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20화 (120/322)

< --(주)대정(大正)-- >

이후 나는 어떻게 묻고 답했는지 기억이 없었다. 그렇지만 녹음기라는 녹음은 감정이 없는 기기라서 다행히 감정에 연연하지 않고, 고스란히 우리의 대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기사를 쓰려고 녹음기를 틀어보니, 그래도 다행히 김세종(金世宗)이라는 젊은 놈의 역린을 건드리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세계 최대의 대형 화제로 5년 전 163명이 죽은 최악의 사태요,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거금인 7억 여 원의 재산 피해가 난 불명예로 인해, 회장이 은둔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을 캐묻지 않았던 것이다. 당연한 귀결로 젊은 그가 대권을 거머쥐고 그래도 대한민국에서는 내노라하는 건설사를 좌지우지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이 기획 시리즈의 본래 취지가, 현대건설 정 주영 회장의 주베일 항만공사 수주를 기화로, 여타 대형 건설사도 달러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중동으로 진출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체로 이런 논조를 글을 마무

리하면서, 나는 더 이상의 취재와 연재를 중단했다.

내 사생활이야 어떠하든 내 사업은 순풍에 돛단 듯 더욱 번창을 했다. 방화문은 당장 삼환기업의 프라자호텔은 물론 태평로에 짓고 있는 삼성 본관 사옥까지 시공할 물량까지 부족한데다, 슬슬 입소문까지 나기 시작해서 현재의 인원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었다.

여기에 삼환과 현대까지 수주하자 나는 결단을 내려 방화문 공장에 30명, 알루미늄 새시 30명, 철물 30명, 유리도 20명을 증원하기로 하고, 또 한국일보에 구인광고를 냈다. 대단위 아파트인 잠실주공까지 쳐내자면 이 또한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가급적 나는 최소한의 숫자를 유지하려고 이 정도만 뽑은 것이다. 사업주는 언제든지 일이 격감할 때를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사업을 해보면 알지만 직원들 놀리고 월급 주는 것 같이 배 아픈 일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떠나 사업이 망하는 지름길 아닌가.

어찌 됐든 한국일보에 낸 광고료는 무료였다. 내가 아이디어를 낸 벼룩시장이 안착을 해, 이제 제법 짭짭한 수익을 거둬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장 영조 금형과장도 그 쪽에서 손을 털고 우리 회사에 합류를 했다. 나는 그를 전에 약속한 대로 금형개발 차장에 임명하였다. 그런데 이쯤에서 때를 맞추어 삼성과 금성사의 외주 팀을 은밀히 내사하던 최상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야, 어떻게 됐어?"

"꼼짝 못할 사진과 녹음까지 다 해놨다."

"그래, 제대로 한 건 했는데. 지금 어디냐?"

"청주지 어디야?"

"네가 올라 올 수는 없냐?"

"서울 지리는 깜깜이다보니 올라가기가 겁난다."

"알았다. 내가 내려가마."

"기다릴게."

"내일 오전 9시까지는 사무실에 도착하마."

"접수했음."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하니 물 먹는 하마마냥 돈만 잡아먹더니 드디어 한 건 한 모양이었다. 나는 다음 날 새벽 일찍 집을 떠나 채 7시가 되기도 전에 청주에 도착했다. 사무실에 들러보니 아무도 없었다. 경비 한 명만이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고, 한 명은 밖에서 근무를 서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 인사하는 경비의 인사를 받고 2층으로 올라갔다. 막 동생과 함께 아침을 먹으려다 반색을 하고 달려오는 명희였다. 이 모양을 보고 동생이 쳇쳇 거렸지만 우리 둘 모두 거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한동안 내 품에 매달려 있던 명희를 떼어놓은 내가 물었다.

"내 아침도 있냐?"

"그럼요. 당연히 있지요. 언제든 오빠 밥 한 그릇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남겨놔요.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설령 제가 굶는 한이 있더라도."

"설마, 그럴 라?"

"아니 예요. 형부! 언니 말이 틀림없어요. 언젠가 한 번은 형부 밥 밖에 없다고 언니가 굶더라고요. 그러더니 결국 못 참겠는지, 나중에 라면 하나를 삶아 먹었지만 말 이예요."

"하하하..........!"

처제가 말을 하니 더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는 꼭 올 때는 통보를 해야겠다. 그래야 그런 일이 없지. 또 만약 그런 일이 있으면 절대 굶지 말고 먹어. 정 내가 원하면 금방 밥하면 되지."

"저한테 그렇게 배려하실 필요도 없고요. 앞으로도 저는 그렇게 할 거니까, 그렇게 아시면 돼요. 오빠!"

"뭔가 삐친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지 않아요. 오래 간만에 만나니 괜히 투정을 부리고 싶었나 봐요."

"그래, 알았다. 투정은 이따 실컷 부리고 우선은 나 배고프니 밥 좀 줘라."

"네, 밥은 괜찮은데 국은 데워야 해요. 우선 제 것 잡숫고 계세요."

"기다렸다 같이 먹을 게. 국 데워. 나 양복 좀 벗어놓고."

"네, 오빠!"

나는 그 길로 상의를 안방에 걸어놓고 나왔다. 아침밥을 먹은 나는 명희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7시 30분이 되자 아래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벌써 마 부장은 출근을 해 있었다.

"아니, 사장님! 언제 내려오셨습니까?"

나의 등장에 깜짝 놀라 묻는 마 부장이었다.

"좀 전에 내려왔습니다. 별 일 없었고요."

"그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마 부장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발생했나요?"

"아니래도 이 문제를 가지고 전화를 드릴까 망설이던 참이었습니다."

"말씀해보세요. 무슨 일인지."

"사실은 저.......... 율량동 상가 시공 중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기다렸다.

"지난번 사장님이 가르쳐준 대로 우리 자체 팀이 커튼월을 시공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것이 글쎄 계속속해서 말썽이지 뭡니까. 내부로 물이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또 한 번 외부의 창틀이란 창틀은 물론 내부와 벽채에도 꼼꼼히 실리콘을 다시 쏘았는데, 그래도 또 물이 새는 것입니다. 이거 사람 미치고 팔딱 뒤겠습니다. 영진건설 사장은 계속해서 하자 손보라고 난리지........."

"그래요? 그 자식이, 험 험..........! 견적 제 금액 다 받았다고 앙심을 품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것도 그것이겠지만, 일단은 현장에서 물이 새고 있으니, 참으로 난감합니다."

"알겠습니다. 내 볼일 좀 보고, 10시 후에 같이 한 번 현장에 가봅시다. 시공은 누가 했나요?"

"안 과장이 했습니다."

"그 친구도 어디 가지 못하게 대기시켜 놓고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다른 문제는 없고요?"

"네, 없습니다."

"대전 가양 주공아파트 목 무늬 하이새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검측을 해다가 지금 하이새시 팀에서 조립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고. 음.........! 청주공장 내의 실리콘 공장도 짬짬이 한 번 가보세요. 우선 도면을 가져다 견적을 내는 게 선결 문제겠고. 아마 공장의 창호는 하이새시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저희들이 하이새시를 생산하는데, 알루미늄 새시를 쓰겠어요?"

"그렇겠지요. 그 것은 제가 견적을 내라는 말씀이시죠?"

"그렇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큰일 났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나의 심각한 안색과 말에 마 부장이 적잖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대한주택공사에서 시공하는 전 방화문은 우리 제품을 사장님 특별지시로 쓰게 한데다. 잠실주공이라고 근 2만 세대의 창호철물은 물론 유리까지 맡았으니. 개다가 앞으로 짓는 현대건설의 전 아파트에 대한 세 가지 일, 또한 삼환기업이라고 랭킹 5위 안에 드는 기업의 일까지, 우리가 전부 앞으로는 손을 대야합니다. 이것이 큰일이 아니면 뭐가 큰일 입니까?"

"하하하.........! 난 또 뭐라고. 어디 크게 큰일입니까? 경사죠, 경사! 그런 큰일이라면 10번을 나도 괜찮습니다.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존경합니다. 사장님!"

"아니, 갑자기 왜 이러실까?"

이런 대화에 우리는 작은 근심은 잊었다. 그러나 제방의 큰물도 개미구멍과 같은 작은 누수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작은 하자보수 하나를 등한히 하면 안 된다. 이 건은 이 건대로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이곳의 조회를 마치자마자 최상철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나는 최상철로부터 증거자료라는 녹음된 테이프와 사진 등을 받고, 그로부터 일의 전말을 대충 들었다. 그리고 그에게 수고했다고 돈을 좀 지불하고는 바로 사무실로 되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나는 대기하고 있던 안 과장 이하 몇 사람의 직원은 물론 마 부장과 함께 율량동 현장으로 직행을 했다. 나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평소 차 트렁크에 싣고 다니던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동안 직원들은 내 지시에 의해 제일 꼭대기에서 밧줄을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밧줄이 다 설치되기를 기다려 5층 꼭대기에서부터 천천히 밧줄을 타고 내려오며 일일이 코킹을 쏜 창틀이며, 벽채의 이음매 부분까지 아주 세세하게 살펴 내려갔다. 그렇게 1시간 이상을 점검해도 내 눈에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이는 내 전생의 오랜 경험적 판단에 의하면 창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데 문제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래도 혹시 몰라 내부마저 점검해보니, 얼마나 시달렸는지 내부까지 아주 실리콘을 떡칠하듯 많이도 쏴 놨다.

나는 확신을 갖고 황수정의 아빠이기도 한 황국태 사장에게 현지 소장을 불러 전화를 걸도록 했다. 그리고 마 부장에게는 특별지시를 내려 먹물을 구해 몇 양동이 타놓도록 했다. 결국 마 부장은 문구사에 가서 파는 먹물이 있으면 사오려 했으나, 이 시대에는 없어서, 먹과 벼루를 몇 개 사다가 전 직원이 달라붙어서 갈고 갈아 양동이에 집어넣어야 했다.

이윽고 세 동이의 먹물이 준비될 쯤에야 황 사장이 나타났다. 느끼한 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준수한 얼굴이지만 이상하게 정이 안가는 타입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자네가 이 공사의 최고 책임자인가?"

"그렇습니다."

"그래, 어떻게 조처할 생각인가?"

"제가 보는 견지로서는 창호가 아니라 다른 쪽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자네의 얼굴이 좀 낯이 익은데?"

서로 바라보며 찬찬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

"한때 모충동에 살았었습니다."

"아하, 거! 한 때 수정이를 좋아해서 쫓아다니던 학생 아닌가?"

"그걸 사장님이 어찌 아십니까?"

"내가 그걸 왜 몰라. 내가 끔찍이 아끼는 외동딸인데."

"그야, 그렇고요. 오늘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황수정의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전환했다.

"물론이지. 그래, 자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셈인가?"

"일단 옥상으로 올라가 보시죠. 저희들이 준비해 놓은 게 있습니다."

"그래?"

야릇한 웃음을 흘리며 앞장서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는 황 사장이었다. 그 웃음에는

'네가 무슨 수로 해결하느냐?'

하는 듯한 비웃음이 내포된 듯해 내 기분이 저절로 나빠졌다. 이를 어른 앞이라 내색할 수도 없고, 괜히 올라가는 내 발걸음에 힘이 주어졌다.

쿵쾅! 쿵쾅!

마침내 옥상에 오른 우리 일행이었다. 나는 커튼월이 시공된 전면의 벽채며 방수 상태를 아주 세밀히 살피다가 실금이 간 곳을 발견하고는 누구랄 것도 없이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 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재빨리 알아들은 안 과장이 부하들을 제치고 자신 스스로가 양동이재 들고 와 사정없이 부었다.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온 건물을 먹물 투성이로 만들 참인가?"

"아직 미장도 하지 않았습니까? 대리석 마감도 않았는데, 먹물이 있은 들 외부에 노출이 되겠습니까? 정 뭣하면 우리가 다 닦아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안심을 시킨 나는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먹물 한 방울이라도 아까워 발로 밀어 넣으니, 마 부장 이하 전부가 이를 또 따라하고 있었다.

이를 보고 나만이 아니라, 황 사장 또한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자 나는 5층 내부로 이들을 데리고 갔다. 아니나 다를까 내 짐작은 그대로 맞아떨어졌다. 방수도 제대로 안 된 곳의 가는 실금을 타고 벽돌사이로 스며든 먹물이 벽채를 타고 일부는 뚝뚝 떨어지고, 어느 것은 계속해서 4층으로 스며들거나 창 쪽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당당히 외쳤다.

"보이십니까? 벽채를 타고 스며드는 것이?"

"글쎄, 거......... 나는 전혀 생각도 못했는데. 이쪽으로 타고 들 줄은........"

비로소 우물쭈물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황 사장이었다.

"전체는 몰라도 그 부분은 방수도 결함이 있고요. 또 조적이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도 나중에 그 부분이 갈라지기 십상입니다. 곧 조치를 해야 되겠습니다."

"이놈들을 내 당장..........! 괜히 엉뚱한 사람 잡았잖아. 미안하이."

"미안하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사장님! 여기에 우리가 들어부은 실리콘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산도 못하고 있는 외제 실리콘을?"

"그야, 공사를 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잖은가. 자네가 이해를 하고, 내 다음 공사에서 감안하지."

'다음 공사 필요 없습니다!'

라고 외치고 싶어,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삼키느라고 나는 무진장 애를 써야했다. 내가 지금은 비록 공사를 많이 맡았다지만, 원청 업자에게 최대할 아껴야할 금기어가 그 말이기 때문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내가 인사를 꾸벅하고 돌아서는데 황 사장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추천, 멘트는 물론 많은 쿠폰을 말없이 쾌척해주신 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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