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우리는 곧 집으로 돌아왔다.
"방안으로 들어가시죠."
다시 마당에서 어정거리는 장인어른을 나는 방안으로 들어가자고 청했다.
"험, 험 그럴까?"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안주거리 좀 없어요?"
"잡채는 다 됐고, 수육도 다 됐다. 왜 한 잔 하게?"
오늘은 장인, 장모도 옆에 있으니, 한마디 핀잔도 않으시고 묻는 어머니셨다.
"이제 곧 대학생이니 한 잔 마셔도 되지요, 뭐."
"전부터 마셨잖아?"
어찌 그냥 가랴! 어머니가 장인이 있는데서 산통을 다 깼다.
"호호호.......!"
별 것도 아닌 일을 갖고 장모님은 배를 잡고 웃으셨고, 장인어른은 그냥 미소만 짓고 서 계셨다.
"내 안주 금방 챙겨갈 테니, 얼른 먼저 들어가거라."
"네, 어머니!"
"당신도 들어가지 그러우?"
장모님이 장인을 보고 하시는 말씀이었다.
"안 그래도 들어가려고."
내가 앞장을 서고 장인어른이 나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어서 오시우, 사돈! 이쪽 아랫목으로 앉으세요."
아버지가 자신이 앉았던 자리를 옆으로 비켜 앉으며 장인을 청했다. 장인이 사방을 둘러보며 말씀하셨다.
"윗풍이 없는 집이 돼놔서, 훈훈한 게 윗목도 따습네요."
말을 하며 윗목에 앉으려는 장인어른이셨다.
"네, 지은 지 얼마 안 된 집이거든요."
나는 맞장구를 치면서도 살며시 장인어른의 등을 떠밀었다.
"아랫목에 앉으세요. 젊은 사람들이 윗목에 앉아야죠."
"그럴까?"
그제야 마지못해 아버지와 함께 나란히 아랫목에 좌정하는 장인어른이셨다.
자신의 아버지까지 입성하자, 어색한지 미정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나가서 부엌일 좀 거들께요."
"안 그래도 돼. 벌써 준비 다 돼서 곧 상 들어 올 거야."
'이러면 어른들한테 밉상 받치는데, 제 마누라만 안다고.'
나는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기어코 이 말을 뱉고 말았다.
"다 됐으면 상이라도 들고 들어올게요."
"알았어. 빨리 들어와?"
"네!"
방내에 어머니나 장모님이 앉아 계셨더라면 한 마디 들을 소리만 나는 골라서 하고 있었다.
'그 새를 못 참아, 그런 다고.'
아기는 색색 할아버지 옆에서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어디 우리 손녀 좀 보자."
말이 없는 분위기가 어색했던지, 장인어른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조그만 요와 이불을 덮고 자고 있는 다정이의 곁으로 가셨다.
"누굴 닮았나?"
이렇게 말씀하시며 장인어른은 다정이의 야들야들한 볼을 살짝 만져보기도 하셨다.
이럴 때 미정이가 옆에 있었으면 아무리 아빠라도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애기 깨!'
곧 미정이 상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 상을 받았다. 그리고 상을 아랫목 쪽으로 가져갔다. 상이 놓이자 장인어른도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앉으셨다.
"사돈어른! 한 잔 하시죠."
아버지가 막걸리 병을 흔들지도 않고 따시더니 권하셨다.
"저는 평소에 주로 소주를 마셔서.........."
멈칫하는 아버지셨다.
"아, 그래요?"
다시 소주병을 집어 드신 아버지가 소주병을 이빨로 따셨다.
"그러다 성치 않은 이 다 부러지겠네요."
아버지도 다 아신다. 이렇게 하면 이가 망가진다는 것을. 평소 같았으면 절대 이런 일을 하실 분이 아니셨다. 그렇지만 오늘은 처음 사돈과 상견례 하는 자리이고 하다 보니, 급한 마음에 평소 안 하던 짓을 하고 계셨던 것이다.
"한 잔 받으세요."
"네, 네!"
한 잔을 받은 장인어른이 물으셨다.
"사돈은 뭘로.........?"
"저는 청탁불문이올시다. 아무거나 다 잘 마셔요."
"그래도 평소에는 주로 농주를 잡수시지 않으셨어요?"
"그야, 그랬지요."
"그럼, 막걸리로 하십시다. 괜히 내일 속 부대낍니다."
"그럴까요?"
장인어른은 여유 있게 막걸리 병을 빙빙 돌리시더니, 천천히 아버지의 대접 잔에 한 잔을 가득 따랐다. 다 따른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자네도 이리 내려와 한 잔 해."
"네, 장인어른!"
나는 사양 않고 바로 상머리에 달러 붙었다.
"막걸리로?"
"네, 평소에 주로 막걸리를 많이......... 헙..........!"
'이게 아닌데..........!
""자네가 술 좋아한다는 것, 자네 장모에게 다 들었네. 사양할 것 없어."
"헤헤헤.........!"
나는 염치가 없어 헤픈 웃음을 웃으며 가득 한 잔을 받았다. 물론 대접 즉 우리의 국 대접용 잔이었다.
"자, 건배 한 번 하실까요? 우리 사위의 서울 대 입학을 축하하고, 외손주를 본 것에 대해 축하하는 의미에서 건배 한 번 합시다."
아무래도 공무원이다 보니 회식 자리가 잦은 장인어른이 아버지보다는 자리를 주도해 나가셨다.
"그럽시다!"
"건배!"
"건배!"
우리는 서로 술잔을 부딪치며 빠른 속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빨리 마시나 경쟁이라도 붙은 듯한 모습이었다. 당연히 결과는 소주잔이 1등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 음식 만드는 것이 다 끝났는지, 부엌에 있던 세 여자들 모두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별도의 상이 없어 양손에 한 가지씩 든 모습이었다. 이미 크지 않은 오봉이 술잔과 안주로 가득 찬 상태였으므로, 여자들이 들고 들어온 음식은 그냥 맨바닥에 신문
지를 깔고, 놓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상부터 큰 것으로 하나 장만 해야겠네!"
장모님의 말씀에 어머니도 민망하셨던지 나를 책망하셨다.
"돈 잘 번다더니, 상이라도 하나 제대로 장만해놓고 살지, 이게 뭐니?"
"평소에야 저 오봉 하나면 충분하잖아요. 누가 이렇게 떼로 몰려오실 줄 알았어요?"
"뭐, 떼?"
"헤헤헤........! 말이 그렇다는 말이죠."
"여기 여러 어른들 계신데, 쑥 빠추지 말고, 말조심해라."
"네, 어머니!"
"그러나 저러나 안주가 부실해서........."
어머니가 장인어른을 돌아보며 겸양의 말씀을 하셨다.
"아, 이만하면 진수성찬이죠? 얼마나 더 바랍니까? 안 그렇습니까? 사돈어른!"
"평소 우리 먹는 것보다는 백 배 낫습니다."
"저, 저런........."
아버지의 말씀에 혀는 못 차고, 못마땅한 시선으로 살짝 아버지를 흘기시는 어머니셨다.
"두 분도 한 잔씩 하셔야죠?"
돌아앉으며 내가 하는 말에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쏘아 붙였다.
"내가 언제 술 마시는 것 보았니?"
"아, 오늘은 경우가 틀리잖아요. 날이 날이니만큼, 아들의 서울대 입학을 축하해주는 의미에서라도, 한 잔 잡수실 수도 있는 것이지, 분위기 깨지게 꼭 그런 말씀을........"
"그럴까?"
"못 잡수시겠으면, 그냥 받아서 놔두세요."
"그래, 그래! 기왕이면 우리 며늘아기 술 한 잔 받자!"
"네, 어머님!"
"자난 번에는 내가 산간도 안 해주고 그냥 도망가서 많이 서운했지?"
"아, 아닙니다. 어머님!"
"내가 나를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단다.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도, 내심 서운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도 오늘 비록 딸이지만 손주 딸년의 자는 모습을 보니.......... 아, 이 어린 것에게도 내가 못할 짓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 자릴 빌어 사과하마! 아가! 미안하다!"
"아니 예요, 어머님! 흑흑흑..........!"
기어코 어머니는 미정이를 울리고 마셨다.
"그만 하거라. 네가 자꾸 울면 내가 어떻게 되겠니?"
"네, 어머님!"
두 고부간의 행위를 보며 여장부 같던 장모님도 옷고름으로 눈가를 찍고 계셨다.
"여기 술 떨어졌어!"
아버지의 고함이었다.
"거기 아직도 많이 남았네요."
"기자고 오라면 가져 올 것이지........"
평소 어머니에게 별로 큰 소리를 못 치고 사시는 아버지시지만, 약주만 채면 무서울 것이 없는 아버지셨다. 평소에는 자신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 때문에 아버지는 그 험한 농사일을 하시면서도 별로 술을 즐겨하지 않으셨다. 정 힘들 때 한두 잔은 하셔도 많이 잡숫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정량 이상을 자시면 그때는 술인지 물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폭음을 하시고, 그냥 쓰러져 주무시는 일을 나는 어려서 가끔 본 일이 있었다. 아버지의 말씀에 미정이가 술을 가지러 발딱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그러나 저러나 늦었지만, 우리 사위 다시 한 번 서울대학교에 합격한 것을 다시 한 번 축하하네!"
"고맙습니다. 장모님! 제 잔 한 잔 받으세요."
"그럴까?"
바깥사돈이 있거나 말거나 서슴없이 잔을 받는 장모님이셨다. 이를 또 못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 있으니, 장인어른이셨다.
"남들 다 마시는 음식인데, 뭘 그런 눈으로 보시우?"
"알아서 해!"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외면하는 장인어른이셨다. 이때 미정이 부엌에 남아있던 막걸리와 소주를 봉지째 들고 들어왔다. 이를 못 마땅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머니셨다. 눈치를 챈 미정이 자신도 모르게 위축되어 이를 슬그머니 뒤로 감췄다. 나는 또 이게 못마땅했다.
"이리 줘."
나는 봉지를 빼앗아 들고 아버지께 갖다드렸다.
봉지를 받아든 아버지가 미정이에게 물었다.
"며늘아기도 한 잔 하련?"
"아, 아닙니다. 아버님! 저 술 입에도 못 되요."
손까지 저으며 극구 사양하는 미정이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고. 그렇다면 술이라도 한 잔 따라봐라. 오늘 우리 며늘아기 술 한 잔 받아보자."
"네, 아버님!"
"저 이가........!"
어머니가 또 아버지에게 눈총을 주셨지만 아버지는 들은 체도 않으셨다.
아버지가 며느리가 따르는 술을 받으며 나에게 한마디 하셨다.
"늦었지만 합격 축하한다. 헌데 등록금 내는 일이 언제인지 미리 말해야 한다. 소를 팔아야 하니까?"
"곧 합격통지서와 함께 등록금 납입고지서가 날아들겠지만,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비로소 아버지에게 얘기하지만, 저 요새 월 400만 원씩 법니다."
"뭐?"
내 말에 장인어른을 빼고는 모두 입이 쩍 벌어져 아무 말도 못하셨다. 먼저 알고 계셨던 장인어른만이 실실 웃으시며 즐기셨다. 미정과 장모님 또한 이렇게 많이 번다는 말을 하기는 처음이므로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
"하하하..........! 그래도 저 여편네가 아들 하나는 잘 놔놨구만!"
아버지의 칭찬에 어머니마저 모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고, 아버지를 곱게 흘기셨다.
"이 중에서 제일 복 받은 놈은 우리 딸년 아니것소? 그렇지 마누라?"
이제 한잔씩 들어가니 말씀들이 걸쭉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바로 식을 올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곧 고등학교도 졸업하면 흉 될 것도 없고 하니까."
장모님의 말씀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직 나이도 있고, 제 학교며 군대 문제도 있고 하니, 예식은 나중에 올리기로 하고, 우선 약혼이나 해두는 것으로 합시다."
"자식까지 낳았는데 빨리 머리 올려 치우는 것이.........!"
장모님의 말씀에 내가 나섰다.
"제 나이 아직 어리니 우선 약혼만 해놓고, 결혼식은 나중에 올리는 것으로 하죠. 그 대신 다정이 출생신고도 해야 하니, 혼인시고는 바로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러면 처가에서도 못 미더울 것도 없지 않습니까?"
"그게 좋겠네. 그렇게 하도록 하세!"
장인어른이 동조하자, 장모님도 혼인신고까지 한다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셨다.
"아예 그럼, 말 나온 김에 약혼식 날짜 잡지? 여기 사돈 내외분도 나와 계신 길에."
아버지 말씀에 어머니도 동조하셨다.
"그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사부인?"
"저희들이야, 번거롭지 않고 좋지요."
내가 나섰다.
"이렇게 해요. 2월15일이 제 졸업식이거든요. 졸업식 날은 네 분 다 오실 거잖아요. 그러니까 또 한 번 모이고 그러느니, 그날 오전에 졸업식 끝나면, 1시쯤 증평에서 어디 큰 식당 하나 빌려, 약혼식을 거행하는 것으로 하죠. 증편은 내수와 도안 어디에서도 가까우니, 일가친척들 모시기에도 좋잖아요."
"역시 우리 사위가 똑똑해!"
"그렇게 해도 아무 문제는 없지. 약혼식이야 큰돈 드는 것도 아니고."
장인의 동조 말씀과 아버지의 말씀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데 어머니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셨다.
"졸업식 끝나고 청주에서 증평으로 이동하자면 1시 약혼식이면 너무 촉박하지 않겠니?"
'아차차.........! 아직 증평공고로 전학 간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구나!'
어머니 이야기에서 아직 전학 간 것을 얘기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했다.
"사실 아버지 어머니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는데, 저 증평공고로 전학 갔어요."
"뭐?"
깜짝 놀라시는 부모님이었다.
"어쩌다가?"
어머니의 물음이었다.
"사실은 다정이 엄마가 임신된 게 발각되어, 퇴학 위기에 몰렸어요. 그래서 아는 기자 분을 동원해, 청고는 자퇴 형식으로 처리하고 증평공고로 전학을 가게 된 거예요."
입만 벌리고 말이 없는 어머니였다. 같이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던 아버지셨지만 곧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세상을 살다보면 모든 것이 다 좋을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게 다 좋은 며느리를 안겨주기 위한 하늘의 섭리였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게다가 네가 원하던 서울대까지 합격한 마당에, 이제 와서 어느 학교든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
아버지의 말씀에 미정이는 물론 장인장모도 아주 좋아하셨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수긍을 하셨다. 이렇게 위기를 넘긴 내가 미정에게 물었다.
"자기는 졸업식 날 약혼식을 거행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되게 빨리도 물어보시네요?"
하하하..........!
호호호..........!
미정의 말에 방안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