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생활-- >
다음날 아침 나는 일찍 신청한 전화로 일본의 문 특파원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형님!"
"덕분에."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또 출장을 가게 되었어요. 일본에 반사유리라는 것이 있는지 한 번 알아봐 주시고요. 알루미늄 바 건은 어떻게 추진이 되고 있습니까?"
"그쪽에서 신용장 개설을 해야 된다던데........."
"네, 그렇군요. 그 문제는 알아보고 적극 손을 쓰겠습니다. 반사유리나 좀 알아봐 주세요."
"반사유리?"
"맞습니다."
"오케이, 다른 일은 없고?"
"있지요."
"뭐?"
"형님, 건강 잘 챙기시라고요."
"고맙네! 내 건강 신경써주는 사람은 전 세계를 뒤져봐도 아우밖에 없어."
"오늘 따라 왜 이러실까?"
"하하하.........! 또 봄 세!"
"네, 형님! 수고하시고요."
"오야~!"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오늘 일정을 생각했다. 오늘 제일 급한 일은 뭐니 뭐니 해도 여권을 만드는 일과 광고를 내는 일이었다. 이는 모두 한국일보에 가야 되는 일이므로, 나는 제일 먼저 한국일보를 방문하기로 했다. 나는 비서실에 먼저 전화를 걸어 9시 30분에 장 사장에게 면담 신청을 하고 나니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 동안 나는 짐 정리를 하는 아내를 도와주다가 도움이 안 된다는 핀잔만 받고 대신 다정이를 봐주었다.
"따루, 따루........!"
다정이가 스스로 일어나 제 발로 섰다.
"옳지. 몇 발짝 걸어볼까?"
몇 발짝 걸음마를 띠더니 앞으로 넘어졌다. 나는 녀석을 다시 일으켜 세워 이번에는 내가 손을 잡고 걸리니 제법 많이 걸었다.
"다정아, 뽀뽀!"
내 말에 몇 발짝 걸어오더니 내 품안으로 쓰러졌다. 나는 녀석을 안고 다시 뽀뽀를 시키니 내 볼에 뽀뽀를 했다.
"입!"
이번에는 내 입술에 입을 맞추는 다정이였다. 이때 방안에 있다가 잠시 나온 미정이 보았다.
"더럽게........."
"뭐? 더러워? 나랑 매일 하는 당신은 그럼, 뭐야?"
"얘한테 그렇다는 얘기죠.'
"이리 와. 듣고 보니 괘씸하네. 내가 세균이라도 옮길까봐 그러는 거야, 뭐야?"
"그렇다는 얘기죠. 너무 화내지 말아요. 여보!"
"이리 오라고."
"왜 그러세요?"
"다정이 나 뽀뽀 안 시키려면 당신이 해봐."
"참, 내.........!"
"참 내가 아니야. 아니면 오늘 아무 일도 안 하고 다정이와 하루 종일 뽀뽀만 하고 지낸다?"
"알았어요, 알았어."
마지못해 미정은 내게 다가오더니 볼에 살짝 뽀뽀를 했다.
"됐지요?"
"됐기는 뭐가 됐어? 입술!"
"쳇!"
쪽!
"음....... 음.........!"
나는 순간적으로 미정을 붙들어 머리를 잡고 못 움직이게 하여, 진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 나서 미정의 얼굴을 보니 발그레 달아오른 것이 보기 좋았다. 나는 대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웃지 마요."
"웃지도 못하냐?"
"아침부터 진을 다 빼놓고 그래."
"하하하.........! 다정아! 뽀뽀!"
"또?"
"질투하는 거야, 뭐야?"
"쳇!"
다시 방안으로 향하는 미정이었다.
"다정아! 아빠, 뽀뽀!"
"아빠, 디러워."
"뭐?"
"호호호.........! 거봐요? 더럽다잖아요."
"제가 그 말을 어떻게 알아, 당신이 그렇게 교육시킨 거잖아?"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네요. 베에~!"
"지금 놀릴 일이 아냐. 나는 지금 다정이한테 배신감 느낀다고. 이 애비가 다정하게 지내고 싶어 다정이라고 이름 지어줬더니, 뭐? 뽀뽀 한 번 하자는 데 '디러워'? 아이고, 이름 바꿔야겠다."
"뭐라고요?"
"미워할 오(惡) 자(字)의 오정(惡情)이!"
"호호호........! 다정아, 너는 오늘부터 오정이란다."
그 말까지는 이해를 못하는지 티 없이 맑은 눈으로 둘 만을 번갈아 바라보는 다정이였다.
"시간 됐다. 나 간다."
"다녀오세요."
"이제 배웅도 안 하는 거야?"
"바쁘잖아요."
"아무리 바빠도 그렇지, 서방이 생활전선으로 완전 무장을 하고 출동을 하는데, 입으로만 인사를 해? 얼른 와! 다시 한 번 뽀뽀!"
"아이고, 두 번만 출근했다가는 내 입술이 남아나지를 않겠네."
"그래도 해야지."
"알았어요. 쳇!"
살며시 다가온 미정이 이번에는 복수라도 하듯 내 머리를 잡고, 진하게 입술을 눌렀다.
"루즈 묻은 것 아니야?"
"제가 언제 루즈 바르는 것 봤어요? 언젠가는 입술 색깔 다 죽는다메요?"
"그랬나? 아무튼 이 서방님 다녀올 테니, 다정이 잘 보고."
"네, 수고하세요. 올 때 맛있는 것이라도 사오면 더 좋고요."
"알았어. 올 때 풀빵이라도 100원 어치 사올게."
"됐네요."
"엉? 이제 배불렀네."
"나는 더 맛있는 것을 기대하고 있거든요."
"알았다. 알았어. 기대하고 있어?"
"네~!"
한국일보 사장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서 오시게.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아침부터 나를 어디 가지도 못하게 잡아놓나?"
"다 돈이 되는 얘기입죠."
"무슨 기발한 아이디어라도 있나?"
"네, 당연히."
이때 비서가 차를 두 잔 내왔다.
"들게."
"네, 감사히 먹겠습니다."
"그런 말 들으니 군대 생각나는군."
"군대 이야기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
"자네는 아직 군대로 안 갔다왔잖아?"
'아차! 회귀를 하는 것도 다 좋은 것만은 아니야. 가끔 이렇게 착각을 할 때가 있다니
까.'나는 내심 중얼거리며 변명거리를 찾았다.
"술자리에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 들으면 보통 서너 시간은 거뜬하잖아요. 안 갔다 온 사람은 지루하다고요."
"하긴 그렇겠지. 아이디어부터 풀어놔봐."
"낮에는 윤전기가 놀지요?"
"당연하지."
"벼룩시장 아시지요?"
"당연하지. 온갖 종류의 중고품을 팔고 사는 시장 아닌가?"
장사장이 덧붙여 물었다.
"프랑스 파리 가보았나?"
"아니요."
"벼룩시장은 원래 유럽 야시장에서 유래한 거야. 벼룩시장이 처음 생겨난 곳이 프랑스인데, 프랑스에서는 '마르셰 오 뿌쎄'라 부른다네. 프랑스 파리에는 시에서 일정한 자리를 할당받는 '정규 벼룩'과, '무허가 벼룩'들이 한쪽 귀퉁이에서 각자의 물건을 내놓고 파는데,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무허가 벼룩들이 반대편에 가서 물건을 팔거나, 감쪽같이 없어졌다가 경찰이 가면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모습이, 마치 벼룩이 튀는 것 같다고 해서 '벼룩시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거야."
"저는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찼습니다, 그려."
"하하하........! 그 얘길 왜 꺼내가지고......... 지금 말 하려는 것이 벼룩시장과 연관이 있나?"
"네! 벼룩시장이야, 시장에서 좌판을 벌이는 것이지만, 이것을 인쇄매체로 옮겨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감이 잡힐 듯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네."
"거리에서 중고물품을 팔듯이 중고품만 아니라, 자신이 사는 집, 자동차, 세탁기 등 중고 가전제품 일체, 구인구직, 여기에 이 매체가 활성화 되면, 자체 광고를 하려는 사람도 생기지 않겠습니까? 이것을 전화로 받아 한 줄 또는 박스광고로 실어주고 돈을 받는 거죠. 한 줄에 100원이 되었든 500원이 되었든. 그리고 이것을 대중들이 많이 볼 수 있게 거리 요소요소에 무료로 배포 하고요."
"말 되네."
"말 되는 정도가 아니죠. 돈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시행해보면 아시겠지만, 좀 과장을 좀 보탠다면 서울만 해도 전화번호 책 두께는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대도시 권역별로 나누어 발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전국 일간지와 차별화도 되고요. 이 매체의 크기는 신문의 절반 정도의 크기로 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습니다."
"강 기자는 마치 어디서 본 듯 아주 이미지를 아주 선명하게 구체화시키고 있군."
"제가 만약 발행을 한다는 가정 하에 여러모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대안을 제시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어설프게 해서는 상대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바보 되기 십상입니다."
"하하하.........! 확실히 자네는 탐나는 인재야! 내 이를 광고 팀에 적극 검토해보도록 하지."
"우선 서울만 시범적으로 운영해보세요. 그 전에 실용신안인지 지적재산권인지로 등록을 하셔서, 지방까지 운영하기는 벅차실 테니, 남에게 운영권을 부여하면서 로열티를 받는 방법도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되면 저도 한 20% 정도는 로열티로 챙겨주세요."
"하하하.........! 결국은 그거였군."
"사장님 입장에서는 절대 손해나는 일이 아니니, 한 번 시도해 보십시오. 창원에도 윤전기가 있다니, 부산이나, 창원 등지는 직접 운영하는 방법으로 하시든지요."
"알겠네. 일단 전문가들에게 구상을 해보라 할 테니, 그리 알고 오늘은 너무 이른 아침이라 한 잔 하기도 그렇고..........."
"다음에 한 잔 하시고요. 사장님 덕분에 주공아파트 공사를 수주했더니, 인력이 부족해서 광고 좀 내야겠어요. 이번 제가 내는 광고는 제가 아이디어 제공한 대가로 퉁 치지요?"
"하하하........! 아주 털도 안 뽑고 먹으려고 달려드는군."
"본사 소속 기자 좋다는 것이 뭡니까? 이럴 때 사장님 덕도 좀 봐야지요."
"알았네, 알았어! 자네하고 더 이야기하다가는 이제 뭐가 털릴지 겁이 다 나네."
"하하하.........! 대 언론사의 사주께서 너무 엄살이 심하십니다."
"아직 우리 꼰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계시네."
그렇게 말하고 사방을 휘둘러 본 장 사장이 말했다.
"아무도 들은 사람 없지?"
"제가 들었습니다."
"하하하.........! 하여튼 자네하고만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네. 할 얘기 다 했지?"
"감사합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쓸데없는 소리! 누가 들으면 아주 먼 사람끼리 격식 차리는 인사 같겠네."
"저는 광고국에 가보겠습니다."
"내가 국장을 이곳으로 부를까?"
"아닙니다. 제가 가야 옳죠."
"그렇게 하든지. 나도 일어서야 되니 같이 나가세."
"네, 사장님!"
이렇게 해서 나는 공짜로 한국일보에 광고를 내게 되었는데, 아주 공짜인 김에 뿌리를 뽑았다. 새시 부분 기술자 및 초보는 물론 철물 기술자 및 초보, 경리, 남녀 영업사원, 야간경비, 하다못해 가정부 광고까지 내어, 광고국장의 머리를 흔들게 했다. 광고국에서 나온 나는 총무과에 들러 여직원에게만 살짝 이야기해, 동양강철 박 사장의 여권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괜히 김 과장을 만나봐야 술사라고 할까봐 피한 것이다. 술사는 돈이 아까워서라 아니라, 사업을 한 이후로는 술자리가 너무 빈번해 건강관리 차원에서 몸을 사린 것이다. 총무과를 벗어나자 나는 사내 공중전화를 이용해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혹시 어느 곳에서 온 전화가 있나 싶어서였다.
"여보세요."
다정이 받을 리는 없고 당연히 미정의 목소리였다.
"난데, 혹시 전화 온 것 없었어?"
"그렇잖아도 전화 드리려고 했어요."
"어딘 줄 알고?"
"한국일보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하하하.........! 한국일보가 코딱지만한 줄 알아. 부서가 한두 군데도 아닌데 어디 있는 줄 알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사무실에서 전화가 왔는데, 동양강철 사장님이 연락 닿으면 전화 달라고 했대요."
"그래? 알았어. 고마워."
"핀잔 줄 때는 언제고. 쳇, 메롱이다."
바로 전화가 끊겼다. 헛웃음이 나왔지만 나는 명함을 찾아 동양강철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좀 바꿔주세요."
"실례지만 누구시라고 전해........."
"대정새시의 강 대정이라고 하면 알겁니다."
"아, 강 사장님!"
"아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곧 연결해 드릴게요."
"네, 부탁합니다."
"전화 바꿨습니다."
"저 강 대정입니다."
"그래, 그래, 안 그래도 찾았어. 어딘데?"
"서울인데요?"
"잘 됐군. 대우에서 대우빌딩의 새시 견적의뢰가 들어왔어. 한 번 찾아가 보시게."
"현장으로 가면 됩니까?
""현장의 홍 성부 이사를 찾아가봐."
"고맙습니다. 아버님! 또 전화 드리겠습니다."
"전화만 하지 말고, 찾아와."
"네, 네! 들어가세요."
"그래, 수고하고. 참, 여권은?"
"오늘 의뢰를 했습니다. 삼일이면 나올 겁니다."
"그렇게나 빨리?"
"제가 누굽니까? 대 동양강철 사장님의 막내아들 아닙니까? 저도 그 정도 끗발 정도는 있습니다. 하하하..........!"
"어디 가서나 너무 건방 떨지 말고, 조신하게 처신해. 우리 막내는 너무 잘 나서 탈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들어가시게."
"네, 네!"
나는 전화를 끊자마자 주차장으로 달려가 서울역 앞 대우빌딩 신축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았다.
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