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88화 (88/322)

< --성공의 셋째 계단-- >

여 과대표가 탁자 한가운데에 여학생들의 소지품을 우수수 쏟아놓았다. 퀸카로 지목한 제법 예쁘장한 여학생은 물론 나머지 14명의 여학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꽂혔다. 자신의 물건을 집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집어달라는 애원이 담긴 시선들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불관언 팔짱을 낀 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옆의 과대표가 내 옆구리를 쿡 찔렀으나 나는 시종 그 자세를 견지했다. 이때 남학생들은 다투어 소지품을 집으러 갔다. 순식간에 탁자 위의 물건이 없어졌다. 그리고 탁자 위에는 달랑 하나의 물건만이 남아있었다. 곧 빛바랜 노란 은행잎이었다.

"야호.......!"

한 여학생이 두 손을 번쩍 치켜들며 만세를 불렀다.

"흥!"

"아........!"

"치워!"

냉랭한 콧방귀소리, 탄식과 야유가 일제히 여학생들의 입에서 쏟아졌다. 그러나 나

의 시선은 여전했다. 과대표가 일어나 발언을 했다.

"지금부터는 각자의 파트너와 개별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다닥다닥 붙여져 있던 탁자를 떨어뜨리며, 서로는 각자의 파트너를 찾아 분주하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소리 나지 않게 내 옆자리에 와서 앉는 게 느껴졌다.

"나가실까요?"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네?"

나는 비로소 내 파트너가 된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안경을 낀 제법 반반하게 생긴 여학생이었다. 여학생이 붉어진 얼굴로 얼른 시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들릴락 말락 할 정도의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도 한 잔 마시고 나가야........"

"시간이 없어서요."

"아, 네........"

그리고 나는 벌떡 일어나 다방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여학생이 종종 걸음으로 내 뒤를 쫓았다. 나는 거리로 나오자 미리 준비한 쪽지를 여학생에게 주며 말했다.

"다음에 연락주세요."

"네?....... 네!"

나는 손을 흔들어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여학생은 그 자리에 서서 망연한 시선으로 나를 쫓고 있었다. 물론 내가 전한 전화번호는 가짜였다. 나는 복잡한 보도를 빠져나와 차가 세워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나는 단둘만의 이불속에서 미정에게 오늘 낮에 있었던 미팅 건을 고백했다.

"그래서요?"

"과의 위상이 안 선다니 어쩌겠어, 눈물을 머금고 참석을 했지."

"그랬는데요?"

미정의 목소리가 새침해졌다.

"여학생의 소지품을 집어 파트너를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때 내가 어렵게 참가한 반대급부로 과대표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더니, 붉은 머리핀이 미팅 참석자 중에서 제일 예쁜 퀸카의 것이라고, 얼른 집으라고 알려주더군."

"그래서요?"

"여 과대표가 물건을 탁자 위에 쏟아놓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붉은 머리핀을 차지했지. 당연한 결과로 퀸카는 내 차지가 되었고."

"흥, 그래서요?"

"그런데 이 파트너가 얼마나 예쁘던지......."

"저리가요."

갑자기 미정이 이불을 확 걷어 치며 나의 등을 떠밀었다.

"그런데 당신보다는 훨씬 못했어. 이 세상에서 당신만한 미인이 몇 있겠어?"

"헤헤헤.........! 그렇지요?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이후, 차를 한 잔씩 마시고 이차로 레스토랑을 갔지."

"그런데는 뭐 하러 가요. 일차가 끝났으면 바로 집으로 오지."

"남들 다 가는데, 그 여학생의 자존심도 있는 것 아니야?"

"그렇다 쳐요. 그 다음에는 어찌 됐어요?"

"은근한 조명 밑에서 붉은 적포도주를 시켜놓고 칼질을 했지. 그리고......."

"더 듣기 싫어요. 다음은요?"

또 다시 쇳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미정의 목소리였다.

"포도주 한 병을 마시고도 부족해서 한 병을 더 시켜 마시자, 그 여학생이 은근히 취

기가 오르는지 살며시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오는 게 아니겠어?"

"저리가요."

또 다시 등을 떠미는 미정이었다.

"그래서 내가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

"뭐라고요?"

급히 묻는 미정이었다.

"난 유부남이라고."

"우와, 만세! 당신 멋쟁이!"

미정이 발작적으로 자다 말고 만세를 부르고 내 뺨에 키스를 하는 등 난리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다정이 깨어나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그 이후는 어떻게 됐느냐고?

급히 다정이에게 젖을 물려 재운 미정이 내 옆으로 찰싹 달라붙었지. 그리고 은근히 내 옆구리를 꼬집기 시작했어.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었는지 다정이만 안다. 눈 뜨고 보초를 서기 시작했으니까. 동생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

그 주 토요일.

이날 새벽 아니 밤중에 나는 집을 떠났다. 시속 120km 이상을 밟았더니, 1시간 30분 만에 나는 청주에 도착을 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30분이었다.

나는 곧장 남부지국으로 차를 몰았다. 곧 사무실에 도착해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배달 학생 하나만 나와 있다가 나를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잘 지냈니?"

나는 등을 두드려 그 학생을 격려한 후 다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나와 보니까, 아무도 없네요."

"알았다. 수고 하고."

"네!"

나는 조금 피곤하길래 그 길로 커피 한잔을 타서 마시며, 이날의 신문을 펼쳐들고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1시간 쯤 지나자 배달을 나갔던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니 강 기자님이 어쩐 일이세요?"

깜짝 놀라는 전 남부소장 이었다가 나에게 다시 체벌조로 3년 약속을 하고 근무하게 된 현 소장이었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도 하고, 지국 상황은 어떤지 살피고 싶었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출근은 다 한 건가요?"

"직원들은 다 나왔는데, 배달 학생은 체크를 해봐야지요."

말과 함께 남은 신문을 확인해보더니 소장이 말했다.

"다 배달 나갔네요."

2,000부가 다 나간다면 확인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을 텐데, 확인한다는 게 이상해서 내가 물었다.

"요즈음은 신문이 남습니까?"

"기를 쓰고 판촉을 해도, 요즈음은 200부 정도가 남네요."

"흐흠........! 이해는 합니다만, 곤란한 일이군요."

나의 말에 소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자전거를 쓰거나 하는 곳은 없습니까?"

상대측에서 자전거 판촉을 하거나 했으면 이 정도 부수도 유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물었다.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모두 재정들이 열악해서요."

"그렇다면 내 지원을 해줄 테니, 금번에 아예 자전거 판촉을 하세요. 신문도 필요하면 더 받고."

"네, 알겠습니다."

그래도 소장의 얼굴은 밝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신문이 많이 늘어나면 자신의 입장에서는 관리하기만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이때 내 밑에 있던 또 하나의 소장 양선기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나랑 동갑이나 이제 존대가 체질화 된 그였다. 전에 지사까지 발령이 났으나 자신은 새시 일보다도 신문이 낫다고 해서, 다시 남부지국 소장으로 발령 낸 친구였다. 그 바람에 남부에는 소장급이 세 명이었다.

"잘 지냈어?"

"네!"

"직원들 다 모이거든 아침 식사나 합시다."

"좋지요."

양선기가 아주 좋아라 했다. 조금 더 기다리니 나머지 소장 하나와 총무들이 모두 들어왔다. 잠시 더 기다리니 배달학생들마저 모두 들어왔다. 나는 배달학생들 까지 전부 데리고 남주동 해장국집을

찾았다. 나는 그곳에서 각자 먹고 싶은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이고 총무 이상은 술도 딱 한잔씩만 먹도록 했다.

지나친 술보다는 한두 잔 먹고 잠을 자면 그야말로 숙면을 취할 수 있기 때문에 권한 것이다. 매일 그러면 알콜 중독자가 되지만 가끔 너무 피곤할 때는 이 방법도 상당히 좋았다.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한 번 자전거 판촉을 할테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 하고 이들과 헤어졌다. 그리고 내가 집이자 내 공장에 와보니, 야간경비만이 아직도 순찰을 돌고 있었다. 지금 시간이 채 7시가 안 된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고 수고한다고 격려를 한 후 이층으로 올라갔다. 문을 두드리니 잠귀가 밝은 명희가 잠옷 바람에 문을 따주며 깜짝 놀라 물었다.

"아니, 오빠가 웬일이세요?"

"신문사에 들렸다 오는 길이다."

"남부 지국에요?"

"그래!"

"하여튼 오빠는 무서운 사람이야. 불시에 점검을 한 거군요."

"그런 면도 있고, 위로도 할 겸 겸사겸사."

이때 우리의 대화를 듣고 처제가 부스스 헝클어진 머리로 자신의 방에서 나와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형부!"

미처 내가 대답할 새도 없었다. 명희가 제 동생을 몰아세웠기 때문이었다.

"어머, 망측해라! 빨리 들어가."

브래지어와 팬티 바람에 처제가 나에게 인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실소를 금치 못하다가, 점잖게 말했다.

"감기 걸린다. 옷 좀 입고 자라."

"열이 많아서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언니의 눈총에 얼른 제 방으로 들어가는 순희였다.

"우리도 방으로 들어가지."

"네, 오빠!"

방으로 들어오자 나는 팔을 벌리고 말했다.

"우리 아기 어디 안아나 볼까?"

"쳇, 맨날 아기래."

그러면서도 다가와 살포시 내게 안기는 명희였다.

"오빠 배고프지 않아요?"

"해장국 한 그릇 먹고 오는 길이다. 배는 괜찮은데 아랫도리가 고프다."

"뭐예요?"

얼른 내 품에서 벗어나려는 명희였다. 그러나 가만히 두고 볼 내가 아니었다. 나는 명희를 번쩍 안아들어 침대로 집어던졌다. 그리고 레슬링을 하듯 위에서 덮쳐눌렀다. 다음 수순은 정해져 있었다. 바동거리는 그녀를 강제로 옷을 벗기는 일이었다. 그래봐야 미온적으로 처음에는 저항하는 듯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옷을 벗는 명희였지만 말이다. 행위를 끝낸 내가 명희를 끌어안고 말했다.

"이번에 경리 뽑으면 너는 공부에만 전념해."

"네? 그러면 사무실 운영은 어떻게 해요?"

"네가 사무실 다 운영해왔니?"

"헤헤헤........! 그건 아니지만."

"언니도 그렇게 시킬거야. 아니 언니부터 네 문제를 거론해 나에게 그렇게 해주기를 바라더라.

"언니도 참, 미워할 래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야."

"그러니 언니한테 잘해라."

"알고 있어요."

"아무튼 내 말대로 그렇게 할 생각하고, 혼자 공부하기 힘들 테니, 학원이라도 알아봐라."

"네, 오빠!"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해야 된다."

"네! 그런데 조금은 자신이 없네요. 공부에 손 놓은 지가 오래돼서."

"뭐든지 열심히 하면 하게 되어있어. 정신 자세가 중요한 거야. 내말 명심하고 열심히 해."

"네, 오빠!"

"그만 일어나야겠다. 가서 아침 조회해야지."

"저도 곧 뒤따라 내려갈게요."

"그래, 알았다."

이후 내가 재빨리 샤워를 끝내고 나니 7시 40분이었다. 얼굴에 크림이라도 바르고 있는 명희를 내버려 두고 나는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아니, 사장님!"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마 부장이하 간부사원들이었다. 내가 없어도 마 부장 주재로 아침 회의를 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이 명희 씨가 늦어 차도 한 잔 없네요."

"그럴 때도 있죠, 뭐. 정 마시고 싶으면 우리가 타 먹어도 됩니다."

마 부장과의 회식자리 이후 새롭게 달라진 안창명 과장의 말이었다.

"하던 회의 계속하시죠."

"아, 아닙니다. 사장님 말씀이 계시면 하세요."

"그럴까요?"

나는 비로소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다른 이야기보다 기쁜 소식 하나를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금번에 제가 한국유리 사장과 담판을 지어, 청주에는 충북 대리점을, 서울에는 서울 강남 대리점을 따냈습니다. 그런지 아시고 앞으로 유리 거래는 한국유리와 다이렉트로 하십시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사장님!"

마 부장 이하 모두 반기는 직원들이었다.

"특별한 사안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나 먼저 자리에 일어나겠습니다. 하던 회의 계속하십시오."

"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단종 사무실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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