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66화 (66/322)

< --이중생활-- >

다음 날 아침.

이제 철물 단종도 허가를 내놓았다는 요지의 조회를 마치고 내가 사장실에 앉아 있는데,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내 집무실 문을 밀고 들어왔다.

조립 시공팀의 안창용 과장이었다.

"사장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우선 거 자리에 앉아요."

"네, 사장님!"

"차 한 잔 할까요?"

"좀 전에 했더니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이야기나 들어 봅시다."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유리까지 취급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야, 나야 좋지만 직원들이 고생하지 않겠어요? 말이야 바른 말이지, 대다수의 공사가 유리까지 끼워서 들어오지요. 그런데 유리를 취급하면 아시다시피 무거운 관계로 직원들이 기피 하지 않아요?"

"물론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유리도 우리가 취급해야 된다고 봅니다. 사장님의 입장에서 보면 일이 매일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거리를 덜 맡아 오셔도 기존의 유리까지 하면 절대 놀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디서 이익이 생기든 이익만 많이 생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별도로 유리 기술자도 구해야 되잖아요?"

"보통은 일 배울 때 작은 곳에서 배우다보면 대개 그런 곳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유리도 같이 취급합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유리 일도 배우게 됩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이제 기술을 배우는 신입은 몰라도 나머지 주임 이상 간부급들은 전부 유리를 취급할 수 있답니다. 그러니 별도의 사람을 채용 안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갈증 나지요? 내 나가서 차 한 잔 부탁하고 올 테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네, 사장님!"

나는 그 길로 명희에게 가 물과 함께 커피 두 잔을 부탁했다.

"얘기를 끊어서 미안해요. 어서 계속해 보시죠."

"네, 사장님!"

"음.........! 대형 유리 같은 경우는 로프를 이용해 매달아 올리면 되고, 그래도 감당이 안 되는 경우는 윈치를 차에 장착하면 얼마든지 올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별도의 유리차도 꾸며야 되겠지요?"

"우선은 일 톤 차면 가능합니다. 어차피 현장을 가려면 많은 인원이 이동하기 때문에 이제는 5톤 트럭과 1톤 트럭으로 한 번에 다 수송할 수도 없습니다. 자재도 실어 나르고 하려면 현장용으로도 차 한 대는 있어야 될 것입니다."

"알겠소. 내 차 문제는 해결해 줄 테니, 안 과장이 직원들 문제는 설득을 좀 해줘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이때 명희가 차를 가지고 왔으므로 둘을 차를 마시고 헤어졌다. 그를 보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는 안 과장이 하루아침에 자발적으로 마음이 바뀌어 그랬을 리는 만무고, 내가 볼 때는 어제 마 부장이 바로 술을 한 잔 사주며 달랜 모양이었다. 그래서 확인 차 마 부장을 불러서 물어보니 내 예측이 정확히 맞았다. 나는 마 부장을 잠시 자리에 앉히고 마 부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즉시 일을 처리하니 추진력이 있다고 보아야 되나, 회식자리를 즐기는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의 이 생각이 훗날 일이지만 여지없이 들어맞았다. 마 부장이라는 사람은 그야말로 애주가를 넘어 거의 알콜 중독에 가까웠다. 근무시간에도 점심에 반주로 꼭 한 병을 마신다는 것이다.

그 후 내가 한 번은 그를 불러 근무시간에 술을 마셔서야 되겠느냐고, 호통을 친 적이 있었다. 물론 내가 철저히 확인하고 증거를 확보한 후에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의 대답이 정말 그럴 듯 했다.30대 초반부터 마누라가 병이 들어, 오늘날 이때까지도 자신이 병수발을 든다는 것이다. 간호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월급을 타면 약값으로 절반 이상이 지출이 된다는 것이다. 거기다 재미 붙일 자식도 없고, 솔직히 섹스도 언제 해봤는지 기억이 없단다. 그래서 올바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고, 죽기 살기로 기술을 익혀 어디가도 천대는 받지 않고 직장 생활을 했다 한다. 그래도 낙이 없으니 술로 낙을 삼아 지금까지 버티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용서와 이해를 구하니 나로서도 참으로 난감했다. 그렇다고 실력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내 치겠는데, 실력만으로는 이 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일류였다. 그 순간 나는 삼국지에서 조조가 품행이 단정치 못한 명 참모 곽가를 포용하듯, 나 또한 이 사람을 포용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치고 단점 없는 사람이 없다. 단점만 보면 한도 끝도 없고, 많은 인재를 놓칠 것이다. 요는 어떻게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느냐는 것이 문제요, 사장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마 부장에게 경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하루 한 병 이상은 절대 안 된다'고. 이에 알겠다고 마 부장이 답하고 물러간 일이 있었다. 아무튼 이 일은 훗날의 일이고, 나는 기왕 마 부장이 들어온 김에 유리 문제를 거론했다.

"안 과장이 유리까지 우리가 직접 하자는데 부장님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적극 찬성입니다."

"직원들이 고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이런 제안을 내는 것도 사장님이 많은 이익금이 나면, 돌려준다는 말을 믿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 독식하는 사장이라면 똑같은 월급 받고서, 누가 사서 고생을 하려 합니까? 저는 정말 사장님의 경영방침이 마음에 듭니다. 대 회사로 발전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섭한게 있는데요."

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말씀해보세요. 제가 시정할 것은 바로 하겠습니다."

"나의 경영방침은 마음에 들고 인간성은 마음에 안 든다는 말입니까?"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말았다 합니다. 잘 해줄 때는 한없이 잘 해주시는데, 어떨 때는 냉혹하거든요. 하긴 기업을 하려면 호인 소리만 들어서도 망하죠. 그런 냉철한 면이 있어야 사업이 잘 굴러 가겠지요."

"그러고 보면 전부 마음에 든다는 말 아닙니까?"

"그래도 냉정하게 선을 그을 때는 이성적으로는 저래야 된다면서도, 저는 모질지를 못해서 그런지 아쉬울 때도 좀 있더군요."

"하하하........! 제가 뭐라고 해야 됩니까?"

"잘 하고 계신다는 말이니, 중언부언 하실 필요가 없지요."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주 한 잔 어떻습니까?"

"저야 백 번이라도 환영하죠."

"하하하........! 알겠습니다."

웃음이 가시자 마 부장이 주저하는 목소리로 말을 했다.

"저, 한 가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사장님 안 계실 때 종종 견적을 내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는데, 이들을 어찌 처리할 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우리가 신설 업체이다 보니 이 집은 혹시 싸지 않을까 해서, 비교 견적을 받으러오는 기존 건축업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다 견적을 내주다보면 일에 지장이 많고, 게 중에는 실제로 우리에게 오더로 집행될 것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면, 딱 잘라 거절하기도 힘든 상황입니다."

"흐흠........! 그것 참 애매하군요. 일단은 누가 우군이 될지 모르니, 전부 내주는 것으로 하죠. 그러다 보면 부장님이 시간을 많이 빼앗길 테니, 영업사원 둘 있죠?"

"네, 사장님!"

"그네들도 영업을 하다보면 견적은 필수이니까, 그네들을 가르치는 셈치고, 데리고 견적을 좀 같이 내주시는 방향으로 하시죠."

"그 사람들 낮에는 영업하느라고 바쁘던데요."

"제 욕심인지 모르지만, 부장님이 가급적 밤에 시간을 할애 했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제작 시공팀 철야작업을 하는 것을 보고, 윗사람으로서 저 혼자 먼저 퇴근하기가 찝찝했는데, 그렇게 하도록 하죠."

"너무 과중한 부담이면 낮 시간에 짬을 내셔도 좋습니다."

"아닙니다. 사장님 명대로 하겠습니다."

"이래저래 오늘은 제가 꼭 술 한 잔 사야 되겠네요."

"백번 환영합니다. 사장님!"

"하하하.........!"

그러나 나는 이날 저녁 술값만 주고 참석을 못했다. 손님이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명희 어머니가 명희 바로 아래 동생 즉 처제를 데리고 찾아오셨던 까닭이었다. 이날 해거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명희 어머니가 들이닥치자, 퇴근 준비를 하던 명희는 황급히 모친을 맞았고, 나 또한 마 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술값을 주어 보냈다. 그리고 나 역시 명희를 뒤따라 바로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쩐 일이십니까? 장모님!"

"내가 못 올 때를 왔나? 무슨 말이 그래?"

어쩐지 말이 까칠했다. 나는 금방 그 이유를 깨달았다. 주방에서 저녁을 짓고 있는 미정을 보아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리 속으로는 그러려니 생각을 해도 막상 미정이를 보니 속이 많이 상하셨던 모양이셨다.

"다름이 아니고 이 아이를 여기다 맡길까 생각을 하는데, 자네 의향은 어떤가? 올해 청주여상에 입학을 했어."

"그럼, 그러셔야죠. 언니가 이곳에 있는데 다른 데 맡기신 다거나, 혼자 자취를 한다면 제가 서운하죠."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네!"

내가 미처 뭐라고 대답할 새도 없이 장모님은 시선을 명희 동생에게 주며 말씀하셨다.

"그런데 너는 왜 뻑 하니 그렇게 서있니? 형부 처음 봐!"

"안녕하셨어요? 형부! 저 순희 예요. 기억하시겠어요?"

"요 근래 자주 못 봤더니, 숙녀가 다 되었네. 우리 처제 환영해. 앞으로는 언니도 있고 하니, 내 집같이 편안하게 생활해. 항상 어려운 점이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하고."

"네, 형부!"

말을 하며 요모조모 뜯어보니 명희만은 못해도 예쁜 인물은 인물이었다.

"입학식이 언제죠?"

"3월 2일 이라 하지, 아마? 맞니?"

"네, 엄마!"

"나랑 같은 날 입학식이라 못 가보겠다. 언니를 대신 보낼 테니........"

"아서 게. 명희도 제 신랑 입학식에 가야지. 왜 얘 입학식에 오나? 대신 우리는 거리가 멀어서 참석 못하니 양해하시게."

"네, 장모님!"

잠시 말의 공백이 생기자 장모님이 날 보고 물으셨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

"네, 장모님! 소개시켜 드릴 게요."

아무 말씀이 없으신 명희 어머니셨다.

"이봐! 다정이 엄마! 이리와 인사드려. 명희 어머니셔."

"네, 죄송해요. 미처 인사드리지 못해. 굽던 생선이 탈까봐......."

미정이 가스 불을 끄고 앞치마를 두른 채 나타났다.

"참말, 인물이 곱구먼."

미정이 얼굴을 붉히며 답변을 못했다. 미정과 장모의 관계가 더 어색해지기 전에, 내가 분위가 전환삼아 미정에게 말을 붙였다.

"오늘은 뭘 굽는데?"

"어제는 꽁치, 오늘은 고등어 예요."

"알았어. 빨리 빨리 저녁 준비해서 얼른 내와. 모두 시장하실 텐데."

"네~!"

미정이가 다시 주방으로 가자 장모님이 한탄 비슷하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예쁘긴 예쁘구나. 저러니 사위가 반했겠지?"

나는 면목이 없어 아무 말도 못하다가 명희를 급히 찾았다. 어디로 갔는지 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디 갔데요? 식구들 놔두고. 어디 가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일어나 찾으러 갈 기세이자 장모님이 말리셨다.

"샤워한다고 안방으로 갔어."

나는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장모님 앞이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정이도 있고 해서 대하기가 껄끄러워 죽겠는데, 저 혼자 쏙 빠져나가 샤워를 하고 있다니, 내심 괘씸했던 것이다. 나중에 한 번 혼을 내주어야겠다고 벼르고 있는데, 이때 명희가 웃는 얼굴로 나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니, 장모님 앞이고, 나중이고 간에 다 잊고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지금 뭐 하다 온 거야?"

"다정이 기저귀 개고, 자랑 좀 하려고, 아끼던 것 끼고 나왔죠."

"엄마! 짜잔.........! 이것 좀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명희가 불쑥 다이아반지 낀 손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아니, 그게 웬 반지냐?"

"오빠가 해준 거지 롱. 엄마! 반지가 중요한 게 아니야. 이게 다이아몬드라는 건데, 자그마치 3부야. 금값의 배도 넘는 비싼 거라고."

"그래? 요새 신랑 잘 만나 아주 호강한다. 호강해!"

"우와~! 언니 부럽다. 나는 언제 저런 신랑 만나지?"

"쪼그만 게 별 소릴 다 하고 있네!"

순희를 핀잔하며 기어코 동생에게 꿀밤을 한 대 안기는 명희였다.

"왜 때려!"

"그게 때린 거냐? 예쁘다고 쓰다듬어 준 거지."

"또, 또! 시작한다. 감히 뉘 앞이라고 옛날에 하던 버릇들을........"

어머니의 호통에 둘이 뻘쯤하게 서 있자 내가 물었다.

"샤워한다고 들어간 게 아니었어?"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죠. 엄마한테, 언니 아기 기저귀 개러 들어간다면, 엄마가 좋아하시겠네요. 그래서 둘러댄다는 것이 그만........"

"됐다. 됐어! 저녁이나 다 됐으면, 어서 내와라. 시장하다."

듣기 싫다는 듯 손까지 저어 명희를 주방으로 쫓아내는 장모님이셨다.

"알았어요. 엄마!"

재빨리 주방으로 향하던 명희가 무슨 생각인지, 미정의 등 뒤에서는 다시 반지를 빼서 감추었다. 평소 아깝다고 끼지도 못하고 보석함에 놓아두던 반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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