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69화 (69/322)

< --이중생활-- >

한국일보로 가는 택시 내.

나는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미정에게 물었다.

"그렇게 좋아?"

"네! 하늘만큼 땅만큼. 비로소 내 집이 생긴 느낌 이예요."

나는 정말 행복해 하는 미정을 보니 그녀를 더욱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물었다.

"그 집을 당신 명의로 해줄까?"

"정말요? 아이, 좋아라!"

"아직 해준다는 말 한 했거든."

"해 주세요? 네?"

해맑게 웃으며 아양을 떠는 미정의 볼을 살짝 꼬집은 내가 말했다.

"볼에 뽀뽀!"

쪽!

"입술에!"

택시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던 미정이 급하게 내 입술을 훔치곤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해줄게. 단!"

"뭐예요?"

"당신 너무 좋아하다 심장마비라도 걸릴까봐 김을 빼놔야겠어."

"뭔 데요?"

"정 급하면 담보로 제공할 것."

"그럼, 안 할래요."

"사업이란 앞일을 모르잖아. 어쩔 수 없을 경우에만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 아마 내 평생에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믿어요. 해주세요."

"그래, 잔금 치르는 날 자기 것으로 모든 서류를 준비해. 바로 당신 앞으로 명의 등재하게."

"고마워요. 여보!"

쪽!

"남발하지 마. 가벼워 보여."

"쳇, 이랬다저랬다."

나는 그 순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까짓 재산 추적이 들어와, 증여로 세금 두드려 맞으면 물지 뭐!'

이렇게 나는 미정을 얼렀다 달랬다 하다 보니 어느덧 중학동 한국일보 사옥에 도착해 있었다. 나는 세 들어 살고 있는 코오롱 그룹을 피해, 3층 총무과로 갔다. 옆에는 미정이 조신하게 따르고 있었다. 총무과 팻말 앞에서 내가 노크를 하니, 안에서 아가씨의

'들어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들어가자마자

'하이 히틀러!'

하는 식으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반갑습니다! 강 대정입니다. 나랑 통화한 아가씨?"

"네, 강 기자님!"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나를 맞는 아가씨였다.

"안 사람입니다. 인사드려."

"네........."

미정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급히 묻는 아가씨였다.

"벌써 결혼 하셨어요?"

"네, 약혼만!"

"정말 예쁘시네요. 그럼........."

입에 발린 찬사였다. 목례를 까딱하더니 '과장실'이란 아크릴 표찰이 달린 방을 노크하는 성도 모르는 아가씨였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오는 30대 후반의 인물이 있었다.

"반갑습니다. 많이 기다렸어요. 총무과장 김응태입니다."

"네. 동감입니다. 강 대정입니다."

"이쪽으로."

우리는 한쪽 구석에 마련된 소파에 안내되어 앉았다.

"실례지만 부인?"

"네! 인사드려 과장님이셔."

"잘 부탁드립니다. 정 미정입니다."

"미인 중에 미인이네. 단속 잘 하셔. 누가 안 채가게."

"그러잖아도 누가 채 갈까봐, 오늘 벌써 집 한 채 선물하고 오는 길입니다."

"정말입니까? 미정 씨?"

"네, 사실 이예요. 한남동에 자그마한 이층집을 하나 사주셨어요."

"우와........! 정말 대단하고만, 대단해!"

차를 타며 우리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있던 아가씨의 그나마 삐죽 빼죽이던 입이 완전히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자신과는 비교대상이 아니라는 뜻일 게다.

"커피 타고 있는 거지? 커피 싫어하시는 분?"

김 과장의 어법이 이상하지만 의사전달은 확실히 됐다.

"서류는 준비 됐습니까?"

"사진만 붙이고, 몇 자 적기만 하면 됩니다."

"고맙습니다. 혹시 주일 한국일보 특파원 잘 아고 계십니까?"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안면은 있습니다."

"왜요? 아.........! 통역!"

"눈치가 빠르십니다."

"총무과요? 여기도 눈치 9단이 되지 않고는 배겨나기 힘든 데입니다. 회사가 어디든 다 그렇겠지만 서도."

"그렇군요. 소개는 해주실 수 없습니까? 전화하는 것이야 뭐 어렵겠습니까 만은, 내 말발이 먹힐지는 의문입니다."

"그럼, 누구를 통해야.........?"

"당연히 편집국장님이, 이거죠."

엄지손을 들어 올리는 김 과장이었다.

"자리에 계실까요?"

"아마도."

"전화 한 통화 쓰겠습니다."

"오양아! 전화 좀 눌러드려."

"네!"

나는 오 양이라는 아가씨의 강요된 친절에 의해 금방 편집국장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국장님, 저 강 대정입니다."

"어쩐 일로? 맨날 청주만 있지 말고 놀러 와요."

"술 한 잔 사주시면 올라가고요."

내 말에 김 과장이 폭소를 터트리고, 미정은 입을 막고 웃고 있었다.

"아, 술이야 열 번이고, 백 번이고 사지. 올라오기만 해요."

"정말이십니까? 국장님!"

"중국 놈 빤스를 입었나, 왜 이렇게 의심이 많아요?"

"Good! 저 총무과입니다."

"뭐? 취소야, 취소!"

"하하하.........!"

"내 열일 젖혀놓고 금방 내려갈 테니, 기다려요."

"네에~!"

나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웃음의 잔재가 남은 얼굴로 김 과장에게 말했다.

"술은 편집국장이 사시기로 했습니다."

"아, 그 막강 파워의 편집국장님 술을 얻어 자시는 분은 강 가자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요? 그렇게 구두쇠입니까?"

"구두쇠가 아니라 그 양반에게 서로 못 사서 안달이죠."

"하긴 그럴 거예요."

이때 아가씨가 차를 내왔으므로 우리는 대화를 중단한 채 커피를 훌쩍거리고 있었다. 커피를 모두 미정이까지 다 비울쯤이었다.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며 편집국장이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들이닥쳤다.

"누가 내 흉 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봤습니다."

"뭐?"

"파워가 막강해 서로 술 산다고 아우성이라면 서요?"

"하하하.........! 하긴 그렇지. 그런데 문제는 술 마실 시간이 없다는 거야."

"오늘은 시간 좀 내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물주까지 대동했는데."

"네?"

"쉿! 금방 사장님 내려오실 거야."

"하하하........!"

편집부장의 말에 모두 박장대소를 하고 있는데, 또 한 번 문이 벌컥 열리며 장강재 사장이 들이닥쳤다.

"뭐가 그렇게 재미나나?"

"사장님 흉 봤습니다."

"뭐?"

내 말에 모두 똑같은 반응들이었다.

"쩐주라면서 요?"

"어느 놈이 그래?"

"막강한 편집부장님이요."

내 고자질에 편집국장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장 사장은 고함을 질렀다.

"이번에는 네가 사!"

"네, 사장님!"

"아니면 오자마자 내 방에 먼저 안 들린 강 기자가 내던지."

"그게 좋겠습니다. 사장님!"

급 화색이 돌며 일제히 나를 지목하는 한국일보 주당들이었다.

"어째 가만히 있는 제게 화살이 돌아옵니까? 그럼 오늘은 이렇게 하죠."

"어떻게?"

궁금하다는 듯이 장 사장부터가 의자를 당기며 달려들었다.

"더치페이! 각자 계산하기로."

"에이 사내새끼들이 시시하게.........."

금방 반발하던 장 사장이 비로소 미정에게 눈길을 주며 말했다.

"이 미인은 누구신가? 낮이 익은데? 우리 한국일보 주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뵙지 않았던가?"

장 사장의 말에 다시 한 번 얼굴이 빨개지는 미정이었다.

"제 안 식구입니다."

"뭐? 벌써 장가갔어?"

"일단은 약혼만 한 상태입니다만, 딸도 있습니다."

"아무리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세상이라지만 빨라도 너무 빠르군. 벌써 아이까지. 그러나 저러나 오늘 요정 집은 다 갔네 그려. 제수씨까지 있으니."

나의 총애(?)가 어떠한지 장 사장은 제수씨라는 말까지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도 장 사장의 표현에 많이 놀라워했다.

"이 사람 내려 보낼까요?"

"그건 안 될 말이지. 모시고 함께 가면 모를까. 실례된 말이지만 요정의 어느 미인보다도 뛰어나니, 요정아가씨들한테는 시선이 안 가고 ........ 험, 험!"

여기서 말을 아끼나 그 후속 말을 유추 못할 바보는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드는지, 바로 변명의 말을 잇는 장 사장이었다.

"우리 마누라보다도 백 번 나. 이젠 마누라도 늙어서 그런데 집어넣으면 아무도........"

"그 말, 제가 그대로 전합니다."

"이 사람이........! 하하하........! 자, 자! 지금까지 웃자고 한 농담이었고, 특히 제수씨 용서하세요.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장 사장이 정중히 고개까지 숙이자 급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미정이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바람이 불어 예까지 납시었나?"

장 사장의 물음에 나는 내가 요즈음 처한 상황을 그대로 설명했다.

내 말을 들은 장 사장이 심각한 안색으로 경청하더니 말했다.

"그 문 특파원 연결해주는 거야, 문제도 아니지만 말이야. 그러려면 엉뚱한 사업에 신경 그만 쓰고, 지난번과 같은 특종 하나 터트려 주게. 그러면 내 문 특파원이 아니라 전담 통역요원으로, 어여쁜 아가씨라도 하나 붙여줄 의향도 있네. 험, 험........!"

말을 하다 보니 또 미정에게 실례되는 말을 했는지라 헛기침으로 마무리를 하는 장 사장이었다.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다보니 퇴근시간 무렵이 다 되어 우리는 요정으로 향했다. 물론 미정이만 떼어 놓을 수가 없어 같이 데리고 갔다. 그 바람에 아가씨를 부르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식사만 하는 자리가 되었다. 식사도 나의 청에 의해 오만 가지가 나오는 게 아니라, 주로 등심을 먹었다. 술은 내가 소주를 시키려하자, 장 사장이 빡빡 우겨 양주로 마시기로 했다. 미정이도 얌전을 빼면서도 은근히 등심을 많이 먹었다. 양주도 세 사람의 강권에 한 잔씩은 받아먹었다. 이렇게 술자리가 익어갈 무렵 나는 장강재 사장에게 청을 하나 했다.

"사장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뭐든지 말해 보시게."

"대한주택공사 사장은 잘 모르십니까?"

"그 사람은 왜? 아........! 세시를 한다 했으니 그 사람에게 새시부분 공사를 달라고 하려고?"

"정확하십니다."

"음........ 가만히 있자. 지금 공사 사장이 송 건이지 아마?"

"맞습니다. 사장님!"

편집국장의 말에 더욱 밝아진 안색의 장 사장이 말했다.

"그 사람이 내 한양대, 고대경영대학원 선배 되는 사람이야. 근간에 내 자리 한 번 마련하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할 사람은 나일세 이 사람아!"

장 사장의 침 튀기는 열변이 이어졌다.

"자네 덕분에 창원에 인쇄공장 하나 세워 영호남을 커버하지. 자동 활자문선 시스템도 이제는 기계가 알아서 척척이야. 게다가 경제 등 섹션 신문으로 4대 종합일간지 중에서도 으뜸을 달리니, 중앙일보 창간으로 시들었던 사세가 이젠 차고 넘쳐. 하하하........! 쉽게 말해 자네 덕분에 신문으로서는 전국을 제패했으니, 그깟 청하나 내 못 들어주겠나?"

장 사장의 칭찬에 새삼 내가 다시 보이는 지, 내 옆얼굴에서 시선이 떠나지 않는 미정이었다.

"내 앞에서는 너무 예의 차릴 것 없어."

"사장님 제 새로 새긴 명함입니다."

나는 패스보드에서 한국일보 기자라는 명함에 한국일보의 대표전화, 그리고 우리 사무실 전화번호 세 개가 적힌 명함을 드렸다. 내 명함을 받아 잠시 들여다보던 장 사장이 말했다.

"전화도 세 대씩이나 놓은 걸 보니 제법 크게 하는 모양이군."

"아니면 사장님께 폐 끼칠 일 있습니까? 대리점까지 하니 이 업체에서는 전국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것입니다."

"그래, 그래 내 알았으니, 조만간 그 사람과 만나 자세한 이야기는 하자고."

"고맙습니다. 사장님!"

"또.......!"

"헤헤헤........!"

예의를 차린다고 한 방 먹는 바람에 나는 낯간지러운 웃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내 명함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한국일보 기자명함으로 한국일보 대표전화만 적혀있다. 또 하나는 순수하게 대정창호라는 명함으로 이 회사 전화번호 세 개가 적혀있다. 또 하나는 지금 장 사장에게 드린 것과 같이, 한국일보 명함에 내 사업체 전화번호 3개가 적힌 명함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우리가 식사를 즐기며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덧 술들도 거나해져 자리를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술자리가 파하자 장 사장이 자신의 집에서 자라는 것을 나는 미정이가 불편해 할 것 같아 굳이 마다하고 여관으로 향했다. 또 장 사장이 호텔이라도 잡아 준다는 것을 굳이 마다하고, 나는 미정과 요정에서 가까운 여관에 든 것이다. 여관에 들자마자 핸드백을 팽개친 미정의 전에 볼 수 없었던 애정공세가 시작되었다. 주도적으로 키스를 하며 달려드는 것으로, 이날 밤은 그녀의 요구에 의해 전에 없이 두 번씩이나 했다. 당연히 내 눈은 충혈 될 수밖에 없었다. 장 사장까지 극진히 나를 칭찬하고 대접하자, 나를 남에게 빼앗길까봐 하는 조바심인지, 아니면 집을 사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인지는 몰라도, 적극적으로 내 기분을 맞춰주며 괴상한 자세까지 자진해서 요구하는 등, 전에 없는 요부 짓을 했던 것이다.

어러니 내가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어, 이튿날은 벌개진 눈으로 청주로 내려와야 했던 것이다. 아무튼 행복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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