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셋째 계단-- >
그 날 저녁 나는 밤 12시까지 작업에 임해야 했다. 반사유리를 문짝에 고정을 시키는데 모두 실리콘을 제대로 쏘지 못해서였다. 내가 처음에 시범을 보이고 다른 유리에 실리콘을 쏴보라 했더니, 모두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과 같이 꿈틀꿈틀 가늘어졌다, 굵어졌다를 반복해서 아주 엉망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제일 처음 기초로 실리콘 꼭지부터 따서 쓰는 요령부터 가르쳐 주었다.
"처음 칼로 꼭지 부분을 베어낼 때 이렇게 45도 각도로 베어내시되, 그 크기는 실리콘을 쏠 부분의 틈새를 보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틈이 작은 곳은 끝부분을 따서 구멍도 작게, 넓은 곳은 제일 안쪽 부분을 따서 넓게, 그래도 안 될 때에는 이렇게 망치로 두드려서 실리콘이 나오는 부분을 넓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요령입니다."
이어 나는 직접 실리콘 건을 잡고 실리콘 쏘는 요령도 가르쳐주었다.
"이것은 사물을 결정할 때와 같이 망설여서는 안 됩니다. 팔에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일정한 속도와 굵기로 가능한 빠르게 긁어내려야 합니다. 어떻습니까? 굵기와 폭은 물론 실리콘이 묻어 있는 양까지 일정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 실리콘을 수입해오던 날, 한 박스의 실리콘을 다 버리면서까지 연습한 결과물입니다."
여기서 일단 호흡을 고른 나의 말이 이어졌다.
"매사에 부단한 노력과 연습으로 정복 못할 기술이 없습니다. 끊임없이 정진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갑시다. 야식 먹으러!"
와.........!
직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당연히 내 말에 감동을 받아서가 아니라 이들은 야식 먹으러 가자는 소리에 더욱 좋아하는 것이다. 다음날 아침, 육거리 현장.
내가 전날 연락을 해서 세원건설 사장은 물론 건물주인 그리고 우리의 전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는 밧줄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팔층 옥상에서부터 내려온 굵은 밧줄에 의지해, 작은 나무판자를 깔고 앉아, 마치 오늘날의 고층건물의 유리창 청소부처럼 곡예를 하고 있었다. 함마 드릴로 벽에 구멍을 뚫은 후, 알루미늄과 외벽을 결합해주는 두꺼운 앵글에 독일제 타정용 총포 건을 쏘았다.
탕! 소리와 함께 사람이 뒤로 튕겨질 정도의 반동이 나를 허공에서 몇 바퀴 선회하게 한다. 그래도 곧 나는 중심을 잡고 외벽을 타고 내려가 창틀에서 건네주는 함바 드릴로 구멍을 뚫고, 앙카를 박는다. 또 총을 쏜다. 이 짓을 일층까지 두 번 반복해야 한다. 좌측과 우측.
이렇게 해서 시공을 마치니 벌써 반나절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때까지도 신기해 구경을 하던 세원건설 사장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수고했다고, 점심 한 끼를 자신이 사기로 해 우리는 우르르 식당으로 몰려갔다. 이 자리에는 구두쇠 주인도 함께 와 점심을 얻어먹었다. 그러나 나는 총포 건을 분실할까봐 한쪽 옆에 두고 몇 번을 확인했다. 독일제 수입품으로 청계천 공구상가를 전부 뒤져 산 것이라, 귀하기도 귀했지만 함부로 다룰 수도 없는 물건이라서 더했다. 이 총을 소지하려면 도검류 및 화약류 단속법에 의거하여 관 즉 경찰서의 허가를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점심을 먹자마자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반사유리를 시공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아직 실리콘을 제대로 못 쏘니 천상 내가 해야 할 일이었다. 나는 오전과 같이 밧줄에 매달려 반사유리를 시공하기 시작했다. 위에서 두 개의 밧줄로 내려주는 작게 절단된 유리를 나는 빈 공간에 맞추고 일사천리로 실리콘을 긁어나갔다. 그 동안 다음 유리가 도착해 있고, 나는 이를 받아 또 고정 틀을 완성해 나갔다. 이렇게 위에서부터 반쯤 시공이 되자, 구름 관중이 운집해 떠날 줄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 어느 택시 기사는 영업도 안 하고, 한쪽에 주차를 시킨 상태로는 나의 작업 광경을 아니, 시공된 반사유리에 넋을 잃고 있었다.
햇빛을 받아 마치 거울처럼 반짝이는 외벽이 천상의 미러인듯 온 청주 시내를 다 비출 듯 반짝이고 있었다. 주인이 넋을 잃고 지켜보는 것은 물론 세원건설 사장도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이에 내 부하들은 더 말 할 것도 없었다.
나는 이런 이들의 반응에 기분이 더 고무되어 더 빠른 속도로 실리콘을 쏘아나갔다. 하나를 쏘고 나면 다른 하나를 받아 벽 외부를 발로 살짝 차 옆 칸으로 이동을 한다. 그리고 틀에 끼워 맞추고 한손으로는 이를 잡고 한 손으로는 실리콘을 긁어댄다. 일도 예술에 비유한다면 지금 나의 행위야 말로 진정 예술에 가까운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남들은 감히 제대로 내려다보지도 못할 아찔한 높이에서. 이렇게 해서 해 떨어지기 전 가까스로 반사유리 시공을 끝내고 나니, 내 입에서는 저절로
'휴우~!'
하는 한숨 소리가 나왔다. 또 나의 손은 저절로 목으로 가, 목에 두르고 있던 수건으로,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고 있었다.
"와아........! 멋지다!"
"장관이다!"
"청주에 또 하나의 명물이 생겼어!"
시민들이 모두 감탄하는데, 세원건설 사장과 주인이 내 손을 잡아 왔다.
"수고 했어!"
"정말 수고 했네!"
"내 앞으로는 무조건 새시와 유리는 대정창호에 맡기겠네!"
"작지만 일꾼들하고 회식이라도 한 번 하시게."
세원건설 사장의 약속을 물론 짠돌이 주인마저도 금일봉을 내게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약속을 지키게 되어 천만다행입니다."
"하하하........! 이 사람, 정말 멋지군!"
나의 등을 정말 아프도록 때리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 세원건설 사장 이동용이었다.
"마 부장님! 사진 찍었습니까?"
"아, 미처! 장관에 빠져........."
머리를 긁적이는 것 같더니 재빠르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는 마 부장이었다.
"여러 각도로 다양하게 찍으세요. 앞으로 우리의 좋은 선전물이 될 테니까요."
"네, 네!"
"가세, 내 오늘 술 한 잔 사야겠네!"
"사장님 존경스럽습니다."
새삼 악수를 청해오는 최 차장이하 주 과장, 조 과장, 이 과장, 안 과장, 이건 뭐, 내가 오늘만은 진정한 스타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우리 직원들에 해방되어 막 세원건설의 이 사장과 함께 현장을 떠나려는데, 이 사장의 등을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아, 김 소장님!"
"어떻소? 내 작품이.......!"
우쭐해서 말하는 벌써부터 새치가 듬성듬성한 40대 초반의 인물이었다.
"시공해 놓고 보니 정말 멋지네요. 설계를 변경했더라면 두고 두고 후회할 뻔했습니다."
"이 사장, 그런 의미에서 내 작품을 살려준 이 멋쟁이 청년을 내게 소개시켜주지 않겠소?"
"아, 두 분이 초면이시지. 강 사장 인사드려요. 이번 작품의 원주인이자 김수근 설계사무실의 소장님이십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대정창호의 강 대정입니다."
"김수근이오. 고맙소!"
내 어깨를 툭치는 김 소장의 안면은 자랑스러움과 함께 나를 대견하게 보는 모습이 역력했다.
"우린 마침 술집으로 가려던 참인데 함께 하시겠소?"
"아무렴, 내가 빠지면 안 되지."
"갑시다. 강 사장!"
"네!"
곧 움직일 기세이기에 내가 제지를 했다.
"잠깐 만요!"
"왜?"
"마 부장, 잠깐만 이리 좀 와 보세요."
"네, 사장님!"
사진을 찍다말고 얼른 달려오는 마 부장이었다.
"이거 회식비에 보태 쓰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사람이 저래야지. 날름 공돈이라고 사장이 챙기고 그러면 안 되지."
"제법 인간성도 괜찮은 것 같군요."
나는 둘의 입방아를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
"가시죠. 두 분!"
"갑시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해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를 굳이 이 사장의 차를 타고 본정의 요정으로 향했다. 나와 제일은행 청주지점장이 왔던 곳이다. 점심에는 밥장사를 하지만 밤에는 주로 계집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받으시오. 강 사장!"
"고맙습니다. 사장님!"
"자, 김 소장님도 한 잔 받고요."
"나는 곱빼기로 꾹꾹 눌러 담아주시오."
"하하하........! 그러다 금방 취하십니다. 술이 약하다고 얕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십니다."
"괜찮소, 취하면 떨어져 자면 되지."
"옆에 앉을 계집은 어쩌고."
"혼자라도 구멍 파겠지, 뭐!"
"하하하........!"
거침없는 모습을 연출하는 예술가적 기질이 다분한 김수근 씨였다.
"자네!"
"네, 소장님!"
"내 이제 말 놓아도 되지?"
"네, 소장님!"
"내 앞으로 내 작품을 많이 써 먹을 테니까, 시공이나 잘 해주시게. 아직 다른 사람들은 기술이 달려, 하래도 못 하는 모양이드만."
"알겠습니다. 소장님!"
"뻣뻣하기는 고맙다고 해야지. 자네 자꾸 일거리 주니까."
"하하하.........!"
웃음을 그친 세원의 이 사장이 말했다.
"이제 입가심은 그만하고, 계집하고 양주를 들이겠습니다. 반대하시는 분........ 없지요?"
이렇게 해서 나는 내 일거리를 적극 만들어 주는 원군 하나를 만들었다. 다음날 아침에도 나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엉뚱하게도 럭키금성 그룹의 럭키 청주공장 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앞가슴에는 정식으로 정문을 통과할
때 받은 '방문'이라는 표찰을 패용한 다음이었다.
나는 곳곳을 다니며 배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이나, 맨홀에 고인 물을 비이커에 나누어 담고 있었다. 나의 이런 이상한 행동에도 허가를 받았으려니 하고 아무도 터치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청주공장을 물러나왔다. 나는 이 물을 환경 시험소에 보내 테스트를 거치도록 했다. 그 결과 3일 후에 나온 시험 성적서에는 높은 수치의 ppm이 타자에 의해 표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 결과를 가지고 편집국장과 입을 맞추었다. 아직 우리나라에는 수질오염 기준치도 없었고, 환경부도 별도 부서로 설치되어 있지 않은 시절이었다. 다만 보건사회부 내에 보건위생과를 환경위생과로 개편하여, 미약하나마 환경 의식에 점차 관심을 가질 때였다.
어찌 됐든 그 다음 날.
나는 이를 들고 정식으로 기자증을 제시하고, 럭키화학 청주공장을 방문했다. 그곳에서도 나는 조명재 전무를 찾아갔다. 사장이야 서울에 있지 이곳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전무가 대빵이었다. 내가 비서실에 찾아드니 미모의 비서가 내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전무님 좀 뵈러왔습니다."
"지금 바쁘신데.........."
나는 품에서 기자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취재차 들렸습니다. 협조 좀 해주십시오."
내 행동과 말에서 자신이 판단할 사안이 아니라고 느꼈는지 비서 아가씨가 곧 전무의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나온 아가씨가 말했다.
"지금 긴급한 사안 때문에 시간을 내 드릴 수 없다고.......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찾아오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무심천 물고기를 때죽음 시키는 주범이, 럭키금성 그룹의 청주공장이라고 내일 자 조간에 대서특필 하죠."
그러고 나는 두 말 않고 등을 돌렸다. 내가 막 도어 손잡이를 잡았는데, 나를 제지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잠깐만!"
나는 그 자리에 섰다. 그렇지만 결코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요?"
목소리에는 분노가 서려있었다.
"좀 전의 내 말 그대로요. 지금 무심천에 한 번 가보시오. 수십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다 배를 드러내고 둥둥 떠 있소. 어느 것은 벌써 썩어 악취가 진동하는 바람에 코를 들 수 없을 지경이오."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요?"
"허허........! 뭘 모르시는 말씀! 내 며칠을 두고 이 회사 내 배수로는 물론 맨홀의 물까지 담아다 환경시험소에 의뢰한 바, 그 결과치가 가관이오. 그 주범이 여기 있었단 말이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시험 성적서를 한 번 보시겠소?"
비로소 나는 돌아서며 품을 뒤적였다.
"일단 한 번 들어와 보시오."
"그러실까?"
나는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흘리며 당당한 걸음으로 조 전무의 방으로 들어갔다.
"거기 잠시 앉으시죠."
"고맙소."
"어째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나는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소."
"이 공장에서 배출되는 물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실제로 평가를 받아본 적이 있소?"
"부끄럽지만 없습니다. 생산성에 신경만 썼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솔직히 간과했습니다."
비로소 시인을 하는 조 전무였다.
"내 말은 진실이오. 내 이를 대대적으로 중앙일간지에 보도해 보시오. 어떤 영향이 있을 지. 아직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환경 분야에서는 덜 깨었다지만, 물고기를 떼죽음시킬 오염수를 매일 다량으로 방류하고 있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국민들이 럭키금성 그룹 제품 전반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이지 않을까요?"
"기자님! 바라시는 것이 뭡니까"
'짜식이, 진즉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나는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겉으로는 오히려 더 냉랭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지금 뭘 바라고 이런다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십니다. 전 무 님!"
나는 '전무님'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는 스타카토로 똑똑 끊어서 발음하기까지 했다.
"단지 나는 기자라는 엄숙한 직업 정신과 강산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다는 불타는 사명감으로 이럴 뿐이지, 다른 의도는 전혀 없소."
"이러지 마시고, 솔직히 얼마면 됩니까?"
"허허.........! 전무님이 나를 너무 만만히 보시는 모양인데......... 정말 나는 귀측에 전혀 바라는 것이 없소이다. 오로지 직업정신의 발로일 뿐이지요."
"허허........! 그것, 참.........!"
"이렇게 합시다."
나는 반쯤 돌아선 그 자세 그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반쯤 돌아선 그 자세 그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