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셋째 계단-- >
나는 미정과 그들을 데리고 집 가까운 곳으로 왔다. 아예 차를 파킹하고서 술을 마시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이 삼겹살이었으므로 나는 동네에 있는 광진 정육점을 찾았다. 식당을 겸하고 있는 집이었다. 제법 규모가 커서 홀이 있고 방도 있었다. 방이라야 자기네들이 자는 방을 손님이 많거나, 손님이 원하면 내주곤 하는 방이었다. 저녁때가 다 되어 손님이 제법 들었으므로, 홀이 시끄러워 나는 방을 요구했다. 우리는 곧 벽지에도 기름이 절은 방으로 안내되어 방석을 깔고 앉았다. 왠지 그냥 앉으면 돼지기름이 양복에 묻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미경도 긴 치마를 조신하게 감싸 내 옆에 앉았다. 가나실업의 조동호 부장 옆에는 예의 그 동료가 자리를 잡았다. 조동호가 앉자마자 예의 동료를 툭 치며 말했다.
"사장님께, 인사드려! 나랑 같이 일을 하는 최우선(崔優先)이라는 친구입니다. 고등학교, 대학동기이기도 합니다."
조 부장의 소개가 있자, 최우선은 얼른 자리에서 인사를 꾸벅하며 말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최우선입니다."
내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이름이 특이해서 한 번 들으면 안 잊겠습니다. 강 대정입니다."
"네, 그런 편입니다.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을 만나면 이름이 어사무사한테, 그들은 제 이름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그걸로 봐도 확실히 부친이 이름은 잘 지어주신 것 같습니다. 하하하.........!"
웃으며 자리에 앉는 최우선이었다. 나는 옆의 미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인사드려. 가나실업의 조 부장님과 최우선 씨도 직함이 부장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최 부장의 말에 내 말이 잠시 끊겼지만 내가 이어서 소개를 했다.
"제 집 사람입니다."
"안녕 하세요?"
일어나 다소곳이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 미정이었다. 이에 두 사람도 급히 일어나 같이 고개를 숙였다.
"사모님이 정말 보기 드문 미인이십니다."
최 부장의 칭찬에 발그레 얼굴을 붉히는 미정이었다. 이때 주인이 삼겹살 오인 분과 함께 파절이를 들고 들어왔다. 내가 들어오면서 시킨 까닭이었다. 미정이 얼른 일어나 이를 받으려 했다. 내가 미정을 찍어 누르며 말했다.
"당신은 가만히 있어."
"네."
나의 제지에 할 수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미정이었다. 내가 고기를 받아 1인 분을 불판 위에 통째로 쏟아 부었다. 불이 켜지고 곧 고기가 지글거리며 익기 시작했다. 이어 아주머니가 상추며 마늘, 기름장과 함께 들고 들어온 소주병을 탁자 위에 놓았다. 내가 소주병을 땄다.
"자, 한 잔씩 받으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나는 두 사람에게 한 잔씩 따라주고 나도 그들로부터 한 잔을 받았다. 미정이 술을 사양하는 바람에, 나는 콜라 한 병을 시켜 글라스에 따라 그녀에게 주었다.
"번번히 수고해준 데 대한 보답입니다. 자, 한 잔씩듭시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이렇게 해서 우리의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르자 소주병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 병이 되고, 두 병이 되더니, 술병이 네
개째 쌓이자, 조동호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며 말을 잃어 갔다. 반면에 최우선은 점점 말이 많아졌다.
"조 부장님, 술이 취하십니까?"
"술도 술이지만 걱정거리가 있어서요."
"아, 이 친구야! 술자리까지 걱정 끌어안고 있지 말고, 이 순간만이라도 잊어버려."
"무슨 일인데 그러십니까?"
"아, 아닙니다."
말을 하기 싫은지 손을 내젓는 조 부장이었다.
"혹시 압니까? 내가 도움이 될지."
내 말에 잠시 나를 바라보던 조 부장이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데 최 부장이 선수를 쳤다.
"별 거 아닙니다. 아, 글쎄! 저들이나 우리나 사무실 월세 막기 급급한 놈들이 쥐꼬리만큼 났다고, 사무실을 합치자지 뭡니까?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들이 나을 것도 없습니다. 저들이 그런 제의를 하는 이면에는, 우리가 간만에 번듯한 오더 하나 물었거든요. 솔직히 그게 탐이 나는 겁니다. 저들이나 우리나 처리할 능력도 없으면서. 욕심만 많아가지고.......... 에이 더러운 세상이고, 놈들이야.........!"
"제대로 이해가 안 가는 군요."
내 말에 조 부장이 나섰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조 부장의 말이 이어졌다.
"군대 갔다 와서 대학을 졸업한 후, 청운의 꿈을 안고 이 오퍼상을 차렸지요. 그러나 2년 동안 남들은 그렇게 잘 걸린다는, 변변한 오더 한 건 수주 못 한 겁니다. 그러니 오히려 집에 손을 벌려 월세 막는 날이 많았어요."
말을 하면서도 괴로운지 자신의 술잔을 단숨에 입안에 털어 넣은 조 부장이, 안주도 들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메뚜기도 낯짝이 있다고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이 업을 접고 남의 회사나 취직을 할까 갈등을 하고 있는데, 이 친구가 어디서 굴러다니던 오더 한 건을 주워 온 겁니다."
"야, 이 친구야! 말은 똑바로 해야지 굴러다니던 걸 주워 온 게 뭐냐? 남은 쇠 빠지도록 뛰어 간만에 한 건 했건만........."
"그렇다 치고..........!"
귀찮은지 손을 저어 만류한 조 부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오더를 가지고 오면 뭘 합니까? 누가 외상을 줘야 말이죠. 신용장이 개설되었어도 은행에서 대출도 안 해 주고, 업체들도 외상을 안 주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작은 업체는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죠."
"무슨 오더인데 그럽니까?"
내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요새 오일쇼크로 중동에 달러가 시끌시끌하지 않습니까? 그 놈들이 그 돈을 믿고 건축을 무수히 하는 모양입니다. 한마디로 활황이지요. 거기에 들어가는 건축자재입니다. 별의별 품목이 다 있습니다. 철근, 합판, 파이프도 일반 파이프는 물론 스텐 파이프, 동 파이프, 스텐 철판, 일반철판, 하다못해 알루미늄 새시에 유리까지 그 중에 가장 많은 품목이 시멘트인데, 시멘트는 그나마 돈을 줘도 한국에서는 수출을 할 수도 없는 품목이라 지 뭡니까?"
"왜요?"
"한국도 건축경기가 활황이다 보니 나라에서 아예 금수(禁輸)를 시켰답니다. 이런데다가 같은 처지의 친구 놈들은 일단 사무실 합쳐서 힘을 모아 처리하자고 유혹이나 해대고. 우리나 그 놈들이나 나을 게 없는 놈들마저도 어렵다니까, 꼴값을 떤다니까요."
"그 사람들도 무역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겠고, 그 친구들은 몇 명인데요?"
"세 명입니다. 그놈들도 고등학교 대학교 동창이기도 하죠. 친소, 친소 모이다 보니, 따로 차렸지만.........."
말을 하면서 술이 오르는지 자꾸 고개가 숙는 조 부장이었다.
"말을 하고 나니 시원하냐?"
최 부장의 말에도 고개만 흔들 뿐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는지, 자세가 흐트러지는 조 부장이었다. 이에 내가 말했다.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하고, 내가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으나, 내 방법을 한 번 찾아볼 테니, 우리 사무실에 한 번 들려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사장님!"
내 말에 술이 확 깨는지 조 부장이 갑자기 꾸벅 인사까지 하며 내게 감사를 표시했다.
다음 날 아침.
아침부터 이들은 나를 찾아왔다.
내가 막 9시 수업 시간에 맞추어 등교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이었다. 이것은 엄연히 나의 실수였다. 어제 이들과 정확한 시간 약속을 하지 않은 탓이었다. 이에 나는 오전 수업을 포기하고 이들을 내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리스트를 볼 수 있습니까?"
"네."
나의 말에 서류가방에서 리스트를 꺼내 공손히 내게 바치는 조 부장이었다.
내가 이 리스트를 받아 읽어보니 어제 조 부장이 이야기 한 것과 대동소이했다. 전부 건축자재인데, 조 부장이 이야기한 것보다 품목이 더 다양한 정도였다.
"흐흠.........! 어떻게 해결이 가능할 것 같기는 한데........."
"시멘트도 요?"
"물론이지요."
"한국에서 수출하지 말라는 물량을 어떻게 구한 단 말입니까?"
내가 씨익 웃으며 답변했다.
"다 방법이 있지요."
변죽만 울린 내가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이렇게 고생하느니? 제 밑에 와서 무역업을 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네?"
내 말이 너무 갑작스러웠던지 조 부장은 물론 최 부장 또한 눈만 동그랗게 뜨고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참만에야 조 부장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이 이제 무역업도 하신다고요?"
"금번에 럭키와 제가 합작으로 청주에 실리콘 공장을 하나 차렸습니다. 참 보아하니 실리콘도 이 오더에 포함되어 있더군요."
"그렇습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샜습니다만, 아무튼 이 뿐만 아닙니다. 이제 건설업은 물론 전자부분까지 진출하게 생겼어요. 이를 수출하거나 하려면 아무래도 무역부서도 필요할 듯해서요."
"음..........!"
나의 말에 이젠 이들이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생각에 잠겼다.
"기존의 꽉 짜인 조직보다는 그래도 신설업체가 낫지 않겠습니까? 창업의 보람도 있고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조 부장이 답변을 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정 결정하기 어려우시면 차츰 시일을 두고.........."
"아, 아닙니다. 우리의 대우 조건은 어떻게 됩니까?"
내 말에 조 부장이 급히 물었다.
"그야, 최소한 남만큼은 대우해드려야죠. 허나 내 사업 모토가 인재 제일주의라, 열
심히 일시키고 대우는 대한민국 어느 회사보다도 낫게 해주려합니다."
"그렇다면 사장님과 같이 일해보고 싶습니다. 제가 많은 시간은 아니지만 사장님을 겪어보니, 솔직히 우리보다는 연배가 어리지만, 사업 수완만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뵐 때마다 느꼈습니다. 사장님이라면 장차 큰 기업인이 될 것 같습니다. 너는 어떠냐?"
끝에 최 부장을 물고 들어가는 조 부장이었다. 그도 이를 느꼈는지 최 부장이 말했다.
"이 자식은 꼭 물귀신 작전이야. 회사 차릴 때도 그렇더니. 너하고 나하고 한 맹세가 있지 않아 인마.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자고. 잊었냐?"
"하하하.........! 그럴 리가? 저렇다는 데요? 사장님!"
"고맙습니다. 두 분. 앞으로 열심히 해봅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에게 새삼 악수를 청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못난 저희들을 받아주셔서."
"무슨 말씀을. 내 두 분이 못낫더라면 절대 두 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 드렸죠. 인재 제일주의라고. 나는 두 분이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 분을 모신 겁니다. 그러나 일만큼은 한마디로 빡셀 겁니다. 그러나 대우는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해드리겠습니다."
"믿습니다. 사장님!"
넉살좋게 말하고 내 손을 잡아오는 최 부장이었다. 조 부장도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내 손을 굳게 잡았다.
이렇게 해서 나는 무역 부분에도 손을 대게 되었고, 두 인재도 얻었다. 나는 이들과 차를 마시며 관리과장 채 선장을 불러, 럭키와의 사업 내용을 설명하고, 럭키 측과 협의 된 내용을 토대로 세세한 사항에 대한 논의를 부탁했다. 그러고 출장경비를 주어 청주로 급파했다.
또 나는 한성의 장효성 부장에게도 전화를 걸어, 전자 부분의 연구실 및 무역부분의 사무실로 쓸 조립식 건물 한 동을 더 건축해 달라고 했다. 바빠서 안 된다는 것을 내가 거하게 술 한 턱 사는 것을 조건으로 기어코 그의 승낙을 받아냈다. 그리고 나는 곧 이들과 마주앉아 앞으로의 일을 의논했다.
"신용장 좀 카피 본 있습니까?"
"네, 사장님!"
나의 말에 군기 든 신병처럼 바로 서류가방에서 신용장 복사본을 내게 건네주는 조 부장이었다. 우선 금액을 보니, 이들이 감당할 수준을 넘은 금액이었다. 13만7천 달러나 되었던 것이다. 한화로 환산하면 물경 6천3백만 원이 조금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던 것이다. 이러니 이것이 잘못되면 은행 측에서도 큰일이기 때문에 신용장이 개설된 상태에서도 대출을 한 해준 것 같았다. 더 더군다나 사 기업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그만 업체를 뭘 믿고 외상거래를 하겠느냐 말이다. 나는 이 금액을 보는 순간 이들의 처지도 이해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더럭 의심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들 보고 물었다.
"신용장 개설자에 대해서는 알아보았습니까?"
"네."
"특이하게도 김규칠이라고 한국인이던데.......?"
"알 함마 카쇼네기라고 중동 부호의 하수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믿을 만하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당연히 하루라도 빨리 물건을 매입해 보내는 것인데,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는 금수 품목으로 묶인 시멘트를 구하는 일이 급선무입니다."
조 부장의 말에 나는 만족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대만이나 스페인의 시멘트 제조업체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세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