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명희라는 이름-- >
"우리 안으로 들어가요. 춥지요?"
"네. 고마워요, 언니! 받아줘서."
"그건 내가 할 소리예요. 우리 앞으로 사이좋게 지내요. 저 이는 끼워주지 말고."
"네, 그래요. 호호호........!"
"호호호.......!"
두 여자의 의기투합에 나는 오히려 찬밥 신세가 되었다. 아니 주변인으로 전락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인답게 괜히 미정의 등 뒤로 돌아가 다정이를 살피며 엉뚱한 짓을 했다.
"우리 다정이 자나?"
그러면서 찬 손으로 다정이의 볼을 만졌다.
아니나 다를까 그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으앙.........!"
다정이가 깬 것이다.
"아니, 이 이는 정말. 왜 잘 자는 애는 깨우고 그래요?"
"둘이 너무 다정하니까, 샘이 나서."
"참 내, 어이가 없어서. 그게 질투할 일이예요?"
계속 미정이 추썩거리자 다정이는 다시 잠이 들었다.
"얼른 들어가요. 아기도 춥고 모두 춥잖아요."
"저녁은 먹었어?"
"아니요. 당신 오면 먹으려고........ 밥이 모자라겠네."
"우린 짬뽕 한 그릇씩 먹긴 먹었는데........."
"언니, 나 배 안 고파요."
"아무튼 얼른 들어가요."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집안으로 향했다. 방안으로 들어오자 나는 다정이를 포대기 속에서 빼어들었다. 다정이 또 깨어 울었다.
"으앙........!"
"아빠다. 아빠!"
내가 토닥이자 다시 내 품안에서 잠이 드는 다정이였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다정이."
"여자가 정 많아서 뭐 하게요? 나 같이 상처만 받지."
"자고로 여자는 정이 많아야 돼.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정을 많이 베풀어야, 나라의 삶은 풍요로워지고, 개인의 삶도 윤기가 도는 거야."
"무슨 해괴한 논리인지는 몰라도 아기는 정말 예쁘네요. 천사 같아요."
"너도 이런 아이 금방 하나 만들어 줄 테니까, 이 서방님을 잘 떠받들란 말이야."
"참 내, 어이가 없어서.........!"
이때 미정이 마침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명희가 쫓아가 받았다.
상 위에는 작게 두부를 잘라 넣은 청국장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반찬은 없지만 좀 들어요."
"혼자 해 먹는 저는 어떻겠어요? 그 밥상에 비하면 진수성찬이네요."
"내 밥 같이 갈라먹자."
"네, 그래요."
망설이던 명희가 상 앞으로 달려들었다. 곧 식사를 끝낸 우리는 저녁상을 물렸다.
"피곤한대 우리 일찍 자자."
"당신이 제일 아랫목에 자요."
"내가 왜?"
"그럼, 어디 주무시게요?"
"한가운데."
"안돼요."
"자기나 싫어?"
"싫어요!"
"명희 있다고 너무 빼지 말고.........."
"내 말에 마지못해 수긍하는 미정이었다.
"네, 좋아요."
"그럼, 너 명희는?"
"싫지는 않아요."
"하~, 이것 봐라! 좀 전에는 나 없이는 죽고 못 산다더니."
"내가 언제요?"
부인을 하나 명희의 얼굴은 훨훨 타오르는 모닥불이 무색하게 붉어져 있었다.
"싫어, 좋아?"
"아, 좋아, 좋아요!"
마지못해 대답하고 나를 밀치는 명희였다. 겸연쩍음의 연장선상에서 오는 행동이었다. 나는 두 여인이 주시하는 가운데 요와 이불을 폈다. 그동안 미정이는 다정이를 아랫목에 재웠다. 내가 먼저 요 중앙에 반듯하게 누웠다. 그리고 말했다.
"둘 다 빨리 와서 한 팔에 하나씩 안기라고."
"저 이가 정말.........!"
눈을 곱게 흘기는 미정이었다. 이에 반해 미적대며 미정의 눈치만 살피고 있는 명희였다.
"오늘은 당신 소원대로 해드리죠. 그렇지만 오늘만이라는 것을 명심하세요."
"알았어, 알았어! 명희 너도 빨리 와!"
주춤 주춤 마지못해 내 옆에 눕는 명희였다.
"그런데 이 여편네들이 안 되겠군! 빨리 옷 벗고 팬티바람으로 와!"
둘 다 아직 옷을 온전하게 입은 상태였다. 내 말에 어이가 없는지 꼼짝도 않는 두 여인이었다.
"제일 늦게 옷 벗고 오는 사람은 공개적으로 안을 거다."
내 말에 깜짝 놀라 후닥닥 옷을 벗고 브래지어와 팬티차림으로 내 옆에 나란히 눕는 두 여인이었다. 나는 양쪽 팔에 힘을 주어 두 여인을 당기고는 번갈아 가며 이마에 뽀뽀를 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 품에서 벗어나면 곧 맨바닥일 테니까 알아서 기라고."
사실이 그랬다. 이인 용 요라 내가 가운데 눕고 두 여인은 내 팔베개에 의지하고 있는 상태인데, 둘 중의 누구라도 똑바로만 누우면 반은 요에 걸치지만, 반은 맨바닥에 닿는 상태의 요의 크기였다.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녀들이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신속이 끌어당겨, 각각 한 번의 입맞춤을 했다. 그리고 내가 말했다.
"자, 자!"
아침이 되었다.
셋이 밥상머리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내가 입을 떼었다.
"명희를 당분간은 우리 집에 재워야겠어."
'왜요?'
라는 표정으로 미정이 이마의 주름을 만들었다.
"무섭다니 옛날에 살던 집에 살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여관 잠을 재우자니 그것도 불안하고, 좀 있으면 사무실 이층에 40평이 넘는 큰 집이 생길거야. 앞으로 명희는 거기서 먹고 자고 출퇴근 하면 돼."
"알았어요."
속은 쓰리겠지만 동의하는 미정이었다.
곧 상을 물리고 둘은 출근 준비를 마쳤다.
"둘이 돈 벌어 올 테니, 살림 잘해."
"쳇, 나도 같이 출근하고 싶어요."
미정의 말이었다.
"그건 또 뭔 소리야?"
"둘은 밤에 보고 낮에도 항상 붙어 있으니 얼마나 좋아요?"
"내가 사무실에 붙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 또 앞으로 사무실이 준공돼도 그래. 내 방이 따로 있을 거니까, 서로 마주 볼 일은 얼마 없을 거야. 그리고 곧 우리는 서울로 올라갈 텐데, 명희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지겠지."
내 말에 이번에는 명희가 시무룩해졌다.
'아이고, 두야! 이래저래 골치 아프구나!'
명희 말을 빌면 복 받은 것이라는데, 이건 복이 아니라 여난(女難)이었다.
명희와 나는 곧 나란히 손잡고 출근을 했다. 미정이 안 보이기 시작하면서 잡은 손이긴 했지만.
사무실에 도착하니 최상철이 먼저 와 있었다. 나는 명희를 사무실로 들여보내고 최상철을 뒷마당 공터로 데리고 갔다.
"어떻게 됐어?"
"잘 감금하고 있어."
"내 말대로 해!"
"어쩔라고?"
"잘라야지."
"뭐?"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우리의 율법대로 피의 율법을 적용해야지."
"네가 직접 할 거냐?"
"내가 미쳤어!"
내가 펄쩍 뛰자 최상철이 말했다.
"아이들 중에서 한 놈을 시키겠다. 그래도 대가는 지불해야 된다. 일이 잘못 될 수도 있고."
"얼마?"
"100만 원!"
"그렇게나 많이?"
"싼 거야."
"좋다! 거기에 만약 사달이 나서 들어가게 되면, 내가 가족 생계는 책임지겠다고 해."
"좋았어!"
"준비물 챙겨!"
"뭐, 뭐?"
"잘 드는 과도, 붕대, 솜, 지혈제류, 소독약, 얼음, 택시. 됐냐?"
"아주 머리에 철저하게 계획하고 있었군!"
"내가 누군데 마! 당하고는 못 살지, 암! 당하고는 못 살아!"
"독한 놈! 징한 놈!"
"얼마든지 욕해도 좋다! 아무튼 이번에는 수고 많았다. 수고비는 톡톡히 챙겨주마!"
"결정적인 일은 네가 했는데, 뭐."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고민호라는 놈이 어떻게 수덕사까지 추적을 하게 되었는지."
"녀석의 말을 들어보니, 자꾸 괴롭히면, 명희 씨가 비구니가 된다는 말을 평소에도 여러 번 했대. 그래서 충북의 여승이 머물고 있는 절은 모두 뒤지다시피 하다가, 갑자기 그곳이 떠올라 가게 되었대."
"징한 놈! 명희가 뭐가 예쁘다고."
"내가 봐도 굉장한 미인이던데?"
"네가 언제 봤어?"
"사진 봤잖아?"
"그런가?"
잠시 둘 사이에 말이 끊겼다.
"일 끝내고 저녁에 와라. 회식비까지 챙겨주마."
"너는 안 가고."
"안 그래도 사달이 벌어지면 내가 교사 혐의를 뒤집어 쓸 텐데, 내가 현장을 왜 가?"
"하긴 그렇다!"
"잘라내고, 바로 병원으로 쫓아가 접합 수술을 하면 신경까지 다 살아나. 그러니까 큰일은 아니야. 그 동안의 공포감을 극대화 하는 거지. 병원까지 가는 동안 잘린 부위를 얼음봉지로 꼭 싸서 가져가는 것 잊지마, 신경이 죽으면 정말 성 불구가 되는 거니까.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것은 물기가 그 놈 잘린 것에 작접 닿으면 안돼. 퉁퉁 불으면 신경 다 죽어. 명심해!"
"알았다. 알았어. 걱정도 팔자다 그 정도는 내가 다 알아서 한다."
"그리고 그 놈이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이인일조로 애들 붙여, 감시를 게을리 하지마."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네가 잘 다독여 네 부하로 만들어 부려!"
"알았다. 알았어!"
"이번 일 잘 끝나면 너 사무실 하나 차려주마."
"정말이야?"
"반색할 일이 아니지. 사무실만 있으면 뭘 하냐? 어느 일을 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뭐, 우리 일이라는 게 뻔하잖아. 지금 같이 지저분한 일 맡아서 하면 되겠지."
"내 생각도 그거다. 심부름센터라고 아예 간판 내걸고 영업해라."
"그건 또 뭐냐?"
"하다못해 주민등록증까지 떼어준다는 말이니, 온각 설거지는 다 하겠다는 말이지, 뭐냐?"
"작명 하나 그럴듯하다."
"나, 조회시간 넘었다. 나중에 결과 보고 해라!"
"그래!"
나는 그길로 최상철의 등을 툭툭 두드려 격려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조회를 마친 나는 공장 내부를 한 번 둘러보고 곧 충북대 현장을 찾았다. 방학 때 모든 공사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일정이 매우 촉박했다. 그래서 나는 독려 차 현장을 찾은 것이다. 현장에는 프레임 즉 창틀이 같은 치수는 같은 치수끼리, 치수 별로 쭉 쌓아져 있었다. 어제 밤 12시까지 작업을 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공터에는 몰탈 용 시멘트와 모래가 잔뜩 부려져 있었다.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시공이 한창인 곳을 찾아갔다. 마침 안창명 과장이 그곳에 있다가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네, 수고가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 하려고 몰탈은 저렇게 방치되어 있습니까?"
"안 하면 안 됩니까? 사장님!"
"그러면 안 되지요. 민간 공사는 용납이 될지 몰라도 관공서는 절대 용납이 안 됩니다. 검수에서 불합격 이예요. 그리고 비가 와 물이 스며들어오는 것보다는 백 번 낫고, 또 안 하면 텅텅 울림이 있잖아요. 꼭 해야 됩니다."
"알겠습니다. 하라면 해야지요."
일만 더 늘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러고 이것은 공간이 너무 뜨는 데요?"
"치수가 다르면 전부 다르게 절단을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 창문을 맞출 때도 일일이 확인을 해야 하니, 품이 너무 많이 들어요. 그래서 큰 것은 안 들어가니 작은 것에 기준을 맞추다보니, 이렇게 공간이 많이 생기는 것도 있네요."
"이 공간을 뭘로 다 메울 것입니까? 메지로는 턱도 없겠는데요?"
"천상 몰탈로 채워 넣어야지요."
"허허........! 그것 참."
나는 더 이상 잔소리는 하지 않았다. 그의 작업 방법이 맞기는 맞았기 때문이었다. 내 말대로 문하나 하나마다 실측을 해서 하면, 뜬 공간에 몰탈을 채워 넣는 작업은 할 필요가 없겠으나, 그러면 능률이 오르지 않았다.
"수고하세요!"
"네, 사장님!"
나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다른 현장을 찾았다. 그곳에는 또 다른 시공팀 과장인 이수경 씨가 기존 낡은 새시와 목문을 철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부 하나가 빠루로 그냥 창틀을 힘으로 잡아 빼고 있었다.
"그러다 다른 부위까지 손상이 가려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우악스럽게 작업을 합니까?"
나의 출현에 그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이수경 과장이 깜짝 놀라 얼른 그 사람의 연장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나에게 인사를 했다.
"오셨습니까? 사장님!"
"수고하십니다."
인사를 받은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40대 중반의 나이인데, 벌써 그간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마의 주름살이 쪼글쪼글 했다. 이름이 여자 같다고 해서 절대 여자가 아니었다. 어엿한 사십대 중반의 남성이었다.
"다른 부위 손상 안 가게 철거 잘 하라하고 하세요. 애초 가르칠 때 잘 가르쳐야지요."
"명심하겠습니다."
"철거 조는 총 몇 개 조입니까?"
"3개 조입니다."
"그럼, 6명이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날 추운데 고생 좀 해주세요. 그리고 이건 새참에 따뜻한 우유와 빵이라도 하나씩 사드시라고 드리는 돈이니 받고, 공기 내에 마칠 수 있도록 속도 좀 내주세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나는 100원짜리 지폐 하나를 이 과장의 손에 쥐어주고 현장을 떠났다. 그 날 저녁 무렵이었다.
잔업이 없으면 통상 5시 퇴근인데, 30분 전이었다.
최상철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를 데리고 뒷마당 공터로 갔다. 그곳에는 절단 조에 속한 두 명이 바를 고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피해 한옆으로 갔다. 대뜸 나는 물었다.
"어떻게 됐냐?"
"오늘 한바탕 쇼를 했다."
"왜?"
"내 말 좀 들어봐,"
이렇게 운을 떼고는 웃음을 참느라고 한참을 말을 못하는 최상철이었다.
"야, 이 새끼야! 웃지만 말고 얘기를 해봐! 궁금하잖아!"
내 고함 소리에 일하던 사원들의 시선이 힐긋 쏠렸지만 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