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03화 (103/322)

< --트로이카 체제-- >

나는 생각난 김에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채 선장 관리과장을 대동한 나는 급히 승용차를 타고 모처로 달리고 있었다. 즉 도장을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다. 내가 달리는 차안에서 채 과장에게 물었다.

"실리콘 공장을 누가 짓느냐 하는 문제는 아직 타결을 보지 못했죠?"

"네. 저들은 자체 럭키개발에 맡기고 싶어 하고, 우리는 나름대로 우리가 짓겠다고 하니 쉽게 타협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는 다 타결이 되었습니다."

"그 문제는 내게 맡기세요. 내 조 전무와 결판을 내죠."

"알겠습니다. 사장님!"

"베란다 새시 영업사원들은 잘 하고 있던가요?"

"근간에는 너무 바빠 들리지 못했습니다만, 처음 하는 것을 보니 잘 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입주가 멀어서 그런지 큰 실적은 아니지만 하루에 2개 단지를 합하면, 10건 이상은 실적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대로 밥값은 하고 있군요."

나의 말에 옅은 미소를 짓는 채 과장이었다.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지 모르시죠?"

"네."

이럴 때 내가 부하라면 내심 욕이 나왔을 것이다. 지가 알려주지도 않고 단지 불려서 이끌려 가는 놈이 그 내용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도 나보다는 순순해서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순순하게 대답하는 채 과장이었다.

"도장 공장을 가고 있습니다. 방화문 도색 때문이죠. 앞으로 내가 거래를 틀 테니, 채 과장님께서 이 또한 관리하라고 모시고 가는 길입니다."

"알겠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음속에 점 찍고 있던 유수의 도장업체가 어느덧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방화문 공장이 세워지기도 전부터 돌아다녀 파악한 곳이었다. 나는 공장 초입 즉 공장 건물과 멀찍이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괜히 도장하는 과장에서 발생하는 페인트 분진이라도 차로 날아들면, 차를 버리기 때문이었다. 정문 경비도 없어 나는 채 과장을 데리고 사장실로 직행했다. 우리가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마침 사장이 안에 있었다. 무슨 결재를 하고 있는지 한

창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우리의 등장에 그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도장할 것이 있어서 맡기려고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해당 서류를 잘 정리한 그가 우리의 앞에 마주섰다.

"일단 앉으시죠."

"그럽시다."

"무슨 물건입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사장이었다.

"방화문입니다."

"수량이 많습니까?"

"지금 당장은 아니나,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질 겁니다."

"흐흠.........! 사장님의 표정과 말투를 들어보니 자신감이 넘치시는 게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습니다."

"혹 발포도장도 하십니까?"

"그야 기본이지요."

"제가 하는 일이 이 업계 최초로 시도하는 일이라, 극도의 비밀을 요하는 일입니다. 이 일이 외부로 새어나간다면 사장님께서 모든 민형사상을 책임을 지셔야 하는데, 그럴 용의도 있습니까?"

"음.........!"

나의 말이 걸리는지 한동안 뜸을 들이며 쉽게 답을 하지 못하는 50대 후반의 사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의 회가 동하도록 강조를 했다.

"이게 본격적으로 작업이 들어가면 연간 수 천 개의 물량은 일도 아닐 것입니다. 나중에는 연간 수만 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번 시도를 해보고 싶습니다."

"종업원들까지 각서를 받아야 할 일입니다."

"그야 이를 말입니까? 사장이 막말로 모든 것을 각오하는데, 저희들도 그만한 각오는 해야죠."

"아무튼 좋습니다. 그런데 도장기법도 까다롭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고 메모지를 달래서 몇 가지 문양의 그림을 대충 그림으로 그렸다. 곧 격자무늬와 빗살무늬와 화사한 장미 그림이었다.

"위의 그림을 문 중앙에 반을 차지할 정도로 넣고 양가에는 발포도장으로 질감을 살려주시면 됩니다."

"사장님이의 말이야 쉽지만, 몇 단계 공정을 더 거쳐야하는 까다로운 작업이군요."

"아무래도 인건비가 더 들어갈 테니, 그에 맞게 견적을 한 번 내어 보시겠습니까?"

"그러지요. 기한은?"

"바로 이 자리에서 안 되겠습니까?"

"참으로 성미도 급하십니다. 젊은 양반이라 그런가?"

그렇게 말하고 사장은 곧 견적서를 자신의 책상 서랍에서 끄집어내어 무엇을 끙끙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제시한 견적 가가 개당 1,100원 이었다.

"이것은 대략 몇 개 정도의 물량을 기준으로 산출된 금액입니까?"

"100개 기준입니다."

"천 단위가 넘어가면 얼마까지 가능하겠습니까?"

"음..........! 대량의 일관된 작업이니........ 900원 정도까지는 가능하겠습니다."

"더 이하는 안 되겠습니까?"

"물량이 더 많다면야 더 다운도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저희들 마진이 너무 없습니다."

"기술력은 믿어도 되겠지요?"

"그야 이를 말입니까? 좀 과장해서 말한다면 이 업에 종사한지 반세기입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더라도 우리만큼 잘 빼내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침까지 튀겨가며 자신들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사장이었다.

"여담입니다만 아직 시력이 좋으신 가 봅니다."

"돋보기도 안 쓰시고 결재서류를 검토하는 것 같던데?"

"제 경험으로는 말입니다. 인체의 모든 기능은 쓰면 쓸수록 그 기능만은 퇴화하지를 않아요. 역으로 안 쓰는 기능은 나이가 먹으면 금방 시들해집니다. 제가 아직 노안이 오지 않은 이유는, 평소에도 책을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잔글씨에 단련이 되다보니 그렇습니다. 혹, 혹사한다는 것은 문제가 달라지니 적당한 단련이 필요하겠지요."

건강이야기로 화제가 넘어가자 더욱 열변을 토하는 노익장이었다.

"명함 한 장 주시지요."

"이런 내 정신 좀 봐........."

"아예 두 장을 주세요. 첫 의뢰한 제품이 내 예상대로 잘 된다면 앞으로 계속 연락을 취해야 할 테니, 그 과정은 내 옆의 채 과장이 진행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명함 두 장을 가져와 각기 하나씩 나누어주는 소 병기 사장이었다. 나는 눈

짓으로 채 과장에게 명함 한 장을 드리도록 했다. 이를 알아 챈 채 과장이 자신의 명함을 주며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 또한 명함 없이 그와 인사를 나누었다.

"우선 샘플로 100개를 보내 드릴 테니, 제가 그려진 문양을 좀 더 미적 감각을 살려 멋지게 도장해주세요. 그러면 우리의 거리는 탄탄할 겁니다."

"네, 사장님! 고맙습니다!"

그 길로 우리는 그와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날 저녁.

저녁을 먹고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 미정은 침대에 앉아서 무엇인 기분이 좋은지, 싱글벙글 하고 있었다.

"뭐,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아니 예요. 나 씻고 올게요."

내 물음에 당황한 듯 황급히 욕실로 사라지는 미정이었다.

'이상하네. 낮에 분명히 뭔 일이 있었던 같은 데........?'

평소 미정의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여, 나도 모르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욕실에서 나오는 미정의 표정을 보니, 역시 얼굴에 밝은 웃음이 매달려 있었

다.

"운전면허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거야?"

내 물음에 미정의 웃음이 급격하게 사라지며 대답했다.

"계속 코스에서 떨어지네요."

"아이고, 나 같았으면 열 번은 붙고도 남았겠다."

"됐거든요."

나의 표정에 톡 쏘더니 침대로 바로 가 등을 돌리고 눕는 미정이었다. 그러고는 얼른 얇은 이불마저 끌어당겨 푹 뒤집어썼다.

"그 말 한마디에 왜 이렇게 화를 내?"

내가 살며시 이불을 들치며 말했다.

"나 화 안 났거든요."

"그게 화난 게 아니면 뭐가 화 난거야."

"말 시키지 말아요. 나 일찍 잘래요."

그렇게 말하고 다시 이불을 끌어다 덮는 미정이었다.

"낮에 무슨 일 있었지?"

내가 다시 이불을 까 내리며 물었다.

"어, 없었어요."

"그런데 왜 이렇게 당황해."

"아, 아무 것도 아니 예요."

다시 이불을 당기는 미정이었다.

"이실직고 하지 못해."

나는 이불을 확 젖히고 그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호호호.......! 아, 알았어요. 내, 내 얘기할 게요. 호호호........!"

비로소 내가 멈추며 말했다.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말고 얘기해봐."

"오늘 낮에 글쎄, 있잖아요. 여보........"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봐."

"음......... 그러니까 학원에서 점심시간이 막 끝나 내가 쫄면 한 그릇을 사먹으려고 나가는데, 뒤에서 한 남학생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면 이랬다.

"실례합니다. 오늘은 제가 점심 한 끼 사도되겠습니까?"

깜짝 놀란 미정이 되돌아보니 도수가 높은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웬 남학생이 거기 서 있었다.

"됐거든요!"

새침하게 말한 미정이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남학생이 계속 쫓아오며 말했다.

"쫄면 집 잘 다니는 것 알아요. 오늘은 제가 한 그릇 살 수 있는 영광을 베풀어 주십시오."

"자꾸 쫓아오면 소리 지를 거예요."

"그 정도로는 제가 끄떡도 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미정의 말.

"아주 능청스럽게 말하며 계속해서 내 뒤를 쫓아오는 거예요."

그래서 내기 미정의 얘기 도중 끼어들어 소리쳤다.

"그럴 때는 유부녀라고 해야지."

"내가 미쳤어요. 걔 말고도 나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친구들이 많은데, 왜 내가 그 즐거움을 깨요."

"뭐라고? 지금 말 다한 거야?"

"헤헤헤........! 여보, 화났어요? 나한테는 당신 밖에 없는데.........."

"됐어, 치워!"

볼에 뽀뽀를 하려 달려드는 미정을 확 뿌리친 내가 이번에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그 이후, 미정이 계속해서 아양을 떨며 내 화를 풀어주려 노력하는 바람에 나도 남자로써 화가 풀린 척 했지만, 결코 이 날만은 미정과 살도 닿지 않고 잤다. 그러면서 나는 속으로 앙앙불락하며 복수를 수없이 다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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