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기왕 대전까지 온 것 나는 택시를 타고 동양강철을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나는 판매 부서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말단을 만났으나, 대리점 개설 건으로 왔다고 하니까 바로 부장실로 안내되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아가씨가 차 주문을 받아가고 바로 커피 두 잔이 나왔다.
"어느 지역에 대리점을 개설 하시려하십니까?"
비록 내 나이가 어려보일지라도 극존칭을 사용하는 박 달봉(朴 達奉) 부장이었다.
"청주입니다."
그의 인상이 급격히 찌푸려졌다.
"왜 안 됩니까?"
"그곳은 원체 수요가 적은 곳이라서, 하나를 더 내주게 되면 둘 다 망합니다."
"제가 파악한 바로는 판매고가 전국적으로 따져도 항상 10위 내에는 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나의 반격에 멈칫하는 박 부장이었다.
"하나 보다는 둘이 판매하는 것이 이 회사로서는 매출이 더 늘지 않겠습니까?"
"그야 그렇습니다만........."
논리 정연한 나의 말에 수긍은 하나 쉽게 승낙 못하는 속사정이 있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더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혹여 그 곳 업자에게 접대라도 받고, 회사에 대해서는 이적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니신지......? 답변 여하에 따라서는 더 높은 분을 한 번 만나 볼 예정입니다."
나는 '뇌물'을 이라고 하고 싶은 것을, '접대'라고 순화해서 표현했다.
"무슨 소릴 하는 게요, 지금! 절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박 부장이 삿대질까지 하며 핏대를 올리자, 나는 확신이 점점 굳어져 갔다.
"아니면 아니지, 왜 나에게 그렇게 화를 내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순간적으로 욱 해서 그만........."
"여기도 대리점을 내려면 보증금을 예치합니까?"
"그, 그렇소."
내 말에 표정이 확연하게 살아나며 눈알을 굴리는 박 부장이었다. 아무래도 관행보다는 높여 부를 속셈 같았다.
"얼맙니까?"
"오... 오백만 원입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요, 지금. 오백이 어느 집 애 이름이오? 남선 같은 경우는 100이면 된답디다."
"그럼, 그 쪽을 알아보시던 지요."
"말장난 하지 맙시다. 내 얼마든지 알아낼 방법이 있소이다."
말과 함께 내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잠시 고정하시고 자리에 앉아 좀 더 진지한 대화를 나눠봅시다."
정말 찔리는 것이 있긴 있는지, 나를 말리는 박 부장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아마 이틀 안에 한국일보 주재 기자가 나와, 이 회사를 집중 취재해서 보도를 할 것입니다."
"혹시 기자 분.........?"
"한국일보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나는 오해하기 딱 좋도록 말했다. 내 말이 거짓말은 아니지 않는가?
"잠시만 진정하시고, 사실은 통상 300을 받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리점들이 자꾸 부실화되는 경향이 있어서, 내부적으로 상향조정하자고 검토가 끝난 상태입니다. 아직 시행되고 있지는 않으니, 그 정도 금액에서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금이 없으면 그만한 가치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해도 됩니다."
"그 돈 만큼 외상이 가능하다는 얘기 아니오?"
"그야, 그렇습니다."
"내가 볼 때는 200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아직도 거품이 끼어 있어요. 이곳은 대리점을 아예 안 내주려고 작정을 한 회사 같습니다. 일단은 알았습니다. 다음에 다시 한 번 찾아뵙도록 하죠."
"저, 저........."
지야 말을 더듬거나 말거나 나는 그가 말릴 새도 없이 그 방을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나오자마자 강 기자가 준 명함을 보고,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화를 받는 아가씨에게 메모를 남겨달라고 했다.
'이틀 내에 동양강철에 전화 한 통 부탁드린다!'
고.
나는 모처럼만에 해가 있는 시각에 집에 들어섰다. 오후 4시 반쯤 된 시각이었다. 나는 계획이 있었고, 딸내미를 위한 그야말로 작은 선물도 준비했다. 나는 소리 안 나게 부엌문을 열고 발소리를 죽여 살금살금 방으로 접근했다. 밖에서 들으니 다정이와 놀고 있는 미정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 마~!
, 해 봐!"
"엄~ 마~!"
벌써 제법 잘 따라하는 다정이였다.
"아~ 빠~! 해 봐!"
"아~바!"
아빠 소리는 제대로 못 하지만 근처까지는 흉내를 내는 다정이였다. 나는 이 순간 소리 안 나게 문을 열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뭐 해?"
"어머, 깜짝 아! 애 떨어질 뻔했잖아요?"
되게 놀랄까봐 작은 소리로 불렀는데도 엄청 놀라는 미정이였다.
"그새 애 들어섰어?"
"이이가 정말.........!"
밉지 않게 나를 째리는 미정이었다.
"밖에서 들으니 다정이가 벌써 말을 하네. 이제 6개월 밖에 더 됐어?"
"빠른 애들은 6개월도 말을 한 대요. 보통은 7~8개월 지나야 하나봐."
"거 신기하네!"
"그런데 오늘은 웬일 이예요? 햇기 있어서 다 들어오고?"
"당신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쳇, 말이나 못 해야지. 그나저나 안 들어오고 뭐 하세요?"
"우리 모처럼 극장이나 한 번 갈까?"
"입을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처음이잖아요?"
"그런 가?"
"다른 여자랑 갔나보죠?"
"전혀.........!"
손사래까지 치며 강하게 부정하는 나였다.
"어느 극장으로 갈 건데요?"
"아무 곳이나 가까운 데로 가지 뭐."
"자유극장?"
"그러던가?"
"좋아요? 나 준비할 게요. 참, 저녁은 요?"
"기왕 외출하는 것, 밖에서 한 끼 때우지 뭐."
"아이, 좋아라! 여봉~ 나, 레스토랑에 한 번 데리고 가면 안 될까, 요?"
"안 가 봤어?"
"한 번도."
고개까지 흔들며 이를 강조하는 미정이었다.
"그럼, 그곳으로 가자. 어서 준비나 해!"
"네에~! 여 봉~!"
콧소리까지 섞으며 애교가 철철 넘치는 미정이었다. 내가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려는데 미정이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한 번 해봐!"
"아 바!"
"그래, 우리 다정이 참 잘했어요. 뽀뽀~! 엄마한테 뽀뽀~!"
쪽 소리는 못 들었다. 실제로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었다.
역시 겨울은 겨울이었다. 헐벗은 나뭇가지에 바람이 지나고, 나는 찬 기운에 들고 다니던 외투를 입고, 코트의 단추도 채웠다. 집에 올 때는 부지런히 걸어와 몰랐는데, 가만히 서 있으니 추웠다. 잠시 내가 밖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미정이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웬 일이야?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왜요?"
말을 하며 내 팔짱을 척 끼는 미정이였다. 이를 마당으로 나오며 보고 있던 주인집 아주머니가 얼른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당시는 젊은 남녀가 길거리에서 손만 잡고 다녀도 남의 이목을 끄는 것은 물론, 어른들은 욕을 하거나 아예 외면하고 걷던 시절이었다.
"평소보다는 일찍 준비하고 나왔다는 소리야."
"할 게 없었어요. 크림만 찍어 발랐으니까"
미정은 전혀 화장을 하지 않았다. 얼굴 트지 말라고 크림을 바르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피부가 항상 윤기가 돌았다.
"아, 참! 연탄불 갈고 가야겠다."
내 말에 생각이 났는지 부리나케 부엌으로 향하는 미정이었다. 잠시 후, 미정이 콜록이며 나왔다.
"아휴, 독해! 연탄 갈 때마다 가스가 얼마나 지독한지. 숨을 막고 할 수도 없고."
나는 할 말이 없어 미정의 뒤로 돌아가 다정이를 바라보았다. 티 없이 맑은 눈이 나를 따라 움직였다. 벌써 또 콧물이 살짝 비쳤다.
"너무 춥게 지내는 것 아냐?"
"아닌데, 왜요?"
"다정이 콧물 흘리는데."
"낮에 우리 있을 때는 불문을 꼭 막아놔요."
"그러지 말고, 처대. 연탄 한 장에 얼마 한 다고?"
"그래도요. 아낄 것은 아껴야지요."
말을 끝낸 미정이 포대기를 추스르며 말했다.
"다정아! 아빠 한 번 불러봐! 아빠~!"
"아바~!"
"아이고, 우리 다정이 벌써 아빠라고 다 부르고. 옛다 선물이다."
등지고 있어서 안 보이는 미정이 물었다.
"뭔데요?"
"아기 마스크?"
"어머! 당신은 다정도 해!"
"그러니까, 다정이 아빠지."
"호호호.........!"
나는 도리질 하는 녀석의 마스크를 씌우려고 가깝게 접근했다.
아직 어려서 콧날이 서지 않은 눌린 코와 때 묻지 않아 순진무구한 눈, 만지면 묻어날 것만 같은 말랑말랑한 맑은 피부가 꼭 깨물어주고 싶었다. 나는 다정이를 살살 달래 기어코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그러나 마스크는 오래 가지 못했다. 답답한지 자꾸 벗겨내려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 다시 마스크를 벗겨주어야 했다. 그러고 나니 아무래도 다정이가 감기 걸릴 것 같아, 나는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 이들을 태웠다. 본정 가까이에서 내린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레스토랑을 찾기 위해서였다.
"저녁부터 먹고 들어가자."
"네, 여봉~!"
오늘따라 제법 추운 날씨인데도 본정에는 많은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애가 애는 들쳐 업고, 여보 소리를 하니 이목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미정이 아름답다보니, 시선이 계속 미정의 동선을 쫓고 있었다. 나는 내심 불쾌했지만 일일이 대응할 수도 없어, 비교적 가까운 즉 눈에 띄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간판이 특이하게도 '송아지'였다. 결코 밝다고는 할 수 없는 조명 속에서 우리는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번화가에 위치해서 그런지 실내장식이 아주 운치 있게 잘 되어 있었다. 작은 분수도 있어 물줄기를 뿜어내니, 다정이는 신기한지 계속해서 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게다가 색색의 조명마저 위에서 돌아가고 있어, 현란한 느낌마저 들었다.
"뭘로 먹을까?"
"나는 돈까스."
"촌스럽게 이곳까지 와서 돈까스는? 함박스틱으로 하자."
"그건 뭔데요?"
"주재(主材)가 틀리지. 돈까스는 돼지고기고, 함박은 쇠고기야."
"우와~! 그럼, 우리 쇠고기 먹는 거야?"
나는 좋아하는 미정을 보니, 이왕이면 더 근사한 것으로 사주고 싶었다.
쇠 컵에 물을 따라주고 있는 종업원에게 나는 주문을 했다.
"등심으로 삼인 분만 주세요. 그리고 중질 와인 두 병 하고."
"네에~! 꽃 등심에 레드죠?"
"그렇게 하세요!"
"그러면은 자리를 옮기셔야 데겠는데요?"
'왜 그러느냐'는 뜻으로 내가 눈썹을 밀어 올렸다.
"별도의 시설이 완비되어있습니다. 연기가 나서요."
하긴 고기를 구울 라면 연기가 나긴 나겠다. 우리는 곧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별실로 안내되었다. 탁자 두 개가 놓여있는 작은 방이었다. 방석을 제공한 종업원이 빠른 동작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 숯불이 들어오고 고기와 밑반찬도 들어왔다. 종업원이 불판을 올려놓고 고기까지 1인분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종업원이 나갔다. 삼인 분이라야 세 덩이 밖에 안 되었다. 그러자 미정이 한마디 했다.
"에고, 이걸 누구 코딱지에다 붙이라고."
"술이나 한 잔 따라봐."
"네!"
병을 딴 미정이 글라스에 포도주를 따르며 말했다.
"와아~! 색깔 곱다."
"육류랑 먹을 때는 레드 와인이 좋다고 해서 적포도주야."
나는 와인에 대해서는 지식이 짧아 더 이상은 설명해 줄 수가 없었다.
"가격이 어느 정도 해요?"
나는 미정의 말에 상표를 보았다. 샤또였다.
"한 2,000원에서 3,000원 하지 않을까?"
"우와, 되게 비싸네. 이런걸 뭐 하러 마셔? 그냥 소주 먹지."
"기왕 외식하는 것, 분위기 좀 내 볼 라고."
"쳇."
"우리 마나님은 분위기를 모르는 모양이네."
"그게 아니고, 너무 비싸니까? 그렇죠."
"그냥 즐겨. 돈 걱정하지 말고."
그래도 미정이는 가격이 영 마음에 걸리는지, 이번에는 등심에 대한 가격을 물어보았다..
"저 쇠고기는 1인분에 얼마 예요?"
"지난번에는 1,000원 주고 먹었는데, 오늘은 얼마인지 모르겠네."
"와~! 저것도 되게 비싸네."
"타겠다 얼른 먹어."
"익지도 않았는데? 핏물이 그냥 있어요?"
"이건 이렇게 살짝 데쳐서 먹어야 맛있어. 더 익으면 질겨서 맛없어."
"그래도?"
"한 점 먹어봐."
나는 다 익은 고기를 잘게 잘라놓으며 말했다.
그래도 젓가락을 가져갔다 말았다 망설이기만 하는 미정이었다. 고기를 다 자른 내가 그런 미정을 위해 말했다.
"아~! 해!"
어쩔 수 없이 입을 조그맣게 벌리는 미정이었다.
"더.........!"
나의 말에 조금 더 미정이 입을 벌렸다. 나는 고기 한 점을 미정의 입안에 쏙 넣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미정의 빈 잔에다 포도주를 반잔만 따라주었다.
"우와~! 정말 맛있기는 맛있다. 씹을 새도 없이 넘어가네."
"거봐. 내 뭐랬어. 맛있다고 했잖아. 아~ 해!"
"자기도 들어요."
"당신이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것 같아."
"정말?"
"물론 거짓말이지."
"호호호........!"
미정이 웃다말고 옆을 돌아보았다. 맨 처음 이방에 들어와서 다정이는 신기한 게 없으니 곧 보챘다. 음식이 나올 동안 미정이 젖을 먹여 재웠다. 지금 그 아기가 자신의 웃음소리에 깼나하고 돌아본 것이다.
다정이는 아직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책임감이 느껴졌다.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생각하세요?"
"당신 생각."
"쳇, 빨리 드시기나 하세요."
"당신이나 많이 먹어. 우리 건배 한 번 할까?"
"좋아요!
"우리는 와인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먼저 냄새를 맡고, 혀로 굴리고 그딴 것 필요 없었다. 나는 소주 마시듯 단숨에 마셔버리고 말았다. 미정이도 나를 따라 했다.
나는 내심 실소가 나오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좋은 것을 따라배워애 되는데........ ============================ 작품 후기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