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64화 (64/322)

< --이중생활-- >

약혼식도 끝나고 나니 이제 입학식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곳에 없을 때를 대비한 체제를 구축해야 했고, 일감도 확보해야 했으며, 서울에도 내가 거주할 집을 마련해야 하는 문제가 대두 되었다.

나는 오늘도 7시 30분 정각이 되자 간부들만의 아침 조회를 개최했다. 회의실 탁자에 둘러앉은 면면들을 살펴본 내가 먼저 입을 떼었다.

"연일 계속되는 추위 속에서 고생들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추위도 한 때고 일거리도 한 때입니다. 일이 몰릴 때는 때로 왕창 몰렸다가도 없을 때는 전혀 없는 것이 일감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힘드시겠지만 분발해주시고, 소소하게 들어오는 일감은 우리에게 새시 제품을 사러 오는 사람들에게 그냥 줘버리세요."

"줘도 그냥 아무나 줘서는 안 되겠죠. 우리 회사에 매출 물량이 많으면서도 실력이 뛰어나고 신용이 좋은 사람 순으로 주세요. 괜히 실력 없는 사람 주었다가 우리가 하자보수 할 일은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곧 서울로 올라가 학교를 다녀야 합니다."

말을 길게 하다 보니 갈증이 나는데 아직 차는 고사하고 물 한잔 탁자 위에 놓이지 않았다.

"박 기사님! 미안하지만 경리 보고 빨리 차 좀 내오라고 하세요."

"네, 사장님!"

이 박 기사라는 사람은 마 부장이 소개해서 들어온 5톤 트럭 운전기사였다. 고향이 청주인 이 사람은 노모가 자꾸 연로해져 거동이 불편해지자, 대전에서 하던 직장 생활을 접고 금번에 청주로 오면서, 우리 회사에 들어온 것이다. 당연히 5톤 트럭은 마 부장의 책임 하에 구매를 한 상태였다.

나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내가 없는 동안은 마 부장님을 중심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 부장님은 조 과장에게 빨리 스끼 뽑는 것 등을 가르쳐,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떼시고, 조 과장은 새시 절단 부분에서는 이 주임에게 완전 위임하세요. 아시겠지요?"

"네, 사장님!"

두 사람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여기서 조 과장이라는 사람은 이름이 조웅천(曹雄天)으로 사십대 초반의 경력자였다. 이 주임은 이름이 이효석(李孝錫)으로 절단 계통의 경력자였다.

"조립 시공부분은 이 수경 과장이 중심이 되어 모든 일을 처리하세요. 아셨죠?"

"네, 사장님!"

나의 지시에 똑 같은 과장인 안창명 과장이 금방 입을 삐죽빼죽했다. 둘 다 과장으로 지금까지는 경쟁관계였는데, 오늘 나의 지시로 인해 서운함 감정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때 비로소 이 명희가 차를 들고 들어섰다.

내가 바로 호통을 쳤다.

"이 명희!"

"네, 사장님!"

"군기가 빠진 거야, 뭐야! 아침 조회 전에 차가 나와야 하잖아. 왜 자꾸 게을러지는 거야!"

"죄송합니다. 사장님!"

공공연히 와이프로 공인된 사람까지 공공연하게 혼이나니 간부들 모두가 얼어붙었다.

"물은 왜 없어?"

"바로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네, 사장님!"

"나가봐!"

"네!"

나가는 명희의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 했다. 무척 서운한 모양이었다.

"차 한 잔씩 드시고, 질문이나 건의사항 있으면 하세요? 참 이 과장님! 충북대 공사건은 방학 전에 마칠 수 있는 것이죠?"

"25일이면 끝날 것 같습니다."

"추운데 밤에도 12시까지 작업을 하고 이튿날은 또 시공들을 하느라 고생이 많은 줄 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게 많이 남겨주면 저 혼자 절대 독식하지 않습니다. 두고 보시면 압니다. 그 문제는 나중에 결과를 가지고 얘기 합시다. 질문이나 건의 사항 없습니까?"

"저........."

"말씀하세요. 마 부장님!"

"배달용 차를 하나 구매하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사장님!"

"그건 또 뭔 소리입니까?"

"요사이 제가 유심히 관찰을 해보니, 절단 바를 구입하러 업자들이 많이 오는데, 대개의 경우 짐자전거를 끌고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들에게 배달을 해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구매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으흠........! 삼륜차로 하나 견적 받아보세요. 하고 차제에 운전기사도 하나 더 구하시고요."

"네, 사장님!"

"이렇게 회사를 위한 좋은 제안이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하니 주저마시고 발언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개석상에서 말하기가 어려운 분은 개인적으로 제 사무실을 찾으셔도 좋습니다. 사장실은 항상 여러분들을 위해 열려 있을 것입니다. 발언할 분 또 계신가요?"

"충북대 공사가 끝나면 큰 물량이 없어서 당분간 놀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되어집니다. 사장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이 수경 과장의 발언에 내가 답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도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오늘부터 열심히 뛰겠습니다. 일감은 걱정 마십시오. 됐습니까?"

"네, 사장님!"

"자, 이것으로 오늘 조회는 마치겠습니다. 좋은 하루들 되십시오."

"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입을 다물고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유독 내게 인사하는 사람을 보니, 이

곳에서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소장 안배성이었다.

"열심히 배워!"

"네, 사장님!"

잊혀져가는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보고, 나는 그를 격려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나는 그 길로 대리점 사무실로 갔다.

가스레인지가 이곳에만 설치되어 있어, 차를 타러 이곳에 왔던 명희는 자신의 사무실인 단종 사무실로 가지 않고 아직 훌쩍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안스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김 주임님!"

"네, 사장님!"

"새시를 판매하다 보면 외상을 안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해서 말인데 앞으로 거래를 하다가 3개월이 넘는 악성미수금은 별도로 뽑아서 제게 넘겨주세요. 아시겠죠?"

"네, 사장님!"

이런 사업을 하다보면 정말 외상거래를 하지 않고는 장사를 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돈 벌자고 하는 짓인데 이런데서 떼이면 안 되지 않겠는가? 사업의 망하는 원인 중의

하나가 이런 수금과 공사대금을 못 받아서 발생하는 경우를 나는 전생에서 많이 보았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의 하나로 받기는 받았으되, 어음으로 받은 것이 모두 부도처리 되었으니, 오십 보 백보로 같은 결과였다. 아무튼 이곳의 볼일이 끝나자 나는 명희를 불렀다.

"이 명희 이리 와 봐."

".........."

대답도 없이 나를 따라오는 명희였다. 그녀를 사장실로 데리고 온 나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거기 앉아 봐라."

말없이 소파에 앉는 명희였다. 울음은 어느새 그친 뒤였다.

"내가 네가 미워서 그랬겠니? 사실은 네 잘못보다도 직원들과 군기를 잡기위해서 한 행동이었어. 아, 간부들이 볼 때, 저 공공연한 마누라도 우리가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혼나는데, 우리가 잘못하면 가차가 없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한다는 것이 아침부터 우리 예쁜 마느라를 울게 만들었네."

"오빠!"

내 말에 금방 감격해서 내 품안으로 뛰어드는 명희였다.

"그래, 그래! 아침에 좀 더 일찍 일어나라. 깨워도 늦장부리더니 오늘 같은 일이 있잖

아. 나도 알지, 우리 마늘님이 늦게까지 혼자 공부하다 늦잠 들었다는 것. 그래도 오빠를 봐라. 오빠는 전날 아무리 술을 많이 먹고 들어와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지 않니? 이게 깨진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너! 못된 명희가 내게서 도망치던 날이었지."

"그 날은 얼마나 술을 많이 마셨는지 내 지금까지 머리털 나고 아마 제일 많이 마신 날일게다. 게다가 의욕마저 없어서 그날만은 내 한 번 늦게 일어난 적이 있다. 내가 왜 이렇게 장광설을 늘어놓는지 우리 아기도 알지?"

"네, 여보!"

"우와........! 금방 '여보'라 불렀어?"

"몰라요!"

"아이고 착하지 우리 아기. 어디 한 번 안아볼까?"

"쳇, 됐네요!"

삐친 형용을 하며 등을 돌리는 명희를 나는 백 허그로 안고 귓가에다 속삭였다.

"오늘도 오빠가 씻겨줄까?"

"오빠!"

빽하고 고함을 지르더니 복사꽃이 되어 달아나는 명희였다. 이때 마부장이 들어오려다 하마터면 둘이 부딪칠 번했다.

"저런, 저런.........!"

"어서 들어오세요. 아니래도 부르려던 참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일단 거기에 앉으세요."

"네, 사장님!"

"다름이 아니라 오늘 이 과장에게 조립 시공 팀의 전권을 줬잖아요?"

"아니래도 안 과장이 내심 무척 서운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어느 날이 되도 좋으니, 마 부장님이 저녁 때 슬쩍 안 과장에게 술 한 잔 사주시며 이야기를 한 번 하세요."

"솔직히 내가 봐도 실력은 안 과장이 뛰어납디다. 그러나 문제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이 없어요. 어떻게 시간만 때우고 가려는 경향이 강하고, 통솔력에도 문제가 좀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대개 범하는 오류이기도 한데, 너무 독단적 이예요. 때로 아이들 기분도 맞춰 줘가며 끌고 나가야 하는데 이런 면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내 입으로 직접 하면 아, 사장은 나를 신임하지 않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거예요. 그럼 바로 이탈 내지는 태업이지요. 마 부장님께서 연륜도 계시니, 술 한 잔 하면서 이 문제를 한 번 귀띔 해주세요. 안 과장 기분이 안 상하는 선에서. 그래도 사장은 너를 신임하고 있는데, 더욱 분발해서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그런데 사장님의 하시는 말씀과 행동을 보면 도대체가 저조차도 사장님의 나이(?) 험, 험........ 착각할 때가 많아요. 오늘 이 문제도 제가 먼저 거론하려던 문제였고요. 또 하나 삼륜차는 아무래도 불안합니다. 그냥 1톤 차로 구매하면 안 되겠습니까?"

"그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아낄 것은 철저히 아끼자는 연장선상의 이야기로 보시면 됩니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1톤 트럭도 함께 견적을 받아 부장님이 알아서 결정하세요."

"고맙습니다. 사장님! 주제넘은 청도 들어주시니.........."

"무슨 섭한 말씀을 제가 오늘 분명히 언급했지요. 부장님이 이 사업의 주체라고. 내 사업같이 열심히 해주세요. 그러면 부장님 또한 정말 서운하게 대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명심하고 더욱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악수 한 번 할까요?"

"네, 사장님!"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는 낯으로, 새삼 굳세게 악수를 나누었다.

그가 나가자 나는 바로 단종사무실로 찾아갔다. 그곳에는 조경 등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는 강동선 아저씨와 이상백 그리고 두 명의 영업사원이 있었다. 곧 지용준과 남희태였다.

"무얼 그리 열심히 하세요?"

나는 책상에 앉아 무엇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강동선 아저씨께 물었다.

"우리 사무실 건물을 보고 견적이 하나 들어왔어. 2층 슬라브 구조인데, 제법 평수가 꽤 크네."

"그런 것이 들어오면 아저씨 하고 상백이 그리고 전과 같이 새시와 철물을 제외하고는 분야별로 맡기세요."

"아니래도 그렇게 하려고."

"상백이한테 들으셨는지 모르시겠지만 어제 제 약혼식이 있었습니다. 모시지 못해 죄송합니다."

"뭐, 어제 약혼했다고? 이 자식이 정말! 친구들한테 연락도 안 하고........."

방방 뜨는 지용준이었다.

"너희들한테도 미안하다. 그렇지만 여기 사무실이라는 걸 명심해라."

"시정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입니다."

"결혼식 때는 꼭 초대할 테니, 이번만은 그냥 조용히 넘어가자."

"그래도 술은 한 잔 사야지."

"알았다. 술 한 잔은 내가 사마. 시간이 없어서 내가 참석 못하면 술값이라도 주마."

"오케이!"

"그런데 도대체 너는 부인이 몇 이냐?"

강동선 아저씨의 기습에 나는 순간적으로 멍 했다가 곧장 소리를 질렀다.

"아, 느닷없이 그런 얘기는 왜 꺼내세요. 사장 권위 안 서게."

하긴 이상백, 지용준, 남희태 면면이 모두 친구이니, 더 이상 체면 깎일 일도 없었다. 단지 명희가 또 얼굴이 붉어진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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