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다음 날 오후.
내가 학교를 파하고 사무실에 들르니 총무 안배성과 고민호가 보였다. 안배성이야 직책이 그러니 자주 보는 게 당연했지만, 배달만 하는 고민호가 계속해서 자누 눈에 띄길래 한마디 했다.
"너 요즘 자주 보인다."
"그래?"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피하는 고민호였다. 나는 그러려니 하고 지사장실로 들어가려는데, 안배성이 나를 불렀다.
"지사장님!"
"왜?"
"지용준이 공고에서 퇴학을 당해 부강공고로 전학을 갔다 네요."
"무슨 이유로?"
"맹금자가 임신 9개월이라 학교에서 발각이 된 모양 이예요. 그래서 조사를 하게 됐고, 맹금자는 자퇴 처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참, 내.........."
어이가 없었다.
두 년 놈들도 내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으니, 우습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했던 것이다.
"어디서 들었어?"
"동네에 소문이 파다합니다."
내가 사직동으로 이사 온 후로는 그들과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모임이나 나갈까, 그들과는 거의 접촉할 일이 없기 때문에, 나만 모르고 있었던 소문이었던 모양이었다.
"알았어. 일 안 나가?"
"나가야죠. 잠시 수금한 것 맡기러 왔거든요."
"많이 한 모양이지?"
"네!"
"알았어. 그럼, 수고 좀 해!"
"네, 지사장님!"
나는 그길로 곧장 지사장실로 들어왔다.
바로 명희가 따라 들어와 물었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그래, 한 잔 가져와."
"네."
잠시 후.
명희가 안하던 짓을 했다. 커피를 두 잔 타 들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직감적으로 명희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했다.
"거기 앉아."
나는 명희에게 소파 맞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네!"
조신하게 대답한 명희가 티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놓고 치마를 잘 단속하며 앉았다.
"할 얘기 있어?"
"네!"
나는 조용히 그녀의 입만 주시했다.
"저........."
"할 말이 있으면 망설이지 말고 해봐. 뭐든지 다 들어줄 테니까."
"저 이사를 하면 안 될까요?"
'아! 깜빡했네. 서부지국을 넘겨줬으니, 그 방도 빼줘야 되는데, 지금까지 내버려뒀으니.......'
"지국장이 뭐라고 하든?"
"그건 아닌데요. 저도 눈치가 보이고, 말은 안 해도 배달학생들에게 그 방을 줬으면 하는 눈치였어요."
"내가 미처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 바로 옮기는 것으로 하자. 가만 있어보자. 어디가 좋을까?"
나는 눈을 천정으로 향한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제 1감은 내가 살고 있는 부근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후보지로는 지사 근처였다. 아무래도 이곳만 해도 내가 살고 있는 사직동보다는 요지라, 방값은 비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두 안을 놓고 명희에게 의견을 묻기로 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부근으로 이사 올래, 아니면 지사 근처가 낫겠니?"
"저는 지사 근처가 낫겠어요. 아무래도 출퇴근하기도 편하고........."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그 속내는 짐작이 갔다. 아무래도 내 집 가까이 오면 미정이와 맞닥뜨릴 수도 있으니, 그런 일을 피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알았다. 내 일단 집을 알아보마."
"네."
"다른 문제는 없고."
"저........"
"할 말 있으면 하라니까."
"고민호 씨가 자꾸 저에게 추근대요."
"뭐? 설마 그놈이 그런 짓을 할 줄이야. 내 이 녀석을........."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아니고요. 아무튼 그 사람 시선이 부담스러워요."
"알았다. 내 조치하마."
"더 이상 할 이야기 없지?"
"네!"
"여기서 커피나 다 마시고 나가라."
"네. 그런데 딸이 예쁜가요?"
명희가 직설적으로 물어오자 괜히 죄지은 것도 없는데, 가슴이 덜컥하는 기분이었다. 물론 사무실 내 모두가 그간 내가 미정이의 일로 사무실을 비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핑계 저 핑계 대기도 싫어서 내가 딸 낳은 사실을 공개해서 다 알고 있는 사항이기는 했다. 아니래도 금방 소문이 날 것이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 내 자식이니 그러려니 하는 것이지."
"나 같으면 엄청 예쁠 것 같은데.........?"
"명희 너도 하나 낳을래?"
"몰라요!"
내 말에 급 당황한 명희가 얼굴이 빨개져서 커피는 마시지도 않고 사무실로 도망을 갔다.
나는 명희가 나가고 잠시 마시던 커피를 마저 마시고, 사무실로 나갔다. 그새 고민호는 사라지고 없었다. 한마디 주의 좀 줄랬더니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경리 김명자에게 물었다.
"혹시 이 주위에 있는 복덕방 전화번호 아는 것 있어요?"
"지금 딱히 적어놓은 것은 없지만, 전화번호부 뒤적여보면 다 나와요. 뭐를 알아 봐 드릴까요?"
"이 지사 부근으로 방 한 칸, 부엌 한 칸 있는 집으로, 자취를 할 수 있는 집이었으면 좋겠어요."
"누가 쓸 건데요?"
나는 턱으로 명희를 가리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잠시 들어가 계세요. 제가 알아보고 알려 드릴게요."
"그럼, 부탁해요."
"네!"
10분 후.
김명희가 들어와 메모지 한 장을 건넸다. 그런 조건의 방이 있다는 집의 주소였다. 그 밑에는 소개해준 복덕방 이름도 적혀있었다. 한 복덕방에서 두 개를 추천했고, 다른 복덕방에서 한 개를 추천했다. 나는 그것을 들고 자리에 일어나 명희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 전에 김명자에게 복덕방의 위치를 물어서, 그 위치를 대충은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간 것이다. 나는 명희와 함께 복덕방 주인들을 만나 세 곳을 다 둘러보았다. 나는 명희에게 그 중의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명희는 그 중에서 가장 저렴한 방을 택했다. 조건은 다 비슷비슷했으나 지어진지 오래 되어서, 조금은 가격을 낮게 내어놓은 집 같았다. 그래서 나는 가장 좋은 집을 추천했지만 명희는 끝끝내 거절했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보증금이지만 자기가 저축한 돈으로 냈고, 사글세도 자신의 돈으로 매월 내겠다고 했다. 내가 말려도 막무가내였다. 착하고 순종적이지만 의외의 고집이 있었다. 결국 나는 그녀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내가 지사 구역 내의 신문을 천하일통한 시점인 7월 말 이야기다. 나는 이때를 즈음하여 대대적인 승진과 월급인상을 단행했다. 총무 제 1기인 세 명의 총무를 모두 소장으로 발령냈고, 경리 김명자를 주임으로 승진시켰다.
즉 남부의 조호철과 지사에 근무하는 안배성, 윤정환을 소장으로 발령냈고, 월급도 5만원으로 인상했다. 또 3만원이었던 총무들도 4만 원으로 인상했고, 김명자도 주임으로 승진시키며, 1만 원이 더 오른 4만원으로 책정했다. 이명희도 2만5천원에서 3만원으로 인상시켜 주었다.
천하통일을 실시한데 대한 일종의 포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범위가 넓은 지사 구역을 두 개로 쪼갰다. 그래서 두 소장에게 각각의 구역을 지정해, 그 지역만을 전담하여 관리하도록 했다. 이들 밑에는 각각 세 명의 총무가 있어 이들을 보좌하게끔 조치했다. 또 배달원들도 한 부당 10원씩 더 올려주어, 신문가지수가 많아 늘어나, 시간이 지체되는 점을 보상해주었다. 이런 조치에 모두 사기가 충천해, 매사에 더욱 열성적으로 모두가 업무에 임했다. 이런 조치를 취한 나는 가급적 신문에 대한 업무를 줄였다. 웬만한 일은 소장과 김 명자 주임에게 전권을 주어 행사하도록 하고, 나는 아주 중요하거나 불요불급한 일만 처리했다. 그 대신 나는 남는 시간을 공부에 더 많이 할애했다. 이제 예비고사가 몇 달 앞으로 닥쳐왔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는 밤 근무는 했다. 내가 새벽에 나가봐야 책상을 지키는 외에, 별로 할 일이 없어졌지만, 그 짓이라도 해야 했다. 사업은 잘 나간다고 방심하는 순간, 그 때부터 내부로부터 조금씩 좀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전생의 경험으로 이를 잘 알고 있던 나는 새벽이면 지사장실에 앉아 책을 펴놓고 공부를 했다. 결코 사업을 한 시도 등한히 하지 않겠다는 나의 각오를 피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어느덧 11월 달이 되었다.1975년 11월 12일.
오늘이 전국 고삼 수험생들이 일제히 대학진학을 위한 예비고사를 보는 날이었다. 물론 게중에는 재수생과 검정고시 출신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이날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가채점 결과 나는 이날 본 시험에서 300점 만점에 278점을 받았다. 이 정도 실력이면 서울대 법대는 어렵더라도 상대 정도는 갈 실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 본고사가 남아 있었다.
아무튼 이러기까지는 증평공고에 다니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고라고 해서 대학진학 희망자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그들만으로 별도의 반을 편성해 대학진학 반을 꾸렸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이 반에 적을 두었다. 그러나 나는 곧 실망하고 말았다. 나랑 전혀 수준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선생님들도 이들의 평균 수준에 맞추어 수업을 하기 때문에 내가 듣기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수준이 낮았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건축과로 다시 반을 옮겼다. 이곳은 그래도 2학기 되니까, 실습이나 현장에 벌써 취직되었다고 하고, 학교를 등교하지 않는 명분이라도 있었다. 실제로 아이들이 실습이나 취업을 해서, 대다수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로 자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자습하는 와중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해당 과목 선생님을 찾아가 물었다. 그런데 이게 또 웃겼다. 해당 과목의 선생님들마저 내가 묻는 것을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된 데에는 전적으로 학생들의 책임이 컸다. 적어도 선생들이 청고로 발령이 나면, 이들도 밤을 새워 공부를 해야 한다. 만약 수업시간에 학생의 질문에 답을 못하면 그 얼마나 창피한 일인가.
그런 경우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청고로 발령 난 선생들과 재직하는 선생님들은 스스로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런데 증평공고로 막상 선생님들이 발령이 나면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대개의 질문이 수준 이하로 그냥 답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처음에 긴장했던 선생들도 긴장을 풀고, 수업이 끝나면 우르르 술집으로 몰려다니는 일이 다반사였다. 아무튼 나는 증평공고 선생님들이 답을 하지 못하는 문제는 별로로 챙겨, 옛 청부고 시절의 담당 과목 선생님들의 집을 직접 찾았다.
그러면 그 분들은 내게 친절히 알려주셨다. 이 분들도 같이 2학년에서 3학년 담임이 되고, 3학년 수업을 가르치기 때문에 다 안면이 있는 선생님들이었다. 또 내가 찾아가면 그냥 빈손으로 가지는 않았다.
당시 선생님들로서는 구경하기도 어려운 조니워카 같은 양주라도 한 병씩 사들고 가니, 선생님들도 굉장히 나를 좋아하고 반기셨다. 그 양주를 자랑하고 싶어서라도 동료 선생님들을 자신의 집으로 왕왕 초대하는 경우도 생겼다.
이렇게 배운 공부로 나는 1월 달에 본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문제는 서울대는 서울대로되, 나는 공대를 선택했다. 아무래도 신문을 하느라 제대로 공부를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보면 상대를 진학해도 무난하겠지만, 본고사의 비중이 더 높은 관계로 나는 안전하게 하향지원을 했던 것이다. 이만해도 증평공고 개교 이래 처음 있는 역사적인 사건이므로, 원서를 쓰는 날은 부담 백배였다. 이 부담 또한 내가 하행지원을 하는 한 원인임을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발표가 있던 당일 날.
나는 전날에 올라가 아침 일찍 서울대로 찾아가 게시판에 붙은 합격자 명단을 보았다. 물론 전화로 물어볼 수도 있었으나, 전화가 불이 나서 여간해서는 통화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었기 때문에, 나는 직접 다리품을 팔았던 것이다.
곁에는 딸 다정이를 등에 업은 미정이도 함께였다. 부모님도 올라오신 다는 것을 우리 둘이 올라간다하고 거절한 상태였다. 아무튼 나는 보았다. 공대 전자공학과 위에서 2번째 있는내 이름을. 혹시나 해서 다시 한 번 수험번호와 맞춰 보았다. 확실히 내가 맞았다.
"야호.........!"
그간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폴짝 뛰어올랐다. 그리고 나는 옆의 미정을 의식하고 그녀를 끌어안았다.
"여보, 축하해!"
눈물이 흔한 미정이 벌써 눈물을 글썽이며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못했다. 나는 그녀의 언 볼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당신이 그동안 내 뒷바라지 하느라고 고생 많았어!"
"아니 예요. 당신이 고생 많았어요. 그동안 사업하랴, 공부하랴, 딸 하고 놀아주랴, 정말 고생이 많으셨어요."
"당신 안아주는 게 제일 고생이었어."
"이, 이가 정말 사람 많은 데서........."
말을 하며 살짝 옆구리를 꼬집으려 달려드는 미정이었다.
나는 달아나며 소리를 질렀다.
"마누라가 신랑 팰 라고 그래요."
내 말에 미정이는 급격히 얼굴이 붉어져 고개를 푹 숙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떨어져 울던 놈들까지, 눈물 흔적 있는 눈으로 폭소를 터트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보니 미정은 만인 가운데 웃음거리가 되었으므로, 삐쳐 한 옆에서 고개를 외로 꼬고 있었다. 이제는 달래야할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접근해 다정하게 말했다.
"그만 가자."
그래도 비쳐서 말이 없는 미정이었다. 그런데 오늘의 날씨가 춥긴 추운 모양이었다. 딸년 다정이가 등에 업혀서 콧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아, 애기 추운가 보다. 다정이 콧물 나왔다."
내 말에 아기를 앞으로 돌려 콧물을 닦아주려는 미정을 나는 제지했다.
"내가 닦아 줄게."
나는 뒷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들고 다정이에게 접근했다. 그런데 요 것이 벌써 내가 접근하자, 내 행위를 예상하고 고개를 돌렸다. 콧물을 닦아주다 보면 대체로 아기에게는 아프게 느껴진다. 욘석이 벌써 그것을 알고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다.
"하하, 요것 봐라! 아빠가 콧물 닦아 줄게. 우리 다정이 착하지?"
그래도 욘석은 외면한 채 자꾸 도리질만 했다. 그래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지가 가면 어딜 가. 내가 일부러 콧물을 힘주어 닦았더니,
'으앙!'
하고 울음이 터졌다.
"살살 닦지 뭐 하는 거예요? 저래서 내가 뭘 못 맡겨."
나는 미정의 푸념에도 아랑곳 않고 덥석 그녀의 팔짱을 꼈다.
"가자!"
어이가 없는지 실소를 터트리고 마는 미정이었다. ============================ 작품 후기 ============================오늘 또 기록을 경신했네요!
^^쿠폰으로 들어온 돈 만 5만 원이 넘었네요!
^^너무 감격스럽고 기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자릴 빌어 다시 한 번 읽어주시고, 추천, 멘트, 많은 쿠폰을 주신님들께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
"고맙습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고, 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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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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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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