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77화 (77/322)

< --이중생활-- >

박 사장이 말했다.

"사실 정작 고마워할 사람은 나 아닌가? 내 물건 팔아준다는데........"

"맞습니다.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통역 경비는 아버님이 부담하시는 거죠?"

"아무려면, 설마 아들 같은 자네에게 부담을 시키겠나? 그 문제는 걱정 말고 종전에 우리나라에는 없다고 한 문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이 것 입니다."

나는 프로젝트 바를 직접 들어 보여드렸다.

"허허.........! 이런 문짝도 있었다니, 이 바 형태를 보니 옆으로 미끄러지는 문짝이 아니라 앞뒤로 잡아당겨 열게 되어있는데........."

"역시 전문가의 눈이 틀리군요. 맞습니다."

"그래, 그래. 이런 바도 금번에 가서 구경하고........."

"아버님! 제가 지금부터 아버님 사업에 결정적 도움이 될 조언을 해드리겠습니다."

"그래? 내 귀를 씻고 경청하지."

"그 칼라 바 중에 은색 즉 스텐 칼라 색깔의 바가 있지 않습니까?"

"여기 있고만."

직접 집어 들어 살펴보기까지 하는 박 사장이었다.

"앞으로는 그 색상이 대세를 이룰 것입니다. 제가 보장하지요. 앞으로 20년 간 제일 잘 나가는 바가, 그 색상의 바가 될 것입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장담하나?"

여기서도 전생이야기를 들먹일 수는 없고 해서 나는 얼른 둘러댔었다.

"일본을 가보시면 그 바가 주종입니다. 우리나라가 그대로 모든 분야에서 일본을 따라가고 있질 않습니까?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비 한 마리 온 것을 보고 봄이 온 것을 안 다고, 지금 일본의 대중적 취향은 저희에게도 바로미터가 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옳아, 아주 옳은 선견력이야! 내 자네 말대로 함세! 그러자면 2공장도 2공장이지만 피막 분야를 강화해야겠어."

"네, 차제에 제가 가지고 온 색상도 출시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사업에는 때가 있습니다. 선발제인이라고 시장의 선두주자가 되십시오. 감히 후발주자는 추종을 불허하는."

"정말 대단하군, 대단해! 정말 아들 삼고 싶은 걸?"

"이제야 그 생각이 드셨다면 제가 섭하지요. 저는 벌써 아버님이라 부르고 있질 않습니까?"

"하하하.........! 미안 허이, 아들! 내 막내아들 하나 얻은 선물로 진짜 선물을 하나 하겠네."

나는 빙그레 웃음을 머금고 박 사장님의 입만 주시했다.

"앞으로 우리 회사 앞으로 수주하는 공사는 모두 자네가 시공하시게."

"네? 정말이십니까? 아버님!"

"이 사람이.........!"

애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나를 째리시는 박 사장님이었다.

"암, 해야지요. 하고말고요."

"단!"

"말씀하십시오. 아버님!"

"일 제대로 못 쳐낸다고 지체보상금 물게 하기 없기."

"하하하........!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버님 것부터 시공을 해야지요."

"그런 정신자세면 됐어. 이제 날짜 잡지?"

"그래야지요. 제가 아버님 인적사항만 주시면 모든 여권 수속은 밟아 놓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아들이 어느 신문의 기자라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 은근히 주시하고 있었다고. 그러니 자연히 주위에서 주워들은 풍월이 있을 수밖에."

"하하하.........! 그렇게 되었습니까?"

웃음을 멈춘 웃음기 남은 엷은 웃음을 띤 채 박 사장에게 물었다.

"실례된 질문입니다만, 제게 일감을 몰아주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바를 팔아먹는 놈이 공사까지 한다고, 너무 욕심이 많은 것 아니냐고, 대리점 사장들 간에 설왕설래 말이 많은 것을, 진즉부터 내 알고 있었지. 이유라면 전부 그게 다야. 자네가 정말 내 막내아들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것도 아니고........."

내 말에 손까지 저은 박 사장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아요. 이 나이 되면 욕심을 줄여야지. 남의 그릇까지 빼앗아 욕까지 얻어먹어가며 치부하고 싶지는 않네. 내가 밥을 굶는 것도 아니고. 물론 젊은 자네는 달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버님 바쁘신 것 아니십니까?"

"그렇다고 부자지간에 비록 싸늘하게 식은 차라도 한 잔 안 나누고 그냥 가면, 내가 섭하지."

"아버님도 그런 말투를 쓰실 줄 아시는 군요?"

"왜 내가 그런 말 하면 안 되나?"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것 같아서 듣기 좋습니다."

"그렇게 들었다면 다행이군. 늙은이의 주책이라고 생각지 않고."

"절대, 절대로요!"

내가 두 손까지 휘휘 내젓자 빙그레 웃으시며 비로소 찻잔을 입에 대시는 박일용 사장님이셨다. 나는 청주에 들릴 시간이 없었다. 서울에 가서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졸음을 방지하기 위해 라디오 볼륨을 조금 높였다. 어느 새 정오가 다 되었는지 '김삿갓 북한 방랑기'라는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채널이 KBS인 모양이었다. 나는 차창도 조금 내렸다. 오늘 따라 유난히 포근한 날씨

였다. 그렇지만 히터를 틀지 않고는 추웠다. 그래서 히터를 제일 약하게 틀었더니 이제는 더웠다. 그래서 나는 졸음도 예방할 겸 창문을 내렸더니 시원한 게 아주 좋았다. 삑삑 시보가 울리더니 정오 뉴스가 시작되었다. 별로 관심 없는 뉴스라 전방만을 주시하고 가고 있는데, 내 귀를 번쩍 뜨이게 할 만한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곧 반포동, 압구정동, 청담동을 아파트개발 촉진지구로 지정한다는 소식이었다. 과밀한 도심의 인구를 분산하고 강남 권 개발을 앞당기기 위한 취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야호!'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환호하다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래도 저 스스로 이탈을 안 하고 가니 다행이었다. 이제 내가 소유한 모래밭 땅도 아파트개발지구로 고시되었으니, 다락 같이 오를 것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었다. 나는 기쁨에 룰루랄라 콧노래를 흥얼거렸지만 당장 처리할 일을 생각하니 김이 팍 새버렸다.

동양강철 박 사장이 강남의 북쪽이라 해서 '강남 북 동양강철 대리점'을 허가해 주어, 모래밭 땅을 그 터로 사용하려 했더니, 미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우선 제일 첫째로 전기가 안 들어오는 문제점이 있었다. 두 번째로는 도로의 부실이었다. 일직선이 아니고 삐뚤삐뚤 돌아가는 길이긴 해도 그곳까지 도로는 뚫려 있으나, 문제는 곳곳에 웅덩이가 산재하는 등 도로 상태가 한마디로 엉망이라는 데 문제가 있었다.

세 번째로는 날바닥에서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으니 또 건물을 지어야 했다. 비록 가건물 수준일지라도. 그래서 오는 내내 나는 그 문제를 생각한 결과, 이번에는 간단하게 그냥 조립식으로 짓기로 했다.

이 당시 제대로 된 조립식 주택을 짓는 업체로는 딱 한 군데가 있었다. 즉 현 주택공사의 자회사로 '한성(韓成) 프리패브'라는 회사가 있었다. 71년에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하여 설립된 회사로서, 78년까지 누적 2만 세대를 공급하게 되어있었다. 나는 이제 이 문제를 생각하자 조립식 주택만을 전문으로 짓는 회사를 하나 설립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자본의 뒷받침만 된다면 아예 자재 공장까지 세우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판넬이라든지 모든 부자재 일체를 일관 생산하는 공장으로.

아무튼 나는 본부장에 의뢰해 가급적 빨리 조립식 공장이라도 세워, 이곳에서 당장 급한 반포주공아파트용 새시라도 조립하고 싶었다. 그러고 보니 이래저래 할 일이 많은 가운데 박 사장이나, 내 것의 여권도 만들어야 했다. 그러고 보니 내 것은 아직 기간이 남아 있을 수도 있어 한 번 살펴보고 신청을 하든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을 하자 나는 아무래도 집에 먼저 들러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내가 싼 땅이 아파트 지구에 포함이 되었으니, 땅값이 오르는 것은 기본이고, 장차 이곳에 아파트를 지어도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정부에서도 도로 정도는 기본적으로 내주고 포장해 줄 것이기에, 나에게는 큰 득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 기분은 다시 UP되었다. 나는 빠르게 차를 몰아 집에 도착했다. 집은 비어있었다. 미정은 학원에 등록을 하러갔던지, 가구를 사러갔을 것이다. 나는 집안을 뒤져 여권을 확인해보니 열흘의 기간이 남아 있었다. 내 것은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조금은 부담이 덜 되었다.

아무래도 남의 손을 비는 일이라 많으면 많을수록 부담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화가 있으니 청주로 소식이나 전해야겠다고 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네, 대정새시입니다."

김 주임의 목소리였다.

"나, 강이오. 마 부장 좀 바꿔주세요."

"네, 사장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전화를 받는 김 주임의 목소리에는 반가움이 묻어났다.

"전화 바꿨습니다. 사장님!"

"내 오늘은 다른 볼 일이 많아 바로 올라왔습니다. 다른 일은 없지요?"

"세원건설에서 유리도 시공해달라고 사장이 직접 찾아왔었습니다."

"반사유리 아니었던가요?"

"그렇습니다. 그 유리는 아마 국내 생산이 안 될 걸?"

"그래서 찾다찾다 우리에게 의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참.........! 내 일본 출장을 다시 가니 그 때 한 번 알아보고, 정확한 답변을 드린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리고 내 금번에 서울 강남의 새시대리점 하나를 다시 개설하게 되었고, 동양강철에서 수주한 모든 공사를 우리가 시공하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사장님!"

"축하받자고 전화 드린 게 아니고요.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직원이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당연하죠."

"그래서 아무래도 서울에서 광고를 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서울에 거주하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말이죠."

"맞습니다. 그렇게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리고 베란다 샘플을 하나 꾸며 누가 영업을 좀 해야겠는데, 이 문제도 샘플은 우선 거기서 제작하는 것으로 하고, 직원은 광고를 통해 충원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내 자세한 사랑은 내려가서 제대로 전달하리다."

"네, 사장님!"

"그럼, 수고하세요. 끊습니다."

"네, 네!"

나는 바로 동경으로 전화 신청을 해, 몇 번의 연결을 했으나 부재중이라 받지를 않았다. 그 길로 나는 밖으로 나와 한전에 가서 전기가설 신청을 했다. 그러나 거리가 멀다고 띠띠하기에 바로 이웃에 현대건설의 중기보관사무소가 있다고 하니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그리고 나는 주택공사를 찾아가 건설 본부장을 만났다. 나는 그에게 조립식 주택을 부탁했다. 자기 소관이 아니라고 난색을 표시하는 본부장이었다. 전화나 한 통 부탁한다 했더니 곧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더니 가보라 했다.

나는 별개 동을 쓰고 있는 자회사 한성의 시공부장을 찾아갔다. 본부장의 소개로 왔다하니, 다른 곳을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조기 시공을 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대충

의 일을 끝내고 시간을 보니 어느덧 퇴근 시간 무렵이었다.

이 길로 한국일보에 들어가 여권과 광고를 부탁할까 하다가, 아무래도 가면 또 술을 마시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곧장 집으로 향했다. 일부러 차를 주차시키며 나는 경적을 크게 울렸다. 곧 미정이 달려 나왔다.

"오셨어요?"

"그래. 등록은 했고?"

"네?"

"가구는?"

"주문을 했는데, 내일 들여온 데요."

"TV나 냉장고는 왔어?"

"네, 둘 다 들이긴 들였는데, 텔레비전이 잘 안 나와요."

"그럴 리가? 안테나 방향이 잘못 된 것 아니야?"

"그 사람들이 설치할 때는 잘 나왔는데, 지금 틀어보니 안 나오네요."

"늦게 왔나보지?"

"제가 방송 시작한 이후에 와서 아예 설치까지 해달랬거든요."

"내가 볼 때는 고정을 제대로 하지 않아 안테나 방향이 다시 돌아간 것 같아."

"어떻게 좀 해봐요. 다정이가 아주 좋아하던데........."

"쪼그만 게 벌써 뭘 안다고........?"

"안 그래요. TV에서 시선을 못 떼던 걸요."

"알았어, 알았어. 당신 저녁하다 나온 것 아냐? 가스레인지에 뭐 올려놓은 것 없어?"

"어머, 내 정신 좀 봐! 담복장!"

후다닥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미정이었다.

이 당시 TV는 공시청이 일부는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가정이 안테나에 의존해 TV를 보고 있을 시절이었다. 나는 이층으로 올라 가 옥상에 설치된 안테나의 방향을 조금 돌리고 아래로 내려와 TV를 살폈다. 여전히 칙칙 소리만 나오고 화면이 잘 잡히지 않았다. 간신히 KBS 하나가 잡히긴 잡히는데 화면이 많이 흔들렸다.

"이래서는 끝도 없어. 내 이층으로 올라가 안테나를 천천히 돌려볼 테니, 당신이 창가에 서서 보고있다가 소리를 질러. 잘 나오면 멈추라고 말이야."

"알았어요!"

이렇게 되어 나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세 방송이 잘 나오게 조정을 했다. 나는 아예 손을 댄 길에 그 방향 그대로 안테나를 단단히 묶어두었다. 내가 거실로 들어오자 미정이 한마디 했다.

"수고했어요. 여보! 이래서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된다니까."

"이제야 알았어?"

"쳇, 또.......! 잘난 체 좀 그만 하세요."

"알았다, 알았어! 밥 아직 멀었어?"

"조금만 기다리세요. 여보, 제 좀 봐요. 아주 텔레비전 안으로 들어가겠어요."

미정이 텔레비전에 바짝 붙어 TV를 보고 있는 다정이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다정아, 이리 와. 아빠하고, 걸음마나 연습해보자."

나의 말에도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며 TV 시청에만 열중하는 딸이었다.

"아이고, 그냥........! 벌써부터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해!"

"아직 뭘 몰라서 그렇지요."

"됐고. 나 씻을 테니까, 목욕물이나 좀 받아 놔."

"네, 여보!"

즉시 욕실로 달려가는 미정이었다.

내가 그런 미정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당신도 거기 있다가 같이 하던지?"

"누구 좋으라고요?"

"에이, 젠장! 이젠 다 알고 뭐. 재미없다, 재미없어."

"여보, 빨리 들어와 보세요."

"왜?"

나는 행여나 하고 재빨리 욕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거미 한 마리가 천정을 기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것을 잡아달라는 미정의 말에 나는 가운이 쭉 빠졌다.

============================ 작품 후기 ============================오늘로서 올해도 마지막인가요? 또 한 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군요. 올 한 해 정말 고마웠습니다. 이 자릴 빌어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립니다!

^^ 내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날 것을 약속드리면서, 새 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도 게게 베풀어 주신 성원에 깊은 감사의 말씀 올리며 복된 나날 되세요!

^^

"대단히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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