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명희라는 이름-- >
나는 마 부장과의 대화를 끝내자 옹색한 임시 사무실을 벗어났다. 그리고 나는 사무실 건축이 한창인 현장을 찾았다. 현장은 이제 조적 공사가 한창이었다. 일차로 시멘트 벽돌은 다 쌓아 올렸고, 50mm 스티로폼을 가운데 두고 외벽 치장용으로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리는 공사였다. 그 곳에 오십대 후반의 강동선 아저씨와 친구 이상백이 있었다. 강동선 씨가 무엇을 이상백에게 설명해주는 장면을 보고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이상백을 보고 있자니 영업사원으로 채용한 지용준과 남희태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금 청주 시내 조그만 새시 공장을 돌고 있을 것이다. 우리 대리점이 신규로 생겼다는 것을 알리고, 절단바 까지 판매한다는 것을 알리러 다니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회 전에 이미 이들에게 절단바 개념을 설명해 이론 무장을 시켜서 내보냈던 것이다.
처음에 그런 곳을 방문하라 했더니 이들은 영업이 영업 같지 않다고 반발했다. 그래서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영업을 하려면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고. 제품명은 물론 용도까지 꿰뚫고 있음은 물론 현장이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아야, 나중에 대공사
까지 수주할 수 있다고 달랬던 것이다. 비로소 이들은 조금은 납득한 표정으로 자진해서 영업을 나갔다.
건축현장을 벗어난 나는 한쪽에 마련된 가공 제작 공장을 찾았다. 이곳은 창문이나 현관 등 여타 알루미늄 제품을 제작하는 곳이었다. 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일차로 그에 맞게 구멍을 따는 등 가공을 해야 되는데, 그에 필요한 샤링기는 물론 절단용 톱 및 다이, 그리고 다섯 개의 제작을 할 수 있는 다이가 놓여 있는 곳이었다. 제법 큰 깡통에 기존에 있던 보기 흉한 사무실을 철거한 폐목이 타고 있었다. 손발이나 녹일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없는 곳보다는 백 번 나았으므로, 두 군데나 이런 불이 피워져있었다. 그곳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나는 절단 다이가 위치해 있는 곳으로 갔다.
이곳은 내가 말한 장바를 절단해서 팔기위해 필요한 다이와, 절단용 톱이 설비되어 있는 곳이었다. 물론 다이에는 7m의 눈금자가 설치되어 있어 이를 보고 절단을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직은 한산한 그곳을 나와 나는 시선을 들었다.
그곳은 장바가 세워져 있는 프레임이 있는 곳으로, 6m에 이르는 장바가 하늘 높이 세워져 있었다. 이를 통해 외부에서도 확연히 눈의 띄므로,
'아, 저 곳이 새시를 파는 곳이구나!'
하는 선전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곳이었다. 실제로는 주로 많이 나가는 종류를 갖다 세워놓아, 절단부에서는 멀리 가지 않고도, 바로 바로 절단해 판매하는 역할
도 하는 곳이었다. 이를 구경한 나는 잔자갈이 깔려있는 길을 걸어 정면 1/3 위치로 앞당겨져 있는 사무실 건축 현장을 지나, 공간의 2/3.
를 차지하는 알루미늄 적치장으로 가보았다. 그곳에는 흰색과 고등색 장바들이 단으로 묶이어, 같은 종류끼리 한 장소에 줄줄이 눕혀져 있었다. 물론 밑에는 굵은 각재를 고여 놓아, 모든 제품이 바닥에 닿지 않도록 했다. 그래도 반은 아직 빈 공간이었다. 모든 장소를 구경한 나는 이제 야간경비 초소를 지나 외부로 나왔다. 많은 제품이 적재 되어 있었으므로 나는 야간 경비도 2명을 고용한 상태였다. 밖에는 근 10m에 이르는 대형 간판이 가로 누여 있었다. 폭도 1.5m나 되는 굉장한 크기였다.
그곳에는 '대정알루미늄새시' 라는 큰 글씨와 함께, 그 옆에는 '동양강철 동부대리점'이라는 작은 글씨도 보였다. 또 옆에도 대형 간판이 하나 걸려있었는데, 그곳에는 '대정창호&철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훗날의 일이지만 나는 철물이라고 쓴 상호 때문에 귀찮은 일을 많이 당했다. 이곳은 건축에 필요한 난간 손잡이나 방화문, 칸막이 공사. 어린이 놀이시설 등의 공사를 해준다는 것인데, 일반 철물점이라고 착각한 많은 손님들이 찾아와 돌려보내는데, 돌려보내는데 초장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공장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니 내 의도에 벗어난 곳은 없었다. 나는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을 떠나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나는 마 부장에게 5톤 트럭도 아예 알아서 구매를 하도록 지시하고, 나는 사무실을 나왔다. 그 곳을 벗어나니 나는 급격히 얼굴에 그늘이 졌다. 명희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어제도 집에 들어가 미정이에게 명희를 안 찾아온다고 많이 시달렸다. 나는 천천히 걸으며 그녀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 사건이 일어난 날을 처음부터 하나씩 되짚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무엇인가 놓친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현장의 원점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생각이 일자 나는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의 집으로 달렸다.
대문을 지나 부엌문을 여는데 힘없이 그냥 열려 순간적으로 나 또한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많은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천천히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 부엌 내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발견한 것은 레일식 화덕이 없어졌다는 것뿐이었다. 곧 그것이 명희의 자살도구로 쓰여 방안에 있었음을 나는 상기했다. 부엌을 지나 방문을 열어보니, 찬 기운이 훅하고 끼쳐왔다.
겨울에 명희가 떠난 이래로 계속 빈방이었으니, 누가 불을 땠겠는가. 이러다 보일러가 얼어터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이런 생각 끝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걱정도 팔자'라는 생각이 들며, 내가 지금 한가하게 그것 걱정하게 생겼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너무 방바닥이 차가울 것 같아 신발을 신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화덕은 중앙에 놓여 있었고 이불은 헝클어진 채였다. 나는 시선을 들어 방안 전경을 죽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동쪽으로 난 유일한 창문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접근을 했다. 빛이 들어올 곳이 이곳뿐이라서 그런지, 창문치고는 제법 컸다. 옛날 목문인데 조임 시건장치가 풀어진 채 그냥 있었다. 나는 창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버겁지만 그냥 열렸다. 밖을 내다보니 작은 도로로 이웃과 처마를 맞대고 있었다. 창문 외부를 살피니 도심에 그 흔한 쇠창살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 고민호가 외부에서 침투했다면 직감적으로 이곳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창문을 꼭 잠그기만 해도 쉽게 열고 들어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시 창문을 닫고 조임 시건장치를 돌려 잠궈 보았다.
역시 조임 장치가 계속해서 헛돌고 있었다. 원인을 찾아보니 오래된 창문이다 보니,
창문 자체가 뒤틀려 나사의 간극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결론은 자명해졌다. 고민호는 틀림없이 이 창문으로 침입했다. 결론을 내고나서도 나는 허탈했다.
'내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돌려 우선 눈앞에 띄는 책이 쌓여 있는 부분을 보았다. 내가 사다 준 검정고시용 책이 죽 한 높이로 쌓여 있는데, 그중에서 이질적인 것이 하나보였다. 붉은색 비닐인지 가죽으로 엮인 두툼한 노트로 보이는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내 머리에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혹시 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달려들었다. 남의 일기를 훔쳐본다는 죄책감은 전혀 없었다. 혹시 여기에 어떤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뿐이었다.
나는 똑딱 단추로 채우게 되어 있는 일기장을 얼른 열어보았다. 그리고 첫 장을 조금 읽어보니 일기가 맞았다. 나는 노트를 마구 넘겨 끝부터 보기로 했다. 나에 대한 원망과 사랑이 절절이 표현되어 있었다. 고민호가 무섭다는 구절도 보였다. 그러나 단서가 될 내용은 없었다. 그렇게 몇 장을 넘겨보자 나는
'이거다!'
하는 구절을 발견했다.
[그가 나를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아.......! 아.......! 괴롭다!
차라리 비구니가 될까, 수녀가 될까?
그래도 비구니가 낫겠지?
♧ 수덕사의 여승 그리고 그 밑에 송 춘희가 부른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가사가 죽 적혀 있었다.
♧ 수덕사의 여승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속세에 두고 온 님 잊을 길 없어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산길 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그녀의 마음을 대변한 듯 노트가 번져있었다. 분명히 눈물 자국이었다. 나는 그대로 노트를 팽개치고 달려나갔다. 그리고 지나가는 택시 아무거나 잡아타고 무조건 충남의 수덕사(修德寺)를 가자고 했다.
원체 유명한 절이기 때문에 운전기사도 지리를 모르느니 어쩌구 저쩌구는 하지 않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대충 2시간 반이 걸려 나는 수덕사 입구에서 내렸다. 그리고 일주문을 향해 줄달음쳤다.
일주문을 지나니 곧 매표소가 나타났다. 들어가려면 표를 끊어야 했다. 나는 1,000원을 내고 거스름돈도 안 받고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대웅전을 향해 가다가 스님 한 분을 만났다. 여승만 있는 줄만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스님을 붙잡고 말했다.
"주지 스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무나 주지스님을 만나실 수는 없습니다."
나는 유용한 수단 하나를 생각해내고 품에서 기자증을 건네주고 말했다.
"취재차 서울에서 왔습니다."
"그래도 곤란합니다. 일단은 제가 가서 여쭙고 오겠습니다."
"혹시 열흘 쯤 전에 열여덟에서 열아홉 사이로 보이는 처녀 하나가 귀의하겠다고 찾아온 적은 없습니까?"
"가끔 그런 일이 있긴 하나, 그런 일은 제 담당이 아니라서....... 아마 혜정스님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 그 분을 먼저 만나 볼 수는 없겠습니까?"
"여승이 거처하는 곳은 외인이 함부로 드나들 수가 없습니다."
"그럼은 요?"
"일단 제가 안내해 드릴 테니, 극락암에 가 계세요. 그러면 제가 그 분을 모시고 오던지 답을 드리던지 하겠습니다."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말끝에 합장을 해보였다.
"신분증 여기 있습니다."
기자증을 건네주고 앞장을 서는 스님이었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수덕사에서도 뒤편에 위치한 극락암에 도착했다.
"잠시 여기 머물러 계십시오."
"네!"
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차가운 댓돌 위에 걸터앉았다. 조금은 마음의 여유가 생겨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을이면 참으로 울긋불긋 단풍으로 아름다웠을 곳들이 지금은 나목(裸木)으로 변해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었다. 기분도 그런데 하늘도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곧 눈이라도 내릴듯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이따금 바람이 불어와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흔들었다. 가만히 생각하니 전생에서 마누라와 한 번 와본 기억은 있으나, 전혀 특이한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질 않았다. 전생의 마누라가 불교를 믿었기 때문에 몇몇 절을 가본 기억이 있었다. 이곳 수덕사와 저 멀리 남쪽 양산의 통도사, 청주에서는 가까운 법주사는 몇 번이나 가보았는지 기억에 없을 정도로 꽤 많이 가보았다. 그 외에 작은 절도 많이 돌아다녔다.
내가 쓸데없는 상념에 빠져 망연히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데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종전의 그 스님 혼자였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달려나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열흘 전에 그런 처녀가 한 명 오기는 왔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혜정스님이 척 보기에도 치정으로 인한 출가에다 상(相)적으로도 비구니가 될 상이 아니라서, 거절을 했다고 합니다."
관상을 봐서 중 팔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디로 간 줄은 모르시고요?"
"당연히 모릅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 혜정스님이 허락을 했다면, 최소 3개월간은 미 출가 상태로 수행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도 아닌 모양입니다."
아마 스님 딴에는 내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주려고 하는 말이겠지만, 나로서는 들으나 마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말이었다. 아니 차라리 여기서 수행이나 하고 있었으면 찾기나 금방 찾았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나는 간단하게 합장해 보이고 터벅터벅 수덕사를 걸어 내려왔다. 스님들이 거짓말을 할리는 만무하고, 한 가닥 기대마저 와르르 무너지니 참으로 절망감이 엄습했다. 나는 올라갈 때는 눈에 띄지도 않던 기념품가게들을 망연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산길을 좀 더 내려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
하릴없이 걷고 있는 내 눈에 뜨이는 것이 있었다. '수덕여관'이라는 간판이었다.
그 간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영감처럼 불현듯 떠오르는 일화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이자 소설가로도 유명한 나혜석이, 명희처럼 출가를 거절당하고 삼 개월 이상을 머물렀다는 여관으로 유명한 여관이었다.
일말의 기대가 다시 생기자 자연적으로 내 발걸음은 달리듯 빨라졌다. 이윽고 여관에 도착한 내가 호흡을 조절하느라고 잠시 멈추었다가 물었다.
"혹시 이 여관에 약 열흘 전에 충북 청주에서 온 처녀로 열여덟에서 아홉으로 보이는 처녀가 하나 묵고 있지 않습니까?"
내 질문에 주인인지 이곳에서 일하는 여인인지는 몰라도, 육십이 가까이 되어 보이는 후덕하게 생긴 여자가 답변을 했다. 아니 오히려 되물었다.
"어떻게 되는 사이인데요?"
"오빠입니다."
"오빠가 없다고 하던데요?"
위의 대화만으로 나는 그녀가 이곳에 머물고 있음을 알았다. 뛸 듯이 기뻤다. 금방 가슴 안쪽이 아늑해지며 조금의 여유가 생겼다.
"사실 제가 약혼자입니다. 그녀를 찾아 전국방방곡곡 안다녀 본 곳이 없습니다."
"망할.........! 나한테는 전혀 찾으러 다닐 사람이 아니라고 하던데.........?"
"제가 여기까지 찾아왔지 않습니까? 제발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안내 좀 해주세요."
"누구는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라도 있는데, 수십 년이 지나도 나는 이게 뭔가?"
무슨 사연이 있는지 몰라도 육순 노파는 길게 탄식하며 앞장을 섰다. 나는 가는 도중 벽에 걸린 거울을 보고 잠시 항상 넣고 다니는 빗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빗었다. 주인아저씨가 면도를 하기 위해 걸어놓은 거울 같았다. 갑자기 눈이 한 송이 두 송이 내리기 시작했다. 내 눈에는 서설(瑞雪)이었다. 내 마음이 기쁘니, 정말로 길조의 눈으로 보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