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82화 (82/322)

< --이중생활-- >

문 특파원이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일본에서 최신 유행하는 가라오케 주점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맥주를 시켜놓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문정형 씨야 주일 특파원이니 엔카니 뭐니 유창하게 불렀지만, 나와 박 사장님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왜정 때 소학교를 다녀 일본말을 조금 안다는 박 사장님도 일본 노래는 전혀 몰라 겨우 부른다는 것이 조회 시간에 매번 불러 지금도 가사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일본 국가 '기미가요(君が世)'를 부르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더 해서 일본 노래는 한 곡도 못 부르고, 마침 나로 치면 올드 팝송이 몇 곡 있어서 그것을 불렀다. 나는 노래보다도 100엔을 넣고 5초 후면 나오는 이 반주기에 더한 관심을 가졌다.1990년 대 이후 한국인에게는 광풍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있는 노래방 문화의 시발점이 이 기계로인 것을 금방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막간을 이용해 내일은 이 기계를 한 대 사는데, 동행해달라고 문 특파원을 졸랐다.

결국 오늘 술값은 내가 내는 조건으로 쾌락(?)을 받고, 나는 일본의 밤을 접어야 했

다. 그 이튿날 우리 일행은 긴자의 전자상가가 밀집한 지역에 가서 가라오케 반주기도 한 대 샀다. 나는 이것을 다음 반사유리 선적 편에 부쳐줄 것을 요청하는 것으로 일본행을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실수가 있었으니 명희용 향수 한 병을 일본에서 사온다는 것을 또 깜박해, 그것도 공항 밖으로 나와서야 생각이 나서, 김포공항으로 다시 쫓아 들어가는 해프닝을 벌였다. 이 모양을 보시고, 벌써 결혼한 것도 놀랍지만, 애처가라고 박 사장님으로부터 단단히 놀림을 받았다. 하지만 끝내 마누라가 둘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향수도 한 개만 샀으니, 알 턱이 없었고.

아무튼 이럭저럭 이날 내가 오후 늦게 집에 도착하니 집안에는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원래는 오늘이 내 입학식이었다. 하지만 나는 미리 명희에게 전달을 해, 가족들은 입학식에 못 오도록 한 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전혀 이 문제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물론 장모님까지 오셔서, 그야말로 우리 집이 먹자판이 되고 있었다. 장인어른은 오늘이 3월 2일 화요일이다 보니 아마 근무 때문에 못 오신 것 같았다.

"야, 야! 사위, 마침 잘 왔데이. 여기 앉아 보기라."

벌써 약주를 드셔 조금은 취하셨는지 경상도 사투리가 막 나오기 시작하는 장모님이셨다. 나는 옷도 벗지 못한 채 장모님에게 이끌려 주안상 한 머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앉으며 대충 부모님께 눈인사 드리는 것이 인사의 전부였다.

"어디 갔다, 인제 오노? 내 잔 한 잔 받기라이."

나를 끌어다 앉힌 것도 부족해 아예 술잔까지 들려주는 장모님이셨다.

나는 마지못해 국대접을 들고 장모님이 따라주는 막걸리를 받고 있어야 했다. 이때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있던 미정이 쫓아와 말했다.

"너무 많이 주지 말아요. 엄마! 이 이는 매일 술이란 말 이예요."

"그렇게 말하면 어째. 내가 술꾼 같잖아. 그리고 요즈음은 한 동안 뜸했잖아."

"내 사위가 술꾼인 건, 초장부터 알아 봤데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마시기나 하레이."

"아이고, 그냥 엄마는 사위 아주 주태배기 만들라고 작정한 사람 같아."

"저 년이 지금 뭐라고 씨누리노?"

미정의 톡 쏘는 말에도 아랑곳없는 장모님이셨다. 나는 단숨에 막걸리 잔을 비우고 장모님에게 술 한 잔을 따르며 부모님께 물었다.

"오늘 오시지 말라는 연락 못 받으셨어요?"

"받긴 받았다. 하지만 사부인의 극성에 오고야 말았다. 집 구경도 하신다기에, 나도 구미가 동했다. 니 아부지나 나나 서울 구경은 오늘이 처음 아니냐?"

요는 미정이가 벌써 저희 친정엄마에게 서울에 집 샀다고 자랑을 아주 늘어지게 한 모양이었다. 그러니 장모님이 핑계 삼아 서울나들이들 한 것 같았다. 거기에다 사부인까지 동행을 한다니 이참에 생전 처음 서울나들이라도 한 번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자식들은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다. 자신 위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매번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아무튼 이때부터 나는 술상 머리에 잡혀 술을 계속 마셔야 했다. 그러던 중 이제 화제가 이 집으로 옮아 붙었다.

"이 집을 얼마 주고 샀다고?"

오늘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가 과음을 하는 것을 보았다. 마냥 기분이 좋으셨는지 사돈이 권하는 술을 초장부터 넙죽넙죽 받아 자신 어머니의 혀 꼬부라진 물음이셨다.

"돈으로 5백만 원이 돈이 넘고요."

이래서는 화폐가치에 어두운 어머니는 내가 지금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했는지 제대로 모르신다. 그래서 적절한 비유를 해야했다.

"산골다랑이 논 30마지기 이상은 살 돈을 줬습니다."

"우리 아들 정말 부자네. 며느리한테 들으니 승용차도 샀다며?"

"차는 이번에 산 승용차 외에도 청주에 세 대가 더 있습니다. 그래도 부족할 것 같아, 앞으로 최소한 세 대는 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차 부자 되겠다. 그 비싼 차를 뭔 놈의 걸 그렇게 많이 샀노."

이제 장모님까지 자랑스러움이 지나쳐 걱정이 되는 목소리로 끼어드셨다. 이 때 아버지도 한 마디 거들고 나오셨다.

"차가 꼭 필요하면 사야 되지만, 세상에 돈 무서운 줄 알고, 함부로 낭비하지 말거라."

"네, 아버지!"

"그러고 보니 막걸 리가 없다 아이가? 미정이 너 싸게 가서 막걸리 좀 사오니라."

장모님의 말씀에 미정이 화를 벌컥내었다.

"엄마, 여기가 어디 촌 동네 전방인 줄 알아. 막걸리 사려면 한 참을 가야한단 말이야."

미정의 말은 거짓말이었다. 술을 더 이상 사오지 않기 위한 핑계였던 것이다.

"그러면 어쩌누? 사위가 퍼뜩 가서 사올래?"

"누구 망하는 꼴 보려고 그러나, 엄마는. 음주운전이란 말이야, 음주운전!"

"음주운전이 뭐 어때서?"

"아이고, 참. 이 대도시는 요. 술 마시고 운전하다 걸리면 벌금도 벌금이지만 유치장에 간답니다."

아버지까지 며느리 편을 들어 말리자, 이때부터 장모님의 기가 한풀 꺾였다. 더 이상 마실 술이 없기도 하려니와, 술이 벌써 많이 취하신 까닭이었다. 분위기가 좀 정리가 되는 듯하자 미정은 곧 저녁상을 대령했다. 비록 지금말로 소면 한 그릇씩이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첫날 수업도 빼먹고 세 분은 물론 미정이 까지 모시고 청주로 향했다. 내가 전생에서 대학시절을 보내서 알지만 첫 시간부터 수업은 무슨 수업. 대개의 경우 교수 자신의 소개와 배울 내용, 그리고 이런저런 잡담으로 두 시간 수업 중 한 시간을 때우고, 그냥 마치는 것이 이즈음 학교수업의 통례였다. 아무튼 미정이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미정은 가는 내내 편하게 혼자 갔다. 다정이는 뒷좌석에 앉은 세 양반 품을, 마치 공기 돌이 놀림을 당하듯 번갈아 왔다갔다해야 했다. 녀석이 그래도 낯은 가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저를 예뻐하는 것은 아는지 부모님이나 장모님과도 어리광을 피우며 잘 놀았던 것이다. 나는 기왕 세 분을 모신 길에 아예 처갓집과 촌의 부모님 댁까지 모셔다드렸다. 처갓집에서는 물론 촌의 고향집에서도 최신형 승용차가 마을로 들어오니 호기심에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장모님이나 부모님은 이를 뿌듯한 마음으로 바라보시며 아주 흐뭇해 하셨다. 아무튼 고향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청주 집으로 돌아온 나는 업무부터 챙겼다. 미정은 당연히 2층으로 올라가고 나는 바로 사무실로 직행했던 것이다. 밖에 있던 마 부장이 나의 출현에 쫓아들어오며 물었다.

"사장님! 승용차도 한 대 사셨습니까?"

"필요해서요."

"어머, 우리 사장님 갈수록 이제 멀어지겠네."

이를 듣고 하는 김 주임의 말에 나는 이해가 안 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점점 품위를 갖추시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 되는 거죠."

"하하하........! 난 또, 뭔 소리라고. 그렇지 않아요. 내 마음은 초심(初心) 그대로이니."

이때 명희도 누가 전해주는 소식을 들었나보다. 사무실에 나타나 뾰루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제 사무실로 먼저 오실 줄 알았어요. 보고 싶지도 않았죠? 그쵸?"

"아, 이젠 우리 명희까지 시샘을 하니 나는 어쩌면 좋으냐? 그래 이놈아! 안 보고 싶었다."

나는 솔로의 염장을 잔뜩 지르며 누가 보거나 말거나 명희를 꼭 끌어안았다. 나의 이 행위에 명희가 내 품에 안겨 눈가를 훔쳤다.

"자, 이 오빠 일해야 되니, 회포는 이따 풀고, 가서 차나 맛있게 타오렴. 알았지? 우리 아기!"

"쳇, 맨 날 아기야!"

투덜거리면서도 찻물을 올리러 가는 명희였다.

"부장님, 김 주임 내방으로 들어오세요!"

나는 내 방으로 향하며 두 사람을 불렀다.

마 부장과 경리 김명자 주임이 자리를 잡자마자 내가 물었다.

"이력서는 많이 들어왔습니까?"

"어제는 간혹, 오늘부터 쌓이기 시작하네요."

"기간 명시한 대로 1주일 후에는 사전 통보하고 면접해야 하니 잘 모아 두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요즈음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충북대 현장은 25일 날 끝나 27일까지 검수가 끝났고요."

마 부장이 말을 더 이으려는데 김 주임이 끼어들었다.

"수금까지 마쳤습니다. 사장님!"

"잘 하셨고요. 주공아파트 조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열심히 하고는 있으나 워낙 물량이 많아 놓으니 태부족이죠. 우선 일차 조립 분을 가지고 서울 현장에 시공팀 띄웠습니다."

"진즉에 저에게 이야기를 하시지요. 그들의 숙식은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조립이 너무 달리다 보니 현장 분위기 파약 겸 이 수경 과장만 조수와 함께 보냈습니다. 이 과장의 친척이 거기 있다길래 당분간은 기기서 머물기로 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이래저래 직원들의 친척들까지 폐를 끼치는 군요. 조금 참으면 앞으로는 그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서울 내가 사놓은 땅에 조립식으로 숙소는 물론 식당까지 짓고 있으니, 서울 사람은 물론 청주 사람이 올라와도 주거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갈수록 우리 회사가 거대해지는 느낌이네요. 아주 기분이 좋습니다."

마 부장의 말에 이어 김 주임도 가세를 했다.

"초창기 멤버인 저로서는 상전벽해가 된 느낌 이예요."

유독 초창기 멤버라는 말을 강조하는 김 주임의 말에 나는 피식 실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명희가 차를 타들고 왔으므로 우리는 잠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중단했다. 명희 또한 사무실이 비었기에 일단 김 주임이 지키던 사무실로 갔다. 이에 따라 실내는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때 차를 먼저 마신 마 부장이 생각나는 것이 있는지 내게 물었다.

"참, 반사유리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번에 일본 출장을 가서 주문해 놓고 왔습니다."

"잘 되었네요. 아주 잘 됐어. 세원건설 사장에게 매일 어떻게 시달렸는지........"

마 부장의 말에 나는 물론 김 주임마저도 미소를 짓고 있었다. 김 주임까지도 그 심정이 이해간다는 듯이.

"강동선 씨와 이상백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번에 2층짜리 집 한 채를 맡아 짓고 있습니다."

"잘 됐군요. 서울에 계시는 것을 내가 불러 내렸더니, 부담이 커요."

"일거리는 절대 끊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제가 낸 견적 중에도 저 북부 진천방면으로 율량동에 5층짜리 상가건물을 하나 견적을 내었는데, 조만간 의뢰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종합건설회사 하나 차려야 하지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네요."

"장차 저는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마 부장의 말에 나도 정색을 하고 대답했다.

"내 계획도 그래요. 하지만 아직은 이것도 시작단계이니 이것부터 잘 해봅시다."

"네."

"내 생각은 말이오. 5층짜리 건물 같은 것은 우리에게 의뢰가 들어와도 세원건설 같은데 주는 게 낫겠어요. 괜히 아직 역량도 되지 않으면서 골치 썩일 것 없이."

"어떻게 보면 사장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축적된 경험도 없이 큰 공사를 맡아, 감당 못하는 것 보다는 백 번 나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알기로도 동선이 형님도 그만한 공사는 해부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 분에 대해서는 나보다도 더 잘아시는 것 같아요?"

"저나 그 형님이나, 내 사정은 그렇고. 그 형님도 여기 혼자와 계시니 일찍 들어가 봐야 할 일이 없질 않습니까?"

"무슨 이야기인지 감이 잡히네요. 철물 단종면허는 찾아왔습니까?"

내 물음에 이번에는 김 주임이 대답을 했다.

"거기서 연락이 와서 제가 가서 찾아왔습니다."

"별일이네. 이제는 찾아가라 소리도 다하고."

나는 웃으며 다음 질문을 했다.

"두 영업사원은 어떻게 지내고 있습니까?"

"이제 청주 시내는 다 훑고, 요즈음은 청주 외곽도시를 돌아다닌다 하더군요."

"잘 하고 있는 모양이군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바 판매량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봄철 건설경기 철이 도래하지 않아 큰 물량은 없습니다만, 꾸준하게 나가고는 있습니다."

"동양의 영업부장 말로는 이미 판매량이 서부를 능가하고 있다더군요."

"절단해서 파는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곳의 큰 손님은 몰라도 작은 공업사들은 전부 우리에게로 와 사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 사장이 더욱 열 받게 생겼군."

나는 나직이 중얼거리다 이내 음흉한 웃음으로 변했다.

'나중에 방학 즈음에 한 번 보자. 너희들이 아주 된통 당하게 해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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