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04화 (104/322)

< --트로이카 체제-- >

다음 날.

나는 아침 일찍 방화문 100개를 우리가 계약한 도장집으로 실어 보내고 곧장 학교로 갔다. 그러고 6시간 수업을 마치고, 대우빌딩의 현장을 찾았다. 우리 새시 팀을 찾아보니 8층에서 시공을 하고 있었다. 아직 전체가 시공 중이라 엘리베이터가 있나. 나는 걸어서 8층까지 오르려니 조금 힘이 들었다. 케이지가 설치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재를 실어 나르는 용도이기 때문에, 사람을 실어 나를 만큼 한가하지는 않았다.

요사이 운동부족을 절감하며 이수경 과장이 시공하는 곳을 찾아들었다. 마침 이 과장 혼자뿐이었다.

"수고하십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조수는 요?"

"잠시 제가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조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말 안 듣는 부하직원이 있습니까?"

"내가 데리고 쓰고 있는 놈이 아주 뺀질이입니다. 어디서 요령만 배워왔어요."

"그래요?"

마침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이 과장의 조수가 나타났다. 시공 팀은 항상 2인1조로 시공하기 때문에 뒷받침하는 사람을 조수라 부른다.

"너, 이놈의 시키! 그게 뭔 짓이야?"

물을 한 병 떠오는 조수를 보고 화를 벌컥 내는 이 과장이었다.

"왜요? 이것 가지고 호스에 물을 부으면 되지요. 언제 그 긴 걸, 질질 끌고 돌아다녀요."

"이런 싸가지 없는 놈. 시키면 시키는 대로는 해야 될 것 아니야! 그렇게 물을 넣으면 기포가 생겨 못 쓴단 말이야!"

"그래요?"

내가 보아하니 새시 시공현장에서 수평을 잡기 위해 사용하는 물이 담긴 호스를 가지고 다투는 것 같았다. 이것은 두꺼운 투명 호스에 물을 담아, 이것을 수평상태를 확인할 물체에 대어, 물이 담긴 끝이 양쪽이 동시에 같은 위치에 오면 수평이 맞는 것이고, 아니면 틀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놈이 물을 담는 과정에서 수도와 같이 수압이 센 곳에서 담으면 중간에 공기가 안 들어가 공기방울이 안생기지만, 그렇지 않으면 기포가 발생해 그것이 가라앉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 시간은 작업을 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들의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어느 놈이 이 호스의 물을 빼버려서 조수 보고 물을 채워 오랬더니, 귀찮음을 덜기 위해서 날름 사 홉들이 병에 물을 받아온 것 같았다.

"다시 제대로 받아와!"

"네!"

볼이 부어 현장에서 사라지는 조수였다. 8층을 몇 번 오르락내리락 하면 아주 죽을 맛일 것이다. 내가 조수가 없는 틈을 이용해 말했다.

"저런 놈들은 버릇을 가르치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나의 말에 눈을 빛내며 묻는 이 과장이었다.

"새시 시공과정에서 틈새 보정 및 고정용으로 나무를 쪼개거나 잘 고이기 위해서는 망치를 사용하잖아요?"

"네, 이 망치입니다."

실제로 자신이 들고 있는 망치를 보여주기까지 하는 이 과장이었다. 이때부터 전문용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쿠사미 고이려고 망치질 할 때 있잖아요."

"네, 사장님!"

"일부러 헛손질을 해서 망치를 놓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밑을 잘 내려다보고 사람이 없을 때 해야 됩니다. 괜히 지나던 사람이라도 맞으면 큰일 나잖아요."

"네, 그렇지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지상으로 추락한 망치를 내가 집어 오나요? 아니죠. 당연히 조수를 시켜야죠. 하루에 이렇게 고의로 몇 번씩 높은 현장을 오르락내리락 하게 하면, 제가 그만두던지, 아니면 열심히 잘 하던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할 것입니다."

"하하하.........! 이제 알았습니다. 저 놈은 이제

'꼼짝 마라!'

네요."

"그렇지요. 한마디로

'내 손안에 있소이다!'

죠."

"하하하...........!"

웃음의 여운이 남긴 음성으로 이 과장이 말했다.

"오늘 사장님 덕분에 좋은 것을 배우네요."

"밑의 주임들한테도 전수해 옥석을 가려냅시다."

"저놈 말고는 그런 사람도 없습니다. 유독 저놈만 요령꾼입니다. 그나마 제가 데리고 일하니까, 저 정도죠. 다른 사람은 제대로 부리지도 못 합니다."

"그 정도면 하루 날 잡아 아예 결판을 내세요. 가급적 내쫓는 쪽으로."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좀 더 이 과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다른 시공 팀을 찾아갔다. 시공 팀의 시찰을 마치고, 이사실로 홍성부 이사를 찾아가는데, 앞에 홍 이사가 급히 어느 현장으로 걸아가고 있었다.

"이사님!"

"아, 강 사장! 요즘은 왜 그렇게 뜸한가? 술사기 싫어서 그런가?"

"중간고사가 있었습니다."

"공부하랴, 사업하랴, 바쁘군. 견적 낼 게 있는데, 가져가 견적 좀 내와."

"어디 건데요?"

"힐튼 호텔이야."

"와우, 그러면 규모가 굉장히 크겠는데요."

"이를 말인가?"

"이번에도 새시와 유리부분입니까?"

"당연하지."

"철물은 안 되겠습니까?"

"검증이 안 됐잖아?"

"호텔정도면 미관도 수려해야겠지요?"

"당연하지."

"제가 한 번 제 공장으로 모셔서 브리핑을 한 번 드리고 싶습니다."

"5일이나 지나거든, 날 잡아. 그 안에는 바쁘거든."

"그럼, 그 때 술도 한 잔 하는 것으로 하죠."

"철물일 안 주면 술도 안 살 기세군."

"하하하.........! 그럴 리가요."

"하여튼 잘 하고 있어. 지금과 같이만 해. 내 조만간 전화주고 직접 시간 내어 찾아가지."

"감사합니다."

"또 봄세!"

"네, 이사님!"

나는 홍 이사의 등 뒤에다 대고 꾸벅 인사를 했다.

다음 날 나는 럭키의 조 전무와 오후 3시에 약속을 했다. 따라서 오전 수업만 마치고 나는 청주로 향했다. 10분 전이 되어 전무의 방에 도착하니 비서가 구면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는 비서의 안내로 조 전무의 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화장실도 못 가고 기다렸습니다."

나는 그의 유쾌한 농담에 웃음으로 그가 가리키는 소파에 마주 앉았다.

"확실히 계절의 여왕답게 날씨가 화창해서 좋소이다."

"때는 호시절이라, 이럴 때 놀러 다녀야 되는 건데........."

"하하하.........! 좋은 시절을 우리는 일만 하고 있으니........."

서로 조 전무와 내가 가벼운 이야기로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나의 취향을 아는 여비서가 커피 두 잔을 타들고 들어왔다.

"드시지요."

"네!"

가볍게 입을 뗀 조 전무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건축은 우리에게 양보하시죠. 아시다시피 우리에게는 럭키개발이라고 유수의 건설업체가 있질 않습니까?"

"전무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빙빙 말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말을 끊고 그의 표정을 한 번 살핀 나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에게 그럼, 럭키개발의 지속적인 하청을 주십시오."

"무슨 말이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시죠."

"나는 전무님이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창호와 철물의 단종을 가지고 있질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 두 분야에 대해 럭키개발이 수주하는 공사에 대해 하청을 달라는 말입니다."

"흐흠.........!"

잠시 생각하던 조 전무가 말했다.

"그것은 내가 판단할 사안이 아니군요. 럭키개발에도 엄연히 사장 이하 직원들이 있으니까요.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과 함께 럭키개발 사장과의 자리를 주선할 수는 있겠습니다. 그 이상의 일은 제 권한과 역량을 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조속한 만남을 주선해주십시오. 그 결과를 가지고 저도 최종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허허, 이것 참. 나는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더니만, 오늘도 허탕 아니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모쪼록 좋은 결과가 있도록 전무님께서 손 좀 써주십시오. 좋은 결과가 있다면 내 전무님께 공사는 물론이려니와 술 한 잔 톡톡히 사리다."

"내 술 한 잔 얻어먹기 위해서라도 좋게 권해보겠소이다."

"고맙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 전무에게 정중히 인사를 건넨 나는 그의 문턱까지의 배웅을 받으며 럭키 공장을 등졌다. 나는 그 길로 청주 내 공장으로 차를 몰았다. 우선 청주 공장에 도착해 느낀 점은 이제 공터가 완전히 없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전만에도 빈 공간이 좀 있었는데, 철판은 물론 스텐제품, 하이새시 대리점까지 이곳도 운영을 하게 되니, 빈 공간이 모두 물건으로 꽉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내 지시가 없어서인지 전 제품이 노천에 그대로 적치되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철제제품은 비를 맞으면 녹이 슬 확률이 거의 100%이기 때문에, 이렇게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 철제나 스텐제품까지도 방수포로 덮어놓기는 했으나, 지붕만이라도 해 씌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제품군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부하들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 어디선가 마 부장이 나타났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수고가 많으십니다. 그런데 저 상태로는 안 되겠습니다. 철물 팀에 이야기해서 지붕정도는 해 씌우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특별한 일은 없지요?"

"네, 여일하게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영진건설의 견적 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 저희들의 뜻대로 되었지요. 여기저기 알아보았겠으나, 모두 시공의 어려움은 물론 자재 구입의 어려움으로 두 손 두 발 다 들고 우리의 견적대로 통과가 되었습니다."

"그럼, 그 바도 미리 주문해야겠군요. 동양강철에서는 아직 개발 중이니."

"그래야지요, 뭐."

"유리도 반사유리죠?"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두 가지다 무역 팀에게 주문을 넣어야겠군."

"무역 팀도 생겼습니까? 사장님!"

"무역 팀만이 아닙니다. 이젠 전자 팀까지 생겨 제가 골치가 좀 아픕니다."

"하하하.........! 사장님은 골치 아프실지 몰라도 아무튼 발전하는 것이니, 저는 괜히 기분이 좋군요."

"하하하.........! 다행입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우리는 곧 함께 사무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나의 출현에 경리 김 주임이 반색을 했다.

"이렇게 반가워하는 줄 알았으면 서울에서 내려올 때, 뭐라고 사들고 올걸. 지금 럭키공장에서 오다보니, 보다시피 빈손입니다?"

"돈만 주시면 청주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거든요 사장님!"

"하하하........! 그런 가요? 내 올라 갈 때 몇 푼 집어주고 갈 테니, 통닭이라도 몇 마리 사다놓고 출출할 때 뜯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저는 농담으로 한 이야기인데........."

"저도 웃자고 하는 얘기입니다."

"네?"

"하하하.........! 어찌 사장이 일구이언 하겠습니까? 지금 바로 내드리죠."

나는 패스보드에서 2만원을 꺼내 김 주임에게 집어주었다.

막상 주니 받기를 망설이는 김 주임이었다.

"어서 받아요. 팔 떨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사장님!"

두 손으로 공손히 받는 김 주임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그런 그녀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최 상철이라는 사람이 누구예요? 요새 자주 전화가 와요. 사장님 내려오시면 꼭 전화 좀 부탁한다고........"

"알겠습니다."

'무슨 일이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심 생각하던 나는 곧 그에 대한 생각은 떨쳐버리고 김 주임에게 물었다.

"그러나 저러나 새로운 경리 아가씨는 일 잘 하고 있습니까?"

"애초에 뽑으실 때, 경력자를 뽑아서인지 몰라도, 어느 면에서는 저보다도 나은 면이 있던 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참, 이 명희의 생일이 언제입니까? 이력서에 나와 있지 않겠습니까?"

"네, 지금 바로 찾아볼 게요."

다정이의 돌 때문에 생각난 것이 아니라, 내가 모종의 일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에, 더불어 명희의 생일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하고, 묻게 된 것이다.

"음력으로 9월 초 닷새입니다."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명의가 생각난 길에 곧장 사무실을 벗어나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는 빈 집이었다. 따뜻한 날씨임에도 왠지 휭 하니 찬바람이 부는 듯해 나는 바로 2층을 내려왔다. 명희의 빈자리를 보니 또 새록새록 명희의 소중함에 되새겨지는 나였다. 사무실로 다시 들어온 내가 김 주임에게 물었다.

"명희가 학원에 간 것 맞죠?"

"네, 요새 열심히 다니고 있던데요."

"보통 몇 시에 돌아옵니까?"

"우리의 퇴근 무렵에요. 보통 5시 5분 정도........."

"알겠습니다."

나는 그길로 사장실로 들어가, 그가 밀린 결재서류에 대해 빠른 속도로 결재를 해나갔다. 그러다 보니 어언 퇴근시간이었다. 직원들이 하나 둘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하는데, 명희도 돌아왔다.

"오빠!"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반색을 하고 쫓아와 내 품에 안기는 명희였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마저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나는 그런 명희의 등을 두드려주며 말했다.

"오빠도 많이 보고 싶었다."

"빈말 아니죠?"

"너희들은 왜 이렇게 확인받길 원하니?"

"쳇, 또 비교하시네."

"그런가? 아무튼 2층으로 올라가자."

"네~!"

밝게 말하며 다시 가방을 주워들고 2층으로 향하는 명희였다.

나는 그런 명희를 번쩍 안아들었다.

"오빠!"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명희였다.

내가 그래도 계속 안고가자, 이제는 다른 걱정을 앞세웠다.

"누가 보면 어쩌려고?"

"보거나 말거나, 나만 좋으면 되지."

"하여튼 못 말릴 양반이셔!"

"좋지?"

"헤헤헤........! 오빠 품에 안겨 있으니 좋긴 좋네!"

"그러면 됐다."

쪽!

"어머, 디러워라!"

여기서도 나는 이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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