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06화 (106/322)

< --트로이카 체제-- >

아기 엄마라고만 생각했다가 자신도 앳된 청춘이라는 것을 자각했다고 고백한 미정의 사건은, 나의 길거리 이벤트로 인해 얼마 가지 않아 무너졌다. 이제 미정은 유부녀의 딱지가 붙어 여자 외에는, 혼자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신세가 되었다. 아무튼 나는 그날 밤 처음으로 미정으로부터 펠라치오(fellatio)를 받아보았다. 그런데 처음 하는 것이 돼놔서 이빨이 수없이 부딪쳐 재미가 반감되었다. 때로는 오히려 아프기만 했다. 아무튼 5/5일의 화창한 날은 가고 6일의 새 아침이 밝아왔다. 사무실에 출근한 나는 청주의 마 부장을 독촉해, 이날 중으로 영진건설의 커튼월과 반사유리의 물량을 뽑아 전화로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또 이를 조회시간에 조동호 부장에게 지시하길, 물량이 산출되는 대로 바로 일본으로 오더를 넣도록 했다. 내가 이런 저런 지시로 조회를 끝내고 나니 대우개발의 홍성부 이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오후 5시에 방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알았다고 전화를 끊은 나는 곧 최 차장을 불러 내가 지난번에 제작해보라 한, 요(凹)

자 형 계단난간의 상황을 물어보았다. 이미 몇 차례의 시험 끝에 각주 즉 사각기둥의 크기를 달리해, 여러 개의 샘플도 제작해 놓았다는 보고를 받았다. 나는 채 선장 관리과장도 불러, 도장 보낸 샘플 방화문도 찾아다 놓도록 지시했다. 미처 안 되어 있으면 지켜서 있다가 라도, 무늬 별로 최소한 한 개씩은, 5시 전까지 방화문 공장에 갖다 놓도록 지시를 했다. 그리고 나는 등교 시간이 임박하여 곧바로 학교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시간에 맞추기 위해 마지막 수업 시간 1시간은 미처 다 채우지 못하고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왔다. 내가 사무실에 도착한지 채 10분이 되지 않아 홍 이사가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올 시간이 되어 미리 공장 정문에 미리 나가 있던 나는 곧바로 택시에서 내리는 홍 이사를 영접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사님!"

"오늘따라 이렇게 예의가 바른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

"때로 어느 날은 해가 서쪽에서 Em기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관일 테니까요."

"이런 악동을 칭찬한 내가 잘못이지. 하하하........!"

공연히 웃을 것도 없는데 과장되게 웃은 홍 이사가 여유를 주지 않고 나를 몰아붙였

다.

"차를 마시니 뭐니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자네가 자신하던 거 뭐시기냐, 그것이나 보여주시게."

"알겠습니다. 이사님! 따라오시죠."

나의 손짓에 대기하고 있던 최 차장이 뛰듯이 달려와 내가 소개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인사를 했다.

"철물 파트를 책임지고 있는 최재의 차장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홍 성부요."

최 차장의 인사에 성큼 다가간 홍 이사가 두툼한 손을 내밀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그 순간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

'저러다 손에 힘을 주면 최 차장의 손이 으스러지지 않을까?'

최 차장의 손도 결코 작은 편이 아니었지만 홍 이사의 손이 워나 크고 두텁다보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나였다. 차례차례 늘어선 공장과 공터에 진열된 각종 제품을 보고 지나던 홍 이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차려놓기는 엄청 많이 차려놨군. 도대체 몇 가지야? 한 번 세어나 보세."

"새시, 유리, 하이새시, 철재 류. 스텐 류, 저기 외따로 서 있는 동은 무엇인가?"

홍 이사의 손끝을 쫓아가니 최근에 준공된 전자와 무역 파트의 건물을 보고 말하는 것이었다.

"무역 파트입니다."

나는 공연히 전자니 뭐니 말만 흉악할까봐, 아예 그냥 무역 파트라고만 말했다.

"무역도 하나?"

"필요한 자재들을 구매하다보니 이제 문을 열었습니다. 장차는 조금 더 키워볼 생각입니다."

"나름 겸손하게 말하려 애쓰나, 내 눈에는 자네의 야망이 잡힐 듯 보이네."

'이 사람 점쟁이야 뭐야? 차라리 역술원을 하나 차리던지.'

나는 마음속으로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며 조용히 웃고 말았다.

"지금 가려는 곳이 어디 인가?"

"제가 보여드리겠다는 계단난간을 절곡해 놓은 방화문 공장입니다."

"방화문도 직접 제작한다는 말인가?"

"단가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흐흠.........! 아무튼 뭐든 하면 확실하게 하는 고만."

나는 그냥 웃어주는 것으로 답을 하고 빠른 걸음으로 내달았다.

"그 사람 성격 한 번 되게 급하군. 뭔 걸음이 그렇게 빨라."

"술 벌레가 아우성을 쳐서요."

"하하하.........! 가부간에 술은 사겠다는 말이군."

"그럼요. 모처럼 예까지 납시었는데, 제대로 안 모시면 현장에 가도 본체만체 하실 것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

웃지도 않고 제법 그럴듯하게 고개를 주억거리는 홍 이사였다.

"이곳인 모양이군."

"네!"

나는 직원들이 퇴근하고 없는 빈 공장으로 홍 이사를 모시고 들어갔다. 공장 중에서도 나는 제일 끝, 별도의 칸막이로 구성된 전시실로 홍 이사를 안내했다.

"들어가시죠."

나는 전시실의 문을 활짝 열고 홍 이사가 안으로 들기를 청했다.

말없이 성큼 내부로 들어선 홍 이사가 코를 움켜쥐었다.

"아휴, 페인트 냄새. 이것 도장한지 얼마 안 된 모양인데?"

"제가 독촉을 했더니, 채 소부도장을 거치지 않아서 그랬습니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엉? 이게 뭐야?"

잠시 여러 무늬의 방화문을 넋 놓고 바라보던 홍 이사가 연신 감탄을 말하며 말했다.

"정말! 멋지군, 멋져! 방화문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을, 이놈의 새끼들은 촌스럽게 남색 일색이 뭐야, 그래! 당장 반품시키고 이걸로 시공을 해야겠어."

홍 이사의 입에서 진정 그런 말들이 나올 만 했다. 그의 앞에 전시된 것 중에는 우리나라의 고유의 창살처럼 격자무늬가 있는가 하면, 좌 빗살무늬, 우 빗살무늬, 중앙에 실선 두 개가 내달리고 좌우로 대칭인 빗살무늬, 또 몸 자가 거꾸로 바로 겹쳐져 기이한 도형을 이루는 무늬.

개다가 여린 가지를 쭉쭉 벋치고 있는 난 그림 무늬, 한 송이 장미가 크게 그려진 무늬. 장미의 색깔도 붉은 장미, 노랑장미, 어느 것은 검정 바탕에 작게 흰 장미가 중앙에 수놓아져 있어 격조를 더한 것도 있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그냥 단순한 한 색깔로 아이보리 색상을 발포 처리해 올록볼록 질감을 살린 놈, 옅은 그레이, 완전 윤기 도는 검은 색, 격조 높은 브라운 계통, 백색은 백색이 되 우유 빛 광택이 도는 놈, 내가 보아도 정말 찬탄을 금할 수 없을 정도의 방화문들이, 줄지어 서서 한동안 홍 이사의 넋을 빼놓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홍 이사의 뒤를 따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최 차장은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는 발소리까지 죽이며 따르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듯한 홍 이사가 뱉은 것은 감탄사가 아니라, 괴상한 신음이었다.

"끙..........!"

그러고는 한동안 드높은 천정을 바라보던 홍 이사가 갑자기 시선을 내게 던지며 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 나중에 힐튼 호텔에 이 방화문을 설치해보게. 김우중 사장 성질에 왜 우리 건물은 이 좋은 것을 안 쓰고, 그딴 것을 썼느냐고 호통 치지 않겠어? 매도 미리 맞는 게 낫다고, 건의를 해야겠어. 기존 제작된 방화문 값을 물어주더라도 당장 철물 팀을 교체하자고."

나는 그의 심각한 표정에서

'진심이십니까?'

라는 말을 끝내 뱉지 못하고, 그의 거동만 지켜보게 되었다.

"여기다 소부도장인가 뭔가를 더 거치면 더 광택이 나지 않겠나?"

"맞습니다!"

"다른 것은 볼 것도 없네. 술이고 자시고 당장 달려가서.........."

"그래도 이것만은 한 번 보아주시고 가세요."

"뭔데?"

급한 마음을 잡으니 홍 이사의 음성이 퉁명스러워졌다.

"최 차장! 스텐 각주가 있는 곳으로 안내 좀 해주세요."

"네, 사장님!"

최 차장이 급히 앞장을 섰다. 격리된 또 하나의 문을 여니 그곳에는 절곡된 각종 스텐 사각기둥이 치수별로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또 어느 것은 3m 정도의 크기로 완전 난간이 만들어져, 상하 이 요(凹) 자의 모형에 그린, 브라운, 블루칼라 유리가 끼워져, 그 신비감을 더 하고 있는 것도 있었다.

"참으로 자네는 건축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군. 온통 둥근 난간 밖에는 구경할 수 없는 세태 속에, 어떻게 이런 구상이 머리에 떠오르나, 그래? 정말 연구대상은 연구 대상이야!"

"이것도 합격입니까?"

"이 사람이 지금 누굴 놀리나? 내 감탄을 듣고도 그런 말을 하는 저의가 도대체 뭐야? 뭘 더 바래?"

오히려 화를 내니 내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의 놀라운 홍 이사의 반응이었다.

"시공된 나간까지 다 뜯을 수는 없고. 이것은 힐튼 호텔에나 적용하세. 설계변경이고 나발이고 할 것도 없어. 이대로 시행하되 유리만은 색상 선택이 남았으니, 추후에 결정하기로 하세."

"고맙습니다. 이사님!"

"아니, 오히려 내가 더 고맙네! 자네를 만난 내가 더 복을 받는 느낌이야! 하하하.......! 참으로 기분이 좋군."

"김 사장님께는 내일 보고해도 늦지 않으니, 오늘은 이 길로 한 잔 하러 가시죠?"

"허허! 술꾼이 되다보니, 그 유혹에 또 마음이 약해지는데?"

"약해지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습니까? 그냥 가시면 되지."

"그럴까?"

"오늘은 요정으로 한 번 모시고 싶습니다만?"

"한 건 했다 이건가?"

"너무 노골적이지 않습니까, 이사님!"

"하하하........! 그런가? 오늘 딱 한 번만 일세."

"네, 이사님!"

이렇게 해서 우리 둘은 내 단골요정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술이 취해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해서 귀가를 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나는 이날 밤 황당하다 못해 경악할 일을 겪었다. 미정과 함께 나를 맞는 여자가 있어,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술기운이 백리는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

나의 말에 미정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그 여자는 뜨악한 표정을 짓고 서 있었다. 한동안 장내에 묘한 침묵이 지배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미정이었다.

"아는 사이 예요?"

"험, 험.........!"

나는 정말로 대답할 말이 궁했다. 그렇게 극력 피하려던 전생의 마누라가 미정의 손에 이끌려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내가 착각했어. 내가 아는 사람인 줄 알고. 죄송합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나의 사과에 전생의 와이프 최 수빈이 발그레 홍조 띤 얼굴로 사과를 받았다. 그런데 나는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또 한 번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과 같은 충격을 받았다. 몽롱하게 풀어진 눈빛이, 나에게 강한 호감을 느낀 듯했기 때문이었다.

"험, 험! 들어갑시다."

"네!"

다소곳이 대답한 미정이 나를 따라 들어오다, 최수빈을 보고 말했다.

"너는 그 방에서 자."

"그래."

미정의 말에도 움직이지 않고 내 동선을 쫓는 느낌을 받으며 나는 안방으로 쓱 들어갔다. 방안으로 돌아온 내가 상의도 벗지 않고 따라 들어온 미정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야?"

"학원에서 제일 친한 친구인데요. 우리 집에 한 번 놀러오고 싶다고 해서 데리고 왔어요. 당신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다보니 그만........."

나는 말없이 상의를 벗어 미정에게 내밀었다. 그녀가 내 상의를 받아 옷장에 걸며 말했다.

"당신, 아무래도 오늘 태도가 이상해요?"

"그런 것, 없어! 빨리 자기나 하자."

"네!"

나의 강한 부인에 다소곳이 대답하는 미정이지만 아무래도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저 친구는 어떻게 만났는데?"

"뭘 어떻게 만나요. 나보다 먼저 학원에 다니고 있더라고요. 내가 처음이다 보니 학원에 대해 잘 몰라, 이것저것 묻다보니 친하게 된 사이죠."

"어찌 됐든 앞으로는 저 여자와는 절대 친하게 지내지마. 아니 만나지도 마."

"당신 오늘따라 왜 그래요? 지난번에는 내 생일 축하해준답시고, 내 정체를 폭로해, 여자들만의 외로운 섬을 만들어 놓더니, 이제는 친구도 함부로 못 사귀게 해요?"

"내가 볼 때 저 여자는 이상하게 느낌이 좋지 않아. 뭐라고 할까? 무슨 큰일을 낼 것은 느낌이 자꾸 와."

"지금까지 당신의 말이라면 모든 걸 순종하고 살아왔지만, 친구 사귀는 것 까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싫어요."

"나도 내 말이 지나치다는 것을 알아. 하지만 이상하게 저 여자에게만큼은 거부감이 드는 게 싫네."

"거 참, 이상하네요. 나는 좋기만 하던데........."

"내 느낌이 그러니, 더 이상은 친해지지 말고,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

"알았어요."

일단 수긍하고 보는 미정이지만 마음속으로 받아들이는 느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을 굉장히 고민하는 눈치였다. 아무튼 이후 나와 미정은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나는 전전반측(輾轉反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와 얽힌 이야기며, 나의 전생 나의 과거가 또렷이 떠올라,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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