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27화 (27/322)

<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우리는 집을 나서서 곧 서문동 시외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집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를 우리는 손을 잡고 걸으며 마냥 행복해 했다. 꼰대(?)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우리에게 박혔지만 우리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곧 시외버스에 오른 우리는 보은 속리산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즐거움으로 재잘거리던 미정이 미원쯤 가서는피곤했던지, 내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나는 1주일 전에 제법 많이 내린 폭설이 아직도 온전히 그대로 쌓여 있는 차창 밖의 논과 밭 그리고 산하를 바라보며, 신문 경영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렇게 버스는 달리고 시간은 흘러 보은 쯤 오자 미정이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침 닦아."

"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되묻는 미정이었다.

"자던 침 묻었다고."

"아고, 창피해 !"

얼른 장지갑에 달린 거울을 보려는 것을 막고 내가 말했다.

"내가 닦아 줄게."

나는 손으로 닦는 척 하다가 혀로 입 부근을 핥았다. 얼굴을 붉히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살짝 살짝 쥐어박는 미정이었다.

"안 묻었는데........! 헤헤헤........!"

"아이고, 장난꾸러기!"

말과 함께 내 머리를 끓어 안아 자신의 가슴에 안는 미정이었다. 가슴의 볼륨감 때문에 나는 푹신해서 좋았다.

"이 오라비도 이렇게 하고서 한 숨 자야겠다."

"자장, 자장, 우리 아기, 잘도 자네, 잘도 자~!"

대답 대신 내 등을 토닥이는 미정이었다. 차 내에 손님이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손님이 많이 준 모양이었다. 미정과 내가 이렇게 장난을 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차는 드디어 말티 고개에 도달해,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지그재그 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오르고 올라도 끝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 차창 밖을 바라보니 밑이 아찔했다. 눈에 덮인 계곡이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어머, 무서워라!"

미정이 그 아찔함에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만약 여기서 버스가 구른다면 시체도 못 찾을 듯싶었다. 나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눈 덮인 계곡이 멋있기만 하고만!"

"너무 아찔해요."

"쳐다보지 마. 태아에게도 안 좋겠어."

"네!"

이제는 내 품속에 묻혀 나를 꼭 끌어안는 미정이었다. 이윽고 고개를 다 오른 버스는 평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정이품송이 나타나고, 곧 우리는 속리산 정류장에서 하차를 했다. 이어 우리는 양쪽의 상가를 거쳐 오리 숲을 지났다. 곧 우리는 법주사 경내로 들어가 팔상전과 미륵불, 사자석등을 구경하고 대웅전으로 들어갔다.

곧 우리는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나는 딱 세 번만 하고 대웅전을 나와 댓돌 위에 서있는데, 미정의 절은 계속되고 있었다. 끝없는 절이었다. 만류하지 않으면 108배라도 할 셈인 것 같았다. 다시 신발을 벗고 들어가 내가 미정의 옆에 서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하지. 태아의 건강에 해로워."

"네, 그만 할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세 번을 더 절하고, 가슴에 손을 모은 그녀가 비로소 절을 끝냈다. 정말 힘이 들었는지 콧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그 모습조차 귀여웠다. 이래서 눈에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가 보다. 나는 그녀와 나란히 걸으며 물었다.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했어?"

"아들 낳게 해달라고 빌었어요."

"나는 딸 낳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그러면 어째요? 3대독자라면서."

"그래도 나는 미정이 닮은 딸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어. 얼마나 귀엽겠어."

"저는 자기 닮은 아들 하나 낳게 해달라고 빌었는데요."

"그럼, 부처님이 헛갈리시겠다. 누구의 소원을 들어 주어야 할지."

"정말 그렇겠네요. 그래도 제 소원을 들어 줄 거라고 믿어요."

"믿는 자여 그대에게 복이 있나니........."

"뭐 하는 짓 이예요. 절에서 교회에서 쓰는 말투를 쓰다니........"

"알았어. 일절만 하자고."

"그 몸으로 문장대에 오를 수 있겠어?"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요."

"저 위로 올라가면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어. 저수지나 구경하고 점심이나 먹으러 가자고."

"벌써 점심 때 됐어요?"

"우리가 좀 늦게 출발했잖아."

"그래요. 그러나저러나 자기, 촌에 한 번 다녀와야 되는 것 아니 예요?"

"왜? 쌀 떨어졌어?"

"꼭 쌀이 떨어져야 가나요. 혹시라도 시부모님들이 청주 나오실 일이 있다가, 자기 살던 곳을 찾아가 봐요. 얘기도 없이 이사했다고 얼마나 서운해 하시겠어요. 또 집안에 무슨 급한 일이 있을 수도 있고. 할머니도 계신다면서요. 더군다나 전화도 없으니........."

"요번에 집에 가면 집에 지사 전화번호 알려주고 와야겠다. 급한 일이 있으면 그곳으로 연전화하라고 하고."

"동네에 전화 있는 집은 있어요?"

"명희네. 동네 이장이기도 해."

"다행이군요. 누구네 집인지는 몰라도 한 대라도 있다니."

아직 미정은 명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몰랐다.

"그러나저러나 시부님들이 저를 좋아 하실까요?"

"당신 같은 예쁜 며느리를 안 좋아하면 누구를 좋아해?"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왠지 걱정이 돼서.........."

"그 문제는 걱정 마. 내가 다 해결할 테니까."

"고마워요. 자기."

쪽!

갑자기 내 입술에 가볍게 뽀뽀를 하는 미정이었다.

"어허, 이게 무슨 짓이야? 신성한 경내에서."

"호호호........!"

작게 웃은 미정이 말했다.

"부처님도 좋게 보실 거예요. 이 얼마나 아르다워요. 청춘남녀의 사랑이."

"맞아. 청춘남녀가 사랑을 하지 않으면, 불자도 다 없어지는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내가 먼저 할까?"

그러면서 내가 입술을 앞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들이대니, 미정이 질색을 하는 척하며 말했다.

"치워요. 징그러워요."

"언제는 잘만 빨더니........"

"이이가 정말 못하는 말이 없네."

"사실이 그렇잖아?"

"몰라욧!"

앵도라져 옆으로 떨어져나가는 미정이었다. 나는 실실 웃으며 그녀 곁으로 가 덥석 팔짱을 끼고 저수지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돌팔매질을 하여 동심원을 만들기도 했고, 눈 쌓인 앞산의 절경을 바라보며 오손도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자 우리는 상가 지대로 내려와 식당에서 속리산의 명물 요리인 산채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어 기념품 가게에서 효자 손 하나를 사고, 토산품가게에서는 말려놓은 묵나물 한 죽을 사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1월 4일 오전 10시 30분.

오늘은 이 시간에 시무식이 있는 날이었다. 새벽에 신문을 배달하고 한숨씩 자고, 이 시간에 전부 모이도록 한 것이다. 시간이 되자 총무들이 모여들었다. 10시 30분이 되자, 지사 소속 총무 7명, 보름 동안

의 인수인계 기간이 끝나지 않아 아직은 서부지국 소속인 총무 3명, 여기에 남부 지국 총무 3명에, 전 지국장 밑에서 있다가, 공금횡령 혐의로 3년간 적은 월급으로 근무하게 된 임 소장을 포함하여 4명이 전부 집합을 완료했다. 여기에 김명자와 이명희 경리까지 총 16명이, 소속대로 열을 지어 섰다. 이들에 앞에선 내가 훈시를 시작했다.

"작년에는 여러분들의 분투노력으로 빛나는 한 해였습니다. 올해도 이를 이어받아 더욱 발전하는 한 해로 만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기본인 배달은 여하한 일이 있더라도 철저하게 할 것, 둘째 수금율 95% 이상을 달성할 것, 셋째 올해도 대대적인 판촉이 진행될 예정이니 소정의 판촉 목표를 달성할 것. 끝으로 올해도 여러분 모두 건강하기고 무사고로 한 해를 마무리 합시다. 이상입니다."

"박수........!"

바람잡이 안배성의 박수 유도에 장내가 한동안 박수소리로 진동을 했다. 이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복싱체육관에서 생활하며 아직 서부지국에서 배달을 하고 있는 고민호였다.

"네가 오늘 여기 어쩐 일이냐? 요즘 자주 본다."

전에는 거의 사무실에 나타나는 일이 없더니 근간에는 지사 사무실에도 자주 놀러오는 고민호였다.

"지사장님께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친구지만 공식석상이라 존댓말을 쓰는 고민호였다. 그의 말에 내가 지사장실을 가르키며 말했다.

"잠시 들어가 있어. 내 곧 들어갈게."

"네!"

가볍게 목례를 해보인 고민호가 지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낮이고 일을 해야 하므로 곧 다과회가 열렸다. 긴 탁자에 과일과 차 그리고 음료수와 과자부스러기가 놓인 가운데 총무들이 시끄럽게 이야기를 하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를 확인한 나는 곧 지사장실로 향했다.

내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물었다.

"고민이 뭔데?"

"응, 지사에서 배달을 하고 싶어. 너도 없는데 왠지 서부지국에 있긴 싫어."

둘만 있었으므로 지가 알아서 반말을 했다.

"고민이랄 것도 없네. 여기는 아직 사람이 남아돌아가고, 서부는 아직 빠지면 곤란할 거야. 그렇지만 곧 이 곳 지사구역에 대대적인 판촉을 할 거야. 그때 오도록 하고. 서부지국에는 미리 얘기해서 사람을 수배해놓도록 해."

"알았어."

"운동은 잘 되냐?"

내 물음에 고민호가 대답했다.

"그저 그래."

"전국체전에 나가 고등부 라이트웰터급(몸무게 60~63,5kg) 충북대표로 출전해, 금메달을 딴 놈이 죽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프로로 전향할까 하는데, 쉽지 않겠어. 우리나라는 선수층이 얇은데다가 강자는 전부 외국 놈들인데 챔피언 되기가 정말 힘들 것 같아."

"너는 마. 지금 마음자세부터가 틀렸다. 필승의 신념을 가져도 힘든데, 마음부터 지고 들어가니 무슨 챔피언이 돼. 그러지 말고 나 따라 다니며 사업이나 열심히 배우던지?"

"무슨 사업을 할 건데."

"신문 사업은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할 거고. 그 후의 사업은 여러 분야를 놓고 검토 중인데, 아직 결론이 안 났다."

"지국 경영하는 것을 보니 정말 똑 소리 나도록 하더라. 너는 정말 사업체질이다. 무슨 사업을 해도 잘 할 것이다."

"그러니 나만 따라다니란 말이다."

"밥이야 안 굶겠지만 비전이 있어야지?"

"비전이 없는 사업은 죽은 사업이다. 할 필요도 없고. 당연히 비전이 있을 테니, 걱정 말고. 또 내가 크면 네가 매양 쫄따구겠냐? 같이 크는 거지. 그러니 내 말대로 해."

"내 장래가 걸린 일인데, 진지하게 한 번 생각해보고 답을 줄게."

"알았다. 다른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

"응. 온 김에 잠시 놀다가야겠다."

"시간 있으면 그렇게 하고."

이때까지는 고민호가 왜 자꾸 사무실 출입을 하려고 하는지 나는 그 이유를 몰랐다. 고민호가 나가자 나는 두 경리를 불러들였다.

"거기 앉아 봐."

"네!"

내 지시에 맞은편 의자에 두 손을 양 무릎 위에 올려놓고 단정한 자세로 앉는 두 사람이었다.

"명희야! 서부지국 업무는 마무리를 짓고 있는 거지?"

"네."

이제 시선을 김명자에게 맞춘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앞으로 이 구역에 대대적으로 판촉을 할 거요. 그러자면 자금이 대대적으로 필요한

데, 여유자금이 총 얼마나 있지요?"

"그 전에 두 지국에서 벌어 통장에 예치해 놓은 돈이 3백2십만 원, 금번에 서부지국을 넘기면서 받은 권리금이 지난번 지사장님이 2십만 원을 가져가셨으니, 3백만 원, 여기에 사무실 경비로 항상 30만 원 돈은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총 6백5십만 원의 여유자금이 있습니다."

"흐흠.........."

김명자의 대답에 나는 책상을 톡톡 두드리며 어림셈을 해보았다.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자금 걱정은 안 하고 다음 일을 추진하기로 했다.

"알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불렀으니 나가서 일보세요."

"네, 지사장님!"

함께 일어나는 명희를 나는 잠시 불러 앉혔다.

"잠깐, 명희 너는 잠시 남아 봐!"

"네!"

단 둘이만 남아 있게 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바닥만 바라보고 있는 명희였다. 그런 그녀에게 내가 말했다.

"요새 바쁜 일이 너무 많아 네게 신경을 못써줘서 미안하다. 어디 불편한 점은 없고?"

"저는 이 생활에 만족해요. 오빠가 아니면 내 학력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돈을 받고 일을 해요. 오빠에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내 눈치를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명희였다. 내 눈치를 보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는 명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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