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공의 두 번째 계단-- >
"진정해라, 진정해! 응?"
나는 명희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도 한참을 더 울던 명희가 가까스로 진정을 하고 말했다. 울음 끝의 말이었다.
"나 어제 강간당할 뻔했어."
"뭐? 어느 놈의 새끼야!"
"고민호!"
"그 놈의 새끼가 끝내........"
"한 번 혼내준다고 해놓고는 그 길로 끝이었잖아. 그래서 내가 더 서운한 거야.
'아! 이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없구나!'
이렇게 생각했지."
"내가 잘못했다."
"너무 늦었어."
"뭐?"
"내 결심은 확고해."
"중이 되거나 수녀가 되겠다는 말이야?"
"맞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젠 태연하게 말하는 명희였다.
"오빠가 잘못했다고 해도 그러는 구나."
"몇 번을 말해야 돼. 늦었다고 했잖아."
녀석의 고집을 생각하니, 그대로 결행할 것 같아 나는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침착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 같이 살자."
"늦었다고."
명희의 고집에 나는 화가 났다.
"이 녀석이, 정말........!"
"이젠 무서울 것 하나도 없다고, 괜히 내 앞에서 눈 부라리지 마!"
갈수록 가관인 명희의 말과 태도였다.
"오빠가 어떻게 하면 네 결심을 바꾸겠니?"
"........"
말이 없는 그녀였다.
"답답하다. 말 좀 해라, 말을."
"나 소원이 하나 있는데?"
"그래, 어떤 소원이던지 다 들어주마. 말만해라!"
"나 오빠 아기 하나 갖고 싶어."
"뭐?"
"왜 이렇게 놀래? 싫은 거야?"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 전에 나와 살자는 말이 이로써 다 들어났군."
"그게 아니라, 명희야........."
"변명 다 필요 없어!"
말과 함께 고개를 홱 돌리는 명희였다.
"이것 참........."
대략 난감했다. 명희의 말이 백 번 옳았기 때문이었다.
"나, 간다!"
"어디로?"
"뭘 어디야? 일단 집으로 가야지."
"그럼, 같이 가야지."
"그런 말이 입에서 나와? 나 같으면 염치없어서도 못하겠다."
"이 놈의 새끼가 정말........!"
"어쩔 건데 한 대 때릴 거야?"
오히려 때리라고 대드는 명희였다.
"때리기는 내가 왜 널 때려."
"핏, 나는 맞기라도 했으면 시원하겠다."
그 말에 또 그 무엇이 속에서 욱하고 치밀었다.
"명희야!"
내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왜?"
이번에는 순순히 대답하는 명희였다.
"그래, 까짓것 애기 하나 만들자."
반가워할 줄 알았던 명희는 시무룩한 얼굴로 한참동안 무엇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러고도 나, 돈은 벌어야 돼."
"그게 무슨 말이야?"
"아기도 키워야 되고........"
"내가 생활비 다 대줄 텐데, 뭘!"
"그게 아니야.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요즈음 오빠의 태도에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어. 그 결과 나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 그래서 오빠 아기 하나 가지면, 고아원이나 운영하며 평생 혼자 살 생각이었어. 그런데, 그런데......... 흑흑흑........!"
간밤의 일이 생각나는지 또 다시 울음을 터트리는 미정이었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째였다. 내 심정이 지금 사형장에 들어가는 사형수의 심정과 같은가 보다.
사형수들이 사형장에 들어서면서 최후로 누구나 한결같이 하는 행위가 있다한다. 교수형을 집행하는 그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기 직전, 꼭 모든 사람들이 하늘을 한 번 우러러보고, 또 땅을 한 번 쳐다본다는 것이다. 오랜 생활 간수생활을 하면서 많은 죄수들이 형장으로 사라지는 장면을 목격한 자가 쓴 책에 나오는 대목이니 사실일 것이다. 지금 내 처지가 그만큼 뭔가가 절박하다는 뜻일 게다.
"네 소원대로 해라!"
"지금은 안돼!"
"뭐가 문젠데?"
"더럽혀진 몸으로 오빠의 씨를 받을 수가 없어."
"당하지 않았다며?"
"볼 것, 못 볼 것, 다 보여줬어.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야."
"명희야!"
".........!"
"나는 설령 네가 정조를 잃었다 해도 다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
내 말에 지금까지 땅만 내려다보고 있던 명희의 얼굴이 급작스럽게 치켜 올려졌다. 그리고 거짓인지 진실인지를 탐색하기 위함인지, 무서울 정도의 냉정한 눈으로 내 눈을 쏘아보았다.
"험, 험.........!"
일말의 캥김이 있는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밑으로 쳐졌다.
"거봐........! 내 눈은 못 속여! 오빠, 지금 거짓말 하고 있잖아!"
"명희야!"
"다 싫어! 내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그리고 명희는 발작적으로 뛰쳐나갔다. 이내 달렸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차!'
하고 정신을 차린 내가 급히 택시를 잡아타고 뒤를 쫓았다. 그러나 그녀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옷가지고 살림살이고 다 놔둔 채 온데간데가 없었다. 행방을 감춘 것이다. 허탈했다. 나는 쓸쓸히 사무실로 돌아왔다. 업무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방향도 모르고 무작정 걷고 있는데, 나는 어느새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하고 있었다.
내 무의식이
'혹시 그녀가 고향집에 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이곳으로 향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니 절대 그런 상태로 집으로 돌아갈 그녀가 아니었다. 나는 그 길로 눈에 띄는 아무 술집이나 들어갔다. 허름한 선술집이었다. 노인들만이 두 테이블을 차지하고 술에 취했는지, 귀가 먹었는지 음성들이 몹시 컸다. 나는 소주를 청했다. 안주도 필요 없었다. 글라스를 달라고 해서 그대로 소주 한 병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쉬지도 않고 한 잔을 다 비웠다.
그렇게 점심때가 다 되어 빈속에 세 병을 마셨더니 얼얼했다. 취기가 빠른 속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는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공중전화를 찾았다.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김 주임이 받았다. 안배성을 바꿔달라 했다. 마침 점심시간이라 안배성이 자리에 있었다.
애들 데리고 가서 고민호를 잡아오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나는 천천히 사무실을 향해 걸어갔다. 가다보니 중식집이 눈에 띄었다. 아무리 그래도 뭐라도 먹어둬야겠다는 생각으로 그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곳에서 짬봉 하나와 배갈 한 독구리를 시켰다. 먹다보니 한 독구리도 부족해 한 독구리를 더 시켜 먹었다. 반면에 짬뽕은 면의 절반이 남았다. 국물은 전혀 없었다. 쪽 짜먹었다. 계산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나는 다시 사무실을 향해 걸었다. 어떻게 왔는지 나는 사무실에 도착해 있었다.
"어떻게 되었어요?"
김 주임이 물어왔지만 나는 다 귀찮다는 듯이 손을 내저어보이고는 내 집무실로 그냥 들어왔다. 나는 그 길로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누가 흔들어 깨우길래 눈을 떠보니 안배성이 옆에 있었다.
"어떻게 됐어?"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나는 분노로 어금니를 물며 물었다.
"어제 밤에 나가서 지금까지 들어오지 않았답니다."
"애들 풀어서 계속 찾아봐. 잡히는 대로 끌고 오던지, 아니면 있는 곳만 알려줘. 내가 그 놈을 죽여 버릴 테니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됐고. 내 말대로 만 해!"
"알겠습니다."
나는 그 길로 또 다시 책상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밖이 어둠침침했다. 아직까지 안배성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보니, 고민호를 못 찾은 것이다. 나는 하릴없이 사무실을 나와 어디로 갈까 망설였다. 집으로 가기는 싫었다. 생각나느니 술집이었다. 나는 택시를 잡아타고 석교동으로 향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택시에 내린 나는 보았다. 온통 홍등이 내걸려 붉은 빛으로 빛나는 거리를.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실제로 홍등이 내걸린 것이 아니라, 온통 붉은 전구들만 켜놓아 그런 착각이 일게 했던 것이다.
내가 그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호객꾼들이 달라붙었다. 아줌마부터 아가씨까지 내 옆에 착 달라붙어 자신들의 집으로 가자고 조르는 것이었다. 내 옆을 차지할 수 없는 사람들은 몇 발짝 앞에서 온갖 미사여구로 자신들의 가게가 좋다고 자랑했다.
나는 그런 그녀들을 다 뿌리치고 다닥다닥 붙은 간판 중에서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미인집'이라고 쓰인 간판을 찾아들었다.
"어머! 어서 오세요! 오빠!"
"반가워요!"
내가 들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아가씨들 두 명이 내 옆구리에 착 달라붙었다. 아니 팔짱을 꼈다. 이때 이 집 문이 또 스르르 열렸다. 보아하니 아까 길거리에서 호객하던 뚱뚱한 아줌마였다.
"우리 방으로 들어가요. 네?"
대답이 없는 나를 두 여자가 사정없이 방안으로 이끌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체 따라 들어갔다.
"언니, 여기 상 좀 봐줘요. 술은 뭘로 할래요?"
"막걸리 가져와!"
"언니, 여기 막걸리 한 되!"
오늘은 가지가지 한다. 내 행동도 그렇지만, 술도 소주에다, 백갈, 이제는 막걸리였다.
"인사드릴 게요. 미스 김이예요."
"미스 양입니다."
두 아가씨가 각자 자신의 성만 댔다.
"나도 소개하지. 난 미역이야."
"어머! 센스만점인 오빠네. 내가 김이라니까, 미역이라 하는 거봐."
"호호호........!"
뒤늦게 내 말을 이해한 미스 양이라는 아가씨가 한 박자 늦은 웃음을 토해냈다.
"오빠, 나이가 몇이야?"
미스 김에 옆에 착 달라붙어 살갑게 물었다.
"내 나이를 알아서 뭐 하게?"
"국 끓여 먹어야지."
"너보다는 많아!"
"몇 인데?"
"꺾어진 오십이다."
"쳇, 거짓말 하시네. 내가 볼 때는 스물도 안 되어 보이누만."
"너는 몇 살인데?"
"스물 둘."
"너야말로 거짓말 하지마라. 못 돼도 스물다섯은 돼 보인다."
"어머, 너무 많이 보시네. 하긴 내가 겉늙어서 그래. 고생을 많이 해서."
"됐고, 고향이 어딘데?"
"나는 서울."
"나는 대구!"
"사투리 좀 써봐."
"다 잊었어."
"너도 거짓말이구나."
"알면서 그런 건 왜 꼬치꼬치 캐? 매너 없게 시리~!"
미스 양 또한 착 달라붙어 아양을 떨었다.
"문 좀 열어라!"
"네, 언니!"
방문을 열자 쟁반 하나가 들어왔다. 미스 김이 이를 받아 기존 펴있는 상위에다 놓았다.
과일 한 사라와 오징어 한 마리였다. 이내 주전자도 들어왔다.
"오빠부터 한 잔 받으세요."
아까부터 '오빠' 소리가 계속 거슬렸다.
"오빠라고 부르지 마."
"그럼, 뭐라고 불러요?"
"그냥 사장님이라고 불러."
"네이~! 사장님~!"
간드러졌다.
"받으세요, 받으세요. 이 술은........."
"그냥 따라."
"오빠 아니 사장님 성질 한 번 고약하네."
"뭐야?"
내가 눈을 들어 째리자 금방 꼬랑지를 내리는 미스 김이었다.
"쳇, 권주가도 못 부르게 하니까, 그렇지요."
"됐고, 빨리 술이나 따라."
"네에~!"
"너희들도 한 잔씩 받고."
"고맙습니다. 싸장님~!"
이렇게 대접으로 세 잔을 따르니 금방 주전자가 비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웃고 떠들며 세 주전자의 술을 마셨다. 그러자 얼마나 빨리 안주를 처먹는 지 벌써 안 주 두 개가 동이 났다.
"안주 하나 더 시킬까?"
빈속에 또 서서히 술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호기가 솟구쳤다.
"그래. 그런데 그냥 시키면 재미없으니, 내기를 하자."
"어떻게?"
"내가 지면 안주 한 사라를 시키고, 너희들이 지면 옷을 하나씩 벗는 거야? 어때, 좋지?"
"좋아요!"
"오빠, 멋쟁이!"
쪽!
저희들이 이기면 안주가 무한정으로 들어오게 생겼으니 아주 좋아라 하는 둘이었다. ============================ 작품 후기 ============================명희의 문제는 이런 말로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회자정리요, 거자필반 이라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떠난 자는 반드시 돌아온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 작품 후기 ============================명희의 문제는 이런 말로 답을 드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