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44화 (44/322)

<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편집국장은 차를 마주하고도 감히 마시지도 못하고 있었다. 장강재 사장만이 여유있게 한 모금 마시며 계속 내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야길 계속하라는 뜻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내가 중단되었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했다.

"첫째 회사가 여유가 된다면 지방의 윤전기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지방에 발송할 모든 신문까지 서울에서 찍어, 늦은 기사를 날짜면 바꾸어 내 보낼 것이 아니라, 그날의 따끈따끈한 기사를 실시간으로 보도하자면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나의 말에 장 사장은 계속하라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열심히 경청하고 있었다.

"윤전기 공장설비가 어렵다면 지방의 거점 신문과 연대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그들이 신문을 찍어내면 얼마나 찍어내겠습니까? 몇 부 찍어내지 않고 놀고 있는 그들의 윤전기를 빈다면, 그 신문도 좋고 본사는 실시간의 뉴스를 보도하니, 경쟁력에서 압도적일 것입니다. 운송료 또한 절감될 것이고요."

"좋아! 아주 멋진 제안이야. 내 심도있게 검토해보도록 하지. 또 있나?"

"둘째 발행하는 면수의 증면입니다. 단순히 면수만 늘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제 테

마별로 나누어 독자들이 주된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만 별도로, 독립된 지면을 갖게 하는 것이죠. 이른바 섹션화를 한다는 말입니다. 그 예로는 국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먹거리 문제인 경제라든가. 건강, 레저. 스포츠, 여타 많은 관심사항들이 있겠지요. 이들의 별도의 면으로 구획하여 증면을 해야 된다는 말입니다."

나의 열변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렇게 해서 신문 면수가 늘어나면 당연히 광고도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만약 광고의 유치가 어렵다면 광고 단가를 조금이라도 깎아주십시오. 그들에게도 혜택을 주자는 말입니다. 섹션화로 판매부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광고효과는 배증되는데다, 광고비까지 인하해 주면 광고주들은 더 많은 광고로 보답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제 짧은 소견이었습니다."

"하하하.........! 이거 정말 생각지도 못한 획기적인 제안일세. 섹션화와 광고의 단가 인하라. 거기에다 지방의 인쇄 시대를 열어 뉴스 가치를 높여라! 역시 그대는 신문을 위해 타고난 사람 같고 만. 이봐! 편집국장!"

"네! 사장님!"

"당장 오늘 인사과에 통보해서, 강 지사장에게 기자증 내줘. 돌아갈 때 지니고 갈 수 있게 말이야!"

"정식가지로 말입니까?"

"그래!"

두 사람의 대화에 내가 끼어들었다.

"정식 기자면 제 월급도 나오는 것입니까?"

"당연하지. 대신 월급은 촌지 정도로 생각하면 돼.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야."

"아예 뜯어먹고 살라고, 본사 차원에서 등 떠미는 것 아닙니까?"

"아니라고는 부인 못하겠네. 하하하........!"

장 사장이 대소를 터트려도 나 외에 두 사람은 입가에 번지는 웃음으로 밖에 웃지 못하고 있었다. 웃음을 그친 장 사장이 아직 웃음의 여운이 남은 얼굴로 부언했다.

"그렇다고 자네가 너무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네. 애초 자네의 말대로 기사 거리가 있으면 송고하고, 없으면 말면 되네. 또 송고된 가사의 취사선택은 우리가 할 테니까."

"저도 한 가지 부언하겠습니다. 섹션화는 독일에서 먼저 시도되어 대성공을 거둔 바가 있습니다."

"들었지? 편집국장!"

"네, 사장님!"

"자신감을 같고 밀어붙이라고."

"네, 사장님!"

실제 역사에서 섹션화는 훗날 중앙일보에서 맨 처음 시도해, 대성공을 거둔바가 있었다. 그 결과로 매양 3등 신문을 벗어나지 못했던 중앙이 2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나중에는 여타 신문도 다 따라했고.

"강 지사장! 이제 학교를 다니려면 서울로 올라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내 하는 말인데, 서울에서 지국 한 번 운영해 볼 생각 없나? 내 요지를 내줌세. 서울에서도 일대 센세이션을 한 번 일으켜 보게. 매양 그날이 그날인 놈들, 자극 좀 받게."

"저는 사장님께서 영광스럽게 베풀어주신 후의에 보답하는 뜻에서라도, 기자직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지국을 운영하면 서울지국장들에는 일대 경종을 울릴지 모르겠으나, 그 영향력은 찻잔속의 태풍일 것입니다. 하지만, 기사는 전 국민을 계도하고 의식혁명까지 일으킬 수 있으니, 그 여파가 더 크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재고해 주십시오."

"하하하.........! 명문대 입학자라서 그런지 말도 잘하네. 그럼, 그건 자네 뜻대로 하고. 이 봐 박 부장!"

"네, 사장님!"

박 부장이 돌연 부동자세로 대답했다.

"아직 판매왕에게 주는 표창장과 부상을 전달하지 못했지?"

"네, 그렇습니다. 사장님!"

"가서 비서실에 얘기해, 지금 당장 가져오도록 해. 내가 직접 이 자리에서 수여하게."

"넵! 사장님!"

말이 끝나자마자 총알 같이 튀어나가는 박 부장이었다.

"하고, 강 지사장, 아니 강 기자!"

"네, 사장님!"

"아직, 식사 전이지?"

"아침은 먹었습니다만?"

"점심 말일세, 점심!"

"네!"

"오늘 나와 함께 점심 한 끼 같이 하고 내려가는 걸로 하세."

"알겠습니다. 사장님!"

"편집국장!"

"네, 사장님!"

"돈은 좀 챙겼나?"

"항상 지니고 있습니다. 사장님!"

"오늘은 특별히 강 기자 모시고, 대낮부터 요정에 한 번 가보세."

"지금 바로 예약을 해놓겠습니다. 사장님!"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장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시종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잠시 후, 박 부장이 여 비서와 함께 무엇을 들고 들어왔다. 당시로서는 귀한, 외관이 융으로 제작된 상장 케이스였다. 여비서는 귀티 나는 작은 보석함을 들고 있었다.

"이리 주게."

"네, 사장님!"

박 부장으로부터 상장케이스를 받아든 장 사장이 그것을 내게 건네며 말했다.

"구질구질하게 내용을 낭독할 필요는 없고........ 자네가 집에 가서 한 번 읽어봐."

"네, 사장님!"

"자네 것도 이리 줘."

"네, 사장님!"

여 비서가 머기까지 숙이며 두 손으로 공손히 보석함을 장 사장에게 건넸다. 이를 받아든 장 사장이 또 이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이 안에는 닷 돈짜리 황금 열쇠가 들어 있네. 내용물을 당장 확인해 봐도 좋네!"

"가보로 영구히 간직하겠습니다. 사장님!"

"하하하.........! 하는 말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말만하는 고만."

대소에 이어 장 사장이 손으로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지."

"네, 사장님!"

어디로 가는 것인지 모르는 박 부장이 멀뚱멀뚱 나가는 일행을 지켜보다가, 제일 늦게 후미를 부리나케 쫓았다. 그날 저녁 6시 30분 경.

청주행 고속버스 안이었다. 박 부장과 나는 차의 중간쯤에 나란히 앉아 가고 있었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를 끌고 올 걸."

박 부장이 사타구니를 감싸 쥐고 하는 말이었다.

"동감입니다."

표정까지 하얗게 질리기는 마찬가지인 나 역시 가운데 다리를 붙잡고 말했다. 장 사장과 요정 집에서 대낮부터 벌어진 장장 네 시간의 음주가주가, 이런 대참사를 불러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가면 천안 휴게소 아닌가?"

밖을 내다본 내가 답했다.

"그렇군요."

박 부장의 시선은 여전히 간절한 표정으로 여전히 나만 주시하고 있다.

"나도 도저히 못 참겠습니다."

좌석에서 벌떡 일어난 내가 성큼성큼 걸어가 고속버스 기사 앞까지 왔다.

"요 앞 천안휴게소에서 차 좀 세워주세요."

"청주까지는 직통입니다. 중간에 휴게소를 경유하지 않습니다."

안내양이 조신하게 일어나 상냥하게 답하나, 그것이 내게는 가증스럽게만 들렸다.

"좋습니다. 이 차안에서 그냥 갈겨버리겠습니다."

나의 말에 안내양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표정으로 기사아저씨에게 시선을 준다.

"시간을 다투는 사람도 있을 덴데, 곤란합니다."

기사의 딱 부러진 대답이었다.

"알겠습니다. 바지에 쌀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는 말을 하며 슬슬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어머! 이러시면 안 돼요!"

안내양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소리쳤다.

"거, 휴게소 한 번 들릅시다!"

박 부장이 아닌 승객중의 나이 지긋한 사람 하나가 응원의 목소리를 보탰다.

비로소 박 부장도 용기를 내어 소리쳤다.

"나도 오줌 싸겠소."

"하하하.........!"

"호호호.........!"

아저씨는 물론 아줌마들까지 웃는데, 기사도 백밀러를 보며 웃고 있었다.

"들어가 계세요. 휴게소 들를 게요."

"아니요. 여기 서 있다가 차서면 총알 같이 튀어나가야 돼요."

"그 정돕니까?"

"아, 차 좀 살살 몰아요. 출렁거리니까, 오줌이 찔끔거리잖아요."

내 말에 차 안이 일제히 웃음바다가 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박수까지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차가 휘청했다. 휴게소로 진입하느라고 방향을 튼 탓이었다.

"아이고.........!"

넘어질 번한 내가 안 넘어지기 위해 택한 것은, 지금까지 추이를 지켜보느라고 내 곁에 서 있던 안내양 아가씨를 끌어안는 것이었다.

"어머!"

안내양 아가씨가 깜짝 놀라는 와중에도 간신히 옆 좌석 등받이를 붙잡는 바람에 같이 쓰러지는 대 참변은 면했다.

"데리고 살아라!"

좀 전에 차를 세우라고 했던 아저씨의 짓궂은 농담이었다.

이에 더욱 얼굴이 붉어진 안내양의 얼굴이 내 코앞에 있었다.

"이런, 실례..........!"

마침 차가 멎었으므로 나는 달아나 듯 황급히 차에서 내려 화장실을 향해 줄달음쳤다. 내 뒤를 따라 같이 뛰는 이 있으니, 박 부장이었다. 청주 터미널에 내린 두 사람.

"어디로 가십니까?"

"숙소로 가야지 별수 있나? 젠장!"

"쓸쓸하시겠습니다."

"이를 말인가."

박 부장은 서울에 아내를 두고 혼자 청주에 내려와 살고 있었다. 주말부부였다.

"한 잔 더 할 텐가?"

나는 동문서답했다.

"붓글씨는 잘 쓰십니까?"

"취미일세. 틈만 나면 신문지 위에 쓰고 있는 것 못 봤나?"

"그래서 여쭤본 겁니다."

"붓글씨는 왜?"

"상을 줄 사람이 있어서요."

"그 내용을 써 달라고?"

"네!"

"술이 취해서 잘 될라나 모르겠는데?"

"한석봉도 울고 갈 천하의 명필이 웬 말이십니까? 한석봉의 어머니는 불을 끄고도 떡을 똑 고르게 썰었다는데, 그 정도는 못 되어도 천하의 명필 정도면, 술이 취해도 일필휘지로 내 갈겨야지요."

"자네 나를 너무 높게 보는 것 아닌가?"

"가시죠. 오늘은 말고 다음에 제가 한 잔 사겠습니다."

등까지 떠미니 마지못해 가까운 사무실로 걸음을 옮기는 박 부장이었다. 5분 후.

"이것들이 문단속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박 부장이 시험 삼아 문을 열어보니 문이 그냥 열렸다. 먼저 들어가 내부에 불을 켠 박 부장이 소리쳤다.

"들어오시게."

"네!"

"상장용지가 어디 있더라?"

경리의 책상서랍을 열라하나 그것만은 잠겨 있었다.

"제 것은 잘 잠그네. 아마 캐비넷에 있었지?"

중얼거리며 캐비넷을 열어본 박 부장이, 용지 서너 장을 꺼내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

나도 그를 따라 그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곧 책상서랍을 열어 붓과 벼루, 활명수 병 그리고 한옆에 쌓여있던 신문을 몇 부 가지고 왔다.

책상에 신문지를 깐 박 부장은 그 옆에 벼루를 놓고 활명수 병을 쏟았다. 그 안에서 먹물이 나왔다.

"평소에 먹물을 갈아놓고 계시는 겁니까?"

"내가 왜 가나? 경리가 갈아서 여기에 담아 놓는 거지."

"그런 일까지 부리면 되겠습니까?"

"왜 안 돼? 지가 할일이 뭐 있어서. 이런 일이라도 해야지."

"장하십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불러!"

"네!"

"음.........!"

생각을 가다듬은 내가 구술을 시작했다.

"표창장!"

"표창장!"

복창을 하며 한 자 한자 정성들여 쓰는 박 부장이었다.

"성명: 정 미정, 아내 정미정은........"

"아내 정미정은......... 이거 자네 안 사람에게 주는 거야?"

"네!"

"별짓을 다 한다."

"하하하..........! 어쩔 수 없습니다. 세대가 세대이니만큼 아내한테 사랑받지 않고서는, 외부의 일을 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변명도 가지가지군. 계속 부르기나 해!"

"네."

끝에 가서는 고함에 가까운 박 부장의 독촉이었다.

"아내 정미정은........."

"거기까지는 썼고."

"상기자는 평소 품행이방정하며 부부애가 돈독할 뿐만 아니라, 딸 강 다정도 정성으로 길러 가정의 평화에 이바지하는 바 크고 ......."

"바 크고.........?"

"남편이 전국 판매왕을 차지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이에 상을 줍니다."

"상을 줍니다."

"정 미정을 죽도록 사랑하는 남편 강 대정 드림."

"아, 이거 닭살스러워 어디 쓰겠나?"

"아, 거기 먹물 떨어져요."

"그럼, 안 되지."

그러나 벌써 먹물은 기껏 힘들여 쓴 상장용지에 떨어져 또르르 구르고 있었다. 할 수 없이 이 내용을 다시 쓰는 박 부장의 얼굴은 심히 구겨져 있었다.

============================ 작품 후기 ============================'여신유리찬양'님의 질문도 계시고 해서 오늘은 특별히 물가 문제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에 나오는 대부분의 물가는 그 당시의 물가입니다. 옛날 신문에 보면 물가시세 란이 있습니다. 그것을 뒤적여 적거나 아니면 다각도로 조사를 합니다. 그래도 못 찾는 경우에 한해서는 할 수 없이 대략의 시세를 유추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당시와 지금의 물가는 약 30배의 차가 나지 않나 싶습니다. 모든 물가가 들쭉날쭉하니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대략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기 연재된 것 중에서 정정할 부분이 있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나오는 한국일보 사장 장강재 란 분의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영화배우 문희 씨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이분은 기 연재분에서는 회장으로 표현되어 있으나, 사장이 맞습니다. 아무래

도 찜찜하여 인물 명을 조사했더니 나오더군요. 본 글에서는 실제의 지명이나 인명이 상당수 나옵니다. 모든 고유명사는 실제이더라도 내용은 허구이니 헛갈리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 어느 사람이 코팅을 하는데 살짝 그 내용을 엿보니,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주는 상장이었습니다. 그 내용은 평소 시아버지를 공경하여 잘 받들고, 아이들 잘 가르치며 남편에게 순종하여, 가정의 평화가 며느리 때문이라는 내용으로, 아주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모티브를 얻어 위의 내용이 언급된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도 많은 분들이 읽어주셔서 감사하고요. 이 외에 많은 성금(쿠폰)과 추천, 멘트를 주신 분들께도 이 자릴 빌어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하고 글이 조금이라도 재미있었다면 추천을 꾹꾹 눌러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글의 조회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천이 적어요. 그렇다고 소급해서까지 누르시는 분은 안 계시겠지요?

오늘도 좋은 날 되시고,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대단히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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