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65화 (65/322)

< --이중생활-- >

내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이상백! 너는 아저씨한테 실무 철저히 배우고."

"넵!"

"너희들 둘은 더 많이 뛰어. 구두 뒤축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도록. 물론 너희들 덕분에 요새 절단부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잘 안다. 그렇지만 달리는 말에 채찍질 가한다고, 어디 가서 당구치지 말고 열심히 뛰란 말이야."

"우린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남희태가 정색을 하고 항변을 했다.

"알아, 알아! 괜히 내가 농담 한마디 해본 소리야. 더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돼. 알았지?"

"넵, 사장님!"

구두 뒤축을 붙이고 부동자세로 답하는 두 놈들을 보니,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기 위해서라도 나는 방을 나섰다. 그때였다. 김 주임이 들어오다 나랑 마주쳤다.

"어머!"

부딪칠 번한 것을 간신히 모면한 김 주임이 새된 비명을 질렀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세요?"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누가? 우선 사장실로 모시지 그랬어요?"

"네, 그렇게 했습니다."

"가 봅시다."

"네, 사장님!"

나의 말에 앞장을 서는 김 주임이었다. 자연스럽게 그녀의 뒤태를 보게 되었다. 단정하게 입은 스커트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요는 스타킹차림이라 추워 보인다는 것이었다. 이를 보고 한 마디 안 할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입으면 춥지 않아요?"

"대부분을 사무실 내부에서 지내니 별로 추운 줄 모르겠어요. 오갈 때는 여기에 코트를 걸치니 괜찮고요."

"괜한 걱정이었군요."

"그만큼 신경을 써주시니 제가 고맙지요."

"뭐 하는 사람이래요?"

"저도 처음 보는 사람이고........ 미처 여쭙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사장실 앞에 도착했다.

"차 한 잔 부탁합니다."

"네, 사장님!"

내가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십 대 초반의 후리후리한 키에 희끗희끗한 머리가 인상적인 사내가, 나의 등장에도 그냥 소파에 앉아 나를 맞고 있었다. 그러나 곧 읽던 신문을 탁자 위에 팽개치고 걸어 나오며 손을 내밀었다.

"세원 건설의 이동용입니다."

"사장님 되십니까?"

"그렇습니다."

"강 대정입니다. 청주에서는 내노라하는 사장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별 말씀을.........! 자리에 앉아 이야기 합시다."

말하는 폼이 누가 주인인지 모르겠다. 나는 말없이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금번에 새로 차렸지요?"

"그렇습니다."

"차 사장이나 몇 몇한테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건축업계의 이단아라고 소문이 자자하더 만요."

"그런데 무슨 일로........."

"아,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괴상한 건축주를 만났습니다. 이번에 육거리 정면에 대형 7층 상가 한 동을 맡았는데, 특색이 있어야 된다고 하며 설계해온 것이 글쎄, 새시가 생전 처음 보는 설계였어요."

"도면은 가져 오셨습니까?"

"물론이오. 내 이 도면을 가지고 청주 시내 좀 크다는 업체는 다 돌아다녀도, 처음 보는 작품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습디다. 바 자체도 구할 수 없거니와 물론 시공 차제도 해본 적이 없다는 얘기였지요. 혹시나 해서 동양강철의 차 사장도 만나보았으나, 역시 나였습니다."

말을 하며 도면을 품에서 주섬주섬 꺼내 놓는데 새시부분만 떼어왔다. 보통 도면이 2절 크기인데, 4절 크기로 좀 작아, 그것을 반 접어 넣고 왔던 것이다. 나는 그로부터 도면을 넘겨받아 찬찬히 살펴보았다.

"'커튼 월' 인데요?"

"아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런, 이런 여기서 귀인을 만나다니, 진즉에 찾아 뵐 것을......... 나도 건축을 20년 넘게 하지만 처음 보는 물건을 단번에 알아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이 '커튼 월'이라는 시공법은 10년 후에나 등장해 유행하는 공법인데, 벌써 출현하다니 의외였다.

"차 사장 말대로 바가 아니라 한국에는 금형 자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일본은 나와 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 이 사장이 말했다.

"내 설계 소장도 만나보았는데, 그 양반이 일본 유학파로 와세다 대학 출신이라 합디다. 일본에서는 이게 한창 유행하는 공법이라고 하더만요. 그러나저러나 바가 없는 것을 어떻게 시공한단 말이오? 아, 글쎄!"

이때 김 주임이 차 두 잔을 놓고 나갔으므로 잠시 그의 말이 중단되었다.

"드시죠."

"지금 차 마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란 말이오. 하여튼 내 이래서 건축주 보고 몇 번을 설계변경 하자고 해도 막무가내입디다. 그래도 청주에서는 최초로 시공하는 7층 건물인데, 뭔가 특색이 있어야 한다면서, 절대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거예요. 어떻게 하든 해내라는 겁니다. 부탁드립니다. 사장님!"

처음에는 무척 거만한 태도이더니 이제 내게 꾸벅 절까지 하니, 나로서도 참으로 난감했다. 잠시 이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던 내가 답변을 했다.

"정말 이 대로 시행하려면 제가 일본까지 나갔다와야 하겠습니다. 그 비용까지 견적에 감한해 주시면 수주를 하고, 아니면 아예 손 떼겠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주십시오. 그 문제는 건축주하고도 이미 상의가 끝난 상태입니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다. 꼭 그대로 시공해달라고 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도면을 두고 가십시오. 제가 빠른 시일 내에 일본 출장을 다녀와서 보다 정확한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을 했다.

"고맙습니다. 이 문제만 제대로 해결해 주신다면 내, 기꺼이 앞으로는 강 사장과 손잡고 일을 하리다."

"고맙습니다."

문까지 배웅을 해준 나는 돌아서서 곧 여권 문제를 생각했다. 여권이 쉽게 나오는 세상이 아니라서, 나는 이 문제를 한국일보 측에 의뢰하기로 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뒤적여, 한국일보 총무과로 전화를 걸었다.

"네, 총무과입니다."

"저 강 대정 기자인데 요."

"네, 강 기자님!"

"저를 아십니까?"

"그럼, 왜 몰라요? 한국일보 내에서 강 가자님을 모르면 간첩이죠."

"그래요? 혹시 과장님을 바꿔주실 수 있습니까?"

"네~! 잠시만 기다리세요."

잠시 기다리니 가는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울려나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저 강대정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실례지만 제가 그렇게 유명한가요? 아가씨의 인사치례가 아니고."

"강 기자님의 제안을 하나하나 실천하다보니 한국일보가 요즘 전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신문이 되지 않았습니까?"

"그야, 그렇죠."

나는 확실히 몰랐으므로 조금 얼버무렸다.

"그래서 사장님이 간부들을 불러들여 특별지시를 내리셨어요. 강 기자의 부탁이라면 뭐든지 들어주라하시면서, 강 기자님이 행한 일들을 일일이 거론 하시드만요. 저희들이 납득할 수 있게. 이걸 또 저희들은 부하 직원들에게 전파할 의무가 있으니, 그렇게 된 겁니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유명하다니 무명보다는 낫겠네요."

"이를 말입니까? 그런데 무슨 일로."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사업차 일본에 한 번 다녀왔으면 하는데, 여권 발급에 협조 좀 부탁드릴까 해서요."

"그런 문제라면 걱정 마십시오. 저희들이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나 사진 문제만은 저희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알아서 하십시오."

"조만간 찾아가 뵙겠습니다."

"점심 한 끼 사주시는 겁니까?"

"여부가 있겠습니까. 말씀만 하십시오. 언제든지 대접해 드릴 의향이 있으니."

"미리 제가 감사를 드리겠습니다."

"저 또한 감사드립니다."

"하하하.........! 그러면 서울에서 한 번 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네, 네!"

어떤 사람인지 보지는 않아 알 수 없지만 처음에 전화 목소리가 여자 목소리처럼 가늘어 내성적인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통화를 하다 보니 오히려 호남아 기질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니 사람을 깊게 사귀어 보지 않고, 외모나 기타로 예단하는 것은 정말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졸지에 일본 출장을 가게 생겼으니........"

혼자 중얼거리며,

'여권 문제는 이로써 해결이 되었구나!'

내심 생각을 하는데, 또 하나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통역문제였다. 고등학교 때 제2 외국어로는 독일어를 배운데다, 영어는 전생이나 지금이나 문법 공부나 했지, 회화는 잼병이니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천상 통역도 하나 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도쿄 특파원!"

나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 이 역시 한국일보에 부탁을 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나는 다음 문제를 생각했다. 철 단종 문제였다. 지금은 창호와 철물이 통합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분리가 되어 있어서, 대규모 공사를 위해서는 어차피 이것도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아직도 철물 단종을 취득하지 않았는가 하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창호단종을 내는 과정에서, 이행 증거금으로 예치한 500만 원을 한 달의 유예기간만 지나면 빼서 쓸 수 있다기에, 이를 기다렸던 것이다.

물론 돈이야 이 말고도 아직 많았다. 지금까지 쓴 돈의 대부분은 내가 신문사에서 1월 달 마지막으로 수금한 돈을 가지고 쓴 돈이고, 대부분의 돈이 그대로 예금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업하는 사람은 언제나 실탄이 풍부한 것이 좋았다. 어느 때 새로운 아이템이 부상 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일을 당할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 당장 공사가 있어 급한 것도 아니고 해서 나는 이때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곧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청을 찾았다. 제반 서류를 받아 작성하고 보증금 또한 창호 쪽에서 10만원 만 남겨두고, 10만 원을 더 보태 철물 쪽으로 옮겨 예치했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전번의 일도 있고 해서 이번은 빠르게 면허를 취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일을 끝내고 나니 어느덧 저녁때였다. 나는 바로 퇴근을 해 이층으로 올라갔다. 명희도 이때는 퇴근을 해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런 명희의 뒤에 서서 히프를 만지는 등 장난을 치고 있는데,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미정이었다. 나는 하던 짓이 있어서 얼른 쫓아가 말했다.

"춥지? 다정이 이리 줘."

"보기가 좋네요."

보았나보다. 둘의 장난치는 모습을.

이때는 저녁을 짓던 명희도 쫓아와 곁에 있었다. 그녀도 찔리는 것이 있는지 얼른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네! 별일 없지요?"

"네, 언니!"

조금은 굳은 표정의 미정이 기저귀 가방을 거실에 놓으며 말했다.

"당신은 우리가 살던 곳으로는 안 올 작정이에요? 가보니 연탄불은 퐁당 꺼지고, 찬

바람이 쌩쌩 불어 있을 수가 있어야지요."

"서울 올라가려면 얼마 안 남았는데, 당신이나 나나 그동안은 여기서 지내자고."

"참, 내........ 당신은 좋은지 모르겠지만 나는 조금 불편한데요."

"그래봐야 열흘 남짓이야. 며칠 후에 나 서울 올라 갈 건데, 당신도 같이 가서 집을 구하자고. 전세를 얻던지 상황 봐서 집 한 채 사던지 하자고. 이제 이 강 사장님도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 있지, 사글세로 전전은 못하겠네요."

"참 내, 말이나 못해야지. 알았어요. 그 때까지만 이예요."

"그럼, 그럼."

전세나 집을 산다니 기분이 확풀린 미정이었다. 거기에 내가 한 술 더 떴다.

"그 하루 사이에 당신이 얼마나 보고 싶던지, 내 눈 보이지? 짓무른 것? 호 해줘."

그리고 나는 눈을 까뒤집고 미정이에게 접근했다.

"호호호.......! 저리 가요. 징그러워요."

"하하하.......! 풀렸어?"

"네! 당신은 정말 미워해야 미워할 수 없는 사람 이예요."

둘의 하는 양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짓던 명희가 후다닥 주방 쪽으로 뛰었다.

"아이고, 생선 튀기던 것 다 탄다!"

"하하하.........!"

나의 웃음에 밉지 않은 시선으로 나를 흘기는 미정이었다.

============================ 작품 후기 ============================추위가 또 몰려 온다네요. 다들 건강 조심하시고요!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멘트, 추천, 많은 쿠폰을 주신 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늘 행복하세요!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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