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10화 (110/322)

< --전생과 와이프-- >

"젠장!"

내 입에서 욕설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시내로 나오자 차가 많이 막혔다. 한창 퇴근시간 무렵에 딱 걸린 것이다. 차를 들고 뛸 수도 없고 나는 초조한 마음에 자꾸 시계만 들여다보게 되었다. 지금 이 속도로 소통이 되면 가까스로 도착을 하거나 약간 늦을 것 같았다. 나는 초조한 마음에 운전 중에는 거의 안 피우는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시가 잭으로 불을 붙인 후, 재떨이를 꺼내놓았다.

그리고 창문을 조금 열어놓았다.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았다. 뱉었다. 연기가 차장 밖으로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이렇게 초조한 시간을 보내며 럭키개발 사장실에 도착하니 정확히 1시였다. 비서도 퇴근을 했는지 없었다. 똑똑 노크를 하니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시계처럼 정확하네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풍채가 당당한 사람이 뱉는 첫마디였다. 변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지는 않았어요. 너무 정확해서 탈이지."

'젠장, 너무 여유를 부렸나?'

나는 내심 생각하며 상대를 정시(正視)했다.

네모반듯한 얼굴에 스포츠머리까지 풍채가 당당하다 못해 위압감을 느끼는 생김생김이었다. 덩치도 걸맞게 당당했다. 40대 후반으로 한마디로 포스를 풍생김생김이었다. 덩치도 걸맞게 당당했다. 40대 후반으로 한마디로 포스를 풍기는 타입이었다.

"인사 올리겠습니다. 대정의 강 대정입니다."

"나 권 형종이오."

나이 어린 사람이 먼저 손을 내미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서 미리 준비한 명함만 내밀었더니, 권 사장이 손을 내밀며 자신의 소개를 했다. 으레 높은 놈들이 그렀듯 내 명함만 받고는 자신의 명함은 주지 않았다.

"그래, 우리 하청 일을 하고 싶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기존의 업체 때문에 곤란합니다만?"

'아, 씨발! 조 전무는 이게 잘 말해준거야! 아니면 이 자식이 너무 건방을 떠는 거야!'

초장부터 너무 딱딱거리니 나도 모르게 내심에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서 나도 좀 삐딱하게 나갔다.

'너희들 일 안 하면 그만이지, 내가 너에게 굽힐 게 뭐냐! 단지 나이가 나보다 좀 많다는 건데, 그것도 내 전생의 나이까지 감안하면 너는 정말 새 발의 피다!'

내심 이렇게 생각하니 두려운 것이 없었다.

"그럼, 전화 한 통화로 끝날 일을 뭐 하러 예까지 부르셨습니까?"

"내가 먼저 불렀소? 당신이 먼저 조 전무에게 청을 넣었고, 나와의 통화건만 해도 그렇잖소. 시간을 내달라고 간청한 사람은 당신 아니오?"

할 말 무였다.

"맞습니다. 저도 사장님 입장이 그렇다면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단지 제가 가기고 온 것만 잠시 봐주십시오. 그러면 더 이상의 청도 하지 않겠습니다.

자신 있게 말한 나는 곧 서류가방에서 앨범을 꺼내 탁자 위에 펼쳐놓았다. 그리고 첫 장을 펼쳐놓고 그가 잘 볼 수 있도록 앨범의 방향을 돌려놓았다.

"이 사진은 방화문 아니오?"

"그렇습니다."

"뭔가 좀 다양한 것 같은데.........?"

그렇게 말하며 한 장 한 장 넘기는 그의 손이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좀 더 자세히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러더니 끝내는 감탄의 표정이 역력히 떠올랐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었다.

"방화문도 이렇게 다양할 수가 있는 거구료.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흐흠........! 이것이 어디서 난 거요?"

"저희들이 직접 그렇게 생산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의외라는 듯 눈을 치뜨는 권 사장이었다.

"흐흠........! 그렇다라.........!"

생각에 잠기는 권 사장이었다.

때는 이 때라 판단한 내가 굳히기 작전에 들어갔다.

"뒷장을 좀 더 넘겨보시면, 계단난간도 좀 더 다양한 형태를 만나 보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알루미늄 새시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저희들이 금번에 청주에 시공한 사진인데, 커튼월이라고 외관을 아주 미려하게 꾸며줍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좀 더 볼까요?"

천천히 사진을 넘겨보던 그가 끝에 가서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실로 거울로 벽채를 도배한 듯 정말 장관이군요."

"이거 거울로 시공한 것 맞죠?"

"알반 거울이 아닌 반사유리라고 일본에서 수입한 제품입니다. 쉽게 말해 일반유리에 한 겹 코팅을 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흐흠.........! 오늘 강 사장을 만나 한 수 배웁니다. 좋습니다. 일단 작은 공사부터 추진해 봅시다. 역전빌딩부터 견적을 내보세요."

"어디에 잣는 것입니까?"

"바로 서울역 앞으로 17층이니 제법 물량이 될 거요."

"그게 작은 것입니까?"

"하하하.........! 내 딴에는."

"창호, 철물, 유리까지 주십시오."

"처음부터 너무 과한 것 아니오?"

"일단 한 번 맡겨보십시오. 실망은 않으실 겁니다. 지금 저희들이 시공하고 있는 것으로는 반포주공 2,3단지 외에도, 대우개발에서 짓고 있는 대우빌딩은 물론 힐튼호텔과 교보빌딩도 견적을 내고 있습니다."

"홍 이사가 꽤 까다로운 인물인데 신임을 얻은 모양이오?"

"잘 아십니까?"

"그럭저럭."

더 이상 내색을 안 하나 상당한 친분이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당연히 럭키 공장 내의 창호와 철물도 해야겠죠?"

"건물 전체를 가지고 싸운 것인데, 그런 정도는 기본으로 주셔야죠."

"알겠소. 그곳도 유리 포함해서 드릴 테니, 잘 해보시오."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권 사장에게 내가 물었다.

"사장님 오늘 바쁘십니까?"

"내 오늘은 선약이 있어요. 다음에 한 잔 합시다. 한가하거든."

"네! 오늘은 제 기대이상이었습니다."

"당신의 PR능력이 뛰어났던 덕분이오."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권 사장이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있던 작은 도면 한 부를 내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도면이나 가져가시오."

"빠른 시간 내에 뽑아 오도록 하겠습니다."

말없이 웃으며 손짓으로 나를 보내는 권 사장이었다. 이것이 럭키개발과의 첫 인연이었다. 이후 럭키개발은 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주택사업 즉 아파트 사업에 뛰어들기 시작해, '자이(Xi)'라는 명품 아파트 브랜드로 아파트 시장을 선도하게 되는데, 우리가 그 일익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창호, 철물, 유리 부분에서.

상호 또한 럭키개발에서 LG건설, GS건설로 계속 바뀌게 되는데, 우리는 그 변천사에 아랑곳없이 유일하게 전문건설업체로서는 끝까지 살아남았다.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어 기분 좋은 미소로 차에 오르는데 비로소 배에서,

'나 비었어요!'

하는 신호음이 계속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지금까지 커피 한 잔 외에는 먹은 것이 없었다. 새벽부터 최수빈 때문에 긴장을 했고, 그 긴장은 럭키개발 사장을 만나는 순간까지 지속되다가, 긴장이 해소되자 비로소 배고픔을 느끼는 나였다. 나는 혼자 무엇을 먹을까 하다가, 미정이도 빵 하나로는 배가 고플 것 같아, 일단 병원으로 가보기로 했다. 솔직히 애증의 변화무쌍한 감정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수빈의 상태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병실에 들어서자 둘은 서로 얼굴이 맞닿을 정도의 거리에서 서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나의 발자국 소리에 나를 발견한 미정이 수빈에게 작게 말하고 나를 맞았다.

"우리 그 이 왔어.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요."

"음........!"

건성으로 대답하고 나는 턱 끝을 치켜 올렸다. 수빈의 상태를 묻고 있는 것이다.

"많이 좋아졌어요."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같이 병실을 비워도 될까?"

나의 말에 미정이 수빈에게 작게 물어보았다.

"괜찮겠니?"

수빈이 미약하게나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인데요?"

미정에 나에게 접근하며 물었다.

"잠시 갈 데가 있어서."

점심을 함께 먹으러 가자면, 빵이라도 먹었다고 안 갈 수도 있어서, 나는 애매하게 말했다.

"얼마 안 걸리는 거죠?"

"그래."

내 대답에 미정은 수빈에게 '나 잠깐 갔다 올게' 하더니, 다시 나에게로 다가왔다.

"작업복 챙겨와야지."

"참, 내 정신 좀 봐."

작업복을 넣은 비닐쇼핑백을 들고 나를 따라나서는 미정이었었다. 내가 차도 안타고 대학병원을 벗어나자 미정이 물었다.

"어디 가시게요?"

"점심 한 그릇 먹으러."

"나는 당신이 사다 준 빵과 우유를 먹었더니, 별로 생각이 없는데........"

"나는 아직도 아무 것도 먹은 게 없어."

"아, 내 생각만 했네요. 기왕 여기까지 나온 것, 그럼 같이 가요."

살짝 미안했던지 다가와 스스럼없이 팔짱을 끼는 미정이었다. 우리는 곧 설렁탕 전문이라 쓰인 집을 발견하고 그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는 곧 자리를 잡고 설렁탕을 시켰다. 음식이 나오길 묵묵히 기다리고 있는데 미정이 말했다.

"누구도 간호할 사람이 없잖아요. 내가 계속 간호를 하려면, 아무래도 집에 한 번 다녀와야겠어요. 속옷도 그렇고."

"알아서해."

"뭔 대답이 그래요?"

"말꼬리 잡지 마."

내가 짜증스럽게 말하자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는 미정이었다. 괜히 집으로 끌어 들어가지고 며칠을 미정이 없이 지낼 생각을 하니, 와락 짜증이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었다. 한마디 뱉은 게 미정을 삐치게 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나도 말할 기분도 아니었기에, 우리는 식사 내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식사를 끝낸 우리는 곧 병원으로 향했다. 미정이 여전히 삐쳐서 팔랑팔랑 병실로 직행했다. 나도 말리지 않았다. 나는 곧 차를 몰고 병원을 떠나, 대우빌딩 신축공사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나는 그곳에서 기 시공된 방화문과 계단난간 등 여타 시공된 철물 공사 내역을 오후 내내 현장을 샅샅이 뒤져 뽑았다. 그러고 나니 서서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사실을 들릴까 하다가 그러면 아무래도 술을 마시자고 할 것 같아, 나는 그대로 차를 몰고 현장을 떠났다.

이제 일요일 내내 집구석에 처박혀 세 군데 견적을 낼 생각이었다. 나는 집으로 갈까하다가 미정이 마음속에 걸렸다. 속옷을 사다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내 머리 속에 야릇한 생각이 스쳤다. 나는 아예 이면도로로 접어들어 천천히 차를 몰며 란제리 가게나 양품점을 찾았다. 마침 큰 슈퍼 곁에 란제리 가게가 하나 눈에 띄었다. 나는 차를 주차시키고 서슴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손님!"

사십대 초반의 제법 반반하게 생긴 아주머니가 반갑게 나를 맞았다.

"뭘 사시게요? 총각!"

나는 말없이 매장 내를 휘둘러보았다.

내 눈에 번쩍 뜨이는 것이 있었다. 서구 포르노 영화에나 볼 수 있을 듯한 색색의 줄 팬티가 내 눈에 확 띄었다.

"저것, 각각 다른 색상으로 3개 아니 6개만 주세요."

미정이만 생각하다 갑자기 명희 생각이 났다. 힙이 더 발달한 명희가 입으면 더 육감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는 주저 없이 6개를 주문했다.

"어머, 이건 주로 술집여자들이 입는 건데.........."

"상관없어요. 그냥 주세요."

나의 대답에 이상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주머니였다.

"우리 애인이 요정에 나가요."

"네?"

나의 거침없는 대답에 아주머니가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아무튼 나는 멀쩡한 두 마누라를 술집 작부로 만들고, 각각 3개씩 따로 포장을 시켜, 가게를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옆의 큰 슈퍼에 들려 세면도구를 샀다. 칫솔, 치약, 비누, 샴프 등이었다. 나는 곧 차에 올라 병원으로 직행했다. 내가 5층 병실 복도에 오르자, 식사가 얼마 전에 끝났는지 음식 냄새가 진동을 했다. 냄새를 맡자 또 배가 고파왔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지도 못한 나의 출현에 미정이 반색을 했다. 언제 삐쳤었냐는 듯.

"여보, 당신이 어쩐 일이세요?"

"야!"

손을 내미는 순간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빈을 보니 그녀도 팬티는 갈아입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산 줄 팬티를 줄 수는 없지 않은가.

"뭔데요, 여보?"

아무 것도 모르는 미정이 봉지에 든 선물을 받아들었다.

"세면도구 세트하고 당신 갈아입을 속옷이야."

"우와! 역시 우리 남편이 자상하긴 자상해!"

급 칭찬 모드로 돌아서는 미정이었다. 나는 그런 미정을 한쪽 구석으로 불러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미처 생각을 못하고 당신 것만 사왔는데, 저 여자 것은 자기가 알아서 해."

내 말에 오히려 더욱 기뻐하는 미정이었다. 더욱 환해진 얼굴로 미정이 말했다.

"알았어요. 그 문제는 제가 해결 할 테니, 돈이나 좀 줘보세요."

"돈도 없어?"

"급하니 그냥 뛰쳐나왔지 뭐예요."

"그렇다고 그냥 나오면 어떻게 해. 아무리 급해도 지갑 정도는 챙겨가지고 다녀야지."

"앞으로는 그렇게 할 게요."

나는 미정의 답변을 들으며 패스보드에서 5만 원을 꺼내주며 말했다.

"이제 식사해도 될 것 아니야?"

"네, 아까 가스 배출 했어요. 죽은 돼요."

"어디 식당에 가서 맞춰. 돈 주고 끓여달라는데 안 끓여주겠어?"

"그렀네요."

"내 여기 잠시 있을 테니, 지금 맞추고 올 테야? 아예 배달을 시키라고."

"알았어요, 여보!"

봉지를 간이 보조 침대에 올려놓은 미정이 서둘렀다.

"여보, 다녀올게요."

"알았어."

나는 급히 병실을 빠져나가는 미정을 보며 그녀가 나중에 줄 팬티를 보고, 그것을 입을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을 상상하고,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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