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75화 (75/322)

< --이중생활-- >

나는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정을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시킬 셈으로 전화기를 붙잡았다. 나는 곧 114로 전화를 걸어 한남동에서 가장 가까운 운전면허시험장을 물으니 바로 한남동에 있다며 주소를 불러주었다.

나는 대충만 기억하고 미정에게 말했다.

"갑시다."

"어딜 요?"

"자동차 학원에."

"헤헤헤........! 빈말이었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소? 앞으로 현대 여성은 운전은 필수요, 10년 내에 마이카 시대가 올 것이고 여성운전자들도 거리에 쏟아져 나올 거요. 당신은 그런 면에서 보면 선구자지. 당신하고 나하고 약혼식 날 부른 가곡 '선구자'가 괜히 선택된 곡이 아니오. 내 누누이 얘기하지만 당신은 부지런히 나를 쫓아와야 할 거요. 운전면허도 그 일환이고, 곧 나는 가정부도 드릴 거요."

"가정부는 뭐 하시게 요."

"매일 얘 뒤치다꺼리에 솥뚜껑 운전만 하다 한 세월 보낼 거요? 집안일은 가정부에게 맡기고, 가정부를 들이는 날부터는 검정고시에 매진해서 올해는 대학 들어가야지."

"아이고, 내 고생길이 훤하네요."

"그것을 고생이라 생각하면 안 되지. 자기 계발의 시간이자, 연단의 시간이지."

"말이 그렇다는 얘기죠."

"여기서 주절거릴 때가 아니오. 가면서 얘기합시다."

"알았어요."

대답은 냉큼 했지만, 내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어나는 미정의 궁둥이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먼저 밖에 나가 고함을 지르고 나서야 마지못해 현관문을 열고 나오는 미정이었다. 대문을 열고 나가자 바로 대문을 가로 막고 있는 신차를 본 미정이 물었다.

"누가 새 차를 여기다 주차해 놓았지?"

"나와 당신 차요."

"네?"

깜짝 놀라 되묻는 미정이었다.

"나랑 한마디 의논도 없더니 언제 차는 뽑았대요?"

"방금 뽑아가지고 오는 길이오."

"면허도 없는 사람이 차부터 사면 어째요?"

"면허? 차부터 사놔야 얼른 끌고 다니고 싶어서 빨리 따지."

"참 해괴한 논리지만 아예 맞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당신도 가끔 이 차 끌고 다니고 싶으면 빨리 면허 따라고. 나는 당장 오늘 면허 딸 테니."

"연습도 안 한 사람이 무슨 수로 면허를 따요?"

"갑시다. 내가 어떻게 면허를 따는 지 보여주지."

"참, 내........! 좋아요. 당신이 어떻게 면허를 취득하는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죠."

"흐흐흐........! 기상천외한 방법이 있소."

우리는 그 길로 큰 도로로 나와 택시를 잡아탔다.

"한남동 면허시험장으로 갑시다."

"네, 운전면허시험 보러 가시는 모양이죠?"

우리 둘이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으므로 택시 운전기사는 백밀러를 보며 이야기 했다.

"그렇소."

나는 구차하게 설명하기 싫어 간단하게 대답하고 말았다.

우리는 채 10분 도 안 되어 곧 택시에서 내렸다. 그만큼 우리 집에서 가까웠던 것이다. 85년 쯤 이 면허시험장은 폐쇄되고 강서면허시험장이 생깁니다.

면허시험장에 도착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 응시하고 있으나, 전생의 면허시험장인지 돛대기시장인지 분간 못할 풍경에 비하면, 한가하다는 것이 알맞을 것 같았다. 나는 이들을 구경하느라 자꾸 뒤처지는 미정을 재촉해,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곳에서 제일 높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어, 그를 찾아갔다. 마침 그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가 우리를 맞았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엉거주춤 일어나 우리를 맞는 무궁화 한 개였다.

"이 면허시험장이 말이죠. 돈을 받고 면허를 내준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어서 내 취재 차 나왔소. 나 한국일보의 강 대정입니다."

기자증은 건성으로 보여주고 손을 내미니 뜨악한 표정으로 내 손을 잡는 아저씨였다. 그 역시 악수는 건성이었다. 그리고 극구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뭔가 잘못 아신 듯합니다."

"내 그렇게 면허 취득한 사람들의 증언을 이미 취합해놨어요. 단지 이곳에 들른 것은 도대체 이곳의 윗대가리가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그런 일이 자주 발생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요."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부정은 하나 강도가 많이 약해져 있었다. 맥이 빠진 모습이었다. 미정은 한 옆에 다소곳이 서서 정말 나의 하는 행동 하나 하나와 말까지 유심히 듣고 있었다.

"강 경위님! 사실은 말이오. 나 오늘 포니 한 대 뽑았는데 면허증이 좀 필요해서 썰레발 좀 깠소. 기록 사항은 이 신분증 그대로이니 가서 기재하시고 돌려주시오."

나는 그의 명찰을 보고 그의 성을 불렀다. 그리고 사이비 기자마냥 다리도 떨고 자세도 아주 불량하게 했다. 참고로 당시는 잎사귀 네 개가 없고 바로, 세 개 다음에 무궁화 하나로 지금과는 순경의 끝발이 틀렸다. 의무경찰이 없었다는 말이고. 순경은 정식으로 공채된 사람이 시작하는 첫 계급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부르는 호칭도 틀렸다.

"아무래도 이거 내가 엮이는 것 아니오. 내주고 나면 꼼짝없는 증거가 되니........"

"우선 내 신분증 가지고 가서 내 신분부터 조회를 해보시오. 내가 이까짓 몇 푼에 연연할 놈인가 일단은 알아보시란 말이오. 정말 내 촌지 뜯기 위해서 이러는 것이 아니라, 면허증이 필요해서 그런 거니, 그런 줄 아시고 바로 면허나 내주시오."

"운전을 할 줄 아시오?"

"운전도 못 하는 놈이 죽을 라고 환장했소? 아, 면허증만 있으면 차가 저절로 굴러 간딥까?"

"내 말이 그 말이오."

"아, 며칠 먼저 면허 한 번 딸랬더니, 짜증나네!"

"잠시만 기다려 보시오."

내가 성질을 부리자 마지못해 문을 나서는 강 경위였다.

"여보,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미정이 강 경위가 나가자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보면 몰라. 면허증 취득하잖아."

"이런 부정한 방법으로 따서 되겠어요? 정식으로 ........."

"됐어, 됐어. 공자님 같은 말씀 그만 하시고........"

"당신 정말 운전이나 할 줄 알아요?"

내가 잔머리 굴리는 데는 선수다. 미정의 이런 질문에 답변할 구실하나 만들어놓지 않고 이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그렇다고 전생에 수십 년 관록이 있다고 할 수는 없잖은가.

"내가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게 매일 술만 마시느라 그런 줄 알아. 그 동안에 나름대로 운전 연습을 얼마나 했는지 당신은 모를 거야. 내 운전에는 프로이니까, 그런 걱정은 하덜덜 말아."

"믿기지 않네요."

"나중에 내가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 될 것 아니야?"

"알았어요. 어디 두고 보죠."

우리가 이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강 경위가 들어왔다.

"지금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고 있으니, 잠시 차라도 한 잔 하면서 기다리시죠."

"뭐라고 합디까?"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니, 면허 내달라면 내주라고 하던 데요."

"어디로 걸었는데요?"

"한국일보 총무과요."

"하하하.........!"

"왜 웃으십니까?"

"당신 때문에 면허 따는 비용보다 술값이 더 나가게 생겼소. 총무과장이 두고두고 나를 울궈먹을 거란 말씀이시지."

"전화상으로는 호방한 게, 그럴 사람 같지 않던 데요?"

"그러니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니오."

이렇게 내가 떠들고 있는데, 순경 하나가 면허증과 함께 내 신분증을 들고 나타났다. 빼앗듯이 나꿔챈 내가 미정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갑시다!"

"멀리 안 나갑니다. 살펴 가십시오."

"오늘 재수 없어, 똥 밟았다고 생각하시오."

내 말에 쓰게 웃는 강 경위였다. 시험장을 걸어 나오는데 미정이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나도 하나 해주지."

"뭐? 하하하.........! 당신은 해 줄 수가 없지. 그야말로 생초보인데, 그러면 쟤네들은 살인면허를 발급하는 거라고."

"나도 농담이었어요. 나는 정말 당신이 얼마나 운전을 잘 하는지 봐야지."

"기대 하시라! 개봉박두!"

"쳇!"

"이제 자동차학원 등록하러 가야지?"

"그 문제는 제가 알아서 할 테니, 우선 필요한 살림부터 들이는 게 어떻겠어요? 여봉~!"

급 아양을 떨며 척하니 팔짱을 끼는 미정이었다.

"그럼, 일단 집으로 가서 차를 끌고 나옵시다. 간단한 것은 거기다 싣고 오고, 나머지는 배달시키게."

"알았어요. 당신 운전 솜씨도 볼 겸, 어서 가요."

우리는 그 길로 산보 삼아 집까지 걸어갔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내가 키를 넣어 차 문을 열었다. 내가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있어도, 미정은 내가 못 미더워 차를 타려하지 않았다.

"빨리 타! 그렇게 서 있지만 말고. 아예 조수석에 타서 내가 어떻게 운전하는지 똑똑히 봐둬."

나의 재촉에 마지못해 차문을 열고 조수석에 타는 미정이었다. 오늘 미정은 나에 의해 내키지 않는 일을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닐도 뜯지 않은 새 차에서 나는 고무 냄새 비슷한 냄새가 싫어, 실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곧 시동을 걸었다.

"정말 당신 똑바로 운전하는 거죠?"

"이 사람이 정말, 내 사랑하는 당신 태우고 같이 죽을 일 있어?"

내 말에 조금은 불안한 기색이 누그러지는 미정이었다.

"갑니다."

나는 1단 기어를 넣고 천천히 액셀을 밟으며 부드럽게 스타트를 했다. 그리고 미정을

보며 말했다.

"내가 이 차 대리점에서 끌고 왔다면 믿겠어?"

"당신 미쳤어요? 면허도 없이."

"하하하........! 미친놈하고 사는 당신은 뭔데?"

"참,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운전을 아주 능숙하게 하자 미정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번졌다.

"정말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혼자 중얼거리듯 말하는 미정을 보며 나는 싱긋 웃음 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런데 우리 마늘님이 하나 양해할 것은 내가 서울지리에는 좀 서툴단 말씀이시지. 그래도 바다로 가지는 않을 테니까, 마음 푹 놓고 시승식을 즐기라고."

"참, 남들은 차 새로 사면 고사도 지내는 것 같던 데요?"

"다 미신이야. 이 몸은 그런 것 안 믿어. 오로지 나만 믿고 살아."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해요. 나는 이래라 저래라 간섭 못하겠네요."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드라이브는 대한전선의 TV 한 대, 금성사의 냉장고, 잡표의 전기밥솥 등을 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나머지 가구라든가 다른 것은 미정이 알아서 사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나는 향미각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다. 오전의 통화 내용대로 여자도 세 명을 섭외 해 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미정이 오늘 또 술 마식 약속 잡는다고 투덜거렸지만,

'다 너희들 먹여 살리기 위해 그런 거야!'

이 한마디에 어이없다는 얼굴을 하고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날 저녁.

나는 6시 40분부터 향미각으로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송 본부장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5분 전 7시가 되자 자가용 한 대가 와서 멎었는데, 내리는 사람을 보니 송 본부장이었다.

나는 얼른 뛰어가 인사를 건넸다.

"오셨습니까? 본부장님! 목이 10cm는 빠진 것 같습니다."

"내가 늦었습니까?"

"아니, 그런 뜻은 아니고요. 제가 너무 빨리 나오는 바람에 그랬습니다."

"자, 들어갑시다."

이때 멀찍이 서 있던 마담이 나의 손짓에 재빨리 다가와 마중을 했다.

"오셨어요. 윤 마담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험, 험! 자태가 아주 곱소!"

본부장의 말에 곱게 웃은 윤 마담이 말했다.

"그래봐야 기생 팔자죠."

"너무 자신을 낮추는 것도, 남이 듣기에 좋지 않은 일이오."

"명심하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죠. 이미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그럴까요?"

윤 마담을 필두로 우리는 오래된 고목나무를 지나 특실로 안내되었다. 그곳에는 이미 윤 마담의 말대로 모든 것이 세팅되어 있었다. 윤 마담이 재빨리 방석을 내어 두 사람이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한 분은........."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못 오신답니다."

"그럼, 아가씨 하나를 취소할까요?"

"그대로 들여요. 어차피 우리가 예약한 사람이니 제가 책임을 져야지요."

"경우가 너무 바르세요."

" 경우 바른 놈 치고 내 잘 사는 사람을 못 봤소."

"호호호........! 사장님도 그러면........."

"가난뱅이 될 소지가 다분하오."

우리의 주고받는 말에 송 본부장이 끼어들었다.

"내가 볼 때는 정반대요. 아주 부자가 될 사람이니 지금부터 잘 모시시오."

"네, 사장님!"

마담의 '사장' 소리에 이마가 찌푸려드는 송 본부장이었다.

그래서 내가 재빨리 말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고위 공직에 계신 분으로, 앞으로는 그냥 편하게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다가 정 마음에 들면 2차라도 한 번 나가 봉사를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오."

"사장님도, 참........."

나의 걸쭉한 농담에 분위기는 곧 화기애애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나의 걸쭉한 농담에 분위기는 곧 화기애애하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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