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89화 (89/322)

< --성공의 셋째 계단-- >

명희가 막 출근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차 좀 한 잔씩 타주지 그래?"

"네. 안 그래도 그럴 라고요."

"그래. 그런데 영업사원 놈들은 어떻게 된 거야?"

"요즘 좀 게을러졌나 봐요. 그 전까지는 30분까지는 어김없이 출근하더니 8시가 다 되어서........ 어머!"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남희태가 이때 사무실을 불쑥 들어서고 있었다.

"분위기가 왜 그래요?"

"네, 흉보고 있었다. 이놈아!"

"내 그럴 줄 알았지."

이때 지용준도 마침 출근을 했으므로 내가 둘을 불러 세워놓고 말했다.

"똑바로 들어. 너희들은 오늘부터 각각 한 달씩 현장근무야. 절단실 1달, 조립가공실 1달, 시공팀 1달을 쫓아다니며 배워!"

"그건 너무 일방적인 벌입니다."

"벌이 아니야. 그 전부터 내가 계획하고 있던 일이야. 그래야만 올바른 영업을 할 수 있어. 실무를 모르면 누구에게나 자신있게 답변할 수 없거든."

볼이 부어 퉁퉁거리는 놈들을 나는 돌아보지 않고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오전 10시.

이 시간 나는 사전에 연락을 취해 제일은행 청주지점장과 약속시간을 잡았다. 나는 5분 전이 되자 대출과장의 안내를 받으며 지점장 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강 사장님!"

반갑게 나를 맞으며 손을 내미는 연장희 지점장이었다.

"오래간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덕분에. 자, 자리에 앉으시죠."

"네!"

나는 지점장이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나가면서 차 좀 시키지 그래?"

"네, 지점장님!"

대출과장이 나가고 연 지점장도 내 맞은편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어떻게.........?"

"이번에도 지점장님 신세 좀 져야 되겠습니다."

"대출이 필요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나는 대답을 하고 곧 가방에서 준비된 서류를 꺼냈다. 감정평가원에서 발행한 공시지가였다.

"어디 좀 봅시다."

나는 서류를 연 지점장에게 넘겨주었다.

"압구정동이라.........? 서울이군요?"

나는 머리만 끄덕였다.

"대지가 16만5천 평이나 되는 군요. 감정가는 1250원으로 나와 있고요."

"그렇습니다."

대답하는 나의 입에는 만족한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사 놓은 지 채 1년도 안 되어, 압구정동이 정부에서 아파트단지로 지정하는 바람에, 공시지가 상으로도 10배 이상 뛰어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키게요?"

"맞습니다."

"얼마나 필요하신지요?"

"가능한 최대로 뽑아주세요."

"음........! 그렀다 라..........? 가만히 있어보자. 잠시 만요."

지점장은 잠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더니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그것을 보며 나는 이제 은행도 참 편리해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판을 안 쓰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으니 말이다.

잠시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연 지점장이 말했다.

"1억4천 정도는 무난히 되겠습니다."

"어떻게 그 정도밖에 안 나옵니까?"

"공시지가의 70%를 적용했습니다."

"어느 곳이나 현지 시세가 공시지가의 몇 배라는 것은 상식 아닙니까?"

"그야 그렇습니다."

마지못해 인정하고 쓴 입맛을 다시는 지점장이었다.

"현지 시세로 70%를 적용하면 얼마입니까? 대충 따져보아도 지금의 세 배 정도의 금액이 나오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이상을 바라고 이곳 청주까지 내려왔는데 실망입니다."

내 로비자금을 받아먹을 때는 언제고, 역시 돈 장사 하는 족속들은 뱀보다도 차가운 냉온동물이었다. 나의 다그침에 비로소 가장된 화통한 웃음으로 답변을 시작하는 지점장이었다.

"하하하........! 처음에는 다 그렇게 주판을 놓아보는 겁니다. 다 아시면서 왜 이러십니까?"

"최종 가능금액이 얼마입니까?"

나는 웃지도 않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

"계산상으로는 4억2천이 나옵니다만, 위험률을 감안해서 4억으로 자릅시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시는지 모르지만 그곳이 금번에 아파트지구로 지정되었어요. 수년 내에 땅금이 최소한 10배로 오를 테니, 5억으로 해주세요."

"그건 무리입니다. 그 때는 그때고 우리의 입장에서는 현 시세를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서울 본점을 찾아가서 의논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안면이 있다고 찾아왔는데 은행이란 곳은 참 이상합니다. 국민들이 모두 저금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역마진으로 망하는 것 아닙니까? 진짜 행원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우리

같은 대출자인데, 대출하는 사람들은 마치 똥에 달려드는 똥파리보다도 못하게 취급하다니, 원.........."

나는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강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알만한 분이. 사업은 잘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이 자금을 어디에 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공장을 지을 거요."

"무슨 공 장..........?"

"실리콘 공장이오."

"네? 실리콘.........?"

"접착제라 할까, 마감제라 할까, 아무튼 미국은 물론 일본 시장에서도 선풍적인 인기 속에 팔리고 있는 제품이라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됩니다."

"요는 이번 대출금이 제조업에 투자된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제조업은 정부에서도 우대를 하니, 가능하겠습니다."

"이번에는 꺾기니 뭐니 그런 얘기 아예 꺼내지도 마십시오. 내 한국일보 정식기자라는 말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풍문으로 듣자하니 그런 말도 오가더군요. 뜻대로 하겠습니다."

"아, 얘들은 차 한 잔 내오랬더니, 죽은 거야, 산거야?"

괜히 부하직원들에게 짜증을 내는 연 지점장이었다.

"차는 됐습니다. 바로 서류작성으로 들어가시죠."

"알겠습니다. 내 대출과장을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이후 나는 제반서류를 꾸며 제출하고 5억이 든 통장 하나를 받아냈다. 물론 빌린 돈이지만 5억이 든 통장을 휴대하니 세상이 내 것 같은 게, 기분이 아주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나는 연 지점장의 하는 행동에 실망해, 점심값으로 단 돈 만원만 집어주고 입을 싹 닦았다. 다시는 안 볼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렇게 돈을 빌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동안 버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계속해서 과도한 지출만 했더니 돈이 부족해졌기 때문이었다. 물론 당장 운영비가 부족한 게 아니라 장차 투자할 돈들이 부족해졌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나는 이 돈으로 연장희 지점장에게 밝혔듯이 정말로 실리콘 공장을 지을 생각이었다. 내 사업을 위해서라도 실리콘은 앞으로 계속 필요할 것이고, 더 이상 왜놈들에게 소중한 달러를 상납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도 한 이유였다. 오늘 청주에 내려와서 계획한 일 중에 이제 하나만 남았다. 그간 나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찾아 대접하는 일이었다. 충북 담당이었던 본사 박 부장은 금번 3월 달 승진 인사에서야 비로소 판매국장이 되어 서울로 올라갔으니, 청주에 없을 것이고, 주 재후 주재기자나 있으려나 하고 나는 기자실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았다. 보나마나 토요일 오후고 하니, 어느 골방에 처박혀 카드나 치고 있을 것이다. 남이 잃어주는 돈에 헬렐레 하고. 이어 나는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윤 경장을 찾았다. 돌아온 답은 그가 남주동 파출소로 전근되어 그곳에서 근무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마침 근무 중이라 자리에 있었다. 곧 내게 전화를 바꾸어 주었다.

"여보세요?"

"싸부님! 저 대정이입니다."

"앗, 마! 살아있었냐?"

"그럼은 요."

"무심한 놈! 어디냐?"

"제일은행 앞 공중전화인데요. 오늘 시간 좀 있으세요?"

"그래 오늘 저녁 8시면 근무 교대다."

"너무 늦는데........."

"무슨 일인데, 또 어디 가서 싸움박질이나 하고 그런 건, 아니지?"

"제가 철없는 어린애 입니까?"

"내 눈에는 아직도 그렇게 보인다. 그래, 용건이 뭐야?"

"식사 한 끼 대접해 드리고 싶어서요."

"네가?"

"네!"

"하긴 요즈음 네게 뭔 사업인가를 한다고 소문이 파다하더만은....... 사업은 잘 되고?"

"그러니까 밥 한 끼 산다는 소리가 나오죠."

"그래, 좋다. 몇 시에 어디로 가면 되냐?"

"8시까지는 근무시라면서요?"

"아, 그거야, 요령껏 좀 땡겨나오면 되지."

"알겠습니다. 그럼, 6시에 요정에서 뵐까요?"

"네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몰라도, 우리는 시오야끼집 정도면 아주 닥상이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제가 시간돼서 모시러 갈게요."

"기다리마."

"네, 들어가세요."

"오야!"

오후 6시 5분 전.

나는 남주동 파출소 앞에 차를 대기시키고, 파출소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아,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윤 경장은 나의 인사에 비로소 시간이 되었음을 자각하고 사복으로 갈아입으려고 서둘렀다.

"그런데 싸부님 진급하셨습니까?"

만년 잎사귀가 두 개가 이제야 세 개로 바뀌어 있어서 내가 물어보았던 것이다.

"아, 그 이야기는 새삼스럽게 왜 하냐?"

창피하다는 듯이 평소의 윤 경장답지 않게 볼까지 긁으며 겸연쩍어하는 그였다.

"내 얼른 옷 갈아입고 올게."

그의 마음을 반영하듯 그는 재빨린 파출소 한편에 마련된 방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나는 내심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윤 경장이 오랫동안 이 계급에 묶여 있었던 이유를 그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경장에서 경사로 막 진급하려할 즈음이었다. 윤 경장이 야간 근무를 서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술 취한 젊은 두 놈이 지나가던 행인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누구인지 모를 신고로 잡혀들어온 일이 있었다. 이에 윤 경장이 진술서나 한 장 받아놓고, 좋은 말로 훈방조치 해 보내려는데, 진술도 거부하며 시종 깐족대더란다.

그 당시만 해도 경찰의 권위가 대단해서, 봉급을 일반 공무원 절반 정도 밖에 주지 않고 남 등쳐서 먹고 살라고 내몰 때였다. 그런 판에 이놈들은 아주 유별난 놈들이었다. 술이 너무 취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한쪽 구석에 자라고 했더니, 자기는커녕 괜히 파출소에 들어오는 사람마다 시비를 걸고, 계속 술주정을 하기에 몇 대 머리를 쥐어박은 게 도화선이 되었다.

경찰이 사람 친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한 놈이 달려들었고, 윤 경장은 어이가 없어서 노려만 보고 있으니, 이 치가 네가 그렇게 세냐고 하며 주먹을 날렸다. 윤 경장이 피하자 마구잡이로 달려드는데 얼결에 또 윤 경장이 맞았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난 윤 경장이 뒤는 생각도 못하고 흠씬 두드려 팼는데, 이것이 사건화가 된 것이다. 전치 4주의 부상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합의도 안 해주니, 이건이 상부에까지 보고되어 징계위원회에 회부가 된 것이다.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되듯이, 이 또한 경찰관이 선량한 시민을 팼다고 뉴스가 되어 지방 신문에까지 보도가 되었다. 이러니 경찰 자체 징계지만, 징계하는 사람들도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오늘날까지 그 멍에를 짊어지고 있다가, 금년에야 그 멍에를 벗으면서 파출소 근무로 명받은 것 같았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회상에 빠져있는 동안에 윤 경장 아니 윤 경사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아무튼 진급 축하드립니다!"

"고맙다!"

"어디로 모실까요?"

"아까 얘기하지 않았어? 고기집으로 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타시죠?"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덧 내 차 앞까지 와 있었다.

"아니, 이제 차도 샀냐?"

"서울과 청주를 오락가락 하려니 번거로워서 하나 뽑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잘 나가나보네. 늦었지만 서울대 입학도 축하한다."

"고맙습니다. 얼른 타세요."

"그래. 우리 제자가 모시는 차로, 목구멍 청소 좀 한 번 하러 가볼까?"

내가 문을 열어주니 뒷좌석에 앉으며 자랑스럽게 말씀 하시는 윤 경사님이었다. 나는 곧 윤 경사님을 모시고 평소 내가 제일 많이 들렸던 옛 지사 앞 삼겹살집을 찾았다.

"어서 오세요. 지사장님!"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반색을 했다.

"참, 지사 그만두셨죠? 어디서 사업을 하신다는 것 같더니........"

"네, 쪼그맣게 가게 하나 냈습니다. 방은 있죠?"

"네, 얼른 들어가세요. 아직 초저녁이라 방이 있네요."

나는 윤 경사님을 모시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리를 잡자마자 주문을 했다.

"삼겹살 오인 분에 소주 아예 세 병 갖다놓으세요."

"네. 손님이 더 오십니까?"

"아니오."

"주문량이 많아서.........."

"다 먹을 수 있으니 가져오기나 하세요."

"네!"

주문이 끝나자 윤 경사가 내게 물었다.

"그래,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사부에게 고기를 다 산다하고........"

"처음 사부님이 빌려준 10만 원이 큰 사업 밑천이 되었습니다. 보실래요? 한 번?"

그렇게 말한 내가 주머니를 뒤져 통장을 꺼내 보여드렸다. 5억 원이 예치되어 있는 대출통장이었다.

"아니, 이게 공이 몇 개냐? 도대체......... 일, 십, 백, 천, 만, 십만........... 아이고, 도대체 눈이 어질어질 해서 계산을 못 하겠네. 이게 도대체 얼마냐?"

"5억 원입니다."

"뭐? 5억 원........?"

정말로 뒤로 상체가 뒤로 넘어가는 윤 경사님이었다. 당시의 시세나 지금의 물가를 감안하더라도 최소 현 100억 원 가치가 있는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이게 네가 다 번 거냐?"

"비록 대출이지만 번거나 마찬가지죠. 땅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것인데, 그 땅을 당장 팔아도 이 보다는 더 받죠."

"그러고 보니 너 어마어마한 부자로구나! 내 이럴 줄 알았으면 요정집으로 간다할 때, 그곳으로 간다할 걸."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괜히 내가 해본 소리다. 돈이란 건 말이야. 항상 벌기보다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어린 나이에 돈 좀 벌었다고 자만하지 말고, 항상 올바른 일에 돈을 쓰고 헛돈은 절대 쓰지 말아야 된다. 알았지?"

"네!"

"그래, 돈 좀 벌었다고 이 사부 대접 좀 하려고?"

"네, 사람이 은혜를 잊으면 짐승과 다를 게 뭐 있어요?"

"아니야, 절대 그렇지가 않아.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이 남에게 은혜 입은 것은 쉽게 잊어도, 남에게 자신이 베푼 것은 오래 기억하는 법이야. 그러기 때문에 보은을 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가 칭찬을 하고 사람 됨됨이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지."

"그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만 저만은 그렇게 안 살고 싶습니다."

"좋아, 아주 좋아! 내가 아주 제대로 가르쳤군. 오늘은 안 얻어먹어도 벌써 배가 불러 만고강산이야. 하하하.........!"

윤 경사의 유쾌한 웃음소리가 멀리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 작품 후기 ============================요사이는 날씨가 포근해서 참 좋습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열심히 글로 보답할 수밖에 없겠지요?

^^늘 행복하시고, 편안한 날들 되세요!

^^

"대단히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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