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11화 (111/322)

< --전생과 와이프-- >

잠시 후 웃음을 삼킨 나는 수빈의 상태를 보기위해 침대로 다가갔다. 그녀는 눈을 꼭 감고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나는 물끄러미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큰 수술 후 굶고 그래서 인지 더욱 초취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예쁘기는 예뻤다. 나의 시선을 느끼는지 그녀가 살짝 홍조 띤 얼굴로 돌아누웠다.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 내가 물었다.

"마취는 풀렸습니까?"

"네."

작은 소리로 대답하는 수빈이었다. 마취 문제를 거론하다 보니 전생에서 그녀와의 얽힌 일화가 갑자기 내 머리에 떠올랐다.

나도 젊었을 때 이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다른 일이 아니고 정관 복원수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이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나는 딸만 내리 둘을 낳고 예비군 훈련 가서 정관 수술을 받았다. 물론 아내와 아무런 의논도 없는 상태에서였다. 평소 나의 생각은 딸 둘만 있

어도 족하다. 괜히 많이 나아 가르치느라고 고생할 것 없다. 이런 생각을 나는 평소에도 늘 품고 있다가, 그날 결행을 했던 것이다.

그리고 전생에서는 지금과 환경이 틀렸던 것이 막내 남동생이 있어서, 나는 부모님들도 반대를 덜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정관수술을 하고 나니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아니라 수빈에게서였다.

특히 고루하셨던 할머니가 아예 집에 수빈의 발걸음을 금지시켰던 것이다. 조상을 모실 대를 끊어놨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여기에 어머니마저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수빈을 냉대하는 것이었다. 참다못한 수빈에 하루는 내게 제안을 했다. 서울에 한 번 놀러가자는 것이었다.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네 막내이모가 서울에 사는데, 결혼하고 한 번도 안 찾아뵈었으니, 이번 기회에 한 반 찾아뵙자는 것이었다. 딱히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그녀와 단둘이 서울 이모 댁을 찾아뵈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막상 청주로 내려가려고 강남터미널에 도착하니, 문제가 발생했다. 나보고 복원수술을 하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정관수술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그리고 얘 하나 더 낳으면 교육비가 또 억대로 뛰어오른다며 오히려 내가 수빈을 설득하려 들었다. 말로 안 되자 갑자기 수빈이 터미널 그 많은 승객들 앞임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무릎을 척 꿇는 것이었다.

이 번 한 번만 평생소원이니 자신의 청을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길 이미 서울대학 병원에 미리 예약까지 해놨다는 것이다. 내일이 그 날짜라는 것이었다. 참으로 답답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었다. 자존심이 유독 강했던 수빈이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끝내는 눈물까지 철철 흘리며 애원하는 데는 내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할 수없이 나는 허락을 하고 그녀를 일으켜 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내일 예약일이면 이제 청주로 내려갈 필요가 없어졌다. 괜히 번거롭게 내려갔다 올라갔다 하는 것보다는 서울에서 하루를 더 묶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처이모 댁을 다시 가는 것도 면구스러운 일이라, 나는 외사촌 누나를 생각하고 왕십리로 향했다.

그날 밤 늦게 어머니까지 이제는 외사촌 누나들의 집에 합류를 했다. 나만 모르고 식구들이 다 한통속이 되어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일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제 와서 말하기도 뭣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튿날 서울대학 병원으로 향했다. 간단한 검사를 시행하더니 나는 바로 수술대 위에 눕혀졌다. 곧 내가 수술실로 향하고, 두 사람은 밖에 남게 되었다. 하반신 마취가 진행되었다. 이어 샅의 털을 전면 제거했다. 통증이 느껴지는지 확인을 하더니 곧 수술이 시행되었다.

하반신만 마취가 되었기 때문에 정신은 온전해 내 밑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는 않지만 대충 짐작이 되었다. 수술이 진행되는데 통증은 못 느끼지만, 마치 내 힘줄의 하나를 내부로부터 끄집어내는 듯한,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을 갖게 했다. 이때는 정관 수술 시행 시, 모두 이 아기씨가 외부로 나오는 통로인 이 정관을 모두 잘라내었다. 가족계획 초기에는 이것을 자르지 않고 그냥 내부에 묶어 놓기만 했었다. 그러고 나니 무슨 일이 종종 발생했는가 하면, 이것이 어쩌다가 풀어져 부인이 임신을 하는 일이 전국적으로 혹간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되니 이게 사회문제화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남편은 정관수술을 해서 이미 씨 없는 수박이 되었는데, 부인이 홀연히 임신을 했으니, 이게 바람피웠다는 소리 밖에 더 되겠는가? 이것이 법적 다툼이 되는 과정에서 정밀하게 조사를 하다 보니, 이 사실이 드러나 이후에는 아예 절단을 해, 복원수술을 하기 전에는 결코 임신이 안 되게, 정관을 절단해 버렸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해서 내가 수술을 마치고 병실로 이송되어 누워있는데, 이것이 참으로 죽을 맛이었다. 나는 으레 어머니와 마누라가 곧 나타나려 했더니 그게 아니었다. 마취는 금방 풀리지 않아, 몸을 좀 움직이고 싶은데 하반신이 마비되어 있어, 나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손이야 꼼지락 거려지고 말도 할 수 있었지만, 허리 이하가 마비가 되니 거동불능의 상태였다. 생애 처음으로 하반신 마비가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튼 돌아눕고 싶어도 돌아누울 수도 없고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나중에 짜증이 와락 솟구쳤다. 그래도 두 여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이후 3시간 후에나 나타나는데 얼마나 분통이 터지던지, 오자마자 벽력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어디 갔다 왔어?'

두 여인의 대답이 나를 더욱 열 받게 했다.

수술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왕십리 누나네 집에 놀러갔다 오는 길이라나 뭐라나. 너무 화가 나니 오히려 욕설이 아니라 말도 안 나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기가 막히기도 했다. 내가 이 생각 끝에 고개를 돌려 픽픽거리고 있자니, 이상함을 느낀 듯 나를 돌아보는 수빈이었지만, 내 머리에는 후일담만이 떠오르고 있었다.

퇴원하는 날.

원무과에서 계산을 마치고 나니, 3개월 후에 접수가 되었다고 다시 오라는 것이었다. 이후 나는 3개월 그 날짜에, 정확히 담당교수의 특진을 받았다. 별 것 없었다. 몸의 이상은 느끼는 곳은 없는지 묻더니 검사를 하자는 것이었다. 나는 의사의 지시에 따라 해당 간호원에 갔더니, 작은 대롱(시험관)을 내주며 이곳에 바로 정액을 받아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내심 어이가 없어 받아든 대롱을 바라보다가, 간호원 아가씨에게 말했다.

'그냥 뭐가 되겠어요? 도색잡지라도 하나 내주세요.'

아가씨 왈.

'우리는 그 딴 것 없어요!'

얼굴을 붉히며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냥 화장실에 가서 딸을 쳐서 받아오라는 것인데, 나도 유부남으로서 그러기는 정말 싫었다. 그래서 내가 소리쳤다.

'나도 그 짓은 할 수 없으니, 나중에 봅시다. 만약 아내가 임신을 하면 성공한 것이고, 아니면 실패한 것이니. 그때 다시 한 번 올라오리라!'

그러고 나도 멍청하기는. 그 대롱은 또 왜 품에 넣어가지고 내려오느냐 말이다. 검사도 안 할 것, 그냥 아가씨 주고 내려오면 되는 것을. 아무튼 이후 3개 월 후에 아내가 임신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아들을 낳기 위해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그것이 미정에게 들려준 이야기고, 또 임신 후에도 초기에 아들인지 아닌지 확인을 하기 위해 초음파검사를 받으려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이때 만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많이 남아있을 때라, 검사 후 딸이면 조기에 낙태수술을 받는 가정이 비일비재 했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이를 법으로 엄격히 규제를 했다.

즉 의사에게 과한 벌금을 물리는 것은 초범에 한 한 것이고, 이후에도 계속 범법 행위가 자행 될 때는 의사 면허까지 취소할 수 있는 강력한 법 시행 때문에, 우리는 초음파 검사를 받을 수는 있었지만, 아들 유무는 의사 어느 누구도 함구하고 가르쳐주지 않았다. 아무튼 이렇게 포기 상태에서 난 게 다행히 아들이라 더 이상의 자식은 낳지 않았다. 그럼 또 내가 정관수술을 했느냐고? 이번에는 아내가 임신중절 수술을 받았다. 나는 그때까지 벌써 세 번 칼을 댔더니, 이제 진절머리가 났다. 군대에서의 포경 수술까지 딱 세 번이었다. 이때 미경이 돌아왔으므로 나는 생각을 접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일요일 하루 종일 견적에 매달려 세 건을 모두 내었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 아침 일찍 사무실에 출근해 관리과장을 시켜 기 견적을 각 곳에 제출하도록 했다. 나는 곧 연구동으로 향했다. 일요일 밤 혼자 자면서 생각한 바가 있어, 그것을 시행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연구동의 여진원 선배의 명패 앞에 도착해 노크를 해도 안에서 대답이 없었다. 도어 록을 살짝 비틀어보니 그냥 열렸다. 연구실에는 책상은 물론 작은 다이, 각종 계측기 외에도, 간이침대도 있어 잠을 잘 수도 있게 되어 있었다.

그는 지금 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취해 있었다. 내가 몇 번을 깨워도 일어나지 않더니, 돌아누우며 말했다.

"야, 제발 잠 좀 자자. 잔지 얼마 안됐다는 말이다."

아무래도 같은 연구원들이 장난을 치는 줄 아는 모양이었다.

"선배님! 접니다. 잠시만 일어나세요."

"엉? 강 사장!"

"네, 선배님!"

"그럼, 일어나야지."

부스스 일어나 앉아 연신 길게 선하품만 하는 여진원이었다.

"정신이 좀 들게. 세수 좀 하고 오시죠?"

"그럴까?"

슬리퍼를 질질 끌고 공동 세면장으로 향하는 여 선배였다. 잠시 후, 그가 좀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무슨 일인데?"

"사람 수배하는 일은 어떻게 되었어요?"

"그게, 글쎄 잘 안되네."

미안한지만 뒷머리를 긁적이는 여 선배였다. 내가 볼 때는 연구에 미쳐서, 전혀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본연의 임무가 아니라서 뭐라고 책하기에도 뭐해, 내가 말했다.

"내버려 두세요. 광고를 낼 테니까요."

"그럴 래? 다른 일은 없고?"

"카세트를 초소형으로 만드는 일은 그만 중지하세요. 그만한 크기면 됐습니다. 그 카세트에 녹음기능, 라디오 기능을 추가해주세요. 하고 이어폰 연구는 계속해 주시고요."

"그런 명이라면 따라야지. 사업적 판단은 엄연히 사장의 몫이니까, 전격 수용합니다."

모처럼 밝은 목소리를 낸 여 선배에게 내가 물었다.

"지금도 저는 의문이 있어요. 어떻게 되었든 초소형 카세트에 맞는 부품이 있었기에, 그 작업이 가능했을 것 아닙니까? 그 작은 부품들은 어떻게 조달하신 거예요?"

"그야, 다양한 방법을 썼지. 삼성전자의 개발팀장, 금성사의 구매과장이 모두 찬구거나 우리 동문이야. 그래서 그 놈들에게 부탁해 그 하청에 부품을 만들게 하던지, 어느 것은 시계를 만드는 동양정밀의 금형 과장에게 부탁하기도 했지. 연구비라는 게 별 것 없어. 대부분이 이런데 들어가는 돈이야."

"삼성전자와 금성사의 친구들을 우리 회사로 부를 수는 없을 까요?"

"아마 불가능 할 거야. 그네들은 돈을 밝히는 족속들이라. 우리 같은 멍청한 숙매들과는 달라."

"돈은 그 이상 주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힘들 걸. 아무래도 사회적 체면이 있는 것 아니야? 나 어디 대기업 다니는데 하는 것과, 이름도 없는 중소업체에 다닌다는 것과는 어깨에 들어가는 힘이 틀리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너무 실망하지 마. 동양정밀 과장 정도는 어쩌면 가능 할 것도 같아."

"그 사람을 우리 연구실로 한 번 초대를 하지요."

"알겠어. 이번에는 내가 꼭 시행하지."

무심코 하는 말에 자신이 전혀 움직이지 않아다는 것을 토설하는 여 선배였다. 아니 우리 대정전자의 수석연구원 나리셨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즐거운 주말 되세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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