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49화 (49/322)

< --성공의 두 번째 계단-- >

"아니, 내기를 정정하자!"

"네?"

"한 사람만 하면 재미없으니까, 가위바위보는 한 사람만 대표로 하되, 옷은 둘이 동시에 같이 벗는 거야."

"그럼, 우리가 손해잖아요?"

"대신 나는 내가 지면 안주 두 사라씩 추가!"

"오케이!"

두 년이 일제히 찬성을 했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내가 이겼다!"

나는 무슨 세계 챔피언이라도 된 양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김 양이 대표주자로 나선 게임에서 나는 주먹을 내고 김양은 가위를 낸 것이었다.

"하나씩 벗어!"

나는 큰소리로 아주 호기롭게 외쳤다. 이렇게 시작된 가위바위보 놀이에서 오늘따라 웬 괴변인지, 나는 연전연승을 했다. 이에 따라 안주는 하나도 추가로 시키지 못하고 이제 둘은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았다. 울상인 두 사람이었다. 아니 추워서 오들오들 떨기까지 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까칠하기까지 했다. 그 모양을 보니 안돼 보였다. 그래서 내가 또 한 번 호기를 부렸다.

"거, 실력도 되게 없네! 그냥 안주 다섯 사라 시켜라!"

"우와~! 우리 사장님 최고다!"

"역시 우리 멋쟁이 사장님! 사장님! 내 그냥이라도 보여줄까?"

"됐고! 얼른 안주나 시켜!"

"네에! 언니 여기 안주 다섯 사라 추가요!"

신이 난 미스 김이 목청껏 뽑아 올렸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바로 게임은 끝났다. 왜냐고? 실제 이들의 벗은 몸들이 볼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술에 절어 배는 튀어나오고, 몸은 뒤룩뒤룩 모두 술살이 올라 아주 보기 거북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이런 것들을 봐서 뭐하나? 우선 회가 동해야지.

그 보다는 결정적으로 회의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나의 무관심으로 집을 뛰쳐나갔고, 또 하나 여우같은 마누라는 지금 눈이 빠지도록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자 지금의 내 작태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따라놓은 술도 마다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왜 이렇게 늦어요? 저녁은 드셨어요?"

"응."

"뭔 대답이 그래요?"

상의를 벗기려고 다가온 미정이 코를 틀어막았다.

"아휴, 술내........! 뭔 술을 그렇게 많이 드셨어요? 술내가 아주 진동을 하네."

"나, 잘런다."

"씻고 자요."

"다 귀찮아!"

"그럼, 발이라도 씻고 주무세요."

"다 귀찮다니까. 이불이나 펴."

"알았어요. 오늘만 용서해주는 거예요."

"알았다, 알았어!"

정말 만사가 다 귀찮았다. 더군다나 따뜻한 방에 들어오니 술이 확 올라왔다. 이렇게 나는 깊은 잠에 떨어졌다. 다음날 아침.

나는 미정이가 깨워서 간신히 일어났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술이 취해도 이런 일이 없었다. 한마디로 만사에 의욕이 없는 것이다. 나는 미정이가 떠 넣어주는 바람에 간신히 국 한 대접을 비웠다. 그리고 곧 사무실로 출근을 했다. 집에서 너무 늦게 일어나다보니, 출근해 시간을 보니 벌써 9시 반이 넘어 있었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고 김 주임 혼자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 따라 사무실이 텅 빈 느낌이었다. 명희가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오늘 새벽에 고민호는 배달을 했답니까?"

"안 나와서 안 소장이 대신 배달을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알겠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예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나는 그렇게 답을 하고 지사장실로 그냥 들어가 버렸다. 그날 오후였다. 생각지도 못한 신문을 하겠다는 구매자가 찾아와 나는 얼결에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50대 후반의 고위직 공무원을 퇴직한 분이었다. 중간에 실랑이가 벌어졌지만, 나는 200만 원을 감해주고, 애초의 내 의도대로 2천4백만 원을 받았다.

이렇게 되어 나는 권리금만으로 만 총 3천6백만 원을 수중에 쥐었다. 여기에 지금까지 번 돈을 포함하니 6천만 원이 내 통장의 잔고가 되었다. 물론 이번 달에 만기가 되는 1년짜리 적금 500만 원짜리도 포함된 금액이었다. 웃음이 나왔다. 1년 전만해도 500만 원이 없어서 쩔쩔매던 내가 지금은 거금 6천만 원을 은행에 예치하고 있으니, 안 먹어도 배가 부른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기쁨도 명희 때문에 많이 빛이 바랬다. 그 날 퇴근 무렵이 되자 안배성을 비롯한 조호철 소장 외에 몇몇의 총무들이 몰려들어 왔다. 내가 묻기도 전에 안배성이 먼저 보고를 했다.

"강 기자님에게 맞아 죽을까봐 멀리 도망을 갔는지 행방이 묘연합니다."

"알았다. 그만 정상 근무해. 이일은 다른 애들을 시켜 알아볼 테니까. 참 오늘 퇴근하거든 최상철네 집에 들러, 내일 내가 보잔 다고 사무실로 데려와."

"몇 시까지 말입니까?"

"9시까지 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일 끝났으면 퇴근들 해."

"네, 저희들 먼저 나가보겠습니다."

"오케이!"

나는 힘을 내어 모처럼 호탕한 목소리로 그들을 보냈다.

"김 주임도 퇴근해!"

"지사장님은 요?"

"나도 가야지."

힘없이 말하고 나는 먼저 사무실을 나왔다. 갈 곳이 없었다. 오늘도 또 술을 마실 수는 없었다. 나는 맥 빠진 기분으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최상철에게 고민호와 이명희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을 추적하도록 했다. 그들의 얼굴을 모르는 최상철을 위해 이력서에 붙은 사진도 보여주었다. 그리고 나는 밖으로 나와 새시대리점 터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대충의 위치는 생각해 두었기 때문에 그 부근 일대를 자전거를 타고 몇 바퀴를 돌았다. 그 중에서도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이 있었다.

큰 도로변에 5천 평은 되는 넓은 공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 제재소를 하던 곳인데, 그 제재소를 외곽으로 이전하는 바람에, 다 쓰러져가는 가건물 몇 채에 넓은 부지가 잡초만 무성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기우뚱한 팻말에 무슨 글씨가 쓰여 있었다. '이 땅의 대여를 원하는 분은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세요'라는 글귀와 함께, 전화번호가 빨간 글씨로 적혀 있었다. 나는 수첩과 볼펜을 꺼내 그 자리에서 전화번호를 적었다. 나는 곧 공중전화로 가서 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나는 전화를 잘못 걸었나 했다. 웬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다시 한 번 전화번호를 확인해 보니 맞았다. 내 생각으로는 이 도심에 이런 정도의 땅 소유자라면 어디 사무실이라도 하나 꾸려놓고 임대를 기다릴 줄 알았다. 그러면 최소한 경리 아가씨 한 명은 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으로 전화를 걸었으니,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인지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나는 다시 동전을 넣고 전화를 걸었다. 예의 그 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문화동에 있는 땅을 임대하고 싶은데, 어느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까?"

"시청 뒷길 이면 도로를 따라 쭉 북쪽으로 올라오면 우암동 어디 메쯤 대성목재라는 간판이 보일 것이오. 그곳으로 오시오."

"네, 알겠습니다. 찾다 못 찾으면 다시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러시오."

내가 끊을 새도 없이 통화가 끝나자마자 상대는 벌써 전화를 끊었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그 노인이 말한 곳으로 방향을 잡아 부근 가까이 가서는, 일일이 상호를 확인하며 천천히 갔다. 마침내 '대성목재'라는 간판이 보였다. 밖에서 바라보니 합판과 목재가 가득 두께와 크기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매장을 지나 안쪽의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삐걱거리는 목문을 열고 들어가자 작은 실내에 두 노인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머리 전체가 하얗게 센 칠십 객 노인이었고, 그나마 한 사람은 그보다는 젊었다.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노인이었다. 미약한 온기 속에 내가 들어서자 60대 중반의 노인이 엉거주춤 일어나 물었다.

"좀 전에 전화한 젊은이 인가?"

"그렇습니다."

"그리로 앉게."

"네!"

60 노인이 권하는 것은 소파도 아니고 또 다른 책상에 딸린 의자였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므로 그 노인이 시키는 대로 했다.

"그래, 그 땅을 임차하고 싶다고?"

이번에 물은 것은 백발인 70대 노인이었다.

"네!"

나의 대답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노인이 돋보기 너머로 나와 시선을 마주쳤다. 종전까지 한지로 엮은 고문서를 보고 있던 노인이 돋보기가 벗기 싫었던지 그 자세로 묻고 있었던 것이다.

"김 전무, 우리가 그 땅을 얼마에 내놨지?"

60대 노인이 답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 10만 원입니다. 사장님!"

"나대지가 뭐가 그렇게 비싸요?"

나의 볼멘소리에 김 전무의 안색이 눈에 띠게 변했다. 한 마디로 기분 나쁘다는 표정이었다.

"거기서 한 푼도 깎을 수 없으니, 싫으면 나가시오."

둘의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백발의 사장이 말했다.

"김 전무 우리 커피 사놓은 것 있지?"

"네, 사장님!"

"그러지 말고 커피 한 잔 타드리고, 천천히 상의해봐."

사장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무거운 엉덩이를 드는 김 전무였다. 노인네가 타는 커피라니 나는 거절할까 하다가, 시간이 지나 김 전무의 화도 풀려야겠기에 그냥 놔두었다.

김 전무는 밖으로 나가더니 어디서 커피 두 잔을 타들고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는 물을 붓지 않은 상태로 들고 들어온 것이다. 그러더니 톱밥 난로 위에서 설설 끓고 있는 주전자 물을 부었다.

"어째 두 잔입니까?"

"사장님은 커피 안 드시오."

"네에!"

그때 사장이라는 분이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젊은이도 생각을 해보면 알겠지만, 그 땅이 5,000평이 넘어요. 더구나 요지 아닙니까? 그러니 군말 말고 계약서 쓰고 사용하세요. 그 대신 몇 년이 가도 내놓으라 소리는 안 할 테니까, 오래 쓰도록 하고."

"아니, 왜 그 좋은 목의 땅을 그렇게 방치하세요?"

"새 건물 아니면 나중에 땅을 팔 때는 전혀 그 건물 값은 받지를 못해요. 내 나이를 보아 알겠지만, 곧 땅속으로 들어갈 늙으니. 아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땅인데, 그 놈이 아직 어려요. 그냥 지키고나 있다가 나 죽으면 지놈이 알아서 하겠지."

두서가 없었지만 말하는 요지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렇군요!"

"내 말대로 할 텐가?"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렇게 하시죠."

"그 땅에 무엇을 하려 하오?"

김 전무의 물음이었다.

"새시 대리점을 열까 합니다."

"사무실 같은 건물이 필요하면 가건물로 지어 사용하되, 우리는 절대 인정을 못하니, 나중에 알아서 철거를 하던지 해주시오."

"알겠습니다."

"새시 대리점도 자본이 만만치 않게 들 텐데, 부모님 유산이라도 받았나?"

"네!"

내 경우를 설명하면 이해도 못 할뿐더라, 시간만 지체될 것 같아 나는 그냥 그렇다고 답변하고 말았다.

"자, 이리로 오세요. 계약서 작성합시다."

"네!"

이렇게 해서 나는 새시대리점을 할 터를 얼결에 확보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 바로 대전으로 날아가 정식으로 동양강철과 대리점 계약을 약정했다. 물론 보증금으로 100만 원을 입금했음은 불문가지다. 이제는 사람을 뽑을 차례였다. 그래서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대충의 문안을 작성해 주고, 김 주임에게 충청일보에 구인광고를 내도록 지시했다. 30분 후, 김 주임이 내게 보고하기를 월요일 판부터 광고가 실린다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벌써 토요일인 모양이었다. 지방판은 정상으로 일요일 쉬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발행이 되기 때문에, 김 주임이 내게 그런 보고를 한 것이다.

아무튼 최상철이 계속 추적을 한다고 하지만 두 사람의 행방은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내 기분은 계속해서 저기압이었다. 토요일이라 김 주임도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했다.

, 나 혼자 텅 빈 사무실을 지키고 있으니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희가 없다고 세상이 뒤집어 지는 것도, 내 생활이 크게 변화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일말의 양심이라는 놈이 시종 나를 괴롭히고 있어, 이런 저조한 기분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자리를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명희는 한 옆에 잠시 내버려두고, 내 기분부터 업 시킬 필요성이 있어, 나는 바로 집으로 퇴근을 했다.

"아니, 오늘따라 왜 이렇게 일찍 퇴근을 하셨어요?"

미정이가 나를 맞으며 하는 말이었다.

"왜, 불만이야?"

"호호호........! 별소릴 다 들어보겠네.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렇지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오늘 어디 좀 다녀올까 하는데?"

"어디요?"

"고향 부모님들 집에."

"갑자기 거기는 왜요?"

"아무래도 연로하신 할머니는 우리의 약혼식에도 못 나오실 것 같아. 그래서 미리 찾아뵙는 것이 예의일 것 같아서. 또 시누이들하고 상견례도 해야 하잖아. 약혼식장에서 처음으로 마주치면 더 어색할 걸?"

"알았어요."

"준비할게요. 지금 당장 가자는 것 맞죠?"

"응!

"바로 준비할 게요, 여~봉!"

"왜 이렇게 여수를 떨어?"

"쳇, 애교지, 여수가 뭐예요?"

"알았다, 알았어. 얼른 준비나 해."

"네~!"

미정은 어려운 자리를 가자는데도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준비에 열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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