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22화 (122/322)

< --(주)대정(大正)-- >

"지금 연봉의 최소 1.2배! 됐습니까?"

"직급은..........?"

허 부장의 물음에 내가 답했다.

"현 그대로. 나중에 우리 회사가 더욱 번창하면 그때는 한 번 감안하겠습니다."

"무엇인지 몰라도 그 부품을 개발하려면 금형 기술이 가장 중요한데........."

나는 더 이상 양 과장의 말을 듣지 않고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

"금형 문제는 걱정 마십시오. 이 제품을 전담해 개발한 우리나라 최고의 기술자가 우리 직원으로 이미 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금형 개발비는 부품업체에서, 돈을 지불해서 개발하는 것으로 하세요. 나중에 어차피 그들의 재산이 될 테니, 그게 옳고요."

말을 끝낸 나는 패스보드에서 장영조 금형개발 차장의 명함을 그들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나도 하나 밖에 없는 명함이라 적으시고, 명함은 돌려주세요. 하고 앞으로 금

형 개발 문제는 전적으로 이 사람과 상의하세요."

"알겠습니다."

허 부장이 대표로 대답을 했다. 그들이 다 이기하고 나에게 명함을 돌려주자 내가 말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지요?"

"지금은 묻고 싶어도 뭘 알아야 묻지요."

"허 부장님의 말씀이 정답입니다. 내 두 분을 편법으로 어렵게 모셨지만, 두 분이 정말 우리 회사를 위해 노력해주신다면, 진실로 끝까지 여러분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단 경쟁에 도태되는 분은 저와 끝까지 함께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방계의 작은 회사로 전출이 되겠지요."

"이 말이 무슨 의미냐 하면, 여러분 말고도 또 하나 굴지의 대기업에서 똑같은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제 말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네, 사장님!"

군기 든 신병 같은 두 사람의 이구동성에 나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제 술이나 한 잔씩 합시다. 불판부터 갈고요."

"네, 사장님!"

양 과장이 밖을 향해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아줌마! 여기 불판 좀 갈아주세요!"

"네, 과장님!"

드르륵 문이 열리며 아줌마가 들어왔다.

"여기 고기 5인 분 더 추가하고요. 술도 아예 5병 더 갖다 놓으세요."

"네, 사장님!"

나의 주문에 질린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이었다. 위와 같은 똑같은 작업이 그 이튿날 서울로 올라온 나에 의해, 삼성전자 부장과 개발과장에게도 자행(?)되었다. 그렇게 모신 사람이 엄 달생(嚴 達生) 부장과 최 만리(崔 萬里)부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워크맨이 본격적으로 양산체제를 갖추어 가는데, 서 이사는 외국의 특허출원 준비에 바빴고, 장 영조 금형개발 차장은 주임 급 두 명을, 기존 자신이 다니던 업체에서 더 빼내왔다. 아쉬운 대로 금형 계통의 체계를 갖춘 셈이 되었다. 유월도 다 가고 칠월 초의 어느 날.

기획부장 김 경제 박사가 조회가 끝나자 사장실로 나를 찾아왔다.

"사장님, 보고 할 게 있어서요."

"거기 앉으세요."

둘은 소파에 마주보고 앉았다.

"그 동안 제가 연구한 우리 회사의 나아갈 바를 연구한 보고서입니다."

김 부장이 두툼한 보고서를 내 앞에 내놓으며 말했다.

"요약하면 어떻게 됩니까?"

"사장님이 언명하신 건설, 전자, 무역 등의 세 축에, 유통과 금융을 첨가시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금융은 그 자체로도 메리트가 있지만, 만약 어느 한 계열사가 어려우면, 우리 금융회사에서 내부 지원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유통업은 잘 아시다시피 현금이 매일 돌므로, 여간해서는 계열사들이 현금이 없어서 낭패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선은 트로이카 체제로 기업을 키우고, 두 업종은 장기적 관점에서 시행하는 것으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

"이제는 부장님께서 경리, 세무, 회계 쪽으로 주안을 두시고 업무를 담당해주세요."

"네, 사장님!"

"제가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 데요?"

"말씀하세요. 사장님!"

"오늘 일과 끝나고 잠깐 제게 시간 좀 내주세요."

"술 한 잔 하시 게요?"

"그렇다고 해두죠."

"네?"

애매한 나의 말에 김 부장이 되물었으나, 나는 빙그레 웃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 표정이 더 묻지 말라는 뜻도 되었으므로, 애매하게 웃은 김 부장이 곧 자리를 떴다. 나는 곧 각 현장을 한 바퀴 순시했다. 새시에 이어 유리 공장을 둘러보던 중 나는 갑자기 생각나는 바가 있어, 유리과장 신 종수를 불렀다.

"신 과장님!"

"네, 사장님!"

"잠시 나 좀 볼까요?"

"네, 사장님!"

내가 앞장을 서서 걸어가자 어정쩡한 표정으로 서 있던 신 과장이 급히 내 뒤를 쫓아왔다. 나는 곧 그를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를 소파에 앉히고 나는 캐비넷을 뒤져 한쪽에 방치되어 있던, 3mm 유리 두 장을 겹쳐 만든 12pair 복층유리 샘플을 꺼내들고, 그와 마주앉았다.

"이게 뭡니까? 사장님!"

"생전 처음 보죠?"

"네, 사장님!"

"3mm 유리 두 장을 겹쳐 만든 12pair 복층유리라는 것으로, 일본에 출시되어 있는 것을, 제가 일본 출장 때 가져온 것입니다. 제가 이것을 보여준 이유는 이것이 한국유리에서는 개발되고 있어요. 내가 알려줬거든요. 그렇지만 5mm 두 장을 겹친 16pair는 아직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일본도 제품으로 출시된 게 없었어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듣고 있는 신 과장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나의 말이 이어졌다.

"원리는 12페어나, 16페어나 똑 같아요. 즉 제일 가에를 이렇게 알루미늄 테두리로 처리를 하고, 내부는 건조제로 안을 바짝 건조시킨 후, 아마도 진공처리를 하는 듯 했어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뜻을 알겠어요?"

"우리보고 개발하라는 것 아닙니까? 남이 개발하기 전에. 그것도 서둘러서."

"아주 머리 회전이 빠르시군요. 예, 제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다 하셨어요. 일과 시간 후에 연구를 한 번 진행해보세요. 필요한 자재나 부품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만 하세요. 즉시 조달해 드릴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남들보다 빨리 개발을 한다면 내 전원 일 계급 특진을 약속하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내 말에 신 사장이 감격한 얼굴로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샘플은 가져가세요. 그렇지만 외부에 유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네, 사장님! 잘 간수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정중히 고개를 조아리고 사무실을 나가는 신 종수 과장이었다. 내가 이렇게 결정한 배경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지금까지는 한국유리 독점체제였기 때문에 유리를 공급받지 못할까봐 망설이고 있었지만, 곧 정주영 회장에 의해 금강유리라는 회사가 생긴다니, 나도 이제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유리 부분도 재빨리 치고 나가 이 부분의 특허 하나는 보유하고 싶은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앞으로 12페어는 초창기만 쓰일 것이고, 세월이 흐를수록 거실 유리는 보온을 위해, 16페어를 택하는 집이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미리 그에 대한 대비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후 학교를 다녀온 나는 그때까지 퇴근을 미루고 있던 김 경제 박사를 내 차에 태우고, 제3한강교를 넘어 강북으로 진입을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빠르게 차를 몰아, 장안에서는 유명하다는 '명고당(命古堂)'이라는 한약방에 차를 세웠다.

"여긴.........?"

간판을 보고 내리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문을 열고 묻는 김 박사에게 내가 말했다.

"얼른 따라오기나 하세요."

나의 재촉에 할 수 없이 문을 닫고 내 뒤를 쫓는 김 박사였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말했다.

"미리 예약한 강 대정이라는 사람입니다."

"아, 네! 어서 오세요. 그렇잖아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약방의 부인인 듯한 넉넉한 살집의 오십대 후반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이리로."

부인은 곧 우리를 한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 책상에는 60대 초반에 머리가 백발이고, 눈썹마저 희고 긴 노인이 우리를 안경 너머로 넘겨다보고 있었다.

"여보, 예약 손님이 오셨는데요."

"아, 그래요? 그 쪽으로 편히 앉으세요."

우리를 일자 소파로 안내한 그도 곧 우리 맞은편에 앉았다.

"어쩐 일로?"

내가 대답했다.

"보약 좀 한 재 졌으면 해서요."

"어느 분이?"

"이쪽입니다."

제가 김 박사를 가리키자 김 박사가 깜짝 놀라 나를 보고 반문했다.

"저를 요?"

"그럼, 제가 보약을 먹어야 되나요? 솔직히 박사님보다는 제가 더 건강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아무 말 마시고, 우선 진찰부터 받아보세요."

"이런 일이........."

급 눈시울이 붉어진 그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쪽으로 누우시죠?"

한의사 양반의 독촉에 마지못해 1인용 침대에 가서 눕는 김 박사였다. 그를 눕혀 놓고 그의 몸을 이곳저곳 만지며 묻는 것은 물론, 문진, 진맥까지 마친 한 의사가 말했다.

"원기가 많이 쇠약해져있어요. 해서 십전대보탕을 처방하려는데, 몇 재를 지어드릴 까요?"

"다섯 재 부탁드립니다."

"네? 무슨 보약을 그렇게 많이, 한두 재면 되지요."

"그 정도는 자셔둬야, 뭔가 체질 개선이 되지요. 한두 재 찔끔찔끔 자셔봐야,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의사선생님 소견은 어떻습니까?"

"허허허.........! 나보다 더 잘 아시니 앞으로 이곳에서 근무하도록 하세요."

"하하하.........!"

부인까지 따라서 빙그레 웃는 가운데, 김 박사가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었다.

"자셔보시고, 효험을 보신다면 그때 다시 제게 말씀하세요. 박사님이 건강만 해지신다면 제가 10재든 스무 제든 지어드릴 의향이 있으니까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다시 눈시울이 붉어져 더 이상을 말을 잇지 못하는 김 경제 박사였다.

한의사 양반이 한약을 조제하는 동안 가만히 생각하니 촌의 할머니와 부모님들도 힘든 농사철을 넘기려면, 보약 한두 재는 자셔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이 나면 곧장 움직이는 게 나의 장점 아니던가. 나는 곧 부인에게 다가가 말했다.

"사모님, 전화 한 통 쓸 수 있을까요?"

"네, 쓰세요."

손으로 까만 전화기까지 가리키는 부인의 말에 따라 나는 곧 집으로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나야!"

"어머, 당신! 이 시간에 웬일이세요? 퇴근 안 하시고?"

"지금 당신이 당장 양쪽 집에 전화 걸어서, 내일 돈 부쳐드린다고 보약 한 재씩 자시라고 해."

"아니,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농사철 넘기려면 힘들 거야. 우리가 부쳐주는 용돈에서는 쓰기 아까우실 테고, 내 말대로 해. 할머니까지 지어드리는 것으로 말을 하라고. 알았어?"

"네, 여보! 고마워요. 늘 잊지 않고 친정까지 챙겨줘서."

"고마우면 나한테 잘 하면 돼. 밤일도 잘 하고."

"또, 그 소리."

나는 얼른 전화기를 내려놓고 두 사람을 살펴보니 함부로 웃지도 못하고 입을 가리고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다섯 재를 받아든 내가 김 박사에게 이를 인계하며 말했다.

"몸이 더욱 더 좋아지실 때까지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쉬엄쉬엄 하세요. 옛말에도 있질 않습니까? 재물은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잃는 것은 다 잃는 것이다."

"사장님 말씀을 제가 아파보니 아주 뼈저리게 실감한 몸입니다. 앞으로 이 약을 먹고 더욱 몸이 건강해져, 사장님의 은의에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나중에, 더욱 몸이 좋아지신 뒤에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가십시다. 우리 이왕 나온 김에 소고기라도 모처럼 한 번 푸짐하게 먹어봅시다."

"네, 사장님!"

이렇게 해서 우리는 2차로 가든을 가 등심 5인 분을 먹었다. 김 부장이 2인분을 간신히 먹고 내가 3인 분을 먹었다. 소주는 둘이 딱 1병을 비웠다. 그가 한 잔을 내가 나머지는 다 마셨다. 이 정도로는 평소 간의 기별도 안 가므로 나는 김 박사를 집까지 태워다 주고 곧장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미정의 환대를 받으며 전화기를 붙들었다. 그리고 다이얼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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