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36화 (36/322)

<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우선 상황이 어떤지 진찰부터 합시다."

의사는 일단 미정을 분만실로 데리고 갔다. 지금부터 병실이 통제되고 있어, 나는 졸지에 열 외자가 되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근심으로 한숨이나 들이 쉬고 내쉬는 외에는.

어머니 또한 예외가 아니어서 병원복도 대기실 소파에 무릎에 얼굴을 묻고 두 손을 모으고 계셨다. 마치 기도하는 자세 같았다. 평소 절에도 별로 가지 않던 어머니가, 이 순간만은 왠지 빌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께.

'우리 손자 무사히 낳게 해달라고!'

아니면 서낭당의 칠성님, 삼신할머니, 부엌의 부엌 신, 장독대의 무슨 신까지, 여태 이름도 모르는 신이란 신은 모두 입에 올리며, 순산을 기원하고 있는 어머니의 흰머리가 오늘따라 유독 눈에 띄었다.

그간 자세히 안 봐 몰랐는데, 이제는 새치 머리가 아니라, 흰 머리의 비중이 훨씬 많아져, 참으로 세월이 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병원의 출입문을 밀고 나왔다.

복도에서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나도 모르게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내뱉었다. 담배 연기가 춤추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는 담배를 피우며 천천히 계단 복도를 내려왔다. 1층 복도까지 내려오니 남의 시선이 걸렸다.

담뱃불을 비벼 끈 나는 공초를 발로 차서 열린 문사이로 거리 밖으로 내몰았다. 거리로 나왔다. 번화가라 많은 행인들이 오고가고 있었다. 무엇 때문에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지만, 너희들도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태어난 순간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인간의 숙명. 한 생명이 태어나려 하자, 생명에 대한 무의식이 나를 그런 쪽으로 생각케 한 모양이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맑고 보기 좋았다.

시선을 내리니 어느새 많은 잎들에 둘러싸인 가로수가 그 싱싱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생명의 기운이었다. 나는 밖에서도 할 일이 없어 다시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의사가 나왔다. 나는 의사에게 달려갔다. 어머니도 바로 내 뒤를 따르고 계셨다.

"어떻게 됐습니까?"

"촉진제를 놨으니, 잠시 기다려 보세요."

그러더니 의사는 휭 하니 자신만의 공간으로 사라졌다.

30분이 경과했을까? 미약하던 미정의 신음이 서서히 비명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으악.........! 으악........!"

누가 옆에서 때리기라도 하는 듯 아니면 순간적으로 힘을 주는 것인지, 괴상한 신음인지 비명인지 분간 못할 미정이의 외침이 복도 밖까지 들려왔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다. 의사도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그래도 낳았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점점 거센 비명소리만이 들려왔다.

"저러다가 애 잡겠네!"

어머니의 근심어린 목소리가 내 귀를 강타했다.

"아, 쓰발 새끼는 빨리 낳게 하지 뭐하는 겨?"

내 입에서 의사에 대한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상태로 한 시간이 더 지났다. 이제는 미정의 비명소리도 탈진했는지 잦아들었다.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저러다가 미정이 죽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더럭 겁이 났다. 이제는 의사에 대한 욕설이 아니라, 바짓가랭이를 잡고라도 빌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사히 낫게만 해달라고.

그 상태로 또 30분이 더 지났다. 나는 어느새 병원 복도 밖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애는 어떻게 되도 좋으니, 제잘 미정이만 무사하게 해주십시오!'

의사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내 마누라 보지를 얼마든지 실컷 봐도 좋다. 제발 무사하게만 해다오!'

아니 보지가 아니던가? 사전에 보면 성숙한 보지는 씹이라고 했던데, 정정을 해서 내 마누라 씹을 실컷 봐도 좋다! 이 새끼야! 무사하게만 해다오!

이때 의사 놈이 산실을 벌컥 열고 나왔다. 마치 제 욕을 하는지 알아듣기라도 한 듯하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초산인데다 질이 너무 작아요. 출혈도 심하고요."

"그래서요?"

"제왕절개 수술을 합시다. 단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 상태라도 위험한 것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제왕절개수술을 하면 좀 낫겠습니까?"

"지금 상태로서는 그렇습니다."

"동의합니다."

"각서가 필요합니다."

"쓰지요. 까짓것."

그렇게 해서 나는 각서 한 장을 쓰고 지장을 찍었다. 내가 인주 묻은 손을 화장지에 문질러 닦고 있는데 어머니가 가까이와 물으셨다. 어머니의 얼굴도 초주검 상태였다. 그동안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입술은 하얗게 말라붙었고, 머리칼은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엉망진창이었다.

"이제 수술을 한다는 것이냐?"

"네, 어머니!"

"아이고, 뭐가 됐든 빨리 낳기나 했으면 좋겠다. 애가 달아 입술이 바짝바짝 탄다."

그 소리에 나는 카운터에 앉아 있는 아가씨에게 물을 청해, 물을 드렸다.

한 컵을 벌컥벌컥 다 드셨다.

"더 드릴까요? 어머니!"

"됐다.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드는 게냐? 나는 순풍순풍 잘만 낳았다만."

"나 때도요?"

"너 때가 제일로 고생했지. 초산이라.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힘만 주면 낳아지더라."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내가 다시 병원 밖 복도로 나갔다.

"어디 가는데?"

"답답해서 바람 좀 쏘이고 오려고요."

"금방 들어와라."

"네."

나는 어머니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고,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이제 담배가 아리랑으로 바뀌어 있었다.

"후휴.........!"

그간 참고 있었더니 꿀맛이었다.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돌았다. 한 개비를 거의 쉬지도 않고 빨았다. 그리고 또 한 개비에 불을 붙여 빨았다. 반쯤 태우고 나니 헛구역질이 났다.

'요새 술을 너무 마셨나?'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병실 내부로 들어갔다. 30분이 더 지났다. 그래도 아직 수술실문은 열리지 않았다. 괜한 후회가 들었다.

법주사에서 딸이 아니라, 산모의 순산을 비는 기도를 올릴 것을 하는 뒤늦은 후회였다. 그렇게 15분이 더 경과했다.

마침내 수술실문이 벌컥 열리며 의사가 나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는 급히 쫓아가 물었다. 어머니 역시 초조한 안색으로 내 곁에 서 계셨다.

"수술이 잘 됐습니다. 산모,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

"아들이오? 딸이오?"

어머니가 불쑥 물으셨다.

의사는 대답도 않고 급히 화장실로 갔다.

'저 새끼가 정말........!'

모두 안전하다니 의사의 고마움은 잊고, 내심에서 나도 모르게 건방진 것에 대한 욕설이 튀어 올라왔다. 그때였다.

"으앙~! 응애, 응애........!"

병실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와 내가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침 간호사가 문을 열고 나왔다.

"축하드립니다! 예쁜 공주님이십니다!"

"아이고........! 이를 어째..........!"

더 이상의 말을 삼가는 표정이더니, 어머니는 순간 바닥에 주저앉으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 입에는 희희낙락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내 소원대로 예쁜 딸을 낳았으니까. 예쁘고, 안 예쁘고는 커봐야 알겠지만 말이다. 다시 닫혔던 병실 문이 열리며, 미정을 실은 침대가 나왔다. 아기는 간호사 하나가 안고 있었다.

"어머니, 잠시 비켜주세요."

"어디로 가는 거요?"

내 물음에 간호원이 대답했다.

"조리실로 옮겨야지요."

그 순간 어머니가 비척비척 일어서셨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정이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말했다.

"됐다!"

어머니는 한 마디 하시고는 매몰차게 돌아서셨다.

"당신 괜찮아?"

내가 물었다.

"네, 여보! 죄송해요!"

"죄송하긴........! 나는 당신이 괜찮다니 제일 기쁘고, 아기도 건강하게 나아줘서 고마워!"

"여보! 흑흑흑..........!"

미정의 손길이 나를 붙들라고 순간적으로 뻗어 나왔다. 그러나 간호원들은 산모와 아기가 감기 든다며, 침대를 끌고 급히 복도를 지났다. 30분 후.

모든 뒷정리가 끝났는지, 조리실에서 산모와 우리를 면회 시켜주었다. 우리가 병실 안으로 들어서니, 미정이 침대에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아기는 미정의 품에서 젖을 빨고 있었다. 이 당시는 신생아실이 별도로 없었으므로 아기와 산모가 함께 있었다.

"어머님! 죄송해요!"

미정이 부르튼 입술로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 괜찮다. 몸은 괜찮고?"

"네, 어머님!"

"아까는 내가 아들을 바라는 욕심에 순간적으로 너에게 못 볼꼴을 보여주었다마는, 가슴에 담아두지 마라. 나는 네 몸이 괜찮다니 다행이고, 딸들도 요새는 잘 만 가르치면, 사내애보다 나은 시대라니, 앞으로 잘 키우거라!"

"어머님! 고마워요! 죄송하기도 하고요! 흑흑흑.........!"

"그만 하래도 그러는 구나! 자꾸 그러면 산모 건강에 해롭다! 그러나저러나 산간은 어떻게 하니? 나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서........."

"제가 다 할 테니까, 어머니는 걱정 마시고, 집에 가세요!"

"사내가 무슨........!"

"제가 친정어머니 오시라 할 게요."

"그렇게 하든지........"

"우리 아기 한 번 안아 볼까?"

내 말에 미정이 젖을 쑥 빼서 아기를 나에게 주려는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한 옆에 서 있던 간호원도 말렸다.

"아직 신생아라, 세균을 조심할 때라........"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얼른 젖 물려!"

"네!"

아기가 젖을 물리자 다시 조용해졌다.

'아 이제, 저 젖도 반은 내 것이 아니네! 딸년하고 반 팅!'

순간적으로 쓸데없는 감상이 내 머리를 스쳤다.

"지금 몇 시냐?"

"7시가 넘었는데요?"

"아직 막차 있겠지?"

"있긴 있지만......... 가시게요?"

"내가 여기 있으면 뭘 하니 도움도 못 되고........ 집안일이 바쁘기도 하고........"

"그럼, 가세요!"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나오면서 잠시 돌아보았다. 순간적으로 미정의 표정에 시어머니가 가신다는 데에 대해, 서운한 표정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침울하게 말했다.

"내가 어머니 주차장까지 만이라도 모셔다 드리고 올게."

"네!"

"됐다. 나올 것 없다. 나 혼자만이라도 충분하다."

"제가 모셔다 드린다니까요."

"됐대도 그러는 구나!"

"그럼, 제가 택시나 태워드릴게요."

"됐대도 참........"

그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마침 지나가는 빈 택시가 있었다. 나는 차를 세워 어머니를 태워드리고, 어머니 치마 위에 순간적으로 만원을 놔드리고 택시 문을 쾅 닫았다.

"야, 야........."

어머니가 돈을 안 받으시려고 나를 불렀으나, 나의 손짓에 택시는 휭 하니 달려 나갔다.

다시 병실로 돌아온 나는 미정에게 물었다.

"진짜 장모님 오시라고 하게?"

"글쎄,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아버지 몰래 며칠 머물 수도 없는데........"

"일단 전화나 한 번 드려보자고. 그럼 장모님이 뭔 말씀이든 계시겠지."

"그래요."

"전화번호?"

"이것 아랫집 사는 성찬이네 집 전화번혼데, 바꿔 달래야 해요,"

혹시나 몰라 준비했는지, 자신의 지갑에서 메모지를 꺼내주는 미정이었다. 나는 그 전화번호를 들고 다시 병원 복도로 나왔다. 카운터에서 전화 한 통을 빌려 쓰려하니 간호원 아가씨는 병원 밖 복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공중전화 사용하세요!"

"되게 비싸게 구네!"

내심 욕설이 나왔지만, 밖으로 나왔다. 주머니를 뒤졌지만 동전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안으로 들어와 동전을 바꿨다. 동전은 나름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다. 동전을 듣고 찌르륵 찌르륵 다이얼을 돌리자, 신호음이 갔다. 잠시 기다렸더니 이내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시유.........!"

"아주머니! 미정이네 잘 아시죠?"

"누구신데유?"

"아, 미정이 친구인데요. 미정이 엄마 좀 바꿔주세요."

"밤이 늦어서 안 잘라나 모르겠네."

"급한 일이니 깨워서라도 받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알갔슈. 쪼게 기다려야 할 건디."

"내 5분 후에 다시 걸겠습니다."

"그럼, 그렇개 해유."

"네, 네! 부탁합니다!"

"그래유!"

나는 전화기를 거치대에 걸었다. 시간을 보고 있다가 나는 정확히 5분 후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 누구? 사위?"

"네, 장모님!"

"어떻게 됐남?"

"딸을 순산했습니다."

"저런, 저런.........! 딸을 낳아서 어째, 그래?"

"저는 좋기만 한 대요, 뭐!"

"참말이가?"

"네, 장모님! 원래부터 딸 낳기를 바랐어요. 살림 밑천이라잖아요."

"그건 듣기 좋으라고 하는 소리고. 그래 시방 미정이는 어디 있는 고?"

"병원조리실에 누워 있습니다."

"산간은?"

"아니래도 그것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통화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연신 미리 동전을 넣어가며 통화를 해야 했다.

"시어머니는 어디 계시고?"

"금방까지 같이 계셨다가, 방금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저런, 저런, 서운해서 그런 기다. 손자를 봤으면 몇날 며칠이라도 산간을 해주셨을 긴디."

어머니의 마음을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장모님이셨다.

"그러나 저러나 산간 때문에........."

"내가 지금이라도 당장 나감세!"

"장인어른에게는 어떻게 변명하시려고요?"

"이제 사실대로 말해야지 별 수 있나? 자식까지 낳은 마당에, 죽일 겨? 살릴 겨?"

"하하하.........! 저는 장모님의 그 배짱이 마음에 듭니다. 파이팅 하세요!"

"시방 뭔 소리 하는 겨? 누가 지금 싸우 남?"

"하하하........!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말이 그렇다는 말이죠."

"알아, 나도! 참 병원이 어디가?"

"경산부인과라고, 본정에 있습니다. 택시 타시면 운전수들은 다 압니다."

"알았네! 내 갈 때까지 사위는 어디 가지 말고, 꼼짝 말고 게 있기라이."

"네, 장모님!"

"그럼, 끊네. 잠시 후에 봄세."

"네 장모님!"

딸까닥하고 마침 통화시간도 끝났다. 딸까닥하고 마침 통화시간도 끝났다. 딸까닥하고 마침 통화시간도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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