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00화 (100/322)

< --성공의 셋째 계단-- >

"삼각무역이라고 아시죠?"

"그야 당연하죠."

"기본에 충실하셔야죠."

"금수품목으로 묶인 것을 가지고, 국내에서만 연연할 게 무엇입니까? 내가 알기로 대만과 스페인이 시멘트를 수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들 나라의 여러 시멘트 업체로부터 견적을 받아, 현지 도착가로 제일 싼 곳으로 업체를 선정해, 그들에게 시멘트 수출 건만은 위임하도록 하세요. 우리가 이를 매입해 중간에 싣고 내리고 하느니........."

"알겠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것을 우리는 왜 생각을 못 했죠."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어 하는 조 부장을 보고 내가 말했다.

"큰 흐름 즉 돈의 융통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이런 면까지 민활하게 머리가 안 돌아간 탓이겠죠."

"맞습니다. 조 부장이 선뜻 사장님으로 모실만한 분이십니다."

최 부장이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우며 나에 대한 존경심을 표시했다.

"오늘 두 분의 최우선 업무는 시멘트건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나의 말에 군말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두 사람에게 내가 두 사람을 엉거주춤하게 하는 언행을 했다.

"그런데........."

"말씀하십시오. 사장님!"

"지난번에 사무실을 언뜻 봤더니, 텔렉스 한 대 없던데, 그래가지고 제대로 된 무역업무가 되겠습니까?"

"매번 남의 것을 빌려 쓰자니, 그것도 못할 짓이었습니다."

또 다시 머리를 긁적이는 조 부장을 보고 내가 말했다.

"조만간 한 대 놓읍시다.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되가는 느낌이군요."

최 부장이 쾌활하게 말하며 허리를 쭉 폈다.

"조부장님!"

"네!"

"신용장 카피 본 좀 줘보세요."

"네!"

나를 믿는지 두 말 없이 가방에서 신용장 카피 본을 꺼내 내게 건네주는 조 부장이었다.

"나는 오늘 이것을 해결하는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습니다."

나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과히 볼만했다. 놀람, 가대, 의구심으로 차례대로 전이되는 표정이 마치 팔색조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내주곤, 내가 먼저 사무실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나는 바로 차를 몰아 재무부를 찾아갔다. 무작정 장관실로 쳐들어가는 나를 비서관이 앞을 막아섰다.

"안 됩니다. 지금 중요한 회의 중이십니다."

"회의 아닌 걸 알고 왔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지금 무시하겠다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제가 여쭙고 오겠습니다."

"허허, 이거! 언제부터 재무부가 이렇게 문턱이 높아졌나, 그래! 기자 알기를 개똥 같이 알고.........."

"무슨 일인데, 밖이 이렇게 시끄러워!"

김 용환 재무부 장관이 작달막한 체구에 금테 안경을 번쩍거리며 장관실 문을 열고 나타났다.

"장관부터 이렇게 문턱이 높으니 대통령 각하께서 그렇게 독려하는 수출을, 목표달성도 못하고 헤매고 있지."

"거, 무슨 말이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타당한 이유를 대시오."

"장관실 문턱이 높으니 은행 문턱도 높은 것 아닙니까? 대기업은 돈을 못 빌려줘서 안달이고, 자그마한 중소기업은 신용장이 개설되어도 금융지원을 안 해주니, 이 나라의 수출이 제대로 되겠습니까?"

"어느 은행이 그딴 짓을 한단 말이오."

화를 벌컥 내는 김 장관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태연하게 내 볼일을 보았다.

"대부분의 은행이 다 그렇지만 내게 민원으로 접수된 은행이, 가만있자.........."

나는 품에서 급히 신용장 카피 본을 꺼내 은행명을 확인했다.

"제일은행이라고 적혀있군요."

"내 이놈의 시키들을........"

"어쩌시려고요."

"은행장 목을 쳐 날리던지 해야지."

"그러지 마시고 조용히 전화나 한 통화 부탁합시다. 시끄럽게 해봐야 좋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끙........! 어디 기자라고? 기자 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국일보의 강 대정 기자입니다."

"아, 우리나라의 조달 법을 바꾸게 한 장본인 아니시오?"

내가 시큰둥하게 답변했다.

"맞긴 맞습니다만........"

"내 얼른 전화 한 통화 때릴 테니, 강 기자님이 얼른 가서 조용히 민원을 처리해주시오."

내 이름을 듣자 얼른 쫓아내기 작전으로 나오는 김 장관이었다.

"알겠습니다. 내 오늘은 이 사람의 민원을 시급히 처리해야 되는 일이 바빠, 장관님과의 인터뷰를 생략하겠습니다만.........."

"제발 그래 주시오. 나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는지라........"

"그럼.........."

까딱 목례를 해보인 내가 천천히 등을 돌렸다. 제일 은행장실.

나는 행장실에서 행장 이필선 씨와 마주앉아 있었다.

"아, 그런 일이라면 바로 본인을 찾아올 것이지, 장관님 실은 왜 들리셨습니까?"

"행장님의 문턱이 높다고 소문이 나서요."

"아,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서민이라도 누구나 원하면 만나주고 있습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에 내심 나는 실소가 나왔지만, 가만히 그의 얼굴만 주시하고 있었다.

나의 물끄럼한 시선에 겸연쩍었던지 그가 썩소를 날리며 말했다.

"그래, 제가 급히 처리해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언제부터 제일 은행이 그렇게 배가 불러, 신용장 내도액도 매입을 안 하고, 담보다 뭐다 온갖 핑계를 다 대기 시작했습니까? 수출이야말로 나라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하는 걸 모르시고 계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절대 그러면 안 되지요. 있을 수도 없고요."

"그럼, 이 사람은 무엇입니까. 번듯한 신용장을 받아 놓고도 수출입금융의 혜택을 못 받아, 수출을 포기하려 하고 있질 않습니까?"

"어디 한 번 줘보시지요. 내 어느 놈인가, 이놈을..........."

"괜한 부하들 가지고 책망할 것 없고, 이거나 바로 처리 좀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강 기자님!"

이 행장은 곧 내가 준 카피 본을 들고 직접 창구를 찾아갔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실내를 돌아보며 여유 있게, 차를 홀짝 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돌아온 이 행장이 내게 말했다.

"혹, 이 친구 통장이 있습니까?"

"지금 바로 그의 명의로 하나 개설해주시죠. 곤란하다면 제 명의로 일단 개설해주셔도 좋고요."

"강 기자님은 믿을 수 있으니, 강 기자님의 신분증과 도장 한 번 주시죠."

"내 신분증도 필요하단 말이오?"

"그럼, 그냥 도장이나 하나 주세요. 막도장이라도 됩니다."

"잠시 만요. 내 차에 있으니, 가져오리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통장으로 거금 66,308,000원을 입금 받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떼게 되어 있는 수수료 한 푼 안 뗀 금액이었다. 대신 나는 확실하게 해주기 위해 조동호 부장 앞으로 차용증 한 장을 써서, 은행에 제출해 주었다. 그날 오후 퇴근 무렵이었다. 어디를 갔다 왔는지 두 사람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곧 조동호 부장과 최우선 부장이었다.

"시멘트건은 잘 처리 되었습니까?"

"네, 친구 사무실의 텔렉스로 회신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하고 각종 자재에 대한 가격을 파악하고 다녔습니다."

"각 자재에 대해서도 견적만 받되, 집행은 마십시오. 내가 아는 가격과 견주어 보게요. 그리고 이제 돈 걱정은 마시고, 부지런히 견적이나 받아오십시오. 어느 기업이 되었든, 꿇리지 말고."

그렇게 말한 내가 서류 가방에서 오늘 내 앞으로 개설되어 입금된 통장의 금액을 보여주었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둘이 잠시 후에나 진정이 되어서, 최 부장이 먼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역시 우리 사장님이십니다."

"아니 그런데 어떻게 이것을 사장님의 명의의 통장으로 받아오실 수가 있죠?"

"그게 다 수완 아닙니까? 제일 은행에 가면 아마 조 부장님 앞으로 된, 제 차용증이 있을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내 오늘은 바빠서 그렇고 다음에 또 술 한 잔 합시다."

"네, 네!"

나는 둘의 대답을 뒷등으로 들으며 사무실을 급히 빠져나왔다. 오늘 전자 파트의 선배들과의 술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다음 날 저녁.

나와 장강재 회장이 예의 그 요정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고맙네. 이래저래 우리 회사의 큰 일꾼이야."

"고마우시면 보답을 하셔야죠."

"뭔가? 청이 있으면 뭐든지 말해보시게."

"몇 군데 대리점이나 내주십시오."

"그 정도야 자네도 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야 그렇습니다만, 이에 남 울궈먹는 것도 지겨워서요. 사장님의 전화 한 통화면 편한 것을........"

"그래. 어디 어디야?"

"각각 두 군데씩입니다. 청주 또는 충북 대리점, 그리고 서울의 강남."

"읊어나 보시게."

"포철, 삼미금속, 부산파이프 등입니다."

"별로 많지도 않군."

"그래도 일일이 찾아다니며........."

"알았네, 알았어. 더 이상 청은 없지? 술이나 마시세."

"네, 사장님!"

"그러나 저러나 요새 기사 한 건 작성 안하고,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 사람아!"

"공부하랴, 사업하랴, 짬이 없네요. 조만간 기획취재물이나 한 번 연재하게 해주십시오."

"뭔데?"

"이건, 사장님이라도 특급 비밀이기 때문에 새어나가면 안 됩니다."

"하하하.........! 이 사람이.........! 자, 들게!"

"네, 사장님!"

금방 잔을 비운 장 사장에 내게 잔을 돌리며 물었다.

"사업은 잘 되어가나?"

"대충은 요?"

"무슨 그런 대답이 있어."

"우선 한 분야만 올인하려 했더니 자꾸 일이 터지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다른 부분까지 손을 대게 됐단 말입니다. 예를 들면 전자라든지, 무역 등. 이래저래 골치가 아픕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는가? 나름대로 다 고충이 있는 법이지. 자네답지 않은 풀죽은 소리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세."

"넵!"

나는 그때부터 씩씩하게(?) 술을 입으로 부어나갔다. 가끔 양념으로 곧 들어앉힌, 옆에 앉은 계집의 계곡 주를 마시고, 거웃도 헤아리며.

그날 늦게 술이 취해 귀가한 나에게,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던 미정이, 상의를 받아들며 말했다.

"큰일 났네요, 여보!"

"큰일 났으면 작은 일 두 번 치르면 되지."

나는 되지도 않은 농담을 지껄이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내일 모레가 다정이 돌 아니 예요?"

"벌써 그렇게 되었나?"

"오늘이 4월 17일이니 맞죠. 하긴 매일 술에 절어 들어오니, 세월 가는지나 알겠어?"

"뭐야? 이 사람이........."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여보!"

"말이나 해봐."

"잔치하게 생겼어요."

"뭐? 돌잔치 해야지, 그럼, 안 해? 지난번 백일 때도 대충 넘어가고. 우리 다정이 섭하게 생각한다고."

"쳇, 그게 뭘 알아서."

"나중에라도 다 알게 될 것 아니야. 성대하게 치러줬대야, 아, 우리 부모가 나를 어려서부터 이렇게 사랑하고 아꼈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것 아니야?"

"쳇, 말 같지 않은 소리."

"엉 또?"

"내가 말하는 잔치라는 게 일반 돌 백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제대로 된 잔치를 치르게 생겼단 말 이예요."

"그건 또 왜?"

"아버지 어머님이 동네방네 소문을 낸 모양 이예요. 우리 아들이 아주 잘 산다고."

"그래서?"

"그렇게 잘 살면 촌에 땅 마지나 장만해줘야지, 믿을 수가 없다고 동네사람들이 항변하니....... 그럼, 이번에 서울 한 번 올라가보자. 우리 아들이 서울에도 수십만 평의 땅을 사놓았다니........ 이렇게 된 모양 이예요."

"그래서 단체 상경을 한다고?"

"네."

"허허! 그것, 참!"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부모님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럴만하다고 생각해서, 전화로 말릴까 하다가 생각을 고쳐먹고 아예 이 판에 큰 잔치를 한 번 벌이기로 작심을 했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다시 하게 되었다.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겼던 내가 입을 떼었다.

"더 늦기 전에 부모님들한테도 생활비를 지원해드려야겠어. 당장 목돈 안 들어 좋고, 또 땅을 사드리면 그것 경작하느라 고생하실 것, 아니야. 그러니 다달이 10만원씩이라도 부쳐드려야겠어."

"그렇게나 많이요?"

"많긴 뭐가 많아, 그 정도는 돼야 쓸 게 있지."

"쳇, 알았어요."

"당신은 또 왜 그래?"

"몰라요."

등을 홱 돌리며 그제야 내 옷가지를 대충 챙겨 거는 미정이었다.

"빨랑 이리 안 와!"

"왜, 왜 그러세요?"

내가 화난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자, 겁에 질린 미정이 주춤 주춤 내게로 다가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꼭 끌어안고 말했다.

"장인 장모님한테도 매달 똑같이 부쳐드려야 돼. 안 그러면, 나한테 혼나!"

"여, 여~보!"

나를 와락 달려들어 꼭 껴안으며 울먹이는 미정이었다.

"흑흑흑.........!"

"고만한 일에 울기는.......... 우리 울보, 또 울음 터졌네!"

"호호호........! 고마워요, 여보!"

나의 놀림에 급 방긋 미소를 지으며, 갑자기 내 입술에 키스 세례를 퍼붓는 미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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