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61화 (61/322)

< --이 명희라는 이름-- >

최상철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네 말대로 잘랐다. 물론 저항을 심하게 했지만 단지 몸부림이지, 뭐. 꽁꽁 묶였는데 지가 어떻게 할겨. 피가 개락같이 쏟아지더라. 소독을 하고 빠르게 지혈을 했지. 그리고 곧 붕대로 감았어. 그리고 잘라진 놈은 네 말대로 얼음주머니에 넣어서, 부하 한 놈에게 쥐어주며 말했지."

"너 이것 놓치면 쟤 평생 성불구로 살아야 돼. 잘 간수했다가 바로 병원 의사 드려. 빨리 데리고 병원으로 가."

"네, 형님!"

"그렇게 해서 병원까지 가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중간에 사달이 난 거야. 잘린 좆을 맡은 놈이 어제 철야로 야간 경비를 선 놈이었어. 그런데 가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거야. 그리고 내리면서 글쎄 그것을 차 안에 놓고 내린 것 아니겠니."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택시는 떠나고 없었지. 넘버를 알아뒀겠어, 뭘 어떻게 찾아? 비슷한 택시만 오면 무조건 세우고,

'아저씨 봉지에 싸인 내 좆 못 봤어요? 내 좆 못 봤냐고 요?'

하며 묻곤 했지."

"하하하..........! 정말 가관이었겠네!"

"가관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꼴불견이었지."

"그래서?"

"그래도 다행히 어느 승객이 그 봉지를 발견하고, 승객이 미처 안 갖고 내린 것 같다고 일러주는 바람에, 그 운전기사가 병원으로 가져오긴 했지. 기사도 우리 애들이 봉지를 가지고 타는 것은 봤거든."

"불행 중 다행일세. 그래서 수술 결과는?"

"그래도 그 놈을 네 말대로 얼음주머니에 싸놓는 바람에, 아직 신경이 살아 있었어. 그래서 다행히 성불구는 면했다더라."

"아이들 병원에 배치했지?"

"간호 삼아, 2인1조로 주야로 배치할 생각이야!"

"어느 병원인데?"

"남궁병원."

"그래?"

"한 번 찾아가 보게?"

"상황 봐서."

"아무튼 수고했다. 여기 일금 백만 원과 회식비 10만 원이다. 방석집이라도 데리고

가라."

"고맙다."

"그 돈 허튼 데 쓰지 말고, 필요한 장비 사라. 사무실은 내 얻어줄 테니까!"

"오케이! 정말 고맙다!"

"됐고, 어서 가봐!"

"그래. 수고해라!"

손을 흔들고 멀어지는 최상철이었다. 후일담이지만 고민호가 병원에서 퇴원하는 날이었다.

나는 그를 우리 사무실 공터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팼다. 나에게 맞은 것도 맞은 것이지만 정신적인 데미지도 컸다. 성기가 한 번 잘리는 것으로, 명희에 대한 나의 체벌이 일단은 끝난 것으로 알았던 그로서는, 맞는 순간 공포의 연속이었다. 얼마나 겁을 먹었는지 녀석은 똥을 다 지렸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이제 이 걸로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녀석에게 통보하며, 술을 한 잔 사주는데 구린내가 진동을 했던 것이다. 연유를 물으니 지가 자신도 모르게 지렸다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당사자를 앞에 두고 마냥 웃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자르고 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네가 신고를 하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본보기로 보여줬으면 정신적으로 달래 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좋은 말로. 괜히 계속 앙심을 품게 해서 이것이 사건이 되면, 정말 좋을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이 일을 제 입으로 떠들고 다녔던 것이다. 나 같았으면 어디 가서 창피해서라도 입을 못 놀릴 텐데, 하여튼 갈수록 괴물이 되어가는 고민호였다. 아무튼 그 바람에 나만 더 '독한 놈', '나쁜 놈'으로 소문이 났다. 1976년 2월 10일.

오늘은 우리의 사무실 입주식이 있던 날이었다. 그간 나의 독촉으로 철야작업까지 감행해 생각보다 입주를 빨리 하게 되었다. 조적이 끝나고 미장이 붙기 전 창문틀은 물론 창문까지 완전히 해 닫아,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게 된 상태가 된 이후로는, 곧 바로 내장공사에 돌입했던 것이다. 주야로 공사를 강행하니 곧 공사가 끝나고 조경만 남은 상태에서 우리는 입주를 하게 된 것이다. 지금은 건물만 덩그랗게 있지만 나는 상당 부분의 터를 할애 해, 사무실 앞에 잔디밭을 만들어 줄 예정이었다. 직원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사용하게끔 만들어 줄 참이었다. 또 이곳에는 사철 푸른 향나무는 물론 장미와 온갖 꽃을 심을 예정이었다.

그리고 정원 외부는 깎은 나무로 담장을 만들 셈이다. 즉 끝을 역삼각형으로 깎아 이어 박고, 하얀 페인트칠을 해놓으면 서구풍으로 아주 잘 어울릴 것이다. 사무실 전경도 외부에서 보면 아주 그럴 듯했다. 가운데 내 집무실 부분은 붉은색 벽돌로 치장을 했지만, 양 사무실은 미장으로 끝내고, 그 위에 하얀색 페인트를 칠해 마감을 했다. 이것이 경사가 급한 역삼각형의 지붕과 묘한 조화를 이루어, 모두 설원에 서 있지 않나 하는 착각과 연상 작용을 일으키게 했다. 아무튼 사무실 입주를 하던 날 나 또한 명희의 살림을 인부들을 동원해 옮겨 주었다. 물론 명희가 챙겨야 할 물건도 있었으므로 그녀도 동행을 했다. 그래봐야 리어카 하나도 남는 살림이었다. 그녀의 짐만 들여놓고 나니 정확히 45평이나 되는 방이 너무 황량하고 허전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내일은 여기에다 살림이라도 들여놓자."

"아니 예요. 제 살림 들여오면 돼요."

"살림이 또 있어?"

"아이, 참! 신혼살림 들여야지요. 부모님께 말씀드릴 거예요. 언제든지 말만 하라고 했거든요."

"내가 그냥 사주면 안 될까?"

"안돼요. 늙어서라도 나 구박당하기 싫어요. 살림 하나 안 해온 년이라고."

"설마, 내가?"

"세상 남자들은 다 믿을 수 없다고 했어요."

"알았다. 알았어. 네 뜻대로 해."

"어쩌면 내일이라도 당장 나오실지 몰라요."

"내 준비하고 있지."

"오빠가 준비할 게 뭐 있어요?"

"마음이라도."

"쳇! 그러나 저러나 오늘 언니까지 불러다 이집에서 파티해요."

"내일하자. 네 말대로 세간이라도 들여놓고. 지금은 너무 썰렁하잖아."

"그게 좋겠네요."

"오늘밤은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벌써부터 이러면 어떻게 하니? 미정이 삐진다."

"이 넓은 방에 혼자 잘 생각을 하니 아득하네요."

"참, 네! 이젠 넓어서 걱정이구나!"

"사람 마음이 이렇게 간사하네요."

"앞으로 고민호는 절대 너에게 얼씬거리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했길래요?"

"좆대가리를 잘라놨어."

"뭐예요?"

정말 깜짝 놀라는 명희였다.

"내 가족에게 집적대는 놈은 세상 어느 놈이라도 나는 절대 용서 못해!"

"그래, 그 사람은 어떻게 됐어요?"

"지금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중이다."

"아이고, 하여튼 오빠는 무서운 사람 이예요!"

"알면 됐다. 그렇다고 너마저 나를 무서워하면 안 되지."

"어떤 때는 정말 오빠가 무서울 때가 있어요."

"그런 생각 절대 하지마라. 너한테 만은 내가 천사다."

"천사가 다 얼어 죽었나보네요."

"뭐라고........?"

나는 달려들어 간지러움을 태웠다.

"으아 호호호........ 그만, 그만 해요."

"지금 당장 나에게 안기면 그만하고."

"안돼요."

"왜?"

"그러다 임신하면 어떻게 해요?"

"아기 갖고 싶다며?"

"이제 오빠랑 살게 되니까, 마음이 변하네요. 신혼생활 즐기다가 조금 늦게 갖고 싶어요."

"영악하네."

"에헹~!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알았다, 알았어. 그런 의미에서 우리 뽀뽀나 한 번 할까?"

"쳇.......!"

나의 말에 사르르 얼굴을 붉히는 명희였다. 다음날 오전 10시 30분이었다. 내가 사무실에 앉아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나는 생가도 없이 무심코 말하다가 깜짝 놀라 일어났다.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명희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까지, 명희의 뒤를 따라 들어오고 계셨다. 이 곳 사무실에 전화를 놓은 지는 오래 되었으므로, 명희가 새벽부터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어서 오세요. 이쪽으로 앉으시죠."

나는 두 분을 소파로 안내하며 앉기를 권했다.

"잘 지냈고?"

"네, 아버님!"

나는 그간 지은 죄가 있었으므로 머리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대답했다.

"집을 크게 잘도 지었네!"

명희 어머니의 말씀에 내가 대답했다.

"남의 땅이지만, 제가 하는 일이 건축일이다보니 견본주택 삼아 지어봤습니다."

"남의 땅에 뭐 하러 돈을 처들이나?"

경제관념이 좀 있는 명희 아버지의 말씀이셨다.

"한두 해 쓰고 말 땅이 아니고 주인 말로는 장기임대가 가능하다고 해서요."

"뭐, 자네가 알아서 하겠지만, 돈 무서운 줄 알아야 돼."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명희 아버지는 아버지와 친형제간 같이 지내셨으므로, 어려서부터 나를 작은아버지라 부르라고 아버지는 말씀 하셨다. 반면에 명희네 집 가면 큰아버지라 부르라 해서, 나를 곤혹스럽게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그때부터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거의 습관화가 되어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그냥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 존칭을 사용해 부른 게 '아버님'이었다. 그렇다고 장인어른이라고 부르려니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니었다.

"잘만 지었구만, 뭔 타박 이예요?"

"여자가 뭘 안다고 나서."

명희 아버지의 고함에 굳게 입을 다물고 마는 명희 어머니셨다. 이때 명희가 찻쟁반을 들고 나타났다.

"차 드세요?"

"나 네 아버지 때문에 못 살겠다. 오나가나 구박이니 원."

딸이 나타나자 구원군 삼아 푸념을 늘어놓는 명희 어머니셨다.

"그새 또 싸우신 거예요?"

"싸우긴 뭘 싸워. 되나가나 나서니까 그렇지."

"집 잘 지었다는데 그게 뭐가 나선 거예요?"

"이 여편네가 정말........."

"알았어요. 그만 둡시다."

명희 엄마가 먼저 휴전을 제의하셨다.

"엄마, 얼른 차드시고, 이층으로 한 번 가보세요. 제 살림집인데, 아주 잘 지어놨어요."

"그래? 그럼, 얼른 마시고 올라가보자. 듭시다."

"험, 험.........!"

헛기침을 하며 차를 한 모금 드신 명희아버지가 명희에게 물었다.

"이것, 인삼차지?"

"네!"

"네 엄마는 열이 많아 인삼이 잘 받지 않으니, 앞으로 그런 줄 알고 인삼차는 내지 마라."

"네, 아버지."

그래서 그런지 명희 어머니는 입만 대었다 떼셨다.

"다른 차 드릴 걸 그랬잖아?"

내가 명희를 보고 물으니 어머니는 손까지 저으며 말씀하셨다.

"아니, 됐어. 이층이나 가보자."

"그러실래요? 어서 모시고 올라가. 내 직원들에게 몇 마디 당부 좀 하고 올라갈 테니."

"알았어요. 오빠!"

"살림까지 차렸다는 놈이 오빠가 뭐냐, 오빠가! 다르게 불러야지. 한 번 입에 붙으면 고치기 힘드니까, 처음부터 제대로 불러."

"네, 아버지!"

만나자마자 잔소리로 시종일관하는 아버지 때문에 옆에 있는 내가 골치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도 명희는 군말 한마디 없이 부모님을 모시고 2층으로 향했다. 나 또한 같이 일어나 잠시 새시 대리점 사무실에 들러 김 주임 보고 말했다.

"나 2층에 있을 테니까, 나 찾는 전화 있으면 2층으로 돌려줘요."

"네, 알겠습니다. 사장님!"

나는 그 길로 2층으로 올라갔다.

"와! 궁궐이다, 궁궐! 뭘 이렇게 잘 꾸며놨니? 부엌살림도 아주 편하겠고........"

방마다 열어보신 명희 어머니가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벽에 완전히 농이 붙어있네. 목욕탕이 세 개씩이나 되고........ 완전히 이건, 서울 살림일세."

"여보, 뭐 느끼는 게 없어요?"

"잘 꾸며놨군."

어머니의 말에 고작 한마디 뱉는 것으로 명희 아버지의 대답은 끝이었다.

"참말, 멋대가리 없는 양반은 어딜 가도 표시가 나네요."

어머니의 푸념에도 이번에는 아무 말 없이 살림을 둘러보시기만 하는 명희 아버지셨다.

이때 명희가 부엌에서 무엇을 하려는지 저희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리 와 보세요."

"왜?"

아버지는 물론 나까지 모두 이동을 했다. 명희가 가스레인지에 자동으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게 뭔지 아세요?"

"글쎄다. 거 희한하다. 그냥 돌리기만 하니까 불이 확 올라오네. 석유도 아닌 것 같고."

"가스라는 거예요. 가스! 참 편리하지요."

"그래. 불 때서 밥하는 것을 보다 그걸 보니, 여자들도 이젠 돈만 있으면 아주 편리한 세상이 되었구나."

참고로 우리나라가 LPG가스를 가정용 연료로 본격적으로 사용한 시기는 1972년으로, 서울에서도 그렇지만 청주에서도 일부 부유층만 사용하고 있을 때였다.

"자랑 그만 하고, 뭐 먹을 것 없어. 있으면 좀 내와 봐. 부모님들 시장하실 텐데."

내말을 명희어머니가 받으셨다.

"아직 점심때가 멀었잖아, 이따 점심이나 먹자. 서로 귀찮게 하지 말고."

"어제 저도 이사를 했더니 아직 어수선 해서 뭐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네요."

명희의 답변이었다.

"그러니 됐다. 됐어."

"시간 없으니, 제 혼수나 좀 장만해 주고 우리는 빨리 올라갑시다."

"아, 모처럼 딸네 집에 놀러왔는데 놀다가지,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잖아요?"

"왜 없어? 쇠죽도 쒀줘야 하고........."

"참말로 걱정도 팔자시네. 그거야 밤중이라도 가서 쒀주면 되지, 한 때 굶어 소가 죽기라도 한 대요?"

"이 여편네가 촌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소가 얼마나 소중한데, 그딴 말을 하고 있어."

"됐어요, 됐어. 갈라면 당신이나 먼저 가셔. 나는 아예 여기서 하룻밤 묵어갈래요."

"알아서 해. 나는 여기 일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갈 테니까."

"아이고, 성질머리 하고는."

아닌게 아니라 두 분은 생김도 전혀 다르셨다. 명희 아버지는 마른 체형에 준수한 얼굴이셨고, 명희 어머니는 풍성한 살집에 부잣집 맡며느리 같은 생김이셨다. 그러고 보면 명희는 어머니 쪽의 체형에 아버지 얼굴을 닮은 듯했다. 장래가 걱정이 되는 명희였다. 나이 먹어 살이 많이 찌지 않을까? 나는 두 분을 보면서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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