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83화 (83/322)

< --이중생활-- >

"대충 공장의 분위기 파악은 된 것 같고, 내 부장님께 도면을 드릴 테니, 지난번에 얘기한 베란다 새시 샘플 작업 좀 해주시죠?"

"아, 네!"

내가 차로 가기위해 모두 따라 일어섰다.

"김 주임은 거기 그냥 앉아 있어요."

"네, 사장님!"

나는 차 뒤 트렁크에서 도면을 꺼내 주며 마 부장에게 말했다.

"이 도면의 거실 창 크기대로 제작하시되, 폭은 두 배로 늘려주세요. 그렇게 해서 직사각형의 모양이 나오게 해주세요. 그러니까 폭이 배로 커진 놈들을 양쪽에 하나씩 배치하고, 앞뒤로는 정 사이즈로 제작해 사면을 이어붙이면, 내부에 들어가 업무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을 각 단지에 하나씩 두 개를 제작해 주세요."

"네, 다 완성이 되면 서울로 싣고 올라 갈 것이니 그 문제도 고려하시고요."

"네, 사장님!"

"일단 들어가 더 말씀 나누십시다."

"네!"

자리로 돌아오자 내가 다시 기쁜 소식을 전했다.

"금번에 대한민국에서는 최고로 크게 또 높이 짓는 대우빌딩의 새시와 유리를 제가 수주했습니다."

"우와........! 우리 사장님 정말 갈수록 멋쟁이시네. 그러니 5층짜리 건물도 시시하다고 마다하시지."

김 주임의 말에 내가 다만 미소를 짓고 있는데 마 부장이 축하인사를 건넸다.

"진심으로 축하를 드립니다. 사장님! 반포주공에 이은 또 하나의 개가군요."

"하하하........! 내일 같이 기뻐해주니 내가 더 오히려 고맙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남이었습니까?"

마 부장의 제대로 된 반격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제 대충 내가 궁금해 하던 사안과 전달하고픈 사항은 다 전달한 것 같았으므로 나는 일단 두 사람을 내보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결재를 필요로 하는 사안에 대해 빠른 속도로 결재를 하고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로부터 절단 실과 조립가공 공장을 한 바퀴 돌아보며 직원들을 격려한 후 일찍 퇴근을 했다. 그래봐야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간 것이지만 서도. 이때 나는 명희에게 물어 특별히 할 일이 없다기에 그녀마저 데리고 2층으로 올라갔다. 미정이 때 이른 저녁을 짓다말고 우리를 맞았다.

"벌써 퇴근하신 거예요?"

"음........! 벌써 저녁 짓는 거야?"

"네. 그새 남의 살림이 되다보니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잘 몰라, 혼났어요."

이때 명희 동생 즉 처제 순희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무심코 인사를 했다.

"학교 다녀왔습니다."

"처제! 잘 지냈어?"

"어머, 형부! 언제 내려오셨어요?"

"좀 전에."

나는 대충 둘러대고 미정의 얼굴을 보았다.

"둘은 구면이잖아? 왜 서로 인사를 안 해? 처제 네가 먼저 인사를 해야지. 언니보다도 한 살이 위인데?"

"안녕하세요?"

마지못해 인사를 하고 제방으로 지정된 방으로 슥 들어가는 순희였다. 철없는 아이의 행동 때문에 우리 집안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앞으로는 제가 먼저 인사를 할게요. 그러면 인사 정도는 받지 않겠어요."

미정의 말에 명희가 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언니, 그런 말씀 마세요. 제 동생이니 제가 앞으로 철저히 교육시킬 게요."

"그건 명희 말이 맞아."

"그러는 당신도 틀렸어요."

내가 중간에 심판자가 되어 제법 무게를 잡고 말하는데, 돌연한 미정의 말에 뜨악한 얼굴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살까지 다 섞고 양가집도 다 아는 마당에, 매번 어떻게 된 게, 명희가 뭐예요? 명희가!"

"나도 오빠라고 부르는데요. 뭐?"

"그럼, 동생도 잘못이지."

"허, 참! 앞으로 너 오빠라고 부를지 말고 여보나 당신 아니면 자기라고 날 불러라. 그럼 나도 그렇게 부르지."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을 것 같네요. 어려서부터 워낙 입에 붙어놔서."

"그래도 불러야지요."

교과서적인 말만 해대는 데야 둘은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나를 살려주는 것이 있으니, 주방에서 나는 냄새였다.

"여보, 뭐 탄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후다닥 주방으로 달려가는 미정이었다. 그러자 내가 익살스러운 얼굴로 명희를 불렀다.

"당신, 이리 좀 와 봐!"

내 말에 홍당무가 되는 명희였다. 그러면서도 안방으로 향하는 나를 잘만 따라왔다.

"짜잔~! 이게 뭔지 알아?"

"어머, 선물 이예요?"

"그래, 일본 갔다 온 기념으로 하나 샀다."

"어머, 좋아라! 뭔데요?"

"풀어봐!"

"네!"

포장지를 벗겨낸 명희의 반응.

"어머, 향수네! 그런데 내가 이거,쓸 일이 있을까?"

"밤에!"

"네?"

"왜 이렇게 놀라? 나는 여자의 체향도 좋지만 은은한 향수냄새도 좋더라."

"쳇, 알고 보니, 속셈이 있었네요. 에요! 도로 가져가세요."

"뭐?"

"장난이지 롱. 그런데 오빠 이것 어떻게 사용하는 거야?"

"방금 그렇게 혼나고도 오빠냐? 이것은 살짝, 정말 살짝만 눌러야 돼. 그래가지고는 이리 와봐. 실제로 사용하게."

"네."

말은 잘 듣는 명희였다.

"벗어!"

"네?"

"윗옷만 벗어 겨드랑이 나오게."

"쳇, 제모도 안 했는데?"

"정말?"

"왜 이렇게 좋아 하세요?"

"나는 제모 안 한 게 더 좋더라. 섹시한 게."

"별걸 다 좋아하시네. 좀 지저분해보이지 않아요?"

"전혀!"

"그럼, 난 앞으로 제모 할 필요가 없겠네."

"그래, 그렇게 해."

"아이고, 좋아라! 귀찮은 일 덜어서."

"두 번만 제모하지 말랬다가는 춤이라도 추겠다."

"헤헤헤.........!"

"얼른 벗어 봐."

"네. 정말 흉보기 없기 예요?"

"그럼, 그럼."

나는 명희가 옷을 벗는 동안 안방 문을 걸어 잠궜다. 누가 들어오면 오해받기 딱 좋은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명희가 브래지어 차람으로 서있자, 그녀에게 천천히 접근했다. 부끄러움으로 차렸자세로 양팔을 꼭 붙이고 있는 명희였다. 나는 살짝 그녀의 팔을 들어올렸다. 거부하지는 않았다. 다만 얼굴을 조금 붉혔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거뭇거뭇 올라오기 시작하는 거웃을 보며 겨드랑이 밑에 살짝 향수를 뿌렸다 순식간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 좋은 향기가 온 방안에 가득 퍼졌다.

"이렇게 사용하는 거야. 그리고 외출복을 입었을 때는 소매 끝에 살짝 묻히는 정도로만 사용하고. 알았지?"

"옷 입고 제가 한 번 해 볼게요."

"해보던지."

명희는 신속히 옷을 다 입고 내가 알려준 대로 향수를 뿌린다고 뿌렸으나, 너무 길게 눌러 온 방안에 향수냄새가 진동을 했다.

"좀 더 짧게. 너무 많이 뿌리면 천박해 보이는 게 , 이 향수 냄새야. 명심해!"

"알았어요. 한 번 안아 주세요."

"그래, 그래 우리 아기! 어디 안아 불까? 젖도 좀 더 커졌는지 만져보고."

"몰라욧!"

나의 말에 방문을 따고 도망가는 명희였다. 그러나 그녀의 흔적은 계속해서 남았다. 아니 어디를 가나 그 냄새 때문에 오늘만은 어디를 가도 다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어이 사달이 났다.

"아이고, 냄새! 명희 씨 것도 사왔나 보네요."

"맞아! 오늘밤은 당신도 사용하고 자."

"독수공방일 텐데, 누굴 위해 사용해요?"

미정의 날카로운 반박에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는 말을 아마도 이때 쓰는 말일 것이다.

나는 바로 다음날 새벽 같이 서울로 올라와 등교를 했다. 그래봐야 목, 금, 토 삼 일이었다. 그것도 토요일은 2시간이라 재껴버렸다. 학교라고 가봐야 아는 놈 하나 없었고, 교양과목 위주라 강의실은 메져라 터져라였다. 대개 두 개과 내지 심하면 세 개과까지 합반을 시켜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 더군다나 공대라 수놈들만 우글우글하고 여자들은 눈 씻고 찾아봐야 할 정도로 희귀동물이었다. 다행히 우리 과는 40명 정원에 5명으로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나으면 뭘 하나, 공부 잘 하는 여자 얘들이 대부분 그렇듯 두터운 뿔테 안경은 끼고 못 생긴 편이었다. 사실 나로서는 별 관심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나마 어쩌다보니 같은 충북 출신으로 청고 동기였던 놈 하나와,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들었을 충주고 학생 하나를, 알음알음 알게 되어 안면을 튼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나는 열일을 제쳐두고라도 매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사며 환심을 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당연히 대리출석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이렇게 개학시즌의 한 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동안 사업적으로 한 일은 토요일 날 가나실업 조동호 부장에게 부탁하여 신용장을 개설하고, 반사유리 수입 건 일체를 맡긴일 뿐이었다. 월요일 아침.

나는 새벽일찍부터 일어나 모처럼 운동도 하고, 조립식이 지어지는 내 땅에도 찾아가 보았다. 나름 바닥정지 작업은 물론 콘크리트까지 처져 오늘은 아직 양생이 다 안 되었지만, 사무실 동만은 조립식으로 짓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수고 좀 해달라고 격려의 말을 남기고 등굣길에 올랐다. 그리고 9시 첫째 영어 시간이었다. 세 개 반이 합동강의실에 모여 강의를 들으려 와글와글 돛대기 시장을 방불케 하는 데, 문 입구부터 소란스러워지더니 한 사람이 교단 위에 올라서는 순간, 완전히 실내가 정적에 휩싸였다.

담당교수가 올라와서가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내 첫사랑인지 웬수인지 모를 황수정이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강 대정 나와라. 피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오늘은 나왔겠지? 빨리 나와라. 더 개망신 당하지 말고."

'아이고야!'

머리를 감싸 쥔 나는 내심 쥐구멍이라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와글와글.

실내는 박수소리와 환호, 저희들끼리 수근대는 소리로 정말 난장인데, 나를 아는 놈들은 또 내게 시선을 보내기까지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당당하게 나가기로 했다. 내가 죄 지은 것도 없는데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야, 황수정! 지금 무슨 짓이야! 따라 나와!"

나의 이 외침에 완전히 합동강의실이 뒤집어졌다.

그 다음은 나도 모른다. 황수정을 데리고 강의실을 빠져나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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