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어머니는 다음 날 일찍 촌으로 돌아가셨다. 그로부터 삼 일 후.
내가 아침 10시 반에 사무실로 출근하자마자, 경리 김명자가 서류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왔다. 지사장실이었다.
"자전거 견적 받은 결과입니다."
"줘 보세요."
나는 제일 첫 번째에 있는 두 회사의 가격을 보았다.
삼천리는 대당 2,750원을 제시해 놨고, 대영은 2,700원이었다.
"더 이하로 다운은 안 된다고 하던가요?"
"네! 대리점 가격을 흐릴 수는 없다고........"
"알겠습니다."
나는 이제 군소 회사들을 살폈다. 십여 개 업체 이상의 견적을 받았지만 상 위의 세 업체만 가격을 살펴보았다. 천리마가 2,500원으로 제일 낮은 가격을 제시했고, 비룡이 2,550원, 창성이 2,600원을 제시해 놓았다.
"흐흠.........!"
낮게 침음한 내가 김명자에게 물었다.
"이 세 업체 전화번호 있지요?"
"네. 가져올까요?"
"그래요."
내 대답을 듣고 김명자가 나가는데 교대로 명희가 커피를 타들고 들어왔다.
"공부는 잘 하고 있는 거야?"
"아직은........"
"시간은 너를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열심히 할게요."
미정이 사온 검정고시용 참고서를 어제 내가 전달해 주었기 때문에 오고간 대화였다.
"알았어, 일봐!"
"네!"
명희가 나가고 다시 김명자가 들어왔다.
"이 것 입니다."
나는 명희가 내민 메모지를 받아 읽어보았다.
"지역번호를 보니 서울, 대구, 대전, 곳곳에 위치해 있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합시다. 이 세 회사에 전화를 걸어 직접 담당자가 본 지사로 오도록 하세요. 면담 날짜는 내일 오후 2시로 전하고, 사실 그대로를 얘기해 주세요. 세 업체만 남았는데, 최종적으로 가장 낮은 가격을 오퍼하는 업체를 선정하기 위한 모임이라고요."
"네, 알겠습니다. 지사장님!"
"다른 특별한 일은 없지요?"
"이 가격대면 우리가 보유한 자금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요? 지사장님!"
"맞아요. 충분이 예견되는 문제지요. 해서 나는 제1금융권에 대출을 좀 받을 생각 이예요. 정 안 되면 납기를 한 달 늦추면 되요. 이번 자전거 판촉은 고가품을 주는 것이니까, 바로 판촉 다음 달부터 수금에 들어갈 예정 이예요."
"알겠습니다. 지사장님!"
"다른 문제는 없지요?"
"네, 지사장님!"
"나가 일 보세요."
"네!"
김명자가 나가자 나는 혼자 생각에 잠겼다. 오늘 결재서류를 보니 자전거 견적가 중 최저가를 제시한 곳도 대당 2,500원 이었다. 이 금액으로 내가 전용하여 쓸 수 있는 예금 600만 원어치를 산다면 2,400대 뿐이 살 수 없었다. 경리자금까지 빼 쓸 생각은 없으니까,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내가 최소로 판촉할 부수가 3,500부였다. 이렇게 계산하면 1,000대를 살 돈이 부족했다. 그래서 나는 이 금액에 대해서는 대출을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사장실을 나와 명희에게 이야기를 해 주 재후 주재기자에게 전화를 걸도록 했다. 잠시 후 명희가 전화기를 나에게 넘겨주었다.
"지사장입니다. 주 기자님!"
"아, 반갑네! 어쩐 일인가?"
"점심시간에 잠시 뵐 수 있을 까요?"
"우리야 점심시간이 따로 있나? 필요하다면 지금 바로 만나도록 하지."
"그럼, 저희 사무실에 한 번 들려주시죠."
"알았네, 바로 출발하도록 함세."
"네, 기다리겠습니다."
전화기를 돌려주고 나는 김명자에게 은행에 가서 30만 원을 찾아오도록 했다.
잠시 후.30분이 지나자 주 기자와 김명자가 동시에 들이닥쳤다. 이를 보고 내가 놀렸다.
"두 분이 연애하는 것은 아니시죠?"
내 말에 김명자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부인했다.
"입구에서 만났습니다. 지사장님!"
그런데 지사장님 소리가 좀 크다. 이에 반해 주 기자는 능글맞게 웃으며 답변도 아주 여유가 있었다.
"내 나이가 얼마인데 그런 소리를 하나?"
"아직은 열 여자마다 않게 생기셨는데요?"
"하하하.........! 그렇게 보아주니 고맙군!"
우리는 웃으며 지사장실로 향했다. 요사이 이런 농담을 했다면 아마 성희롱으로 고발을 당하면 벌금깨나 나올 것이다. 그만큼 여권(女權)이 신장했다는 뜻이리라. 아무튼 둘은 소파에 앉아 대화를 시작했다.
"그래, 무슨 바람이 불어 나를 불렀나?"
"이제 본격적으로 판촉도 해야겠고, 판촉을 하려다보니 자금이 좀 부족해서요."
"서부에서 돈 좀 만지지 않았나?"
"그 돈 다 쏟아 붓고도 500 정도가 모자랍니다."
"뭔 판촉을 하는데 그렇게 돈이 많이 들어? 지난번과 같이 설렁설렁 하면 되지."
"이곳은 벌써 판촉전이 뜨겁더군요. 그래서는 서로 출혈만 심하고, 이번에는 자전거를 한 번 써볼라고 합니다."
"아니, 그 비싼 자전거를 경품으로 준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그래가지고는 답이 나오나?"
"그 대신 바로 직수고, 2년 계약을 해야지요."
"하하하.......!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군. 감히 범인은 상상도 못할 배포에 아이디어 일세. 내 장담하건데 부수가 쏟아질 걸세."
"저도 그런 예상으로 무리를 좀 하려는 것입니다."
"좋네, 좋아! 내 적극 지원하지. 청주에서 우리 신문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가면, 어디 가도 내 목에 기브스 좀 하고 다닐 수 있을 테니까. 그래, 주거래 은행이 어디 인가?"
"제일 은행입니다."
"아무래도 자네와 거래 실적이 있는 곳이 서로 얘기하기가 편하지 않겠나? 전혀 모르는 생짜 보다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어. 일단 전화를 걸어 놓고."
아마도 제일은행 청주지점장과 면담시간을 잡으려는 모양이었다. 이 때 노크 소리가 들리며 명희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이 사무실 경리들은 모두 예쁘단 말이야."
"넘보지 마십시오. 제 약혼녀입니다."
"그래?"
내 말에 주 기자가 새삼 명희를 아래위로 훑고, 명희는 새빨개진 얼굴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그런 명희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순진함에 내심 웃음이 나왔지만, 그 분위기에서 빨리 탈출시키고 싶어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명희야!"
"네, 지사장님!"
"제일은행에 전화 걸어서, 여기는 한국일보 기자실이라 하고, 지점장 보고 시간 좀 낼 수 있느냐고 물어봐."
"네!"
"아니, 아가씨! 잠깐만."
명희가 곧 바로 나가려는데 주 기자가 제동을 걸었다.
"그러지 말고 일단 제일은행이나 연결해줘요. 그 다음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네, 기자님!"
명희가 나가자 주 기자가 나를 보고 말했다.
"꼴에 지위와 체면이 있다고, 경리 정도가 얘기해서 면담시간을 잡아 줄 사람들이 아닐세."
"하긴 그렇겠네요."
잠시 말이 끊겼다.
"식기 전에 드시죠."
"그럴까?"
둘은 후후 불며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는 블랙이요, 나는 프리마까지 들어간 커피였다.30분 후.
우리는 주 기자의 차량으로 이동해, 제일은행 지점장과 마주보고 앉아 있을 수 있었다. 물론 지점장 실 안에서였다. 북문로에 위치한 한국은행 청주지점 바로 옆 건물 내였다.
"누가 대출을 받으시려 하시는 것입니까?"
지점장의 말에 내가 막 대답을 하려는데, 주 기자가 슬쩍 내 옆구리를 치며 제지를 했다.
"아이고, 이거! 지점장님이 깔고 앉는 방석이 호피 방석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며 지점장용 회전의자로 가서 호랑이 그림이 그려진 타월을 괜히 쓰다듬어 보는 주 기자였다.
"그럴 리가요. 보다시피 그냥 타월입니다."
"리베이트도 쏠쏠하게 들어온다면서요?"
주 기자의 말에 살짝 당황한 지점정이 극구 부인하기 시작했다.
"전혀 그런 일 없습니다.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요? 아주 투명하고 정직한 사회 아닙니까?"
백년하청이라고, 황하의 물이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면 맑아지겠는가? 아마 이런 말은 50년 전의 관료사회에서도 썼을 것이다. 항시 당시의 시대는 맑고 투명한 시대였다. 그것이 지나고 보면 비리와 부패 투성이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주 기자가 지점장의 말에 놀란 듯 가장하여 눈을 치뜨며 말했다.
"아, 하긴 공명정대한 사회죠. 사회 일각에서 말썽을 일으켜서 그렇지. 아마 내가 접한 소스가 거짓일 거요."
주 기자의 말에 지점장이 어색한 표정으로 재빨리 수습에 나섰다.
"기자님! 그러지 말고 일단 앉아서 말씀하시죠."
"아, 그럽시다. 우선 통성명이나 하고. 나 주 재후라 하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일보에 몸담고 있습니다."
"네, 네. 좀 전의 전화로 확실히 들은 바가 있습니다. 연장희입니다."
"보기 드문 성 씨구료."
"여기서 가까운 도안 출신입니다."
비로소 내가 끼어들었다.
"도안이 연 씨의 집성촌입니다."
"아니, 학생이 어떻게 알고 있소?"
"제가 도안면 출신입니다."
"그래요? 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여간해서 고향 사람 만나는 일이 드물어서 말이야."
"그럴 겁니다. 많지 않은 인구이니........"
둘의 대화에 주 기자가 끼어들었다. 손까지 저으며.
"고향 동문회는 따로 두 분이 만나서 하시고,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내 도지사와 점심 약속이 되어 있어서 말이요."
"네, 네!"
지점장도 허풍이라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이런 놈들에게 잘못 보여 하등 좋을 것이 없으므로, 시종 저자세로 일관하며 빨리 용무 보고 나가길 바랄 뿐으로, 얼른 대답하고 만다.
"제가 한 500만 원 정도가 필요해서요?"
"우리 은행에 거래는 하고 있습니까?"
나는 품에서 두 개의 통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아, 상당한 예금을 하고 계시군요. 그런데 나이가 좀 걸립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해서 이 사람 이름 앞으로 대출을 일으키면 안 되겠습니까?"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또 하나의 통장을 제시했다. 경리 김명자의 통장으로 사무실 경비 등이 예치되어 있는 통장이었다.
내가 건넨 통장을 잠시 살펴 본 지점장이 의문의 눈으로 물었다.
"실례지만 두 분의 관계가?"
"우리 사무실 경리입니다."
"사무실이라 함은?"
통장명이 법인명도 아니고, 내 개인이름으로 되어 있으니, 당연히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모를 것이다. 주 기자 때문에 한국일보와 연관이 되어있다고 추측은 했을지 몰라도.
"제가 한국일보 지사장입니다."
"그래요.......?"
크게 놀란 듯 눈마저 커졌다.
"그래도 미성년이라 곤란한데..........?"
"그래서 제가 김명자를 대출 인으로 지정하지 않습니까?"
"본인도 동의하셨는지요? 아니지 본인의 주민증, 인감도장, 여타 필요한 것이 많으니 혹시 뵐 수 있을까요?"
"바로 오라고 하죠."
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지점장이 자신의 전용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것을 쓰세요."
"고맙습니다."
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김명자에게 전화를 걸어 즉시 택시를 타고 이곳으로 오도록 했다. 이럴 줄 알고 사전에 나는 김명자와 대충 입을 맞추어 놓은 상태였다.10분도 안 되어 김명자가 들어왔다.
대뜸 지점장이 김명자에게 물었다.
"재산 좀 있습니까?"
정식으로 업무가 시작되자 아주 날카로워지는 지점장이었다. 주 기자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내가 끼어들었다.
"경리아가씨가 재산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습니까?"
"보증인은요?"
김명자가 대답할 새도 없이 내가 또 끼어들었다.
"지점장님, 제 얘기를 들어보세요."
이렇게 운을 뗀 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 돈은 신문 판촉용입니다. 즉 자전거를 한 대씩 주고 신문을 보게 하겠다는 겁니다. 기존의 타 신문은 바꿔보게 하고요. 지점장님도 자전가 한 대 드리면 신문 한 부 안 바꿔 보겠습니까? 신문 값은 똑 같은데 말이죠."
"당연히 나라도 바꿔보겠습니다."
지점장의 맞장구에 내 말에 더 열정이 붙었다.
"한 3,000대를 신규로 판촉하려니 돈이 부족합니다. 물론 외상을 하면 물건을 가져올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단가가 올라가죠. 그 보다는 은행이자가 쌀 것 같아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니 지점장님이 협조 좀 해주세요."
"허, 허........! 그것 참.........!"
난감한 표정의 지점장이었다. 이럴 때 자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 주 기자가 나섰다.
"혹시 살다보면 지점장님도 곤란한 경우를 당할 때가 있을 겁니다. 내 힘은 없지만 적극 도와주리다. 이것이 내 명함이요."
양복 새끼 호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건네는 주 기자였다. 알다시피 기자라는 족속은 남이 자신을 사칭할까봐 여간해서는 명함을 안 건넨다. 나 때문에 오늘은 명함 한 장이라도 건네는 주 기자였다.
"허허, 이것 참..........!"
한 번 더 난감한 표정을 짓던 지점장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손에 들고 있던 명함을 자신의 지갑에 챙겨 넣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대출은 해드리죠. 그 대신 가능한 제 변명거리라도 하나 있어야 하니, 대출과 동시에 1년 기한으로 500만 원짜리 정기예금을 하나 들어주는 것으로 합시다."
소위 말해서 이것이 '꺽기'다. 대출과 동시에 그에 상응한 예금을 들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예금 실적을 올리려는 것이다.
"좋습니다. 그 정도는 제가 해드려야죠."
"그럼, 됐습니다."
이렇게 말한 지점장이 이번에는 김명자를 정면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아가씨! 분명히 동의한 것이죠? 500만 원 대출 건에 대해서?"
"네!"
김명자가 작게 대답하고 고개를 숙였다.
"제가 시집갈 때 텔레비전이라도 한 대 혼수로 장만해주기로 했습니다."
"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이 당시 TV는 부유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도시에도한 동네에 한두 대 밖에 없을 시절이었다.
절이었다. 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