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셋째 계단-- >
다음 날 오후 1시로 여 선배와 약속 시간이 잡혔다.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의 퇴근 시간을 고려한 약속시간이었다. 오늘이 마침 토요일이라 이렇게 시간이 정해진 것이다. 나는 오전 2시간의 수업을 마치고 곧 회사로 돌아왔다.
내가 사무실에 들어서자 경리 고 경희가 말했다.
"청주의 마 부장으로부터 몇 번의 전화가 왔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곧 내방으로 가 청주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김 주임이 받았다. 마 부장을 바꿔달라고 했다.
"전화 바꿨습니다. 사장님!"
"전화하셨다면 서요?"
"아, 네! 율량동 상가 견적 건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무슨 일인데요?"
"이 공사를 수주한 영진건설에서 새시와 철물 부분의 견적을 대폭 낮춰달라고 하는
데, 안 될 것 같아서요."
"지난번에 내가 대폭 낮추더라도 수주하라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새시공사도 커튼 월 이예요."
"그러면 절대 낮출 필요가 없지요. 계속 강경자세를 유지해도 됩니다."
"그러니까 계속 실랑이가 벌어지네요."
"그래도 끝까지 우기면 됩니다. 우리 밖에 해낼 업체가 없는데요, 뭐."
"알겠습니다. 사장님!"
"견적은 어떻게 내셨습니까?"
"지난번 사장님이 내신 것을 견적서 철에서 찾아 참고했습니다."
"잘 하셨습니다. 다른 문제는 없지요?"
"네, 네!"
"이명희 양 좀 불러서 바꿔주세요."
잠시 수화기를 들고 있는 데, 명희의 목소리가 아닌 마 부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공부하느라고 학원에 가고 없어서 전화를 받을 수 없다라고 저보고 핑계를 대라는
데요."
"하하하.......! 잘 하고 있다고 전해주세요!"
"네, 네!"
이럭저럭 하다 보니 금방 12시가 되어 나는 가볍게 점심식사를 하고 청계천으로 차를 몰았다. 건물 앞에 주차를 시키고 시계를 보니 5분 전 1시였다. 내가 지하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약속대로 일곱 명이 모두 모여 서성거리고 있었다.
"어서 오시게. 강 사장!"
입장이 좀 바뀌어서 그런지 여진원 선배의 말투가 하오체로 바뀌어 있었다.
"다 모이신 것 같군요."
"그렀소. 협소하지만 우선 자리에 앉읍시다."
대표로 자리를 주관하는 여 선배였다. 대충 아무 곳이나 털썩 털썩 주저앉는 선배들이었다. 그래도 내게는 접이식 철제 의자를 하나 내주는 여 선배였다. 내가 자리에도 앉지 않고 서서 인사를 했다.
"여러 고명하신 선배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여 선배님한테 대충 일의 경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다시 한 번 제 입으로 약속을 드리면, 연구
기간 동안 월 10만 원의 봉급을 드린다. 둘째 별도의 연구비를 지급한다. 셋째 제품이 개발되어 출시되면 이익금의 7% 즉 각자 1%를 로열티 성격으로 지급한다. 이에 모두 찬성하셔서 모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반대 의견 가지신 분 있나요?"
묵묵부답, 아무도 답이 없었다.
"좋습니다. 모두 찬성하는 것으로 알고 다음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모두 회사에서도 나와 이 연구 업무를 진행하시겠다는데, 이 장소로는 제가 볼 때 모든 면에서 미흡합니다. 그래서 저는 곧 강남 제 땅에 연구소를 하나 제대로 지으려고 합니다. 그 동안만이라도 좀 협소하고 불편하시겠지만 참고 매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으로 제 말은 마치겠고, 이어 선배님들의 의견을 경청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삼성전자에 다니던 70학번 정창기입니다. 그럼, 우리의 신분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제가 원하는 것은 저희 회사 소속의 연구원으로 재직하시는 것을 가장 바라고 있습니다. 아직 전자 부분이 설립되지는 않았지만, 선배님들이 원하신다면 바로 출범시키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이번 건에 한해서만 로열티가 지급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만, 안전한 직장과 환경을 얻으실 수 있고, 여러분들이 개발한 제품이 대박을 터트린다면,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성과급도 지급할 예정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선배님의 존함도 안 여쭈어 보았네요."
"68학번 강명구라 합니다."
"대선배님이셨네요. 그런데 외모는 그렇게 애 띠어 보이십니까?"
"저놈이 하라는 연구는 안하고 건성 건성이니 나 마냥 삭을 일이 없지요."
"하하하.........!"
"말씀 하신 분은.........?"
"64학번 최재천이라 하오."
"갈수록 대선배님들이니 제가 야코가 죽어서 원.........."
"그래도 대우만 잘해주면 됩니다."
"하하하..........!"
"또 질문 계신 분?"
"나는 후배님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66학번 나정기입니다."
"네~!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질문이시네요. 저는 지금 주로 건축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사업을 다각화 하는 측면이나 장래성을 보아도, 전자와 무역을 여기에 추가시키고 싶습니다. 즉 트로이카 체제로 서로 시너지 효과를 발휘면서 함께 발전하고 싶
고요. 그렇다고 문어발식이나 백화점식으로 확장하거나 나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여기에 여력이 있어 하나 더 추가시키려면 항상 현금이 도는 유통업종을 고려하고 싶습니다. 건실한 흑자 경영을 하면서도 당장 돌아오는 몇 백만 원을 막지 못해서, 부도를 내키는 기업도 비일비재하더군요. 이상이 제 비전이자, 선배님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제 꿈입니다."
"역시 경영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 가 봅니다. 말씀도 잘 하시고 비전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 최종 목표가 결여되어 있군요. 목표의식이 불분명하면 작은 난관에도 좌초되기 십상이니, 최종목표가 있는 것인지 아직 수립하지 못한 것인지, 그 부분도 언급해 주었으면 고맙겠습니다."
"확실히 수재들만 모아놓으니 질문 또한 예리하십니다."
"하하하........!"
"최종목표는 일부러 제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혹여 선배님들로부터 미친놈 소리나 듣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받으니 답을 안 할 수도 없군요. 제 꿈은 분명히 말씀 드리건 데, 최소한 이 세부분에서만은 대한민국 일등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그 후의 일은 이 일을 달성한 후에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1등 기업을 지향하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는 너무 공허하게 들릴까봐, 제 가슴 속에만 품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박수.........!"
여 선배의 말에 지하실이 박수 소리로 진동을 했다. 아니 좀 과장을 한다면 건물이 붕괴되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힘찬 박수 소리로 장내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자, 제 말은 다 드렸고, 선배님들의 뜻을 모아주십시오. 저와 함께 할 것인지, 아닌지?"
나의 말에 서로 상의를 하느라고 수군수군 한동안 소란스러웠지만, 곧 의견이 취합되었는지, 이 자리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대선배인 여 선배가 그들의 뜻을 대신 전달했다.
"끝까지 함께 하고 싶으니, 중간에 실적이 없다고 자르지나 말라는 부탁이오."
"그런 부탁은 엄연히 제 경영권 침해입니다. 하하하.........!"
"하하하.........!"
나의 농담에 함께 웃고는 있지만, 내심 뜨끔했을 것이다.
"오늘은 제가 선약이 있어서, 안 되고 내일은 선배님들과 소주 한 잔씩 하고 싶은데 시간 좀 내주시죠. 선배님들!"
"오케이! 회식이라면 백 번 환영합니다."
강명구 선배의 말을 웃음으로 화답하는 장내의 인물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아직 설립등기도 마치지 못한 '대정전자(大正電子)의 칠인 연구원이 탄생했다. 이들과의 미팅을 끝내고 내가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니 생각지도 못한 미정이 사무실에 나와 있었다.
"내 방으로 들어가지."
"네."
일단 내 집무실로 데리고 들어온 내가 물었다.
"당신이 여길 어쩐 일이야?"
"쳇, 내가 못 올 데인가요, 뭐?"
"그런 뜻이 아니고, 이런 곳에서 당신을 보니 너무 반가워서."
"호호호........! 그러면 다행이고요."
"다정이는?"
"아주머니에게 맡겼지요."
"젖 떼더니 이젠 편해졌네."
"당연한 말씀."
"어디 갔다 오는 길인데?"
"종로의 학원에 등록하고 와요."
"뭐?"
"집에 있으니 도저히 공부가 안 돼요. 이러다 자꾸 시간만 가고, 나중에 당신 실망시키면 어떻게 해요."
"잘 했어. 학원비는?"
"당신이 준 기본에서 일단 냈음."
"알았다. 내 더 주도록 하지."
"고마워요, 여보!"
갑자기 입을 부딪쳐오는 미정이었다.
"누가 들어오면 어쩌려고?"
"문 잠그고 올까요?"
누가 써먹던 수법을 되돌려 주고 있는 미정이었다.
"그래, 아예 잠그고 와."
내가 강경하게 나가자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미정이었다.
"점심은?"
"때가 언제인데요. 벌써 먹었지요."
"뭘로?"
"모처럼 쫄면이 먹고 싶어서 사먹었어요."
"하, 나는 튀김에 시야시된 병 막걸리 먹고 싶다."
"쳇, 그 집에서 내가 당신한테 엮인 건 알고 계시죠?"
"그래서 불만이야?"
"쳇, 그렇다는 얘기죠, 뭐."
아주 새침하게 나가는 미정이었다.
"당신은 뭐가 먹고 싶은데?"
"당신의 사랑."
"뭐? 그런 추상적인 것 말고."
"당신의 관심."
"장난치지 말고."
"장난이 아니죠. 제 진심 이예요."
"알았어, 알았어. 정말 먹고 싶은 것은 없고?"
"추어탕!"
"뭐? 혹시 임신한 것 아니야?"
"아직 그럴 일 없네요. 생리도 정상이고."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들 하나 더 낳는다면 서요?"
"그것은 장차의 일이고. 지금은 너무 빨라."
"요즘 같으면 정말 아들 낳을 것 같아요. 내가 너무 너무 만족하거든요."
"우리 미정이 이제 많이 뻔뻔해졌네. 그런 소리도 이젠 거침없이 하고 말이야."
"이게 다 당신한테 오염된 거예요."
"뭐라고?"
"항복, 항복!"
내가 간지러움을 태우려 달려들자. 미리 두 손을 들고 항복을 외치는 미정이었다.
이때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뭔 일이래요?"
"기계 들어오나 봐."
나는 미정을 잠시 기다리라하고 밖으로 나가 보았다. 내 예상이 맞았다. 대한통운의 대형차에 실려 샤링기와 절국기는 물론 대형 유압프레스까지 들어오고 있었다. 이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동호 부장이었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나를 따라 나온 미정이 소리쳤다.
"어머, 굉장히 큰 기계네요. 저건 뭐하는 거래요?"
"방화문을 제작하려고 도입된 절단기와 각종 철판을 접는 기계, 그리고 전기에 의해 쾅쾅 내리치며 방화문 키의 구멍을 뚫을 수 있는 기계야."
"굉장히 비싸겠는데요."
"이를 말씀. 나 저거 앉히는데 가봐야 되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모처럼 당신과 저녁에 외식이라도 할까 했더니 안 되겠네요."
"많은 시간을 안 걸릴 거야. 좀 기다리던지. 그렇지만 함께 갈 사람이 있어."
"누군데요?"
"이 기계를 운반해주는 사람."
"저, 젊은 사람 요."
"그래."
미정이 정확히 조 부장을 찍어 내길래 나는 바로 수긍했다. 그 옆에 한 사람도 옆에 같이 거들어 다른 차를 안내하는 등 지휘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조 부장과 함께 하는 동료인 것 같았다.
이후 따라온 대형 지게차와, 중대형 기계를 전문으로 운반하고 가설해주는 전문도비꾼에 의해, 값비싼 기계들이 제대로 자리를 잡아갔다. 나는 수고했다고 도비꾼들과 운전기사들을 치하한 후 곧 돌려보내고, 가나실업의 조부장에게 내가 저녁을 산다고 가자고 했다. 이를 쾌히 수락하며 아주 좋아하는 조 부장이었다. 내 옆에는 미정이, 조부장의 곁에는 그의 동료가, 내 승용차를 향해 나란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양광이 따사로운 날이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변함없이 읽어주시고, 많은 성원을 이름도 빛도 없이 쾌척해주시고, 추 천 등 사랑을 보내 주신 님들께,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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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오늘도 변함없이 읽어주시고, 많은 성원을 이름도 빛도 없이 쾌척해주시고, 추 천 등 사랑을 보내 주신 님들께,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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