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생과 와이프-- >
이날 저녁.
나는 미정과 마주 앉아 있었다.
그동안 수빈도 몸이 완쾌되어 오늘 방을 얻어나갔기 때문에 모처럼 단 둘만 있는 기회였다.
둘은 오늘 오전에 내가 지시한 대로 경리과에서 내가 미리 사인해 준 돈을 찾아갔다.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었다. 방 한 칸을 사글세가 아닌 전세로 얻을 수 있는 금액이었다. 이를 알고 수빈이 많이 사양했다는 말을, 방금 전 나는 미정으로부터 들을 수 있었다.
아무튼 나는 오늘 모처럼 집에 아무도 없자 큰소리를 내었다.
"내가 돈은 내주었지만, 애초에 기분이 되게 나빴소. 돈이 문제가 아니라, 당신의 태도 때문이오. 남을 집안으로 끌어들이는 문제를 어찌 나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진행할 수 있단 말이오."
내가 정색을 하고 말하자 할 말이 없는 미정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이 친해지고 정이 들수록 기본 예의를 지켜야 하는 법이오. 다툼이 왜 생기는지 아오? 이런 기본을 무시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오. 그동안 나와 정도 많이 들었고 이제 애까지 낳았다고, 나와 처음 만나 살림하던 때의 초심을 잃어버린 것 같소. 경고하는데,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시오."
결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느 때보다도 엄숙한 내 태도와 준열한 내 말에, 찍 소리도 못하고 계속해서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미정이었다. 그런 미정의 눈물이 거실 바닥으로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보고 평소 같았으면 달래주었겠지만 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혼을 내키고 바로 달래면 그 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나는 냉정하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던 것이다. 내가 들으니 한참을 훌쩍이던 미정이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 앞에 무릎을 척 꿇었다. 그리고 말했다.
"잘못했어요. 여보!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알았소. 이리 올라오시오."
내 말에 미정이 조용히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있는 내게로 걸어왔다.
나는 미정을 말없이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한참을 그렀게 하고 있던 내가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다시는 그러기 없기?"
"네, 여보!"
"피곤한데 일찍 잡시다."
"네, 여보!"
조신하게 대답하고 옷장으로 가서 얇은 이불을 꺼내오는 미정이었다.
월요일 오전 7시 30분.
나는 전 간부들이 모인 가운데 오늘 첫 출근한 서 인석 씨를 소개했다. 장 영조 금형 차장은 근무하던 곳에 사람을 충원할 기회를 주기위해, 한 달 후부터 근무하기로 해서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
"새롭게 관리부장님을 모신 서 인석 씨입니다. 변리사이시며, 주일, 주미 재무관으로 봉직하셨던 경험이 계신 분으로서, 제가 삼고초려를 해 어렵게 모신 분입니다. 사무실 내의 전반적인 사항을 주관할 것이니, 그렇게 알고 서로들 인사 나누세요."
나의 말에 따라 앉은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차례로 서 부장과 인사를 나누었다.
"서 인석입니다."
"철물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차장 최 재의입니다. 반갑습니다."
"동감입니다."
이렇게 서로 상견례를 하는 데만도 자그마치 5분이 걸렸다. 서로의 인사가 끝나자, 내가 서 부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말씀 하시죠."
"네, 사장님!"
"함께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제가 토요일 날 처음으로 잠깐 사장님을 뵈었지만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걸 느꼈습니다. 사장님을 중심으로 모두 함께 똘똘 뭉친다면 우리에게는 난관이라는 말조차 없을 것입니다. 앞으로 말보다는 행동을 앞세우고, 늦게 새로 시작하는 인생,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많은 지도편달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바람잡이 채 과장의 말에 따라 일제히 박수로 그의 입사를 환영하는 전 간부들이었다.
"고맙습니다."
정중히 고개 숙여 답례하는 서 부장이었다. 잠시 후 좌중이 조용해지자, 내가 입을 열었다.
"이번 주 토요일 날, 청주 팀은 물론 내가 아는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정식 공장 오픈식을 거행할까 합니다. 또 오후에는 우리 땅 공터에서 직원들만의 단합대회 겸 체육대회를 열까 합니다. 이를 미리 공지하는 바이니,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부인들과 자녀들도 대동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와아.........!
먹고 마시는 일이라니 누구라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하며 함성을 질렀다.
"끝으로 오늘은 전 직원 조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가시면 사무실 앞 공터에 부서원들을 집합시키시기 바랍니다. 그럼, 하실 말씀이 있는 분은 하도록 하세요."
"체육대회는 오후부터 하는 겁니까?"
최 차장의 질문에 내가 답변했다.
"오후 1시로 예정하고 있습니다."
"다른 질문 없습니까? 없으면 해산합시다."
나의 말에 따라 모두 뿔뿔이 흩어지는데, 무역파트의 조 부장과 최 부장만이 안가고 자리에 남아 있었다.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네, 사장님!"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 부장이 말했다.
"전 품목 구매는 물론 용선(傭船)까지 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헌데 한 분은 현지까지 직접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우선 부장의 답변에 내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제가 볼 때, 성격이나 여러모로 보아 최 부장이 현지로 가시고, 조 부장님은 여기에 남아 다른 일을 처리하는 게 낫겠습니다. 두 분의 의향은 어떻습니까?"
"아니래도 저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됐군요. 출항일은 언제 입니까?"
"내일 모레입니다."
"그럼, 최 부장님은 체육대회에 참석을 못 하시겠군요."
"제가 이래보여도 스트라이커인데 좀 아쉽습니다. 하하하.........!"
"다음에 멋진 솜씨 한 번 보여주시도록 하시고, 현지에 가시면 다음 오더를 따는 데도 게을리 하지 마세요."
"실제는 그것 때문에 가는 것 아닙니까? 안면도 틀 겸."
"아무튼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더 하실 말씀 계신가요?"
"아닙니다."
"그럼, 일어납시다. 오늘은 전체 조회를 한 번 하렵니다."
"알겠습니다."
셋은 모두 자리에 일어났다.
아침 8시.
시간이 되어 나는 관리부장의 안내를 받으며 사무실을 나섰다. 나는 곧 조악한 연단에 올라 아무 말 없이 사방을 둘러보았다. 부서별로 집합을 했는데 인원이 이제 상당히 많았다. 식당아줌마와 기사들까지 치니 서울직원만 71명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식당아줌마와 연구원들은 열외를 시켰다. 그러나 여 선배만은 대표로 참석을 시켰다. 내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전체 조회를 개최하게 된 것은 새로운 식구가 많이 늘어 상견례를 함이 그 첫째 목적이고, 두 번째는 이미 전 간부들을 통해 공지한 대로 돌아오는 이번 주 토요일 날, 오전에는 공장 오픈식을 거행하고, 오후에는 체육대회를 개최하겠다는 소식을 다시 한 번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특히 가족들을 동반하도록 하세요. 내 말은 여기서 마치고 지금부터 오늘 새로 입사한 분들의 인사가 있겠습니다."
"먼저 관리부장님 앞으로 나오세요."
나의 소개에 서 부장이 나와, 전 직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말했다.
"서 인석입니다. 앞으로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음은 방화문 공장 공장장이자 차장 김용환 씨 나오세요. 현 재무부 장관님과 이름이 같으니, 기억하시기는 좋을 겁니다."
하하하........!
나의 조크에 전 직원들이 웃음을 지었다.
"방화문 공장을 맡은 차장 김 용환 입니다. 열과 성을 다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 차장이 인사를 꾸벅하고 들어가자 나는 다음 사람을 소개했다.
"다음은 하이새시 김영욱 과장 나오세요. 그런데 오늘은 소개를 하다 보니, 김 씨네 모 자리 판 같습니다."
하하하.........!
나의 가벼운 농담에도 무엇이 즐거운지 함박웃음을 짓는 직원들이었다.
"방금 사장님으로부터 소개받은 김영욱입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쁘게 봐주십시오."
"여자나 같아야 말이지.........!"
누가 열중에서 농담을 하자, 왁자하니 또 한바탕의 웃음보가 터졌다.
"다음은 각자 나와서 차례로 자신의 직책과 성함 그리고 소감 한 말씀만 하고 들어가십시오."
나의 말에 따라 토요일 날 뽑은 방화문과 새시 과원들 이외에, 스텐과 철재 류 판매요원들까지 차례로 나와 자신을 소개하고 들어갔다. 그러자 제법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모든 사람의 소개가 끝나자 끝으로 내가 한마디 했다.
"지금까지 모두 자신의 맡은 직분에 충실히 잘 해줬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해주시고, 또한 결과를 기대해 주십시오. 어찌됐든 일단 파이를 크게 키워봅시다. 그러고 나서 갈라먹든 찢어먹든 해봅시다. 나는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더욱 이 화사를 번창시켜 줄 것을. 이상입니다."
"박수!"
최 차장의 선동에 의해 한동안 박수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이어 나는 곧장 사무실로 들어가 청주로 전화를 걸었다.
"청주에서 근무하는 조건으로 새로 뽑은 하이새시 직원 6명 있는데, 전원 출근했던 가요?"
"네, 사장님!"
"이번 주 토요일 날 9시에 서울에서 공장 개업식 및 오후 1시부터는 체육대회를 열 예정입니다. 그러니까 버스 한 대 대절해서 8시 40분까지는 모두 도착하는 것으로 하세요. 특히 사족들 동반하는 것 잊지마시고요."
"네, 사장님! 잘 알겠습니다."
"다른 특별한 사항은 없나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네, 들어가십시오. 사장님!"
"네, 네!"
전화를 끊고 나니 오늘 또 학교는 지각이라는 생각이 내 머리에 퍼뜩 떠올랐다. 이왕 늦은 것 나는 내부 사무실 직원만 별도로 모았다.
이 자리에는 기사는 물론 식당아줌마까지 참석하도록 했다.
나는 한 자리에 모인 면면들을 살펴보았다.
관리부장 밑으로 관리과장 그리고 경리가 2명, 여기에 베란다 새시 영업을 하는 아가씨들이 2명, 각종 운전기사가 4명, 식당아줌마까지, 사무실 내부 직원만 총 11명 이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이들에게 관리부장 서 인석 씨를 소개시켜 주고,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시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나는 서 부장만을 별로도 사장실로 불러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주었다.
첫째: 우리가 새롭게 개발한 방화문 및 스텐 난간에 대한 실용신안 특허를 제일 먼저 처리할 것.
두 번째: 회사 전부를 '(주)대정' 이라는 이름하에 통합시켜 주식회사로 전환할 것.
세 번째: 워크맨을 한국은 물론 세계 유수의 선진국에 모두 특허출원 할 것.
위의 사항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혼자 힘들다면 밑으로 한 두 사람을 더 써도 좋다는 말까지 했다. 이에 서 부장은 아무래도 한 사람 정도는 자신을 뒷받침할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에 대한 것은 전권을 줄 테니 알아서 영입하라고 했다. 이에 아주 좋아하는 서 부장이었다. 이어 나는 늦은 김에 내가 알고 있는 면면들에게 모두 전화를 한 통화씩 했다.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람은 메모를 부탁했다.
한국일보의 장장재 사장은 물론 한국일보 내의 주요간부, 그리고 주택공사의 송건 사장을 필두로 한 송진명 사업본부장 외에 2명, 또 대우의 홍성부 이사, 럭키의 성재갑 사장 이하 조 전무 그리고 개발의 권 사장. 이 외에도 페인트 사장 소병기, 여타 청주의 지인들 마지막으로 학교 내의 전공과목 교수들도 초청할 예정이었다. 이렇게 전화를 걸다보니 나는 오전 2시간 강의는 참석을 못했다.
'아이고, 이래서야 제대로 졸업이나 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업이 나는 더 중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