에 공장을 짓는 것이다.
또 더욱 좋기로 말하면 그동안 건설 회사를 하나 새로 차리든지 아니면 남의 것을 인수하든지 해서, 우리가 직접 공장을 짓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현대의 유리공장을 짓는 것도 원래원칙대로 따지면 불법이었다. 하도급도 종합건설업 면허가 있어야 되는 것이다. 철 구조물은 철물 단종의 범위를 넘어서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종합건설업 면허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였다. 곧 나는 결심을 굳혔다. 신규로 하나 내던지 아니면 남의 것을 하나 인수하기로. 이제 나는 종합건설업면허와 전자공장 부지문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모종의 결심을 굳히고 나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조회시간이 되었다. 나는 간단하게 조회를 마쳤다. 그리고 모든 간부들을 내보내고, 김 경제 기획부장과 채 선장 관리과장만 남게 했다. 내가 결심한 바에 대해서 이들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자, 차라도 한 잔씩 하면서 오늘은 전자공장 부지 문제와 종합건설업 면허에 대해 이야기 좀 합시다. 차는 뭐로 드시겠습니까?"
"저는 녹차로 하겠습니다."
"저도요."
김 부장이 녹차를 주문하자 채 과장도 따라서 녹차를 주문했다.
"그럼 통일합시다."
나도 종전의 조회시간까지 커피를 두 잔이나 마신데다가, 타는 사람의 편리성을 위해 그냥 녹차를 마시기로 했다. 이에 곧 나는 경리 고 경희를 불러 녹차 세 잔을 타오도록 했다.
"머지않아 워크맨이 개발되어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를 양산할 공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공장 부지를 마련하는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이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채 과장이 말했다.
"어느 곳이든 산업공단이 좋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국가에서 개발하여 판매하는 것이니 저렴하기도 하고요. 제 생각에는 우리의 근거가 있는 청주공단이나 수도권 지역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어 김 부장이 발언을 했다.
"제 생각으로는 그보다는 조금 더 비싸게 주고라도 나중에 시세 차익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지역을 선정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후보지로는 뭐니 뭐니 해도 수도권 지역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지요."
"흐흠.........!"
잠시 생각하던 내가 입을 열었다.
"두 분의 말씀이 일장일단이 있으나, 뭐니 뭐니 해도 기업은 이윤추구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김 부장의 말씀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싶군요. 해서 그 후보지를 알아보되 저는 아직은 개발이 진행 중인 강남, 그 중에서도 아직은 개발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역삼동이나 양재동 쪽을 알아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사장이 지시를 할 때는 구체적으로 해야지 막연하게
'알아보세요!'
한다든가. '강남' 이렇게만 말해도 강남이 좀 넓은가. 이렇게 막연하게 말하면 수행하는 입장에서는 많은 시간을 빼앗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때 고 양이 녹차를 내왔으므로, 우리는 차를 한 잔씩 들고, 이야기를 이어나가기로 했다. 두 사람이 찻잔을 드는 모습을 보고 나 또한 찻잔을 드는데 어째 색깔이 녹 빛이 아니라 검은 색에 가까웠다.
전생에서 가끔 녹차도 먹어보았으므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의 녹차산업은 아직 발아단계도 아니어서, 녹차 잎이 수입품이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또한 하나의 훌륭한 아이템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만물상을 차릴 수는 없는 일인지라, 쓰게 웃으며 생각을 접어야 했다. 아무튼 찻잔을 입에 대어 맛을 보니 이생에 와서는 익숙지가 않아서 인지, 비릿한 풀냄새만 지독하게 났다. 나는 곧 입을 떼고 말했다.
"이제 종합건설업 면허에 대해서 논해봅시다. 이것도 두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는데, 하나는 신규로 취득하는 방안이고, 하나는 남의 것을 사들이는 방법이 있겠지요. 다 일장일단이 있을 수 있으니, 양자에 대해서 동시에 알아보는 방향으로 합시다. 단........"
여기서 말을 끊은 나는 두 사람을 잠시 번갈아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존 건설업체의 면허를 양도받는 다면, 저는 뒤가 깨끗한 업체를 선호합니다. 도급순위는 우리가 키우면 되니, 괜히 뭔가 뒤에 덕지덕지 붙어서 훗날 말썽이 생기는 것 보다는 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복명하는 가운데 나는 업무분장을 지시했다.
"땅을 매입하는 문제는 채 과장님이 추진해 주시고, 건설업면허는 김 부장님이 알아봐 주세요."
"네, 사장님!"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채 과장님은 나가시거든 여진원 수석 연구원 좀 불러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대답과 함께 채 과장이 바로 일어서고, 김 부장 또한 내게 목례를 건네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잠시 내가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있는데, 여 진원 수석연구원이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왔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왜?"
바쁜 사람을 불러 골이 난 사람마냥 퉁명스러운 여 선배의 물음이었다. 나는
내심 쓰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커피포트 보셨죠?"
"근래 우리도 하나 사서 끓여먹고 있어요."
"그것을 좀 개량해서 우리 회사에서 출시해볼까 하고요."
"어떻게?"
"지금의 형태는 포트만 옮기려면 밑의 코드를 빼게 되어 있잖아요? 이것을 코드는 그냥 두고 포트만 옮길 수 있게, 밑에 받침을 만들어 전원을 공급하는 것이죠."
그렇게 설명을 하고 나는 곧 스케치를 해서 대충이나마 그 형태를 보여주었다.
즉 받침이 있는 분리형을 채택하되, 암수의 원리를 이용해 밑의 받침은 도드라지게 하여 전원을 공급하고, 위의 포트는 쏙 들어가게 가여 전원을 공급받는 형태였다. 이를 본 여 선배가 말했다.
"별 차이가 없잖아?"
"그래도 그 차이가 굉장합니다. 누구든 일일이 코드를 뽑는 것은 귀찮아하거든요. 단지 포토만 들어 물을 부을 수 있다면 누구든지 이 제품을 사지. 코드를 뽑는 것은 안삽니다."
"얘기를 들으니, 그도 그렇군. 이런 것은 별 것 아니니, 금방 개발이 되겠는데?"
"그럼, 저야 당연히 좋지요."
"알았소. 바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주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워크맨에 라디오 기능과 녹음기능을 추가시키는 연구는 잘 되고 있나요?"
"그게 말이지......."
머리를 잠깐 긁적인 여 선배의 말이 이어졌다.
"녹음기능과 라디오 기능을 만들어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소형 워크맨에 두 가지 기능을 더 집어넣으려니, 그 크기는 그대로 인 채 모든 것을 축소해야 된단 말이지. 이게 그런데 쉽지가 않아요. 회로도도 다시 설계해야하고......... 아무튼 그보다는 영상반주기가 먼저 출현하게 생겼어요."
".........."
내가 말없이 계속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영상반주기는 이제 다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예요. 몇 가지만 다듬어 보완만 하면 되는데, 이게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반주를 채록해서 집어넣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 것 아니겠어? 지금 그 작업을 몇 몇 팀과 접촉해서 수행하고 있어요."
"그럼, 거의 개발이 완료되었다고 봐도 무난하겠군요."
"그럼, 그럼. 그런데 워크맨은 언제 출시되는 거야?"
"아직 선진국에 특허 출원이 덜 됐고요. 제품은 양쪽에서 만들고 있는데, 그것도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거예요."
"알겠음. 다른 문제는 더 없는 거지?"
한시라도 빨리 가서 연구를 하고 싶어 엉덩이를 들썩이며 묻는 여 선배였다.
"네, 가셔도 됩니다."
"그럼, 수고."
"네, 선배님!"
그를 보내고 나는 잠시 오늘의 일정이 적힌 메모판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