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대정(大正)-- >
그러고 나서 내가 막 아침조회를 하려는데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관리과장이 바꿔주는 전화를 받으니 생각지도 못한 주택공사의 사업본부장 송 진명 씨였다.
"아니, 본부장님이 이 시간에 어쩐 일이십니까?"
"내 강 사장이 매일 이 시간이면 출근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긴말 할 것 없고, 나 좀 봅시다."
"지금요?"
"네, 지금 바로."
"혹시 무슨 일 때문에........?"
"손해될 일은 아니니, 안심하고 오시죠."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지금 바로 출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차도 안마시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본부장님! 즉각 달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총알 같
이."
"너무 과속하지는 마시오."
"네, 네!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그럽시다!"
나는 전화를 끊고
'무슨 일이지?'
생각하며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손해 볼 일은 아니라니, 달려 가보자!'
나는 편안하게 마음먹고 바로 차가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나는 복도를 총총 걸음으로 걸었다.
나는 곧 사업본부장 실에 노크를 하고 밀고 들어갔다.
"오서 오시오. 강 사장! 오래간만이오."
반갑게 손을 내미는 송 진명 사업본부장이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나는 그의 손을 맞잡으며 인사를 건네고, 그의 손에 이끌려 소파에 마주앉았다.
"정말 빨리 오긴 왔군."
"날아왔습니다."
"하하하.......! 그런 것 같소."
웃음을 그친 송 본부장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니래도 근일 간에 한 번 부르려고 했소."
내가 말없이 입만 주시하고 있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잠실주공아파트 견적도 받아야 되는데, 그 보다 더 급한 일이 터졌소?"
내가 계속 그의 입만 주시하고 있자. 그의 말이 이어졌다.
"대전 가양주공아파트에 문제가 터졌소. 목문 업자가 야간도주를 했소."
"어찌 그런 일이.........?"
"노름에 빠져 전 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빚까지 담뿍 진 모양이오. 목문도 가능하겠소?"
"본부장님,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잠시 차에 갔다 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시오."
나는 뛰듯이 해서 뒤 트렁크에 있던 목 무늬 하이새시 샘플을 가지고 다시 실내로 들어갔다.
"그게 뭐요?"
"하이새시인데, 금번에 새로 개발된 제품입니다. 어때요? 언뜻 보기에는 목문같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럴 듯하오."
"목문에 비해 보온, 보냉, 방음효과가 아주 뛰어납니다."
"단가는?"
"아마 비슷할 겁니다. 아니 오히려 조금은 쌀지도?"
"그렇다면 바로 견적을 한 번 내주시오."
"몇 세대입니까?"
"많지는 않소. 하지만 이번 건이 잘 된다면, 주공아파트에서만은 목문이 사라질 수도......"
본부장의 묘한 여운을 남기는 말에 나는 불끈 힘이 치솟는 것을 느끼고 말했다.
"그래도 세대수는 알아야........"
"5층짜리 9개동으로 474세대요. 내 도면을 드릴 테니, 그 문제는 걱정 말고. 바로 시공은 가능한 것이죠?"
"저희 회사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고맙소. 그럼 부탁하오. 도면 가지고 가시고."
자신의 집무실 책상으로 향하던 그가 우뚝 서서 말했다.
"헌데 뚱딴지 같이 이제 와서 개업식은 또 뭐요?"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정식 오픈을 하는 것이죠."
"진작 할 것이지. 아무래도 세 부담이 만만치 않을 것인데.........."
"아무래도 외적 성장에만 너무 치중을 하다 보니, 내부의 질적인 문제는 너무 등한히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내 오는 토요일은 만사를 젖혀놓더라도 갈 테니, 그때 한 잔 합시다."
"잠실주공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곳은 물량이 어마어마하지. 총 364동, 1만9180가구요. 인구 10만 명의 거대한 주택단지 하나가 잠실에 들어선다고 보면 되오."
"정말 굉장한 물량이군요."
"그것도 곧 발주에 들어가야 하니, 이 건부터 처리하고 바로 견적을 내시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자, 도면 여기 있소. 가지고 가서 견적 내시오."
"가져갈 것도 없습니다. 바로 여기서 내드리도록 하지요."
"거 참, 시원시원해서 좋 고만!"
곧 나는 도면을 받아 그 자리에서, 도면을 넘기며 쓱쓱 가볍게 스케치하듯 견적을 작성해 나갔다.
"세대 당 162,000원 나왔습니다."
"목문과 비슷 하구만. 15만 원에 자릅시다."
"너무 네고가 심한데........?"
"나도 생색을 좀 내야할 것 아니오?"
"생색이야 우리가 즉각 땜빵하는 것으로 내시고, 가격은 16만 원으로 해주시죠?"
"그럼, 그 중간선인 15만5천 원으로 자릅시다."
"알겠습니다. 즉각 시행하면 되지요."
"아무리 급해도 우 면호 부장하고 계약서는 작성해야지."
"그야, 물론이죠. 계약과 동시에 발주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주면 나는 더욱 좋고. 우 부장도 지금쯤은 출근했을 것이오. 내 얘기해 놓을 테니, 그 사람 방에 가서 바로 계약서 작성하는 것으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후의는 곱빼기로 갚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이 사람! 나로서는 일만 잘해주면 되오."
말이야 다 그런 것이다. 그렇다고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행하다가는, 그 업체 앞날이 뻔했다. 아무튼 나는 곧 우 부장 방으로 가서 계약을 체결하고, 바로 또 그 자리에서 하이새시 공장에 주문을 넣어버렸다. 그 다음날 아침.
내가 조회를 막 끝내고 결재서류를 처리하고 있는데 누가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관리부장 서 인석 씨였다.
"무슨 일로........"
"제가 전번에 얘기한........ 아무래도 한 사람을 더 채용해야 되겠어서요."
"마땅한 사람이 있습니까?"
"저랑 한 때 재무부에 같이 근무하던 사람으로 아주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근년에 몸이 아파 공직을 떠나게 되었다가........ 어느 정도는 몸이 완쾌되었다고 해서........"
"회사생활에는 무리가 없답니까?"
"일전에 한 번 만나보았는데, 무리만 하지 않으면 별지장이 없다고 하더군요. 병약한 천재라고나 할까요. 미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 출신입니다."
"그런 분이 어떻게........"
"제가 후배들을 탐문하던 중 그 소식을 듣고 간청을 했죠."
"그런 분이라면 백 번이라도 모셔야죠. 언제든지 모시고 오시오."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레쯤이면 주식회사로서의 전환은 마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연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언젠가 시간 내어 술이라도 한 잔 합시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아침.8시가 되자 서 부장이 어제 자신이 소개한 사람을 데리고 내 집무실로 들어왔다. 딱 보기에도 호리호리한 체형에 왠지 체질적으로 가냘픈 인상이었다. 가는 뿔테 안경이 너를 더욱 병약하면서도 샤프하게 보였다.
"이리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소파로 인도했다.
"사장님, 어제 제가 소개한 사람입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강 대정입니다."
"네, 김 경제라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손을 가볍게 맞잡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
겸연쩍은 웃음을 흘리며 손을 놓는 김 경제(金 經濟)였다.
"이름부터가 경제에는 능하게 생기셨습니다."
"하하하........!"
"아니래도 경제계획원에 근무했더랬습니다."
서 부장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그래요?"
"대통령 경제특보로 발령이 났는데 그만........."
계속 이어지는 서 부장의 말에 나는 왠지 횡재를 한 느낌에, 얼른 차라도 한 잔하고 싶어, 경리에게 차 주문을 했다. 그러고 나서 내가 물었다.
"직책은 뭘로 드리면 좋을까요?"
"원래부터가 기획에 능하니 장차 회사의 밑그림을 그린다던지 크게 놀게 해야죠."
본인은 가만히 있고 서 부장과 내가 북 치고 장구치고 다 하고 있었다.
"흐흠.........! 기획부장으로 합시다. 서 부장님이야 곧 이사가 되실 것이니........"
"어떻습니까?"
나는 김 경제 박사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직책이야 뭐든지 상관이 없습니다만 높은 자리를 주신다니 고맙기는 합니다."
"하하하.........!"
그의 가벼운 조크에 우리는 유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동안 고 양이 차를 내와 우리는 차를 들며 환담을 이어나갔다.
"우리 회사가 대 그룹이 되려는지 인재들이 자꾸 모여드니, 저로서는 아주 흡족하다 못해,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입니다."
"인재들이 모여들어도 요소요소에 사람을 잘 써야만 회사가 발전할 것입니다."
서 부장의 일침에 뜨끔했지만 나는 더욱 즐겁다는 표정을 연출하며 말했다.
"그야 이를 말씀입니까.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해야만 그 회사가 흥하는 것은 당연하죠. 아무튼 두 분을 모시니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입니다.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저절로 으쓱으쓱해집니다. 하하하.........!"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겸양하는 김 경제 박사를 지긋이 바라보던 내가 말했다.
"항상 건강에 유념하셔서 우리 이 대정을 어느 기업 못지않은 대기업으로 키워봅시다."
"감사합니다!"
그러고 나는 새삼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일일이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나는 가벼운 농담을 했다.
"이러다가 매일 책상 하나씩 들어오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하하.........!"
우리는 이렇게 유쾌한 첫 만남을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