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32화 (32/322)

<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즉시 서류 수속을 밟았다. 이 일이 약 30분 정도 걸렸는데, 주 기자는 약속이 있다고, 우리의 상담 건이 완료되자마자, 바로 빠져나간 뒤였다. 물론 그 전에 이 사람에게 나는 판촉 겸 오늘의 수고비로 벌써 30만 원을 찔러 준 뒤였다.

로비는 통 크게 하랬다고. 이 당시 30만 원은 정말 큰돈이었다. 당시 고향에는 아직 머슴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부자 집에 1년 내내 살면서, 그 집 농사를 다 지어주고 받는 새경이 쌀 9가마였다. 그것도 최고로 일 잘 한다는 상일꾼이. 그런데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약 100만 원 돈이었으니, 30만 원이면 얼마나 큰돈 인가. 남은 거의 네 달을 일해야 벌 돈 인 것이다.

아무튼 나는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지점장을 모시고 근처의 한정식 집으로 향했다. 김명자도 강제로 동행하도록 했다. 그러자 지점장도 한 사람을 더 데리고 갔다. 우리의 서류를 꾸며준 대출 담당 과장이었다. 한정식 집 앞에 이르자 명희를 제외한 모두의 고개가 빳빳해졌다. 한 마디로 목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다. 100원이면 택시를 타는 세상에 정식 한 상에 일만 원짜리였으니, 그럴 만도 한 것이다.

"어서 오세요. 지점장님!"

아래위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마담이 지점장과는 안면이 많은지 죽은 서방이 돌아온 듯 반겼다.

"험, 험.........! 방 있나?"

"그럼 요. 오늘 오실 줄 알고 특실을 비워놨습니다. 지점장님!"

쪽진 머리에 비녀를 꽃은 마담이 다시 한 번 머리를 어루만지며, 살갑게 맞았다. 아니 옆에 다가가더니 척 하고 팔짱까지 꼈다. 그러자 지점장은 어색한지 연신 헛기침만 했다.

정원수가 우거진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 한 복을 곱게 차려입은 두 여성이 입구에서 우리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얘들아, 특실 비워놨지?"

"네"

"그럼, 난실(蘭室)로 모셔라!"

"네, 언니! 저희들을 따라오세요!"

두 여인이 앞장을 서서 안내했다. 한자로 문 입구에 蘭室이라고 크게 쓰여 있는 장지문을 밀고 들어가니, 장방형의 상 두 개가 잇대어진 위에 흰 종이가 깔려 있어, 정갈함을 연출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하실 거죠?"

마담의 물음에 내 눈치를 힐긋 본 지점장이 점잖게 말했다.

"그래, 그래."

"반주로 맥주 한 잔 어떻습니까?"

나의 제의에 새삼스럽다는 듯 은행원 두 사람과 마담의 시선이 내게 일제히 쏠렸다.

"일과 시간인데........."

지점장이 은근히 뒤로 뺐다.

"반주로 간단하게 하는 건데요, 뭐!"

나의 말을 받아 담당과장이 거들었다.

"오후의 일과는 저희들에게 맡기시고, 어디 가서 한숨 주무시죠."

재차 권하는 과장이었다.

"이 사람이 큰일 날 소릴..........!"

그렇게 말하면서 지점장은 내 눈치를 보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이미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우선 맥주 10병 하고, 안주 좀 가져오세요."

나의 주문에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마담이었다. 접대의 주최를 헛갈려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재빨리 김명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계산은 이 사람이 할 겁니다."

"아, 네!"

대답은 하면서도 김명자까지 아래위로 훑는 것을 잊지 않는 마담이었다. 그 전에 두 서빙 요원은 계산은 누가하든 상관없다는 듯, 재빨리 준비를 하러 간 다음이었다. 마담이 한쪽에 수북이 쌓인 방석을 바닥에 깔았다.

"앉으시죠, 지점장님!"

"험, 험! 그럴까?"

우리는 알아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지점장 옆에는 대출과장이 앉고, 나와 김명자는 맞은편에 나란히 앉았다.

"우선 갈증이나 푸세요."

벌써 한 서빙요원이 수정과 네 개를 들고 들어와 각자의 앞에 놓았다. 이어 바로 안주와 맥주가 들이닥쳤다. 미리 철저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곧 안주가 진열되기 시작했다. 인삼의 잔뿌리를 꿀에 무쳐놓은 것, 소위 사라다라는 마요네즈에 밤, 사과, 오이, 당근 등을 버무려 놓은 것, 감, 사과, 배, 꽂감 등이 주재인 과일안주, 동그랑땡, 여타 해물무침 등 한마디로 10가지가 넘는 풍성한 안주가 상에 넘쳐났다.

"자, 한 잔씩 받으시고, 만수무강하세요!"

마담의 멘트는 너무 틀에 박혀있었다. 고등학생 보고 만수무강하라는 소리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점장 위주의 인사말이겠지만 서도.

두 사람이 각자 잔을 들어 맥주를 받았다. 그런데 잘 보면 두 사람의 잔의 각도가 틀렸다. 지점장은 잔을 기울여서 맥주가 많이 담기도록 하는 반면에, 대출과장은 똑바로 세우며 빨리 따르도록 재촉하니, 똑같이 따를 때는 한 잔을 받았지만, 나중에 맥주가 담긴 양은 큰 차이가 났다. 거품이 가라앉고 나니 지점장의 것은 2/3가 채워진 반면에, 과장의 잔은 반 밖에 차지를 않았다. 요는 주법에 어울리게 같이 한 잔을 받아도 과장은 오후에 일할 것을 생각해서 덜 마시려 하고 있는 것이다. 마담이 우리에게 술을 따를 차례가 되었다.

"아직 학생 같은데?"

당시 중학생은 삭발을 했고, 고등학생들은 스포츠머리를 하고 학교를 다녔으므로, 단번에 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군인 정도로 늙어보이지는 않았으니까.

"학생 아닙니다. 이 순간만은 사업가죠."

내 말에 지점장이 거들었다.

"저 사람이 신문 사업을 아주 크게 한다네."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사장님~!"

금방 아양으로 돌변하는 마담이었다.

"아가씨도 한 잔 받아요."

마담의 말에 내 눈치를 보는 김명자였다.

"잔 받아요. 이럴 때는 받아놓는 게 예의에요. 고사를 지내던 그건 알아서 하시고."

"네, 지사장님!"

마담이 다시 한 번 나를 바라보더니 이번에는 김명자에게 시선을 옮겨 술을 따르며 말했다.

"두 분이 연인 사이세요?"

"하하하.........!"

두 은행원이 박장대소를 하고, 나는 그냥 미소만, 명자는 얼굴이 붉어져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이럴 때는 '그렇다'고 해야 마담의 의도를 분쇄하는 것인데, 순진한 김명자는 그 정도로 사회생활을 아직 하지 못했다.

"한 잔씩 합시다!"

분위가가 진정되자 지점장이 제의를 했다.

"강 사장의 사업을 위하여!"

"위하여!"

사회생활의 달인답게 지점장이 선창을 해, 우리는 건배를 했다.

곧 소소한 대화 속에 술자리가 이어졌다. 그렇게 해서 지점장이 두 병, 과장이 1병, 내가 또 2병, 김명자가 반잔을 마시게 되어, 약간의 취기가 돌자, 지점장의 지시로 정식 점심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선 반공기의 전복죽을 필두로 그것을 비우자 정찬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선로에 더덕구이, 각종 나물, 꽁치를 통째로 구운 것 네 마리, 김, 나박김치, 밀가루에 고추장을 넣고 부친 장떡, 계란찜, 버섯 볶은 것 등등 내가 일부러 반찬 가지 수를 세어보니, 자그마치 18가지였다. 쇠고기 무국을 제외해도 그랬다. 여기에 밥은 얼마나 적게 나오는지, 시골사람은 삼인 분을 먹어야 겨우 양이 반 정도 찰 것이다. 아무튼 우리가 식사를 하자, 맛있게 드시라고 인사를 한 마담이 빠져나갔다. 이렇게 요란뻑적지근한 식사를 마지고, 다시 수정과로 입가심을 한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전에 잘 먹었다는 인사치례로 지점장이 내게 말했다.

"앞으로 우리 은행에 볼 일이 있으면, 여기 김명도 과장을 찾아가세요. 잘 도와줄 겁니다."

"제가 아니라, 은행 업무는 우리 김명자 씨가 주로 볼 테니, 이름도 끝의 자리 하나 밖에 차이 안 나는 두 분이 서로 잘 해보세요."

"하하하.........! 그러네!"

너털웃음을 웃던 은행장이 마지막으로 인사를 했다.

"오늘 고향 후배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잠시 만요."

나는 즉시 주머니에서 비상금을 꺼내 빳빳한 신권 일곱 장을 꺼내는 동시에 김명자를 불렀다.

"명자 씨!"

내 부름에 명자가 가까이 왔다.

"이것, 과장님께 알아서 드려요!"

귓속말이었으므로 무엇 때문인지 김명자의 얼굴이 붉어졌다.

"급히 오느라고, 봉투를 준비 못했습니다. 행원들과 회식이나 한 번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나는 지점장에게 1만 원 신권 다섯 장을 내밀었다.

"뭐, 이런 걸 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몇 번의 사양 끝에 기어코 양복 뒷주머니에 그냥 쑤셔 넣는 지점장이었다. 지금까지 명자가 건네는 돈을 사양하던 김 과장도 지점장이 수뢰를 하고 공범이 생겼다는 내심으로, 마지못한 척 받아 넣었다.

"만 원인데, 계산할 돈 있어? 아니 술값까지 조금 더 나왔겠는데?"

"네에~?"

김명자의 눈이 커질 대로 커졌다.

"있긴 있어요."

많이 나올 중 상상은 했지만 예상외의 비싼 값에 너무 놀라는 김 명자의 말투였다. 점심 한 끼로 1만원이라는 거금을 내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듯, 계산대에서 이를 건네주는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둘이 먼저 사라지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지사 사무실로 향했다. 걸어도 은행과 우리 사무실은 10분 거리 밖에 안 되었다. 그것을 택시를 타고 왔으니, 김명자는 내심 배가 아팠을 것이다. 나란히 걷고 있던 내가 주머니에서 두 개의 통장을 꺼내주며 말했다.

"앞으로 제일 먼저 이 두 개의 통장을 우선적으로 막아요."

"네!"

"알지요? 하나는 대출통장이고, 하나는 예금통장이라는 것을."

"그럼요."

"1년 기한이니까. 바로 상계 될 겁니다."

"믿어요. 지사장님! 회사가 운영이 안 되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판촉을 하는 것이니, 판촉 끝나면 수금이 장난 아니게 들어올 것이라는 것도. 그러니까 제 앞으로 대출을 받았지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예요. 정말 지사장님은 사업가로 타고 나신 것 같아요. 아이디어가 너무 기발하고, 배포도 정말 크세요. 호호호........! 내가 좀 더 배우고, 나이가 좀 어렸으면, 사랑고백이라도 했을 줄 몰라요."

김명자의 말에 나는 내심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사업상 멘트를 날렸다.

"나도 나이가 좀 더 들었으면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는 건데, 누님 벌이니........"

이렇게 얼버무린 내가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

"아까 은행에서의 말은 진심 이예요."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김명자에게 말했다.

"명자 씨가 시집갈 때는 정말로 혼수 감으로 TV 한 대 사줄 거예요."

"정말이세요? 나는 농담으로 들었는데........"

종전의 내가 데이트 신청이라도 하겠다는 말에 크게 고무되었는지, 요상하게 변한 것을 느끼는 나였다. 그 전 같으면 사양하는 말을 하느라, 한참이 걸렸을 텐데, 대답이 내 예상외였던 것이다.

"나는 농담이라도 그런 빈말은 안 해요. 그러니까 오래 근무나 하세요."

"네, 지사장님!"

확연히 밝아진 얼굴로 껑충껑충 뛰며 앞서나가는 김명자였다.

나는 사무실까지 같이 와 김명자를 들여보내고 집으로 향했다. 낮술을 하고 총무들이나 여타 직원들을 대하기도 뭐하고, 대출 건마저 잘 이루어져, 나는 기분 좋은 마음으로 집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가서 공부나 하기 위해서였다. 맥주 두 병이야 내 주량에 비하면 간에 기별도 안 간 정도이므로, 공부를 하는데 하등 지장이 없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예상치 못한 손님이 와 있었다. 장모님이었다. 두 사람이 부엌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장모님이 어쩐 일이십니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도 하고, 또 지난번에 보니 김치 한 포기 제대로 없는 것아, 내 김장김치 안 가져왔나?"

"이거예요."

미정이 자랑스럽다는 얼굴로 양동이에 가득담긴 배추김치 포기를 내보였다.

"와, 맛있겠다. 장모님 잘 먹겠습니다."

나는 과장스럽게 말하고 인사까지 꾸벅했다. 나의 좋아하는 모습에 장모님도 덩달아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뭘 하고 계셨던 거예요?"

"내 사위 오면 줄려고, 부침개 부치라고 했다."

"하하하........! 장모님 덕분에 오늘 맛있는 것 먹어보겠네요."

"나, 고생 하는 건 생각 안 해요?"

미정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것아, 이게 뭐가 고생이야. 여자로서 당연히 할 부엌일을 가지고."

"에이, 엄마가 안 왔으면 내가 이런 일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럼, 나가리?"

"가시던지, 말든지........"

"저년이........"

"메롱 하나도 안 무섭다."

"아이고, 내가 자식교육을 잘못 시켜가지고........"

장모님은 거짓으로 우는 표정을 연출하기 위해, 눈에 침까지 발라가며 연기를 하셨다. 나는 물론 미정이도 박장대소를 했고, 장모님도 끝내는 덩달아 웃으셨다. ============================ 작품 후기 ============================많은 추천과 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많은 쿠폰을 주셔서, 이 자릴 빌러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작품 후기 ============================많은 추천과 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많은 쿠폰을 주셔서, 이 자릴 빌러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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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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