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로이카 체제-- >
나는 방안으로 들어와서도 명희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 상태에서 명희가 물었다.
"식사 안 하셨죠?"
"당근."
"무슨 말이 그래요?"
"미래에 통용될 말."
"쳇, 아는 것도 많으셔. 그러나저러나 오늘 따라 반찬도 안 사왔네."
"나는 네가 해주는 반찬은 다 맛있더라. 하다못해 된장찌개 하나를 놓고 먹어도 맛있어."
"빈말 아니죠?"
"또?"
"헤헤헤........!"
"제가 된장찌개 맛있게 끓여드릴 게요."
"그래, 그래."
곧 내 품에서 벗어나저녁을 지으러 주방으로 향하는 명희였다.
사실 아닌게아니라 명희의 음식 솜씨가 미정이보다 더 나았다. 집에서 살림을 도맡아 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미정이의 음식 솜씨도 자취를 오래해서 쓸 만한데, 명희의 음식 솜씨는 더 빼어났다.
나는 안방으로 들어와 수첩을 보고 최상철에게 다이얼을 돌렸다.
"여보세요."
마침 최상철이 받았다.
"나다!"
"청주에 내려온 거냐?"
귀신같이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 최상철이었다.
"그래."
"좀 만나자."
"저녁이나 먹고."
"모처럼 내려왔는데, 저녁 한 끼 사면 안 되냐?"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네가 찾아준 마누라가 모처럼 저녁을 지어준다는데, 안 먹으면 삐친다."
"사정 알만하다. 그럼 몇 시에 만날까?"
"음......... 지금이 5시 15분이니까, 7시에 만나는 것으로 하자."
"알았다. 내 퇴근 안 하고 기다리마. 참!"
"왜?"
"우리 사무실 옮겼다. 네가 얻어준 번화가가 아니라, 서문동 향군회관 부근이다. 못 찾으면 다시 전화해라."
"알았다!"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 내 마음은 아주 불편했다. 그곳은 일부러 내가 피해 다니던 장소인데 하필 그곳에 사무실을 얻었다니, 기분이 얹잖았기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전생의 처가 살던 곳, 곧 처갓집이 그 부근이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 나와 미정이 모충동 사글세방을 벗어나 사직동에 방을 얻을 때만해도 그랬다. 분명히 서문동에 방을 얻으면 신문사 지사나, 남부지국이 더 가까운 것을 알면서도, 나는 서문동을 피하기 위해 굳이 사직동에 얻었던 것이다.
'현생에도 다시 엮일까봐 징그럽게 피해 다니던 곳으로 하필 얻다니.......'
나는 생각을 떨쳐버리기 위해 고개를 세차게 젓고 다른 생각을 했다.
'무슨 일이 있긴 있는 것 같은데, 일거리가 없나? 사무실도 더 못한 곳으로 옮길 걸 보면?'
여기까지 생각하는 순간 내 머리에 번개같이 떠오르는 영감이 있었다. 하여튼 나쁜 쪽으로는 기가 막히게 잘 돌아가는 내 머리였다. 나는 순간적으로 무릎을 탁치고 희희낙락한 표정으로 안방을 빠져나왔다. 이 모양을 저녁준비를 하고 있던 명희가 보았다.
"뭐가 그렇게 기분이 좋으세요?"
"음........! 너랑 오늘밤 잘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흐뭇하네."
"쳇, 오빠는 꼭 그런 쪽으로만 생각을 하지."
"그럼 또 뭔 생각을 해야 되는데?"
나는 그녀에게 접근해 뒤에서 끌어안고, 그녀의 가슴을 주물럭거리며 물었다.
"올바른 생각, 건설적인 생각."
"자손을 번창시키는 일이 건설적인 생각이 아니면 뭐가 건전한 생각이냐?"
"뭐가 논리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만 놔, 오빠 저녁 해야지."
내 품을 벗어나려 앙탈하는 명희였다. 그러나 그 순간 내 가운데 다리는 어느새 텐트를 치고 명희를 뒤에서 공략할 듯 꺼떡거리고 있었다.
"뭐, 느껴지는 것 없어?"
"어머, 이게 뭐야!"
내가 더욱 밀착을 하자 깜짝 놀라, 엉겁결에 내 그것을 탁 치는 그녀였다.
"으갸갸갸........!"
되게 아팠다. 나는 한동안 그곳을 잡고 쩔쩔맸다. 이 모양을 보고 안 됐던지 명희가 접근해 말했다.
"오빠, 굉장히 아픈가 보다. 어떻게 하지?"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는 명희에게 내가 말했다.
"네가 여기에다 대고
'호~!'
하면 낫는다."
"치워!"
다시 멀리 도망가는 명희였다.
이렇게 명희와 나는 짓궂은 장난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명희가 지은 저녁밥을 맛있게 먹었다.
"오빠, 어디 가?"
내가 다시 벗어 놓았던 양복 상의를 주워 입자 명희가 물었다.
"친구 만나러."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하필 최상철이라 명희가 그네들 팀을 보면, 다시 상처를 입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나는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나 혼자 갔다 올게."
"혹시 여자 만나러 가는 것, 아니야?"
"아니, 남자 친구."
"못 믿겠는데, 확실하다면 나랑 같이 가도 상관없잖아."
"알았다, 그래. 같이 가자. 대신 오빠가 누구랑 만나는 동안만은 차 내에 있어야 한다."
"알았어요. 오빠!"
이렇게 해서 나는 명희를 데리고 서문동으로 향했다. 나는 옛날의 처갓집과는 다시 엮이기가 싫어, 좀 떨어진 곳에 파킹을 하고, 일부러 내려서 빙 돌아서갔다. 내가 부근에서 상호를 확인하니 향군회관 바로 옆에 상호가 보였다. '상철 심부름센타'라는 상호였다.
나는 희미한 조명을 받으며 뚜벅뚜벅 이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
고 들어가니 최상철 혼자 14인치 작은 흑백TV를 보며 낄낄거리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
"응, 왔어. 이리 와 앉아라."
자신이 앉아있는 소파를 툭툭 두드리며 자리를 권하는 최상철이었다.
나는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텔레비 좀 꺼라!"
"알았다."
곧장 일어난 최상철이 TV를 끄고 왔다.
"뭐 일인데, 그렇게 나를 애타게 찾았냐?"
"좋은 일로 찾았으면 좋았겠는데, 그게 아니라 미안하다."
"본론만 얘기해. 나 바쁘다."
"마누라하고 떡치고 싶어서 그러냐?"
"이, 자식이 정말.........!"
"미안, 미안! 사실은 일거리가 없어서 사무실로 이쪽으로 옮긴 것 아니냐? 좀 도와줘라."
하긴 이 시대의 심부름센터는 그렇게 일이 많지를 않았던 시절이었다. 지금 아마 모
르긴 몰라도 이런 계통의 60% 이상은 불륜남녀의 추적에 대한 일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당시는 '불륜공화국'이라고 부를 만큼의 지금 세태와는 판이한 시대였다. 웬만하면 참고 살아 이혼도 별로 없었고, 그 시대에도 왜 불륜남녀가 없었겠냐마는, 지금의 절반의 절반도 안 되던 시절이니, 이런 업종이 잘 될 리가 없었다.
"아니래도 내가 보아하니 그럴 것 같아서 내가 일거리 좀 가져왔다."
"역시 내 친구는 네 놈밖에 없다. 무슨 일이냐? 내 끓는 물, 타는 불속이라도 마다 않으마."
"너무 깝치지 말고, 내 말 잘 들어."
이렇게 운을 뗀 나의 말이 이어졌다.
"금성사, 삼성전자 양사에 보면 분명히 녹음기 부분 외주를 주는 놈들이 있을 것이다. 하청을 말하는 거야, 하청! 그놈들의 과장이나 부장을 유심히 관찰해 모든 정보를 캐내오데, 특히 약점을 잡으면 더욱 좋아! 네 말 뭔 말인지 알아?"
"아, 내가 얘냐? 네 말귀도 못 알아듣게. 그런데 보수는?"
"자식이 잿밥에만 마음이 있어서......... 일단 이 일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그에 드는 경비는 물론 월급도 주마. 그리고 성공 시에는 성공 불 조건으로 일시에 또 얼마를 보상하마."
"됐지?"
"너무 막연한데."
"지랄하지 말고 진행 해. 내가 너한테 언제 짜게 노는 것 봤어?"
"하긴, 너만 믿는다. 이 최상철 열심히 하겠씀! 싸장님!"
"됐고. 말썽나지 않게 조심해서 잘 해."
"알았다, 알았어. 그 문제만큼은 내 확실히 할게."
"좋아! 믿고 가마."
"가게?"
"그래,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
"당장 배고프다. 술값 좀 주고가라."
"이 자식이 누구를 봉으로 아나? 옛다 5만원이다. 얘들하고 회식이나 한 번 해라."
"땡큐! 이 세상에 친구라고는 너 밖에 없다."
"지랄 그만 떨고, 나 간다."
"고맙다. 친구야! 멀리 안 나가마!"
"그래, 수고해라."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녀석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다시 차로 돌아온 나는 바로 명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간만에 명희를 안고 포근하게 잠을 잤다. 그리고 새벽 4시가 되자 나는 어김없이 일어나, 서울을 향해 차를 몰았다. 5월 5일.
오늘은 수요일이지만 학교고 관공서고 모두 쉬었다. 어린이 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 쉬는 곳이 있었다. 미정이 다니는 종로학원이었다. 일요일이라 쉬고, 공휴일이라 쉬면 재수생들이 언제 공부해서 대학가겠는가. 그런 의미에서인지 아무튼 오늘도 미정은 학원을 갔다. 그리고 또 안 쉬는 곳이 있었다. 우리 공장이었다. 일요일과 추석, 설이 아니면 나는 공휴일로 인정을 하지 않았다. 갈 길이 뭔데 놀 것 다 놀고, 언제 발전을 하겠는가. 나만이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이런 실태였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아무튼 나는 미정의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학원에 가기 위해, 미리 사무실에서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정이만 데리고 가려했더니 너무 어려서 곤란했다. 그래서 나는 가정부 아주머니도 함께 차에 태워 집을 출발했다. 중간에 화원에 들려 장미꽃 100송이를 산
나는 의기양양하게, 꽃다발과 다정이를 안고 학원 건물 앞으로 갔다. 그리고 시간을 보니 4시 45분이었다. 50분에 수업을 마치니, 최대 10분만 기다리면 되었다. 나는 학원으로 올라가지도 않고 시간을 보며 무조건 1층 밖에서 기다렸다. 이윽고 수업이 파했는지 떼로 몰려나오며 시끄러운 소리가 복도 밖까지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새삼 다정이를 고추 세워 안은 나는 1층 현관을 주시했다. 물론 한 손에는 장미 100송이 묶음의 꽃다발을 든 채였다.
분명히 내 눈에 보였다. 미정이 빠르게 계단을 걸어 내려오는 것이. 뒤에는 미정이가 말한 인상착의의 도수 높은 뿔테 안경을 쓴 놈씨가 뭔가를 추근거리며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앞에 불쑥 나타나 외쳤다.
"여보! 생일 축하해!"
"어머, 여보! 여길 어쩐 일이세요?"
나는 미정의 표정보다도 뒷놈의 표정을 먼저 살폈다. 완전히 똥 씹은 얼굴로 자신도 모르게 몇 보 물러나는 그 치였다. 나는 이를 못 본척하며 얼른 미정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5월 5일! 오늘 자기 생일 아니야?"
"엉?"
엉겁결에 반문을 하고 순간적으로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을 하는 미정이었다.
"어, 어. 맞아! 아 참! 오늘이 내 생일이었지. 바쁘다 보니 나도 깜빡했네! 고마워, 여보!"
"축하해요! 미정 씨!"
"와우! 누구는 좋겠다. 남친에게 생일이라고 꽃다발도 받고."
주위에 몰려 구경하던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러나 똥 씹은 인상의 친구는 어디로 갔는지 행방이 묘연했다.
"가자! 여보! 오늘 생일 선물로 뭐 사줄까?
"아무거나!"
마음의 준비를 미처 못 한 미정은 나에 의해 이끌려 나오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이때 때 아닌 박수가 쏟아졌다. 처음부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보던 주위의 아줌마부대들이, 뒤늦게 내 행동을 알고 잘한다고 치는 격려의 박수였다.
"우와! 총각 멋쟁이네!"
"얘는! 애기 아부지가 멋져부렸어!"
아줌마들의 별 희한한 말들을 들으며 나는 미정을 차 쪽으로 이끌었다.
"우와! 미정 씨 부자네! 자가용도 있고!"
동료들의 부러움에 찬 찬사에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어 화답하는 미정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점수를 따는 길에 뒷좌석 문까지 열어주며 아주 철저하게 에스코트를 했다. 그리고 앞으로 온 나는 다정이를 아줌마에게 넘기고, 급발진을 시켜 이들의 시야로부터 멀어졌다. 비로소 차안의 아주머니를 발견한 미정이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아주머니!"
"색시는 정말 행복하겠어! 누가 생일이라고 장미꽃 100송이를 안겨줘. 우리 같은 년은 평생 꿈꿔 보지도 못한 행복인지 알고, 신랑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니래도 엄청 고마워하고 있어요. 그렇지 여보?"
"아닌 것 같은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고맙다는데."
"그럼, 됐고. 우리 뭐 먹으러 갈까?"
"아주머니도 계시니 오래간만에 등심 한 번 먹으러가지요?"
"오케이!"
"다정이 이리 주세요. 팔 아프시죠? 요새는 크니까, 무게가 꽤 나가네."
"애 듣는데 그런 소리 하는 것 아니야."
"왜요?"
아줌마의 말에 영문을 몰라 곧장 반문하는 미정이었다.
"나도 이유는 몰라. 옛날부터, 웃어른들이 그래 왔으니까."
"하하하.........!"
"호호호.........!"
둘은 어이가 없어 웃었다. 모처럼 등심을 먹고 돌아온 그날 밤.
아까부터 빙글빙글 웃던 미정이 나를 보고 혀를 쏙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속았지 롱!"
나도 분명히 미정으로부터 그녀의 생일이 단오 날이라고 들었다. 나라고 단오 날이 음력 5월 5일이라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그렇지만 나는 시침을 뚝 떼고 물었다.
"오늘이 자기 생일 아니었어?"
"5월5일이 맞기는 하지만, 내 생일은 음력 아니야, 이 바보야!"
"아, 그래? 이거 그러면 나는 괜히 비싼 돈만 날렸네. 그 대신 자기 본생일 때는 안 해주면 되지, 뭐!"
"그런 게 어디 있어? 또 해줘야지."
"그래, 그래 알았다. 백 번이고 천 번이고 해주지, 뭐! 그러고 자꾸 나이만 먹던지."
"그렇다고 나이 먹나?"
"아니긴 하지. 하여튼 오늘 당신 즐거웠지?"
"그럼, 여보 덕분에 오늘은 정말 행복한 하루였어! 당신 고마워!"
"오늘 밤에 보답할거지?"
"기대해도 좋아!"
미정이 저렇게 나오니, 나는 괜히 겁이 더럭 났다. ============================ 작품 후기 ============================100회 즈음하여 보내주신 성원에 보답코자 오늘은 특별히 한 편을 더 올립니다.
즐감 하셨기를 바라고, 늘 즐겁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
"대단히 감사합니다!"
"땡큐, 썰!"
^^
"땡큐, 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