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대화에 열중하느라고 몰랐는데, 내 뒤에는 어느 새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표정이 우거지상이었다. 내 통화가 길어지자 역정이 난 모양이었다.
"미안합니다. 애를 낳는 바람에 통화가 길어졌네요."
"누가?"
묻는 사람은 이십대의 청년이었다.
"제 아내가 요."
"뭐? 학생 아닌가?"
"맞아요."
"하하하.........! 고삐리가 아빠야?"
그 말에 좋았던 기분이 와락 구겨지며, 내 인상도 같이 구겨졌다.
"남 이 사........"
나는 괜히 아무 것도 없는 복도를, 돌맹이를 걷어차 듯 차고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미정이가 있는 병실로 들어갔다. 미정이는 비스듬히 모로 누워있었다. 그 옆에는 아
기가 누워있었다. 아기가 젖을 먹고 잠들었는지, 미정이는 새삼스럽게 자신이 낳은 딸을 바라보며 가만가만 토닥이고 있었다.
"어디 우리 딸년 어떻게 생겼나 얼굴 좀 보자!"
나의 말에 미정이 예쁘게 눈을 흘겼다. '딸년'도 욕이니 그런 모양이었다. 간호원도 없어 나를 제지할 사람도 없었다. 딸년 얼굴을 보는 순간 실망했다. 그것이 나도 모르게 입으로 뱉어졌다.
"되게 못 생겼네!"
"처음이라 그래요. 커가면서 예뻐질 거예요."
하긴 나왔을 때는 누구나 볼품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불을 파고들어 아기 옆에 누웠다. 그리고 미정의 얼굴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얼굴이 부슥부슥 한 게 많이 부어있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요?"
"많이 부었네."
나의 말에 자신의 얼굴을 한 번 쓰다듬어 보는 미정이었다.
"엄마는 오신 데요?"
"응, 오신다고 했어."
"어머니 때문에 서운했지."
"아니라고는 말 못 하겠네요."
"내가 삼대독자라 더 하신 거야."
"알아요. 저라도 서운했을 것 같아요. 지금 나도 서운하고요."
"우리아기 들어. 그런 말 하지 마."
"호호호.........! 당신은 정말 딸아이가 예쁜 거예요?"
"법주사에서부터 내 얘기 안 했어. 첫 번째는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그럼, 두 번째는 아들을 바라는 거네요."
"당연하지. 아들도 하나 있어야지. 그러나 저러나 제왕절개 수술을 하면 둘 밖에 낳을 수 없을 걸. 산모가 위험하다고 해서."
"그런 말을 얼핏 들은 것 같아요.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아야겠는데....... 정말 부담 백배 예요!"
"걱정 마!"
"왜 걱정이 안 돼요."
"내가 반드시 아들을 만들어버릴 테니까."
"호호호........! 자기 마음대로 해요!"
반드시 아들을 만든다니 미정이 기분이 좋은지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내 아들 만드는 방법도 다 알고 있어. 이번에는 내가 딸을 낳으려고 대충대충 한 거야."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두고 봐. 내 분명히 다음에는 아들을 만들 테니까."
"정말 자기의 말에는 엉터리인 줄 알지만 이상하게 믿음이 가네요."
"어허~! 엉터리라니, 다음에 아기 만들 때에는 내가 하라는 대로 만 해."
"정말이세요?"
"아, 이 사람이 속고만 살았나?"
"못 믿겠어요."
"그럼, 내가 이 자리에서 아들 낳는 방법을 읊어봐."
"네, 해보세요. 제가 믿을 수 있게."
"좋아. 잘 들어! 첫째 자기는 지금부터 아들을 낳으려면 고기는 절대 먹지 말고 채소나 과일만 먹을 것."
"나 일부러 고기 안 먹일 라고 작정한 것 아니 예요?"
"그게 아니야. 다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하는 말이지, 그까짓 고기 값이 몇 푼이나 한다고. 아들을 낳으려면 첫째 여자가 알칼리성 체질이 되어야 돼. 그래서 육류나 계란 종류 같은 것은 피하라는 거야."
"제법이네요. 계속 해봐요."
"둘째 서로 일주일 정도는 금욕을 했다가 배란기 즈음에 일제히 정을 토할 것.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점이야."
"나는 자신 있어요. 또 요."
"셋째 행위가 끝난 후 여자는 정을 보호하기 위해 두 다리를 높이 들고 있거나 해서, 정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것."
"에헹~! 그것 참, 힘들겠네."
"힘들어도 참아야지 아들 낳을 라면."
"할 수 있어요. 또 요?"
"이 말은 안 할라고 했는데, 해야겠네. 남자도 일주일 동안 금주를 해야 돼!"
"호호호........! 그것 참 잘 됐네요. 자기가 왜 제일 늦게 말하는지를 알만 하네요."
"그렇게 좋아? 내가 술 못 마시는 게?"
"당연하죠."
이때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미정의 대답에 간호원이 작은 쟁반에 쌀밥에 미역국을 들고 들어왔다. 나는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이 모습을 보고 간호원이 빙그레 웃었다. 웃음 끝에 간호원이 물었다.
"방귀는 나왔나요?"
간호원의 말에 미정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네!"
"그럼, 힘들었을 텐데, 많이 드세요. 그래야, 아기 젖도 잘 나와요. 아직은 젖이 잘 안 나오죠?"
"네."
"그럴 때는 신랑이 옆에서 자꾸 빨아줘야 돼요."
미정은 급격히 얼굴을 붉히고, 나는 연신 헛기침만 하고 있었다.
"이 아이 아빠 되시죠?"
"그렇습니다만......."
"두 분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한마디로 소꿉장난하는 것 같아 귀엽다는 말을 순화해서 표현한 말이라는 것을 나는 즉각적으로 알아들었다. 그렇게 느낀다는데 내가 뭐라고 그러겠나. 그래도 한 마디는 해야 했다.
"볼일 다 끝났으면 이만 나가주시죠?"
"여기 자꾸 들어와 계시면 안 돼요."
나는 제대로 된 반격에 휘청했다.
간호사가 나가자 나도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어디 가시게요?"
"장모님 오시나, 나가 볼라고."
"아잉, 가지 말아요. 어련히 오시려고요. 나 밥 먹여줘. 응?"
"아이고, 여기 우리 큰 애기가 하나 있었네. 알았다. 우리 큰 애기."
나는 미정이 반쯤 일어나 있는 침대로 가서 쟁반에 담겨 있는 미역국에 밥을 퍼서 푹푹 말았다. 그리고 말했다.
"아~! 해! 먹여줄게."
"네~! 아~!"
이때 문이 갑자기 불쑥 열렸다. 깜짝 놀란 내가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어머, 죄송해요. 제방인 줄 알고."
옆집 산모인데, 제 방을 착각했나보다.
"저 여편네는 젊은 년이 글씨도 못 읽는 까막눈인가? 분명히 제 방이라고 이름표도 붙어 있을 텐데........."
밥을 쏟은 분노로 내가 욕설을 퍼붓자 미정이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그만 해요. 자기 입에서 욕설이 나오니 듣기 안 좋아요."
"그럴까? 다시 시작하지."
"네, 서방님! 이 애기는 벌써 아~ 하고 입 벌리고 있답니다."
그 말에 내가 너무 귀여워 웃으며 밥을 뜨는데, 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어느 년여?"
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데,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들어왔다.
"아니, 장모님! 벌써 오셨어요?"
"아니, 왜 이렇게 놀라나? 혹시 내 욕한 것 아니야?"
"그럴 리가요. 산간 하러 오신 분한테 제가 욕을 왜 합니까? 산간도 안 하고 간 사람한테도 안 하는데요."
미정은 아까부터 입을 틀어막고 웃느라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아니, 쟤는 왜 저라고 있대? 미역국에 입술이라도 데었나?"
"하하하.........! 네, 장모님! 제가 두 번이나 미역국을 떠먹이려다, 그 때마다 사람이 오는 바람에 아직 한 숟가락도 못 얻어먹었거든요. 그래서 아마 골이 나서 저런 모양입니다."
"정말 그런 겨?"
"아니 예요. 엄마! 저이가 들어오시기 전에........"
"너.........!"
미정의 말을 막기 위해, 나는 삿대질까지 하며 소리쳤지만 미경은 막무가내였다.
"엄마 욕했대요."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은 장모님........."
이렇게 운을 뗀 내가 자초지종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장모님의 반응이 걸작이었다.
"하필 내가 그때 들어왔으니, 욕을 먹어도 싸네."
그 말에 나는 동조할 수도 없어,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정이 말했다.
"엄마, 택시 타고 왔어? 이 시간에 나올 버스가 없었을 텐데?"
"그래, 이년아! 비행기 타고 날라 왔다. 아들이나 좀 제발 좋은 일 하느라고 하나 낳지. 쯧쯧........"
"나는 뭐 안 낳고 싶어 안 낳았나? 나는 더 낳고 싶었다고. 흑흑흑........!"
장모까지 그렇게 이야기 하자 미정이 설움이 복받치는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분위기가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장모님, 걱정하실 것 하나도 없어요. 다음에는 제가 꼭 아들을 낳겠다고 결심을 했고, 지금까지 미정이에게 그 방법도 한참을 강의 했습니다."
"그게 어디 인력으로 되는 일인가?"
"어허~! 장모님도 못 믿으시네. 자기가 얘기해봐. 내가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조목조목 얘기했지?"
"맞아요. 이상하게 저이 말대로 하면 다음에는 꼭 아들을 낳을 것 같은 자신감이이 들어요."
"호호호.........! 벌써 부창부수라고. 그래 제발 좋은 일 하느라고, 자네 말대로 다음에는 꼭 아들 좀 낳으시게."
"네, 장모님! 혹시 저녁은?"
"아, 벌써 먹었지. 자다 오는 건데. 촌에서는 해 떨어지면 자지 않나?"
"하긴 그렇죠. 그러나 저러나 여기 며칠이나 있어야 할까요?"
"아, 내가 왔는데, 며칠은 며칠. 당장이라도 나가야지. 괜히 비싼 돈 들여, 병원신세 질 게 뭐 있남?"
"그래도 며칠은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수술까지 했으니, 의사 처방에 따르기로 하죠."
"수술?"
"낳다, 낳다 못 낳아서, 제왕절개 수술을 했습니다."
"잘 한다. 남들은 무 뽑듯 쑥 쑥 잘만 뽑아 내드만, 남은 잘 낳는 애도 하나 못 낳아서 수술을 다 해?"
"그게........."
"무슨 이유래?"
"저는 말 못합니다. 저 사람한테 나중에 들으세요.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그러나 저러나 장인어른은 어떻게 설득 하셨어요?"
"처음에는 펄쩍 뛰시더니 애까지 오늘 낳았다니까, 어쩔 수 없는지 포기하시더라."
"잘 됐네요. 차제에 알리게 되어서."
"내 말이 그 말이야."
"오늘은 사투리 안 쓰시네요?"
"오늘은 사투리 쓸 정신도 없다 아이가."
"하하하.........!"
내가 웃고 있는데, 그동안 몇 숟가락 떠먹던 미정이 물었다.
"자기, 아기 이름은 지었어?"
"엉? 으........ 응.........! 지어놨어."
"뭐라고."
"다정(多情)이, 강 다정(姜 多情) 어때?"
"나는 괜찮은 것 같은데? 엄마는 어때?"
"내가 아니? 너희 자식 이름 짓는데 내가 왜 관여를 해?"
"그 말이, 아니잖아? 그냥 듣기에 어떠냐고?"
"나도 괜찮다만........."
"그럼, 그걸로 해요. 여보!"
"알았어, 헤이~! 강 다정! 그만 자고, 이 아빠랑 놀자!"
"저 이가 정말, 자는 애 깨울라고........."
"아이고, 내가 죽겠데이."
"왜요? 장모님!"
"단발머리 가스나가, 아를 안 낳나? 또 신랑은 어떻고, 아직 스포츠가리 아이가?"
"그만 하세요. 좀 전에 장모님한테 전화 걸때도, 한 마디 들었다고요."
"뭐라고 하던데?"
"한 마디로 고삐리가 애를 낳으니, 우스워 죽겠다는 것이죠. 뭐?"
"고삐리?"
"고등학생을 가르키는 속어예요."
"그런 기가? 호호호........! 거, 듣고 보니 재미있네. 고삐리 라꼬?"
"엄마, 지금 사위 놀리는 거예요?"
"저놈의 가스나 좀 보래이, 또 입이 댓발 나와 가지고."
이렇게 투덕거리다보니 어느덧 밤이 깊어져 있었다. 나는 장모님에게 미정이를 맡기고 일단 집으로 돌아와 잠을 잤다.
의사의 지시에 의해 그로부터 사흘 후에 미정은 경과가 좋아 퇴원을 했다. 이때부터가 나에게는 집에 있는 것이 생지옥이었다. 미정이 몸조리를 시킨다고 장모님이 문이란 문은 죄다 꼭꼭 처닫고, 연탄불 불문은 아예 하루 종일 빼놓는 바람에, 방이 설설 끓었다. 아니 끓는 정도가 아니라 아랫목의 장판이 새까맣게 탔다. 그 바람에 나는 더워서 주로 밖으로 나돌고, 미정이도 더워서 그만 하라고 해도, 장모님은 막무가내셨다. 몸에 바람 들어가면 안 된다고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하고, 계속해서 질식할 것만 같은 더운 방에서만 지내게 했다. 그래서 나는 아예 집에서 잠을 안자고 사무실에서 잠을 잤다. 그리고 잠깐 잠깐 들러 미정의 용태만 살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자 장모님도 돌아가시고, 미정이도 이제 몸이 많이 좋아져, 바깥 활동까지 할 수 있었다. 제 몸이 많이 좋아져, 바깥 활동까지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