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생활-- >
"윤 마담은 이 양반을 사장으로만 알고 있는 거요?"
"그야, 물론이죠."
윤 마담도 나의 다른 신분을 알고 있었다. 장강재 사장을 비롯한 신문사 사람들과 여러 번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윤 마담은 아예 시침을 뚝 떼고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대답했다.
"그랬다가는 언젠가 윤 마담이 큰 코 한 번 다칠 것인데......."
"그건 또 무슨 소리신지........."
"모 종합일간지의 대 기자가 우리 강 대정 씨란 말씀이시지. 흐흐흐.........!"
"아, 저는 전혀 몰랐네요.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해야 되겠네요."
"이를 말이오."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본부장님은 언제 제 신분을 그렇게 철저히 조회하셨습니까?"
"그 정도도 못하고서야, 어찌 이렇게 오랫동안 공직에 몸담을 수 있겠소. 일만 잘한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오."
"역시 대단하십니다."
내가 엄지손까지 치켜 올려 추어주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송 본부장이었다.
"뭐로 하시겠습니까? 맥주, 양주?"
"기왕이면 양주로 합시다."
"네, 준비해 올릴게요."
마담이 자리를 비워주었다. 나는 막간을 이용해 품에서 100만 원이 든 흰 봉투를 탁자 위에 꺼내놓고 말했다.
"약소합니다만, 부하들과의 회식 자리에 보태 쓰십시오. 박봉에 회식 한 번 변변히 할 수 있겠습니까?"
"뭘 바라는 것이오?"
정색을 하고 묻는 송 본부장이었다. 이런 일을 하도 많이 당해서인지, 직설적이고 확실했다.
"제 주업이 새시 아닙니까?"
"그렇소만."
"울타리 안에 책상 하나만 놓게 해주십시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오만........?"
"베란다 새시를 접수 받고 싶습니다."
"그건 불법 아니오?"
"소방법에는 불법이나, 어느 가정이든 베란다 새시 안하고 지내는 집 있습니까?"
"하긴 그렇소."
"잘 되면 수시로 찾아뵙겠습니다."
"험, 험........! 이것 먹어도 탈이 없는 돈이죠?"
"그야 이를 말입니까? 만약의 경우 절대 그럴 일도 없겠지만, 문제가 발생해도 제 힘으로 찍어 누르거나, 아예 입에 자물쇠를 채우겠습니다. 이는 사내로써의 약속입니다."
"믿겠소."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잽싸게 봉투를 그의 앞으로 밀었다. 당연하다는 듯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는 인 마이 포켓 하는 송 본부장이었다.
내 주요 목적이 달성이 되자 나는 박수를 쳐서 윤 마담을 불렀다. 곧 아이들 둘에 양주와 안주를 챙겨 들어오는 윤 마담이었다. 우선 안주로는 생률을 잘게 친 것과 과일 한 접시, 그리고 인삼을 잘게 썰어 꿀에 묻힌 것이 들어왔다. 게다가 입가심용으로 전복죽이 공기에 반쯤 담겨 있었다.
"오라버니, 제가 먼저 한 잔 올리겠습니다."
"좋지! 우리 윤 마담 같은 미인이 따라준다면 언제든지 백 번이라도 환영하오."
"호호호.......! 예쁘게 봐줘서 고마워요. 오라버니!"
살짝 눈웃음까지 치며 조심스럽게 본부장의 잔을 채우는 윤 마담이었다.
"아, 나는 오늘 개털이로군!"
"호호호........! 아가씨라도 하나들일까요?"
"조금 있다가."
이렇게 술이 시작되어 어느 정도 주흥이 도도해지자 내가 윤 마담에게 말했다.
"준비 된 냄비들 세 접시 부탁해!"
"호호호.........! 점잖으신 사장님 입에서 그런 천박한 말이 나오니, 그것도 일종의 매력이네요."
"그럼, 보지 세 사라 부탁해, 할 걸 그랬나?"
"그건 너무 야하다!"
"그렇지?"
"네. 못 생긴 저는 이만 빠지고 아주 물이 절정에 오른 영계들 세 접시 들일 게요."
"하하하.........!"
"오케이!"
나의 말에 살짝 미간을 좁혀 서운함을 표시한 윤 마담이 바톤 터치를 했다.
"거기, 거기. 둘은 거기 앉고 진 양은 내 옆으로 와. 우리는 구면이지?"
"네, 오라버니!"
나는 정말 한창 물이 오른 예쁘장한 영계들 둘을 본부장 앞으로 상납하고, 그 중에 제일 나이 많아 보이는 진 양이 내 차지가 되었다.
"오라버니라니? 너 몇 살인데?"
"방년 18세이옵니다. 서방님!"
"젠장! 꽃다울 방(芳) 자가 운다, 울어."
"제가 그렇게 늙어 보이시옵니까?"
"말이라고, 내 눈에는 할머니로 보인다. 할머니!"
"섭하옵니다. 서방님!"
옷고름까지 동원하여 눈가를 찍는 시늉까지 하자, 둘은 멀쩡한데 아가씨들끼리만 박장대소를 했다. 다음 날 아침.7시 30분이 되자 나는 청주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마 부장이 받았다.
"이 명희 씨는 안 나왔습니까?"
"나오셔서 차 준비하고 있습니다."
"바가 부족하다면서요?"
"네, 많이 부족합니다."
"당연하죠. 며칠 조립할 물량이 있습니까?"
"그래도 10일은 가능합니다."
"내 생각인데 말이오........"
"말씀 하십시오."
"아무래도 지금 인원 가지고는 물량을 쳐낼 수 없을 것 같소. 그리고 청주에서 조립해서는 운반하는데 너무 많은 비용과 시간이 허비 될 것 같소. 5톤 트럭으로도 수 백 번을 운송해야 될 텐데, 너무 비능률적이란 말이죠."
"그야 그렇습니다만, 뾰족한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내 서울에도 공장을 하나 세워야 할까 봐요."
"그 비싼 땅에 비용을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땅은 이미 준비되어 있소."
"네?"
"일단 그런 줄 아시고, 일을 추진해 주세요. 다른 문제는 없습니까?"
"네, 현재로서는."
"부장님은 마치 뭔 일이 일어나길 바라는 사람 같군요."
"설마요?"
"농담이었고요. 내 대전에 먼저 들렸다가 그곳으로 들릴 테니 그런 줄 아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끊습니다."
"네, 네!"
통화를 마치고 옆을 돌아보니 미정이 어느새 왔는지 내 통화내용을 다 듣고 있었다.
"대전 가시게요?"
"그래."
"제 생각인데요. 명희도 검정고시를 준비시켰으면 좋겠어요. 경리 그만 두게 하고."
"이 사람 집안 거덜 낼일 있어? 그 사람이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얼마나 큰데."
"아무리 그래도, 저 혼자 공부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려요."
"당신 마음이 정 그렇다니, 내 한 번 생각해보지."
"꼭 요?"
"됐고. 나 바로 지금 출발할 거야. 뭐 잊은 것 없어?"
"쳇, 알았네요."
살며시 다가와 내 입에 입을 맞추는 미정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를 붙잡고 진하게 눌렀다.
"어머, 아침부터 왜 이러시는 거예요?"
"아침부터, 꼴려?"
"제발 그런 상소리 좀 하지 말아요."
"알았다. 알았어! 내 다녀오리다."
"운전 조심하시고요."
"당신은 오늘 분명히 학원에 등록해놓고, 가구나 필요한 것들 있으면 다 들여놔. 내 백만 원 준 것 아직 그대로 있지?"
"네, 네! 고마우신 우리 서방님!"
쪽!
"잘 다녀오세요!"
기습적으로 내 입술을 훔치고는 멀리 달아나는 미정이었다.
대전 동양강철.
나는 가벼운 보따리를 들고 영업부장 실로 직행했다. 나는 노크를 하고 문을 밀고 들어갔다. 마침 박 부장이 자리에 있었다.
"어서 오세요. 강 사장님!"
"제 성은 용케 기억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 난동을 부렸는데......... 험, 험.......! 사업 잘 하고 계신다는 말씀은 들었습니다. 영업을 개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매출이 벌써 서부를 눌렀더군요."
"아, 그 정도로 신경을 쓰고 계셨던 겁니까?"
"누구보다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고맙고요. 내 오늘 주문서 한 보따리 가져왔는데, 사장님을 뵐 수 있을까요?"
"무슨 큰 건이라도 한 건 하셨습니까?"
"서울 반포주공아파트 4,170세대를 금번에 수주했거든요."
"대단하십니다. 역시 영업의 귀재는 어디가 틀려도 틀리십니다."
"공연한 공치사 말고, 사장님이나 뵙게 해주세요. 그 외에도 드릴 말씀이 많으니까."
"일단 제가 가서 여쭈어 보고 오겠습니다. 그 동안 차라도 한 잔........"
"사장실에 가면 더 좋은 차 나올 텐데........?"
"거기 가셔도 차는 똑같습니다."
"괜히 웃자고 한 소리고. 얼른 다녀나 오세요."
"그럼."
간단하게 목례를 해 보인 그가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그가 돌아왔다.
"사장님이 마침 계시네요. 잠시 들어오시랍니다."
"안내 좀 부탁드립니다. 어디가 어디 인지 몰라서."
"그러실까요?"
씩씩하게 앞장을 서는 박 부장이었다.
사장실 앞.
똑 똑!
"사장님, 들어가겠습니다."
"어서 들어와요."
"네!"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문을 열고 비켜서서 들어가길 종용하는 박 부장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어서 와요."
나의 활기찬 인사에 소파에 앉아 무슨 서류를 보고 있던 육순의 사장이 돋보기 너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가, 안경과 함께 서류도 한 쪽으로 치웠다. 그는 곧 인터폰을 눌렀다.
"차는 뭐로 하겠소?"
"저는 커피가 좋습니다."
"나는 생강차로 한 잔 하겠소. 목이 컬컬해서."
"연세가 드실수록 감기에 조심하셔야합니다."
"이래 봐도 나 아직 건강하다오."
"제가 봐도 50년은 끄떡없으시겠습니다. 하하하........!"
"너무 오래 살라고 하는 것도 욕이오. 그런데 무슨 일로.........."
"아, 오늘 사장님을 처음 뵙지요. 꼭 구면 같이 친근감이 들어서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저 청주 동부대리점의 강 대정입니다. 아버님!"
"하하하........! 내 이 회사를 창립한 이래 우리 고객으로부터 '아버님' 소릴 듣긴 처음이오. 참으로 넉살도 좋고......... 하긴 그러니 영업도 잘 하겠지. 그래 요번에 반포주공아파트 공사건을 수주했다고?"
"네. 물량이 제법 되기에 아버님한테 떼 좀 써서, 단가 도 좀 낮추어 주십사 하는 청도 드리고 싶었고, 그 보다는 더 중요한 안건이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 들어나 봅시다."
나는 가지고 간 보따리를 풀어 각종 색상의 바와 함께 프로젝트 바도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참으로 색상이 다양하군요. 그리고 이건 처음 보는 바예요?"
"그렇습니다. 금번에 제가 일본까지 나들이해서 구해온 바 들입니다."
"허허, 성의가 놀랍군요. 일본까지 가서 바를 구해오다니."
"성의 문제가 아니죠. 한국에는 없으니, 일본까지 갈 수밖에요."
"하긴 나도 처음 보는 바이니.........."
"외장용으로 커튼월 이라고 하는 시공법에 적용될 문짝용 바입니다. 그리고 색상 좀 보십시오. 얼마나 다양합니까? 우리나라도 앞으로 이렇게 바뀌어야 합니다. 지금 각 방송국에서도 칼라 텔레비전 방송에 맞추어 준비를 하고 있다지 않습니까? TV에서부터 호화찬란한 색상으로 매일 방영되면, 국민의 미적 감각도 틀림없이 변화할 것입니다."
"듣고 보니 옳은 말이오. 요즘 내가 2공장을 짓는다고 거기에만 매달리다보니, 대세에 너무 둔감해진 것 같소. 차제에 나도 일본 나들이를 한 번 하고 와야 할 것 같소. 시대에 뒤처진 고루한 늙은이가 되어서야 되겠소? 강 사장의 생각은 어떻소?"
"좋은 생각이십니다."
"말로만 그러면 뭘 하오? 나랑 동행 좀 해주오."
"네? 저는 갔다 온지 며칠 지나지도 않았는데요?"
"왜정 때죠. 그 시절에 내 소학교를 다녔는데, 그 때는 일본말로 모든 것을 배웠소. 그러나 지금은 다 까먹고 몇 마디 말밖에 기억을 못 한다오. 그러니 강 사장이 이번 기회에 나 좀 도와주쇼."
"통역을 하나........"
바로 손을 내저어 내 말을 부정하는 사장이었다.
"통역이 문제가 아니라 이번 기회에 정말 막내아들 같은 우리 강 사장과 유대를 좀 더 돈독히 하기 위해서라오. 보아하니 이 분야에는 나보다도 더 전문가 같은데, 배울 점도 많을 것 같고."
"허허, 이것 참........"
낭패였다. 바빠 죽겠는데, 또 일본을 가야한다니. 그러나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거절하기도 참으로 난감했다. 나는 내심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단안을 내렸다. 하나 더 얻어내고 같이 동행하자, 그러면 남는 장사가 되지 않겠나. 나는 결심을 굳히자 곧 입을 열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번에 서울에 제법 큰 공사를 수주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단
발성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청주에서 조립을 해서 운반하는 과정도 그렇고, 시공 팀도 여관 잠에 계속해서 밥을 사먹게 되면 앞으로 남고, 뒤로 깨지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용건이 뭐요?"
"강남에 대리점 하나 내주십시오."
"강남에........?"
그러고는 사장은 눈을 허공에 두고 기억을 더듬는 모양새를 취했다.
"내가 알기로 기 허가가 하나 나 있는 것으로 아는데?"
"지금 하나가 문제입니까? 요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곳이 강남입니다. 작년에 오십만 인구가 금년에는 칠십만으로 뛰었다 합니다. 몇 백만 명이 되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기존 대리점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양재동이 어디요? 그곳이라고 내 기억하고 있소."
"멀찌감치도 내려갔군."
혼자 중얼거린 내가 덧붙였다.
"강남의 제일 끝자락입니다. 아직 개발도 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아마 위치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요? 내 가보지를 않아서."
"가보시나마나입니다. 제가 대리점을 내려는 곳은 한강 바로 남쪽입니다. 그곳에 제가 대지 16만 평을 사놨거든요."
"뭐요? 그럼 나보다 더 부자 아니야?"
나는 깜짝 놀라는 사장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하하하.........! 그것은 아니고요. 지금은 모래땅이지만 머지않아 황금의 땅으로 변할 겁니다."
"내 말이 그 말 아니오?"
"아버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대리점?"
한마디 하고 나는 시침을 뚝 떼고 먼산바라기를 했다.
"하하하........!"
내 행동이 우스웠던지 박 일용 사장은 가가대소를 하고는 말했다.
"진즉부터 아버지라 부르는데 그럼, 내가 부친으로써 선물을 하나 해야지. 좋네!"
여기서 나 마냥시침을 뚝 떼는 박 사장님이셨다.
그리고 한 참 뜸을 들이셨다. 말씀하셨다.
"내 허락하지."
"고맙습니다. 아버님!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