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중생활-- >
나는 그녀를 보내고 공항 밖으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나는 금방 생각해 낼 수 있었다. 지금 커튼월이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이것이 금액적으로는 주공의 아파트 공사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에 가장 먼저 주공 건의 견적을 제출해 공사에 착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지금 최소한 일층에 해당하는 물량의 새시 조립이 끝나야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바로 1층을 시공해 주어야만 미장이 따라붙어 다음일을 진행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태로는 우리 때문에 다음 공정이 계속 지연되게 생겼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견적을 내기 위해서 바로 청주로 내려갈 결심을 했다.
물론 여기서도 견적을 못 낼 바는 아니었으나, 대규모 물량이기 때문에 정확한 견적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충 헤베(가로1m x 세로 1m)당 견적이나 평당 견적을 내어서는 안 되었다. 여기서 새시 평수는 일반과 달리 가로 30cm x 세로 30cm를 1평이라 한다.
아무튼 나는 이를 생각하자 미정이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도면도 터미널로 가져와야 하고, 그녀도 기왕이면 같이 내려가기 위해서였다. 미정에게 생각이 미치자, 나는 바로 내 머리를 쥐어박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까지 갔다왔다는 놈이 선물 하나 안 샀으니 미정이 알면 방방 뜨게 생겼다. 나는 급히 담뱃불을 꺼서 주위에 있는 쓰레기통에 버리고, 바로 공항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면세점을 향해 분주하게 걸어가면서 나는 무엇을 사주어야만 미정이 만족할까를 생각했다. 그러자 내 머리에 언뜻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짧은 스커트에 하이힐 이었다. 지금까지 미정은 내가 미련을 떠는 바람에 그런지, 저도 사치를 몰라서 그런지 긴 치마에 고등학교 때 신던 단화 아니면 운동화 차림으로 다녔다.
그러나 면세점에 그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나는 대충 샤넬 향수 한 병을 사들고 나와서 꼭 하이힐과 짧은 스커트를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니스커트가 되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려 마침내 공중전화 있는 곳을 찾아내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걸려고 하니, 한국일보에 이야기는 해놓지만 전화가 설치되어 있는지 불안했다.
제기랄 아무리 전화가 설치되어 있으면 뭘 하나, 정작 집 전화번호를 모르는 것을. 일단 여기까지 생각이 들자 나는 곧 바로 한국일보 총무과로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가 받았으나 곧장 김 과장이 받았다.
"과장님 귀국했습니다."
"내게 귀국 보고 할 리는 만무하고, 어........ 그러고 보니 전화 문제겠군."
"쪽집게시네요."
"내 전번에 얘기하지 않았나. 눈치만 9단이라고."
"이 사람아 돈까지 대납하게 만들어? 좋은 번호에 신속히 가설하게 해줬으면 됐지."
"아시다시피 제가 일본에 있는 바람에........."
"그렇다고 부인한테 전혀 경제권을 안 주나? 그만한 돈도 없어 내가......... 험, 험. 그만하지."
"감사합니다."
"외워!"
"네!"
"000국에 0000번이야. 번호 좋지?"
"조만간 술 한 잔 사겠습니다."
"말로만?"
"과장님!"
나의 고함에 전화기를 순간적으로 멀리 떼어내는 것이 눈에 선했다.
"이 사람아 귀청 떨어지겠어."
"감사합니다. 끊겠습니다."
"또 봄세!"
"네, 과장님!"
나는 눈치를 보아가며 바로 이어서 새로 알게 된 집 전화번호로 다이얼을 돌렸다.
"거 웬만치 합시다."
뒷열에서 나를 나무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는 얼굴에 박강판을 깔았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해요?"
"당신 말고, 빨리 도면가지고 나와. 청주 갈 것이니까, 터미널로. 끊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사정없이 끊어버렸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공항을 나온 나는 곧바로 택시를 집어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가만히 생각하니, 이럴 때 자가용이 있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장 집으로 자가용 끌고 가 청주로 내쏘기만 하면 되니까.
또 앞으로 공부와 사업을 병행하려면 청주를 수없이 드나들어야 하고, 현장도 쉽게 쉽게 찾아다니려면 자가용 한 대는 필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 결심을 굳혔다. 이번 기회에 아예 자가용 한 대 뽑기로.
아무튼 터미널에 도착한 나는 이곳에서 1시간 30분 후의 차를 예매하고 미정을 기다렸다. 1시간 만에 미정이 나타났다. 벌써 시간은 밤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만나자마자 미정이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것에 대해 따지려 덤벼들었다.
"당신........!"
"알았어, 알았어!"
나는 미정의 입을 틀어막을 목적으로 도면을 빼앗아 들며 말했다.
"공중전화였었는데, 뒤에 사람이 얼마나 밀리는지 당신이 이해해. 그게 벌써 두 번째 통화였거든."
"그렇다면 내 이해할 게요. 대신 선물?"
손을 척 내미는 미정이었다.
'내 이럴 줄 알았다. 그나마 향수라도 하나 안 샀으면 어쩔 번했어!'
"차 안에서 줄게."
"얼마나 대단한 것을 샀기에 그렇게 뜸을 들여요?"
"과잉기대는 금물. 내가 그래도 당신 생각하고 잊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야?"
"당연하죠."
뭐가 당연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니 급한 마음에 명희 선물을 안 샀다. 내심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도 이 모양인데, 이미연 양마저 자빠트려 치근덕거리게 만들어 놨으면 아주 골치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있어!"
더한 기대를 갖게 하느니 차라리 시간이 좀 있는 이 시간에 주어야겠다고 나는 사넬 포장지를 내밀었다.
"뭔데 이렇게 작아요?"
"비쌀수록 작은지만 알아."
"하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미정은 그렇게 말하고 차근차근 포장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어머, 이게 뭐야? 병도 예쁘네요."
"프랑스제 향수!"
"에이, 내게 어울리지 않게 향수는?"
"아니야. 살짝 밤에만 뿌려!"
"쳇! 누구 좋으라고."
"그러나 저러나 큰일났다. 깜빡하고 명희 것을 안 샀다."
"나도 안 가져요. 여기 있어요."
진심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으나 미정의 태도가 나는 정말 고마웠다. 그렇게 배려하는 마음씨가 너무 따뜻하게 느껴져 나는 사람들이 보거나 말거나 그녀에게 달려들어 뽀뽀를 했다.
"이이가 왜 이래? 창피하게!"
"창피해?"
"아니, 말실수! 부끄럽잖아요."
아양을 떨며 급히 내게 다가와 팔짱을 척하니 끼는 미정의 센스였다.
"당분간만 비밀로 해줘."
"딱 삼일 기간 줄게요. 그 동안은 절대 나도 안 해요. 강요하지 말아요."
"알았다. 알았어!"
우리가 청주 공장이자 집으로 돌아오니 모든 곳이 불이 꺼졌는데 유독 단종 사무실과 우리 집만 불이 훤했다. 나는 미정을 위로 올려보내고 사무실에 들렀다.
"아니, 이 시간에 사장님이 웬 일이십니까?"
마 부장이 나를 보더니 깜짝 놀라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함께 견적을 내고 있던 지용준과 남희태였다.
"저녁들은 먹었습니까?"
"네!"
"저녁 늦게까지 고생이 많으신데 무리한 부탁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무슨.........?"
나는 마 부장의 질문에는 답을 않고 도면을 펼쳐놓았다. 당연히 새시가 그려진 도면이었다. 그리고 말했다.
"물량이 많아요. 4,170세대나 되니 어마어마한 물량입니다. 바로 견적을 제출해야 되는데 시간이 없군요."
"제가 할 일이 뭡니까? 사장님!"
고맙게도 내 말하는 의도를 알고 바로 치고나오는 마 부장이었다.
"이 도면을 보고 절단 치수를 뽑아 절단은 물론 조립까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관도어는 물량도 많지 않고 조립 시간도 많이 걸리니 생략해도 좋습니다."
내 말을 들으면서도 도면을 유심히 살피던 마 부장이 말했다.
"세대 당 16, 18평형은 6틀이고, 25평형은 8틀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러니 기본 6틀하고, 25평형 2틀만 더 제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제법 걸리겠는데요?"
"야식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야식 필요 없는데........?"
내 말에 남희태가 집에 갔으면 하는 심정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매일 수습이냐? 진급도 좀 하고, 월급도 더 받으려면 뭔가 회사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 아니야. 가고 싶은 사람은 가도 좋다!"
"사장님은 농담도 못 합니까?"
"하하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내 너희들 마음 잘 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이 일이 오래 걸리면 철야라도 할 놈들이라는 것을. 하하하.........!"
나의 말에 뻘쯤하게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는 둘을 내버려두고 나는 잠시 2층으로 올라갔다.
"밥 없어?"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소리를 질렀다.
"우리끼리 먹으려고 그냥 된장찌개 끓였는데요."
"거 좋지! 뭐니 뭐니 해도 한국 사람은 한국 음식을 먹어야 기운이나!"
"며칠이나 계셨다고."
내 말에 말과 함께 입을 삐죽빼죽하는 미정이었다.
"왜 이렇게 저녁이 늦었어. 9시 반이 넘었는데?"
"혼자 있으니 게을러지네요. 안 먹을까 하다가 너무 배고파서........"
"잘~ 하고 있다!"
명희의 말에 핀잔을 하니 명희는 그냥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주방으로 향했다.
"밥은 부족하지 않은 거야?"
"삼인 분은 돼요. 부족하면 제가 나중에 새로 해서 먹을 테니 오빠 먼저 드세요."
"알았다, 알았어. 일단 다 됐으면 얼른 가져오기나 해."
"네~!"
나는 곧 내온 밥상을 받고 맛있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웠으나, 내가 더 먹으면 밥이 부족해 보이기에 그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나는 세 사람이 절단하는 소리를 들으며 도면을 가지고 사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도면을 티탁자 위에 펼쳐놓고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이런 젠장.........! 요즘 왜 이렇게 정신이 없나 몰라!"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다시 대리점 사무실로 갔다.2층에 전화를 하려고 하면서 사장실과 플러치 된 2층집으로 전화를 하자면 다른 전화로 해야 된다는 것을 깜빡한 내 푸념이었다. 나는 곧 전화를 걸어 저들에게 야식으로 만두와 찐빵 합해서 6인분을 시켜주도록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도면을 상세히 훑고는 견적서 용지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25평은 별도 견적을 내기로 마음먹고, 우선 16, 18평부터 견적을 내기로 했다. 1. 재료비라고 적어놓은 나는 품목 란에 알루미늄 새시 단위 란에 kg이라 적고 적요란은 빈 칸으로 내버려 두었다. 그리고 자재부속대 라고 해서 자재비의 15%를 써넣었다. 역시 새시 가격이 안 나와서 적요 란은 공란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이어 나는 들어갈 공임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조립과 시공부분을 별개로 하여 M/D를 유추해보았다. 즉 날짜에 대한 투입인원수였다. 그 역시 최종란은 공란으로 남겨두고, 이제 공과잡비 10%를 또 적어넣었다.
마지막으로 기업이윤 20%를 계상했다. 마찬가지로 25평형도 적어놓고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절단이 다 끝났는지 듣기 싫은 소음이 멈춰져 있었다. 그래도 나는 확인하기 위해서 마 부장에게 물었다.
"절단 다 끝났습니까?"
"네, 사장님!"
"그럼, 먼저 계량부터 해봅시다."
"조립해서 하지 않고요?"
"그것은 아시다시피 정확한 새시만의 무게로 볼 수 없잖아요. 부속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야 그렇습니다만 통상 그렇게 해서 자배비를 산출하던데........"
"자재비에서 남겨 먹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대리점이니 소매가로 계산을 하면 그만큼은 남겨먹겠지요."
"알겠습니다. 18평과 25평은 분리해서 계근해야겠지요?"
"잘 아시는 분이 오늘따라 말이 많네요. 말 많이 해도 허기집니다."
내 농담에 피식 웃은 마 부장이 두 사람을 지휘대 큰 수평저울대에 지금까지 절단한 새시들을 모두 올려놓았다.
"이렇게 절단을 해서 계량을 하게 되면 장바를 절단하고 치수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쓸모가 없으니, 10% 정도는 그 기레빠시로 계상을 하셔야 될 것입니다."
"아, 부장님이 말 많이 하신 보람이 있네요. 그 부분은 제가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거 보란듯이 빙그레 웃고 있는 마 부장이었다. 이렇게 해서 순차적으로 25평형 새시까지 우리는 계근을 마쳤다. 나는 메모지를 들고 들어와 자재비에도 로스율 10%를 가미해 계산을 적용했다. 끙끙거리며 모든 계산을 마치니 세대별로 16, 18평형은 53,200원이 나왔고, 25평형은 70, 170원이 나왔다. 나는 더 이상 손대지 않고 각 통로별 새시현관도아를 계산해 넣었다. 또 다른 도면에 의지해 공조실 같은 곳에 들어가는 그릴도 계산해 넣었다. 비로소 모든 견적이 나왔다. 총 2억6천4백만 원이 나왔다. 백만 단위 밑으로도 지저분한 숫자가 나왔으나, 큰 금액상으로는 그랬다. 어마어마한 돈이었다. 당시의 물가를 감안하면. 나는 이를 보고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견적서를 한동안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