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명희라는 이름-- >
명희 아버지는 결국 필요한 혼수만 장만해주시고, 일찍 촌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만 남아 계셨다. TV, 냉장고, 소파세트, 화장대, 이불, 부엌살림 등등 고가라도 마다 않고 사주셨다. 그래도 촌에서는 명희네 집이 제일 잘 사는 축에 들었기 때문에, 남에게 빠지기는 싫었던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저녁을 먹고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앉았다.
명희 어머니가 나에게 물으셨다.
"식은 언제 올릴 거냐?"
"제가 아직 학생이니 좀 더 있다가 올릴 생각입니다."
"내 생각에는 말이다, 가급적 빨리 올렸으면 좋겠다. 남들 보는 눈도 있고, 처녀 총각이 혼인도 안 하고 한 지붕에 한 이불을 덮고 산 다는 것이, 결코 좋은 소문은 못 되거든."
"알겠습니다. 가급적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잇기가 거북한지 잠시 차로 목을 축이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명희가 어쩌다가 집에 와도 군입은 안 떼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동네 소문에는 네가 약혼녀를 우리 동네까지 데리고 왔다는 소문이 돌더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나는 내심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입니다."
"뭐?"
아연 놀라시는 어머니셨다. 한동안 장내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거푸 차를 맹물 마시듯 마신 어머니가 좀 진정을 하셨는지 말씀하셨다.
"내심 그런 소문이 돌더라도 나는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명희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속상하고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촌에서야 딸년들 중학교만 마쳐도 잘 했다고 하는데, 도회지에 나오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너는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라는 서울대학교까지 간 마당에, 너무 짝이 기운다는 생각을 한 게지. 최소한 고등가까지는 마치게 했어야 했는데 하는 생각으로, 둘이 밤새 땅을 치며 후회를 한 적이 있다."
어머니의 말씀에 명희도 동조하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렇게 운을 뗀 나도 목이 잠기는 기분을 느끼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사람이 배움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그 사람의 인간 됨됨이가 저는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명희는 일류 신부감입니다. 제가 오히려 부족한 점이 많고, 어디에 내어 놓아도 명희는 늘 자랑스럽습니다."
"고마워, 오빠!"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가 게시거나 말거나, 명희는 와락 내 품 안으로 달려들었다.
"쯧쯧쯧! 잘 한다. 제 어미가 보거나 말거나........"
끌탕을 하시나 어머니의 안면에도 웃음이 가득하셨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내가 더 고맙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보면 다툼이 없을 수 없고, 풍파 또한 없을 수 없는 일이지. 그때마다 잘 참고 서로 아끼고 위해주시게."
"네, 어머님!"
내 말에 빙그레 웃음을 지으신 어머니께서 새삼 나를 자세히 뜯어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자네는 갈수록 인물이 훤해지네 그려. 어디 우리 잘난 사위, 이젠 장모라고 한 번 불러주지 않겠나?"
나는 갑자기 그렇게 부르려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쭈뼛쭈뼛하다가, 용기를 내어 단숨에 불렀다.
"네, 장모님!"
"호호호.........! 내 그 소리를 들으니, 이젠 한시름 놓았네!"
말씀을 하시며 옷고름으로 눈가를 찍으시는 명희 어머니셨다. 아니 장모님이셨다. 이튿날 나는 명희를 가구전 골목으로 데리고 다니며 침대를 골랐다. 혼수로 이것 까지 장만해달라기에는 내가 염치가 없었고, 당시 세태로서는 침대 문화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상태여서, 명희 부모로서는 혼수 품목으로 꿈도 꾸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몇 군데 매장을 돌다가 중후한 멋을 풍기는 더블침대 하나를 샀다. 배달을 부탁하고 그곳을 나온 우리는 간단하게 장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 둘은 나와 미정의 살림집으로 가, 그녀까지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러다보니 이미 해가 저물어 직원들은 모두 퇴근을 한 뒤였다. 다만 두 명의 경비원만이 우리가 들어오자 쏜살같이 달려와 인사를 했고, 새로 사들인 경비견 두 마리는 주인도 몰라보고 컹컹 짖어댔다.
물론 명희 어머니는 아침 일찍 촌으로 돌아가신 뒤였다. 이 사무실을 완공하고는 처음으로 이곳에 와 본 미정은 멀리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대충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안내를 한 명희와 함께 팔짱을 끼고 이층으로 올라왔다. 먼저 올라온 나는 이미 가구점 점원과 경비원에 의해 설치된 침대를 둘러보고 있었다. 가구점을 떠나기 전 나는 그 사장에게 말하길,
'우리 집에 도착하면 경비원 아저씨가 있을 것이다. 그 사람과 협력해서 안방에 설치를 부탁한다.'
라고 말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세 방을 돌아다니며 새삼 점검을 했다. 욕실의 물은 잘 나오는지 전구는 이상이 없는지, 모두 확인을 한 것이다. 원래 45평정도 되면 대부분 방을 4개를 꾸미나, 나는 세 개만 꾸몄다. 그리고 나는 방마다 욕실을 두었고, 또 거실을 좀 더 크게 꾸몄다. 대충의 점검이 끝나자, 내가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데, 두 사람이 그때서야 올라왔다.
"어머! TV도 있네! 프로 재미있어요?"
"몰라. 심심해서 그냥 틀어놓은 거지. 텔레비전 프로에는 흥미 없어."
"어디 봐요. 재미있는 프로 있나보게."
미정이 채널을 돌리고 있는 것을 내가 말했다.
"다정이 이리 주고, 같이 저녁이나 해. 나 배고프다."
"모처럼 텔레비전 한 번 볼랬더니........ 알았어요."
다정이를 나에게 맡기고 주방으로 향하는 미정이었다.
"언니, 함께 텔레비나 보고 있어요. 나 혼자 해도 충분해요."
"아니야. 같이 거들어 빨리 끝내자."
이때부터 둘은 무엇이 그렇게 재미나는 일이 많은지, 히히닥거리며 저녁 준비를 했다. 나는 그동안 잠든 다정이를 안고 왔다 갔다 하며 저녁뉴스를 보고 있었다. 유정회 국회의원 74명과 예비후보 14명을 선출하기 위한, 통일주체국민회의 의원들의 지역별 소집공고 소식에 이어, 박 정희 대통령이 통일원을 순시해서 남북문제의 해결의 관건은어느 편이 더 잘 살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드냐는 것이라며, 정통성은 대한민국에 있고, 북한 괴뢰는 이질적인 집단에 불과하다고 언명한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다. 나는 곧 화가 나서 텔레비전을 껐다. 유신헌법 치하에서의 자동으로 임명되는 국회의원인 유정회 의원을 뽑는다는 공고 소식을 들으니, 어이가 없기도 했지만 화도 난 까닭이었다. 이렇게 내가 다정이를 안고 서성이길 얼마. 마침내 저녁이 다 되어 우리는 밥상 앞에 둘러앉았다.
"당신 기분이 별로 인 것 같은데요?"
미정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응, 정치에 아무리 내가 무관심해도 그렇지.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무슨 국회의원을 국민이 안 뽑고 3/1씩을 마치 관료 임명하듯이, 정부에서 선출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야."
"그들도 뽑기는 뽑잖아요. 통일주체 국민회의에서."
"그 거수기들이 인간이야, 기계지."
"정치 이야기 그만 하고 어서 식사나 하세요. 반찬 다 식어요."
둘의 대화에 명희가 끼어들어 식사를 권했다.
"이게 아까 산 해물인가?"
내 물음에 명희가 대답했다.
"네!"
"술 생각나네!"
내 말에 미정이가 잔소리를 했다.
"술 좀 그만하세요. 그러다 건강 해치겠어요."
"알았다. 집에 있는 날이라도 자제를 해야지, 이러다가 정말 알콜 중독자 되겠다."
"잘 아시는 분이 그러세요."
"됐다, 됐어. 얼른 밥이나 먹자."
이후 셋은 조용히 밥만 먹었다. 설거지를 끝낸 두 여인이 텔레비전 앞에서 연속극을 보고 있는데, 나는 취미가 없어서 안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벌렁 누웠다. 그러길 얼마. 아무리 기다려도 두 여인은 들어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거실로 나왔다.
"빨리 자자. 텔레비전 그만 보고."
"당신 혼자 주무세요."
미정의 말에 내가 발끈해서 소리쳤다.
"너희들 정말 그러면 텔레비전 다 부수고 만다."
"알았어요, 알았어. 곧 들어갈게요."
나의 성화에 둘은 텔레비전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미정이 안방인 아닌 다른 방으로 갔다.
"어디로 가는데?"
"두 분이 주무세요. 나는 다정이와 이 방에 잘래요."
"안돼! 당신도 이리 와."
"참 나........ 방 많은 데 왜 셋이 함께 자요?"
"꼭 끌어안고 자야 돼. 허전해."
"참 나........."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한 미정이 잠시 갈등하더니 내 말에 따랐다. 나를 따라 안방으로 들어온 미정이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머! 침대도 있네!"
"서울로 이사 가면 그곳에도 하나 들여놓을 거야."
"정말?"
"내가 입으로 뱉은 것 중에서 안 지킨 것 있어?"
"음.........."
내 말에 있나 없나를 생각하느라 잠시 천정의 등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미정이었다.
"별로 떠오는 게 없네."
"그만큼 내가 성실한 남편이야!"
"쳇, 자화자찬은........."
"뭐라고?"
"아니에요? 씻고 와야지."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미정이었다.
"어디로 가? 방안에 있는데."
"그래요?"
놀란 미정이 욕실이라 짐작되는 곳을 열어봤다.
"와~! 잘 꾸며 놨네."
이때 명희가 다가가 말했다.
"언니는 거기서 샤워하세요. 저는 다른 방에서 하고 올게요."
"다른 방에도 또 있어?"
"방마다 다 있어요."
"조상이 목욕을 못해 돌아가셨나?"
미정의 중얼거림에 내가 발끈했다.
"너........!"
"아, 알았어요."
더 말을 못하게 욕실 문을 쾅 닫고 들어가는 미정이었다. 이렇게 둘이 다 씻고 나마저 샤워를 마치자 우리 셋은 나에 의해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자매덮밥'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입가에 흘린 침이 채 마르기도 전에, 낮에 실컷 잠을 잔 다정이 몇 번을 깨어나 울었다. 결국 그년 때문에 미정은 다정을 안고 다른 방으로 가서 잤다.
아침에 제일 먼저 잠에서 깨어난 내가 미정이 자는 방을 열고 들어가 확인을 해보았다. 다정이를 꼭 끌어안고 자는 미정의 뺨에 눈물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2월 15일.
이 날은 나의 졸업식이 있는 날인 동시에 나와 미정이와의 약혼식이 예정되어 있는 날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놈의 학교 졸업식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그만큼 학교에 묶어두자는 것인지, 뭔지는 몰라도, 오늘 우리 졸업식을 끝으로 전국의 고등학교 졸업식은 끝이 난다. 서울이나 청주의 대부분 고등학교 졸업식은 지난 1월 10일 경에 했다. 늦은 학교가 12일과 16일 사이에 다 졸업식을 마쳤는데, 우리 학교만 유독 늦었다. 오늘은 서울의 은광여고 하고 우리의 졸업식이 있는 날이었다. 아무튼 미정과 명희와 함께 우리 셋은 택시를 타고, 10시 30분 예정인 식이 시작되기 전 30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물론 다정이도 미정이가 안고 온 상태였다. 그런데 미정이 택시에 내리자마자 한 곳을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니 감탄성을 터트렸다.
"어머! 저것 좀 봐요!"
미정의 손가락 끝을 쫓아가보니, 학교 정문에 큼직한 플래카드 한 장이 걸려있었다.
[축 서울대학교 합격 건축과 강대정]이런 문구였다.
자세히 보니, 그 곳뿐이 아니었다. 이곳 저곳에 붙여놓았다. 담장을 따라 쭉 붙어 있는 것은 물론 도로 위 허공에도 걸려 있었다. 하긴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을 만 했다. 이 학교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입학생을 배출했으니까.
"참, 내.........!"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미정과 명희의 새삼스러운 축하를 받으며 오셨을 가족들을 찾아다녔다. 곳곳을 둘러봐도 아직 안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찾기 좋으라고 정문으로 나왔다.
그때 허겁지겁 걸어오시는 분들이 보였다. 아니 떼거리였다. 여동생 셋도 다 왔던 것이다. 하다못해 말썽꾸러기 막내 경자까지.
"어머니! 여기 예요."
내가 손을 번쩍 치켜들고 부르자, 우리를 발견하신 부모님이 우리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셨다.
"그래, 그래. 우리가 좀 늦었다."
"서둘러 아침 일찍 하랬더니, 미장원에서는 얼마나 또 꾸물거리는지 원........ 이 애비는 속이 터져 죽는 줄 알았다."
"그만 좀 하세요. 좋은 날.........."
"끙........!"
어머니의 말씀에 신음 소리와 함께 어머니를 외면하시는 아버지셨다.
"어머! 저게 뭐야?"
어머니도 기어코 플래카드를 발견하셨나보다.
"하긴 이런 똥통학교에 대정이 아니었으면, 언감생심........ 100년이 지나도 아마 서울대 합격생 하나 배출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 괜히 말끔하게 깎으신 턱을 어루만지셨다. 어머니 또한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말씀하셨다.
"그럼, 그럼. 그 말은 대정이 아부지 말이 맞아요. 대정이가 전학을 안 왔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오빠! 언제 일루 전학했어?"
기어코 산통을 깨는 둘째 경숙이었다.
"험, 험.........!"
내가 헛기침을 하고 있는데 미정이가 다가가 공손히 인사를 올렸다.
"오셨어요? 어머님, 아버님!"
"그래, 그래 너희들도 벌써 왔구나! 아니 명희 아니냐? 너는 왜 그러고 서 있어! 내 네 엄마한테 소식 다 들었다. 냉큼 와서 인사 못해!"
어머니의 호령에 명희가 주저주저 다가 와서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뭐가 빠진 것 아니냐? 아가?"
아버지의 말씀에 급 홍당무가 된 명희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어머니!"
"그 말 듣기 되게 어렵네!"
어머니의 호들갑에 그나마 많이 상기되었던 얼굴이 가시는 명희였다.
"엄마, 이러고 있지 말고. 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야지요."
"그래, 그래. 사진사 어디 있어?"
첫째 경숙이의 말에 서둘러 사진사를 찾는 어머니셨다.
"제가 카메라 가지고 왔습니다."
"그 비싼 걸?"
"어제 하나 샀습니다."
"빌린 것도 아니고?"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긴, 얘가 큰 부자라는데, 카메라가 대수겠어."
종당에는 어머니 외에 아버지까지 끼어드셨다. 이렇게 우리는 식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진을 찍었다. 내 독사진은 물론 미정과 따로, 명희와 함께 따로, 셋이 함께. 부모님과 별도로, 가족사진 등등을 찍고 나니 벌써 식이 시작되려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날 나는 당연한 결과로 최고 영예인 교육감 상을 받았다. 그런데 부상이라는 것이 꼴랑 영어사전 1권이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읽어주시고, 선작, 코멘, 추천과 많은 쿠폰을 주신 님들께 이 자릴 빌어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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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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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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